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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121화 (12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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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갸웃한 도훈은 무대를 바라봤다.

그곳에서는 강영웅이 아직 열창을 이어 가고 있었다.

지금은 강영웅의 공연이 끝나지 않은 상태였기에 목소리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

“저하고 얘기 좀 해요.”

“네, 그러지 않아도 아까 하던 얘기를 하려고 했습니다.”

도훈의 말에 황수영이 올렸던 양팔을 내렸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흥분해서 길을 막는 자신이 우스웠다.

자신과 얘기하다가 끌려간 도훈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 당연한 것을 이렇게 길까지 막다니!

이게 무슨 추태인가.

황수영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하지만 조명 때문인지 그녀의 변화를 도훈은 눈치채지 못했다.

황수영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잠시 밖으로 나가요.”

“네.”

도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연회장이든 이곳의 커피숍이든 장소는 관계가 없었다.

사실 이런 자리는 도훈이 먼저 청하고 싶었다.

처음에 올 때는 몰랐지만, 강영웅이 영동대교에서 차가 막혀서 늦었던 것이나.

황백석과 장경자가 손자와 손녀를 다리 놔 준 것이나.

모두 전생의 기억에 있던 내용이었다.

물론 세부적인 내용은 조금 달랐지만, 말이다.

오늘 중요한 일은 황수영과의 만남이 아니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오늘 이루어질 빅딜이었다.

케이블 방송 채널 두 개가 오늘 이 자리에서 헐값에 팔려나간다.

전생에는 그 주인이 조그만 중견 기업이었다.

두 개의 케이블 채널은 여성 중심의 방송 채널 하나와 음악 채널이었다.

도훈이 이 자리에서 얻어 가야 할 것이 바로 두 개의 채널이었다.

도훈은 전생의 기억을 더듬었다.

이곳에서 두 개의 채널에 대한 딜이 오갔지만, 회장들은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 봤자 골칫덩이라는 생각으로 채널에서 고개를 돌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생에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여성 중심의 채널은 차후에 홈쇼핑으로 개편이 되면서 대박이 나고 음악 채널은 음악과 드라마 그리고 인터넷까지 발을 넓힌다.

오늘 기회를 놓친다면 앞으로 십 년 안에는 이런 기회를 잡기 어렵다는 것이 도훈의 판단이었다.

도훈이 황수영과 대화를 나누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두 개의 채널 중 하나가 황수영의 할아버지인 황백석 회장이 넘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뭐, 황백석 회장이 그 채널을 넘기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것은 손녀 황수영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황수영은 소위 말하는 성덕.

그것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성공한 덕후였다.

황백석은 이런 손녀의 행동이 못마땅해 덕질의 창구가 되는 케이블 채널을 넘긴다.

중요한 것은 그게 바로 오늘이라는 것이다.

*    *    *

투명한 컵에 얼음과 커피가 적절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똑같은 투명 컵이 두 개.

도훈이 커피를 입에 털어 넣었다.

그러고는 심호흡했다.

“휴.”

“힘드세요?”

황수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 모습에 도훈은 피식 웃었다.

궁금한 게 많은데도 꾹 참고 있는 모습에 재미있었다.

참을성은 할아버지 황백석의 피를 이어받은 느낌이었다.

도훈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럼요, 당연하죠. 무대 위에서 그렇게 뛰고 소리를 질렀는데, 힘들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죠.”

“사실 저는 사람 아닌 줄 알았어요.”

“사람이 아니라니요?”

“아까 밖에서 들었어요. 뭐, 엿들은 건 아니고 궁금해서 갔는데…….”

“무슨 말을요?”

도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가 가장 먼저 꺼낼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것이 그가 원하는 채널을 손에 넣는 키워드가 될 가능성이 많았다.

도훈이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자 황수영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쇼팽과 리스트 아시죠?”

“네, 알죠.”

“원래 리스트가 기교파잖아요. 그리고 쇼팽은 정석을 추가하는 연주를 했고요.”

“들어는 본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쇼팽의 연주는 먹히지 않았대요, 그래서…….”

황수영은 그들의 이야기를 할머니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이어 갔다.

그녀의 이야기는 간단했다.

쇼팽과 리스트는 친구였고.

쇼팽의 연주가 상류사회에서 먹히지 않자 리스트는 한가지 묘안을 짜냈던 것.

리스트가 자신의 기교를 뽐내기 위해 불을 끄고 연주를 시작했던 것.

연주가 끝나자 박수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불이 켜져 있자 그곳에 앉아 있던 것은 쇼팽.

쇼팽은 그날의 공연 덕분에 유명해졌다고 한다.

빨대로 커피를 들이켠 황수영은 다시 말을 이었다.

“둘이 어느 부분에서 손을 바꿨는지는 정확한 사실이 전해지지는 않았어요. 저도 그냥 들었다면 오늘 강영웅 씨와 도훈 씨가 언제 바뀌었는지 몰랐을 거예요.”

“……그게 저와 무슨 상관이죠?”

도훈이 고개를 갸웃하자 황수정이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오늘 감동받았거든요. 21세기에 쇼팽과 리스트의 일화를 재현하는 아티스트가 있다는 게 존경스러워요.”

“아, 그건 쇼팽을 재현한 게 아니고…….”

“겸손하지 마세요.”

황수정은 커피를 탁자 위에 두더니 웅변을 하는 시늉으로 탁자를 탁, 쳤다.

그 모습에 도훈은 기가 찼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사실 저는 진지하게 대화를 하고 싶어서 온 거예요.”

“네, 말씀하세요.”

“왜, 그런 재능을 썩히세요.”

“재능을 썩히다니요?”

“제가 스타플레이어 예선 봤거든요.”

“아, 그때 우연히 무대에 선 장면이요?”

“그게 우연이에요?”

“네, 중간에 규칙이 바뀌는 바람에…….”

“우연이라면 더 재능 낭비죠. 우연인데, 그런 무대를 보여 줬다면, 연습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까요?”

“…….”

도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었다.

황수영이 하던 이야기는 자신이 전생과 현생에 계속 소속 연예인들에게 하던 말이었다.

그런데 왜 자신이 이런 말을 그녀에게 듣는다는 말인가?

전생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가?

전생에는 그녀는 바쁘다고 재빨리 자리에서 튀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미스트 콘서트를 가느라고 자리를 떠났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미스트의 콘서트는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었다.

도훈은 잠시 헛기침했다.

“흠.”

“사레들렸어요? 여기 제 거라도 더 마셔요.”

쓱 커피를 내미는 황수영.

도훈은 재빨리 말을 이었다.

“혹시 미스트 콘서트 안 가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혹시 탈덕 했습니까?”

“무슨 탈덕이요? 지금 그 몇 배의 파문을 불러올 아이돌이 사라지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는데 지금 미스트가 문제예요? 그리고 저 한번 발 들여놓으면 탈덕 같은 거 안 해요. 의리 빼면 시체가 제 신조예요.”

“뭔가 묘한 방향으로 흘러가네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재능 낭비하지 말라는 거예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어떻게 도와주신다는 거죠?”

“제가 도훈 씨의 매니저가 되어 드릴게요.”

“자, 잠시만요. 저 기획사 대표입니다. 연예인들을 케어하는 게 제 일이고요.”

“아, 그랬죠. 제가 잠시 깜빡했어요. 그럼 우리 회사에서 적극적으로 후원을…….”

“우리 할머니도 있는데 제가 왜 후원을 받습니까?”

“그럼 원하시는 게 뭐예요?”

황수영은 팔짱을 끼더니 도훈을 관찰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 모습에 도훈은 헛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눈빛은 재벌의 핏줄이라는 증거였다.

원하는 것은 쟁취해야 하는 황씨 가문의 습관.

사실 황수영을 그런 덕후의 길로 이끈 것도 그 핏줄의 영향일 터.

문제는 그 방향이 묘하게 틀어져서 도훈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눈을 응시하던 도훈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네, 편하게 말씀하세요. 저는 도훈 씨를 돕자고 이 자리에 나온 거니까요.”

“그럼, 돈 좀 빌리죠.”

“네?”

황수영은 입을 딱 벌렸다.

처음 본 남자가 돈을 빌려 달라고 하는 경우는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 모습에 도훈은 손을 내저었다.

“힘드시면 됐고요.”

“얼마나요?”

황수영이 슬쩍 상체를 내밀었다.

도훈은 살짝 고개를 돌렸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까이 붙는 바람에 도훈은 슬쩍 한 걸음 물러났다.

솔직히 소속 연예인이라면 옆에서 세팅을 해 주면서도 아무렇지 않았다.

하지만 맞선을 본 여자였다.

민망함에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상황.

도훈은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아직 모르겠습니다, 잠시 뒤에 필요할 것 같아서요.”

“네, 빌려드릴게요. 대신 저와 소통하셔야 해요. 제 친구는 도훈 씨 팬카페까지 개설했어요. 그 친구가 개설한 카페의 연예인치고 이제까지 안 뜬 사람을 못 봤어요. 월드 스타는 몰라도 국내 탑까지는 올라갔단 말이에요.”

황수영은 눈을 빛냈다.

“아, 그렇군요.”

도훈이 영혼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황수영이 눈매를 좁혔다.

“왜 기운이 없어요?”

“제가 오늘 좀 바빴습니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더 바쁘게 보내야 할 것 같고요. 공연도 끝난 것 같은데 들어가 볼까요?”

도훈은 연회장 쪽을 가리켰다.

지금까지 울려 퍼지던 강영웅의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음악이 없는 상태에서 나오는 강영웅의 인사말.

그리고 이어지는 박수 소리.

그의 무대가 끝났다는 증거였다.

도훈은 황수영을 힐끔 봤다.

알다가도 모를 여자였다.

도훈은 전생의 기억에서 황수영을 떠올렸다.

그녀는 갑자기 덕질을 그만두고 회사의 후계자 수업에 매진했었다.

그러고는 회장까지 오른다.

이상한 것은 그녀가 끝까지 솔로로 남았다는 점이었다.

사랑보다 일을 택한 철혈 재벌.

그것이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인상이었다.

앞으로도 그렇게 될까?

그건 예측할 수 없었다.

일단 중요한 것은 오늘은 반드시 전리품을 챙겨야 한다는 점이었다.

*    *    *

연회장에 들어오자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의 경제인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몇몇 대표들은 무대에서 내려온 강영웅과 사진을 찍고 있다.

사실 이런 광경은 보통 행사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

하지만 이곳에 모인 이들은 예외가 일상인 재벌들이었다.

도훈은 포토 타임으로 고생하는 강영웅에게 눈을 찡긋한 뒤 장경자를 향해 걸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 장경자와 양사단 회장이 와인 잔을 들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도훈이 황수영과 다가가자 장경자가 고개를 돌렸다.

“우리 도훈이 왔구나, 둘이 잘 어울려 다니네.”

“네, 잠시 밖에서 얘기 나누다 왔어요.”

“무슨 얘기를 그렇게 나눴어?”

“할머니가 점점 젊어지신다는 얘기죠, 황백석 회장님도 그렇고.”

“호호, 이런 모임에는 안 나오더니 언제 이런 말을 배웠을꼬.”

장경자의 눈에 미소가 번진다.

남들이 없다면 도훈의 엉덩이라도 쳐 줄 기세였다.

도훈은 조심스럽게 몇 걸음 물러났다.

분명 양사단의 입에서 기다리던 이야기가 나올 것이었다.

그때를 파고들어야 했다.

황수영은 밖에서 나누었던 황당한 이야기를 안에서는 꺼내지 않았다.

기품 있는 표정을 짓고 와인으로 입술을 축일 뿐이었다.

덕분에 도훈은 장경자와 양사단의 말이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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