(130)
누가 들어도 흥겨운 인트로였다.
따다당, 따다다.
귀에 익은 전주에 외국인들이 먼저 어깨를 들썩인다.
“오우, 스티비 완더.”
“오, 그레이트.”
그들의 말대로 이경민이 선택한 곡은 유명한 팝 가수인 스티비 완다의 노래였다.
도훈은 그 노래에 눈을 가늘게 떴다.
노래는 준비하는 이경민은 도훈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경민은 나름대로 훌륭한 선곡을 생각했다.
외국인들도 제법 있어 호응을 이끌기 위해서는 글로벌 한 선곡이 필요했다.
지금 반응을 보니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고 이경민은 입술을 올렸다.
이경민은 전주에 맞춰 마이크를 맞았다.
“아이 저스트 콜…….”
그의 노래에 먼저 반응한 것은 외국인 그룹이었다.
그들 중에서도 제법 나이가 들어 보이는 이들이 술잔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다당, 따다다.
반주에 맞춰서 이경민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온다.
노래는 드디어 반환점을 돌았다.
1절이 끝났을 때는 외국인들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무대를 바라보며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는 이경민이 관객들과 시선을 마주치며 입가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아래에서 그를 바라보는 도훈도 고개를 끄덕였다.
싸가지는 없지만, 녀석의 노래 실력 하나를 알아줘야 했다.
제법 반반한 얼굴과 저 목소리 정도면 보통 사람들은 안 넘어가고는 못 배길 것이었다.
거기에 재력까지.
아니, 재벌가 사이에서도 저 정도의 목소리와 외모면 충분히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한다.
전생의 기억에 의하면 태창 그룹의 부회장직까지 오르니 제법 성공한 놈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녀석도 도훈에게 상처를 남긴 놈 중 하나라는 것이다.
수첩이 반응하는 것을 보면 확실했다.
그때였다.
뚜루루, 땅땅!
음악이 끝나고 이경민은 조용히 관객들을 바라봤다.
순간 자연스럽게 울리는 함성.
우아아!
와아아!
함성이 잦아들자 이경민은 무대에서 살짝 고개를 숙인다.
그러고는 마이크를 내려놓고는 돌아섰다.
그대로 퇴장하려던 이경민은 살짝 고개를 돌리고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미소를 띠었다.
순간 다시 터지는 함성.
와아아!
기가 막힌 타이밍에서 터지는 함성을 뒤로하고 그는 무대에서 내려왔다.
순간 도훈은 자신도 모르게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스타플레이어 예선의 데자뷔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진행 요원이 소음 측정기를 무대 위에 있는 황수영에게 보여 줬다.
황수영은 그 숫자를 보고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지금 측정 결과가 나왔네요, 여러분. 측정 결과는…….”
황수영은 잠시 말을 끊었다.
그 모습에 관객이 된 파티 참석자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의 표정을 확인한 황수영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60초 뒤에 확인하겠습니다! 잠시 전하는…….”
살짝 말끝을 흐리는 황수영.
그녀는 멋쩍게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니 이 무대는 광고가 없었네요.”
순간 터지는 웃음 폭탄.
모두가 웃을 때 외국인들만이 고개를 갸웃한다.
그때 도훈이 그들에게 황수영의 멘트를 통역했다.
외국인들도 웃음을 터뜨리자, 이곳 파티장은 공연장처럼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 모습에 도훈이 눈을 가늘게 뜨며 손바닥을 바라봤다.
매니저의 비밀 수첩은 재능까지 심어 주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한민국이나 엄지연에게도 저런 재능을 심을 수 있을까?
그 법칙은 시간이 날 때 찾아봐야 할 것 같았다.
웃음이 잦아들자 황수영이 마이크를 잡고 말을 이었다.
“구십……구 데시벨이네요. 이 정도면 적수가 없겠는데요.”
다시 울려 퍼지는 함성.
와와아!
도훈은 황수영의 멘트에 고개를 끄덕였다.
무조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관객의 함성은 아무리 높아도 이 정도면 최상급이었다.
전투기가 이착륙할 때 내는 소리가 120데시벨.
자동차의 경적이 110데시벨.
열차가 통과 시 철도 주변 소음이 100데시벨이다.
이경민이 받은 환호성은 열차의 소음과 맞먹는다는 것이었다.
함성을 지르는 사람이 많다면 그 데시벨이 높아질까?
그것은 아니었다.
특정한 인물 하나가 내는 소음이 커야 한다.
99데시벨이면 다수가 내는 소음 중에는 거의 한계치였다.
도훈은 슬쩍 호텔 쪽을 바라봤다.
창문이 열리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호텔 쪽에는 방음장치가 잘되어 있는 듯 보였다.
뭐, 오늘뿐이겠는가?
남들에게는 인색하지만, 자신의 인생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는 최크루지 최 회장의 성격상 이런 파티가 계절마다 열릴 것이었다.
도훈이 무대를 조용히 바라볼 때였다.
사람들이 무대 쪽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그 후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 때문인지, 사람들은 무대 위에 오르기를 기다렸다.
황수영의 능숙한 진행 덕분에 깜짝 이벤트는 계속 달아올랐다.
그때였다.
재벌가의 친구들이 고개를 갸웃하며 어딘가를 바라봤다.
그들이 바라보는 곳은 당연히도 도훈이 있는 곳이었다.
여유 있게 칵테일을 들이켜던 이경민이 도훈을 바라봤다.
“혹시 쫄리나?”
“아직까지 1등이 너지?”
“당연하지, 포기하면 깎아 줄게.”
“깎아 주다니?”
“50억에서 25억으로 반값 할인해 주지.”
“흠, 그건 내가 할 말이긴 한데…….”
“하하.”
“나는 안 깎아 주련다.”
도훈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재킷을 의자에 걸쳐 두고 무대로 걸어갔다.
진행 요원에게 걸어간 도훈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윌비백이요.”
“네?”
“MBS에서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부른 노래인데…….”
“잠시만요.”
진행 요원이 다급하게 음원 목록을 찾아본다.
그러더니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준비가 안 된 음원이네요. 저희가 준비한 음원이…….”
진행 요원은 미안한지 이유까지 털어놓았다.
그들이 준비한 음원은 노래방 기계를 제작하는 미디어 회사에서 납품받는다고 했다.
정중한 그의 사과에 도훈이 손을 내저었다.
“괜찮습니다.”
“그래도요. 아까 내기하시는 거 봤습니다.”
“보셨다고요?”
“네, 저분이 성격이 조금 그래서 걱정이…….”
진행요원은 멀리서 칵테일 잔을 잡고 있는 이경민을 가리키며 말끝을 흐렸다.
아마 여기서도 진상 짓을 피운 것이 분명했다.
그의 매너는 필요할 때만 발동되니까.
도훈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정말 괜찮습니다. 어쩌면 반주가 없는 편이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불리하실 텐데요.”
진행요원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도훈은 그 말에 답하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 황수영의 멘트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그럼 마지막 무대 준비하겠습니다.”
그 멘트에 도훈은 천천히 무대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도훈은 마이크를 잡기 전에 슬쩍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봤다.
손바닥에서는 수첩이 반짝이고 있었다.
[보상 인벤토리1: C, A, Y]
도훈은 이 중요한 순간에 한 가지를 실험해 보기로 했다.
그것은 보상 인벤토리 안에 있는 알파벳을 적용할 수 있는지였다.
물론 황수영에게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은 확인이 되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는지는 아직 확인해 본 적이 없다.
기본적으로 자신이 키우는 연예인들과 능력을 공유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조금 더 큰 능력이 필요했다.
그것은 바로 최고의 함성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도훈은 마지막으로 나왔기에 불리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앞에서 소리를 하도 지르다 보니 관객 중 몇몇은 목이 쉬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그들은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무대에 오른 이들이나.
아래에서 무대를 즐긴 이들이나 모두 혼연일체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도훈은 그들에게 마지막 함성을 짜내기로 했다.
도훈은 조용히 손을 자신의 심장에 올렸다.
그러고는 손바닥을 확인했다.
[보상 인벤토리1: ]
인벤토리가 완전히 비어 있었다.
도훈은 힐금 자신의 가슴을 바라봤다.
순간 도훈의 눈이 커졌다.
도훈의 심장은 마치 용광로처럼 붉게 빛났다.
물론 도훈은 이것이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컴퓨터로 치면 CPU가 열을 내며 돌아가는 모습과도 같았다.
쿨러라도 달아야 하는 걸까?
일반 쿨러가 아닌 수랭 쿨러를 달아야 심장을 식힐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열기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황수영이 멘트를 쳤다.
“지금 마지막 공연을 펼치실 분은 반주 없이 라이브로 진행하시겠다고 합니다. 곡명은 아윌비백입니다. 그러니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황수영은 큐시트를 접고는 구석으로 빠져나갔다.
도훈은 아래를 바라봤다.
제법 많은 수의 사람들이 눈을 빛내고 있다.
다만 도훈을 아는 사람들은 그저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뿐이었다.
박수 소리가 잦아들 때 도훈은 눈을 크게 떴다.
갑자기 몸이 신들린 듯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마이크를 잡겠다고 생각하자 손이 저절로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마치 명령어를 내리면 그 명령어대로 작업하는 프로그램과도 같았다.
물론 모든 것은 도훈의 의지였다.
다만, 생각하자마자 도훈이 예상했던 시간보다 더 앞서 행동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조금 이상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능력에서 벗어난 일을 할 때 신들렸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지금 도훈의 느낌이 그랬다.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만, 어떤 느낌도 없었다.
모든 것이 당연했다.
도훈의 머릿속에는 앞으로 펼칠 안무 주르륵 필름처럼 감겼다.
마치 미리 보기와도 같았다.
도훈은 필름처럼 펼친 안무와 자신의 목소리를 맞춰 봤다.
타다닥. 탁.
도훈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마이크에서 도훈의 목소리가 펼쳐진다.
“아윌비…… 아윌비, 내가 너의…….”
그 목소리에 맞춰 도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타다닥.
순간 아래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온다.
앗!
악!
그것은 도훈의 움직임이 너무 과격했기 때문이다.
도훈에게 지금의 무대는 좁았다.
도훈은 아슬아슬하게 무대의 가장자리를 밟으며 안무를 펼쳤다.
한 발만 삐끗하면 무대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
가장자리를 기준으로 아슬하게 경계선을 밟기 시작했다.
타다닥.
도훈의 구두 굽 소리가 강력하게 플로어에 울려 퍼졌다.
과격한 동작에도 도훈의 목소리를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도훈의 모습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아서 볼 수 있는 공연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무대 쪽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은 마치 좀비를 생각나게 만들었다.
만약 이곳이 핼러윈 파티장이라고 한다면 그들을 좀비 복장을 한 사람들이라 착각할 정도였다.
옆쪽에서 도훈을 바라보던 황수영은 귀를 매만졌다.
지금 도훈이 부르는 아윌비백은 황수영도 아는 노래였다.
그 노래 때문에 도훈을 알게 되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녀의 귀에 반주가 들리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자꾸 반주가 귓가에 울리고 있었다.
타다닥, 탁.
도훈의 목소리와 그의 스텝 밟는 소리가 묘하게 반주처럼 느껴졌다.
아니, 반주 그 자체였다.
그때였다.
도훈의 음역대가 점점 높아졌다.
“아아아! 아윌비!”
동시에 무대 아래까지 온 관객들이 눈을 크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