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123화 (123/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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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백석 회장의 표정이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는 황백석 회장.

그의 앞에 있는 회장도 똑같은 표정이었다.

이전에 들었던 이야기에 의하면 그는 다름 아닌 정노해.

분명 케이블 방송국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을 텐데 웃음을 참는 듯 보였다.

그때 정노해가 말했다.

“어떻게 보면 영어로는 케이블이 맞죠.”

“그렇군요, 정 회장.”

“그러면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정노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황백석이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네, 그러시지요.”

굳게 맞잡은 손을 보자 도훈은 입맛을 다셨다.

대체 무슨 분위기일까?

황백석이 가지고 있던 케이블 채널을 인수하는 일은 물 건너간 것일까?

도훈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였다.

황백석 회장이 손짓했다.

“일단 앉지.”

“네.”

도훈이 자리에 앉자 황백석 회장은 턱을 괴고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도 잠시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정 회장과 오가던 거래를 자네에게 주면 되겠나?”

“…….”

도훈은 살짝 눈치를 봤다.

뭔가 전생의 기억과는 다른 느낌.

본능이 입을 조심하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도훈은 재빨리 손을 흔들었다.

“회장님들끼리의 대화에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

“아니네. 내 손녀까지 소개시켜 줬는데, 그 정도 권리는 있어야지. 자네는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나눈다고 생각했나?”

황백석 회장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 모습에 도훈은 정공법을 택하기로 했다.

“사실 양 회장님처럼 골칫덩이를 처리하고 싶으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음, 그것도 맞는 말이네. 그런데 그 얘기는 하지 않았지.”

“정말입니까?”

“그래,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했고 그에 앞서 다른 거래를 하기로 했네.”

“무슨 거래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정 회장이 내게 수영이를 달라고 하더군.”

“네?”

“정 회장의 손자와 인연을 이어 주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이네.”

“그럼…….”

“그래서 장경자 회장의 손자와 이어 줄 거라고 했지. 그때 자네가 들이닥친 거지, 시점이 묘하지 않나?”

“…….”

“거기에 수영이도 같이 들어왔으니 누가 봐도 둘이 이어진 것으로 생각하겠지, 안 그런가?”

“그럼, 케이블이…….”

“둘 사이에 선이 이어졌으니 뭐, 그 선이 케이블 아니겠나? 하하.”

황백석은 웃음을 토해 냈다.

그 모습에 도훈이 황수영을 바라봤다.

지금 그녀는 손을 부채질을 하고 있다.

도훈은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았다.

그때였다.

황백석이 눈을 가늘게 뜨고 도훈을 바라봤다.

“나와 잠시 얘기 좀 나누겠나?”

“네, 좋습니다.”

도훈이 고개를 끄덕이자 황백석이 입을 열었다.

“우리 케이넷 채널을 원하나?”

“…….”

“그리 놀라지 말게, 자네가 알로TV에 관심을 보인데다가 아까 들이닥쳐서 한 말이 케이블 아닌가?”

“네, 관심 있습니다. 그런데 관심까지입니다.”

도훈이 슬쩍 그의 시선을 흘렸다.

상대는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재계의 백전노장이었다.

협상에서 질질 끌려가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었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그런데 묘하게 수 싸움을 하는 느낌이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황백석이었다.

“진심인가?”

“음…….”

살짝 틈을 둔 후 이도훈이 입을 열었다.

“진심입니다.”

도훈이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도훈이 케이블 TV를 인수하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누가 묻는다면 자신만의 엔터테인먼트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할 것이었다.

하지만 정확히는 바로 시청률 때문이었다.

수첩이 내주는 퀘스트는 마치 퀴즈처럼 여겨졌다.

거기에 퀴즈를 풀 때마다 자신뿐 아니라 자신이 키워야 할 연예인들도 업그레이드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도훈이 생각하는 이번 시청률 퀘스트를 푸는 방식은 간단했다.

자신의 연관되어 있는 프로그램의 누적이니 자신이 방송국을 가지고 있다면?

케이블 TV의 시청률이 다소 낮기는 하지만, 그 총합이라면 무시 못 할 터다.

그렇다면 누적 시청률 1만은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었다.

도훈의 느낌상 이번 같은 시청률 관련 퀘스트가 제법 많이 나올 것 같았다.

뭐, 퀘스트가 아니더라도 두 개의 방송국이 있다면?

자신의 연예인들을 국내 최고, 아니 세계 최고로 만들 기반이 될 터다.

그것도 빠른 기간 내에 만들려면 버프가 절실했다.

그 버프가 바로 방송국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질질 끌려가면서 협상에 임하고 싶지는 않았다.

도훈의 눈빛을 본 황백석이 말했다.

“그럼, 그냥 주겠네.”

갑자기 말을 바꾸는 황백석.

도훈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싫습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나?”

“계산은 정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계산이라? 그게 무슨 의미인가?”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언제는 공짜로 준다고 그랬나?”

“지금 그냥 주시겠다고…….”

“단서가 있지.”

“단서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 결정은 우리 손녀에게 맡기겠네.”

“네?”

도훈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것은 도훈도 예상 못 한 결과였다.

“지분의 반을 우리 손녀에게 넘겼으니…… 나머지 반을 사고 싶다면 최대 주주에게 확인을 받아야겠지.”

황백석은 손녀인 황수영을 가리켰다.

그 모습에 도훈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표정을 보니 결혼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

도훈은 여유 있는 표정으로 황수영을 살폈다.

시선을 받은 황수영은 어색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꼬았다.

“저도 조건이 있어요. 그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황수영이 초등학생처럼 씩씩하게 외쳤다.

도훈은 눈매를 좁혔다.

원래 나중에 얘기하자는 사람이 제일 무서운 법이었다.

그녀의 외침 속에 황백석 회장이 도훈 앞에 술잔을 내밀었다.

“사업 파트너인데, 일단 건배는 해야지.”

“네, 좋습니다.”

도훈이 잔을 부딪쳤다.

도훈은 잔을 들고 황백석과 황수영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리 생각해도 황백석의 속을 알 수 없었다.

일단 황수영은 도훈과 마찬가지로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다.

사업상의 이야기가 오가는 건지 혼담이 오가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이야기는 별 탈 없이 흘러갔다.

도훈에게 중요한 것은 케이블 채널이니까.

그럼 황수영에게 중요한 것은 뭘까?

그때 황백석 회장이 다시 잔을 내민다.

“술 마시는 사람 어디 갔나! 어서 들게.”

이건 마치 신입생 환영회 때 보는 광경이었다.

도훈은 에라 모르겠다 술잔을 들었다.

본래 비즈니스란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

도훈은 파주로 출근했다.

예선을 통과한 연습생들을 대상으로 멘토 역할을 하기 위해서였다.

연습생 개개인의 멘토는 아직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

사실 도훈이 맡을 것은 특정 연습생이 아닌 전체를 케어하는 일이었다.

우시원과 서찬휘를 케어하는 것처럼 나머지 연습생들과 캐미를 만들어 나가면 미션은 끝.

도훈은 복도를 휘적휘적 걸어갔다.

모든 연습생들이 땀을 흘리고 있다.

그들의 연습 장면을 보자 전생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물론 전생만 떠오르는 것은 아니었다.

어젯밤 개고생을 한 기억이 새록새록 머릿속에 차오르는 도훈이었다.

“술을 왜 그렇게 먹여 대는지…….”

도훈은 어젯밤 기억을 떠올리고는 이를 악물었다.

사업 파트너니 뭐니 하면서 황백석 회장은 계속 술을 권했다.

한계를 넘어서자 그 뒤로는 기억까지 가물가물했다.

도훈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배를 문질렀다.

그의 신체는 아직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다.

도훈이 미간을 좁히며 어제의 기억을 떨쳐 내려 할 때였다.

순간 뒤쪽에서 누군가가 헉헉대며 뛰어왔다.

긴 생머리의 여자가 저돌적으로 달려든다.

도훈의 앞에 선 그녀는 숨을 몰아쉬었다.

“휴우.”

그 모습에 도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신지?”

“저예요.”

“누구요?”

“어제 약속해 놓고 벌써 잊어버렸어요?”

“그럼, 황수영 씨?”

도훈이 눈을 크게 떴다.

어제와 비슷한 점이라고는 긴 생머리밖에 없었다.

어제와는 달리 화장도 옅었고 복장을 보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착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제는 제법 화려한 드레스를 입었던 반면 오늘은 검은색 정장이다.

거기에 굽이 없는 단화까지.

그때 황수영이 씩씩하게 외쳤다.

“네, 맞아요.”

황수영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도훈을 바라봤다.

도훈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황수영 씨가 여긴 웬일이에요?”

“어제 기억 안 나세요?”

“기억이요?”

도훈이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집중하자 흐릿했던 기억의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중에는 황수영과 했던 약속이 있었다.

황수영이 도훈에게 바라던 것은 딱 한 가지였다.

그것은 도훈이 무대에 서는 것.

그것 하나면 케이넷의 최대 주주가 되도록 허락하겠다고 했다.

무대에 서길 바란다는 것은 무엇일까?

도훈은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도훈의 표정을 본 황수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기억 안 나시는 거예요? 비즈니스에서 이러시면 안 되는데…….”

“대충 기억은 났어요.”

“아, 다행이네요.”

“조건이 제가 무대에 섰으면 하는 거잖아요. 그거 맞죠?”

도훈의 말에 본 황수영이 물개 박수를 쳤다.

짝, 짝.

“기억나셨구나.”

“아, 어렴풋이 기억나네요.”

도훈은 그제야 관자놀이에서 손을 뗐다.

만약 온전한 정신이었다고 해도 허락했을 조건이었다.

그런데 설마 조건이 그게 다?

이건 도훈이 예상했던 조건과는 완전히 달랐다.

적어도 미라클과 지분 교환을 요청할 줄 알았다.

생각을 정리하던 도훈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것은 전생과는 전혀 다른 상황 때문이었다.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나요? 황수영 씨.”

“그냥 수영 씨라고 편하게 불러 주세요, 도훈 씨의 매니저는 저잖아요.”

“매니저요?”

“제가 그랬잖아요. 도훈 씨를 무대에 세우겠다고!”

황수영은 야무지게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자, 잠시만요. 제가 무대에 서면 되는 조건이잖아요. 그런데 매니저는 무슨 말입니까?”

“에이, 일을 맡겨 놓고 감시도 안 하면 그게 계약인가요?”

황수영은 눈을 새초롬하게 떴다.

도훈은 그녀의 눈동자를 말없이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결심이 확고했다.

덕질의 목표를 아무래도 다른 쪽으로 바꾼 것 같았다.

도훈이 체념한 듯 말을 이었다.

“그래요, 수영 씨. 언제부터 케이넷의 대주주였어요?”

“그러니까…….”

황수영은 신이 난 듯 그간 이야기를 떠들었다.

설명을 듣던 도훈은 눈을 크게 떴다.

황백석이 황수영에게 지분을 양도한 것은 그가 장경자의 칠순 잔치에 참석하고 나서라고 했다.

생각해 보니 그날 황백석 회장이 왔었던 것도 같았다.

여기까지 듣던 도훈이 물었다.

“그 잔치랑 케이넷 지분이 무슨 상관이죠?”

“할아버지가 그 모습이 좋아 보이셨나 봐요.”

“무슨 모습이요? 영웅이 형이 초대 가수로 나온 거요?”

“아니요. 회사를 주니 그걸 통해 효도하는 모습에 감동받으셨다고 하네요. 회사를 주니 거기에 맞는 행동을 하는구나 하고 느끼셨다고 했어요.”

“하하, 일이 그렇게 흘러간 거네요.”

도훈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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