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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119화 (119/250)
  •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119)

    황백석이 묻자 양사단이 고개를 흔들었다.

    “진짜 믿고 맡길 놈이 하나도 없네. 그려. 손주 놈 중에는 가장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실수할 수도 있지 않나?”

    황백석은 그의 손주를 두둔하듯 말했다.

    자신의 손주를 두둔하는데도 양사단은 못마땅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휴, 실수? 자네도 알잖아. 우리의 말 한마디에 몇천 명의 밥줄이 왔다 하는 걸 말이네.”

    양사단은 다시 한숨을 내쉬며 방송실을 바라봤다.

    방송실에서는 양규현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올라가서 시간을 때우라 말하기는 했지만, 뭔가 조짐이 이상했다.

    트로트도 아니고 경쾌한 인트로가 무대 위를 때린다.

    이건 양규현도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조명이 꺼지고 음악이 흘러나오면 초대된 경제인들은 무대가 시작된 줄 알 것이다.

    거기에서 갑자기 음악을 끊는다면?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때 창밖으로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갑자기 등골이 사늘해져 오는 것이 이것은 분명…….

    할아버지의 눈빛이 분명했다.

    그 눈빛은 말하고 있었다.

    잠시 뒤에 회초리를 들겠다고 말이다.

    양규현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미치겠네…… 차라리 사실대로 말할걸…….”

    “규현이 형.”

    안절부절못하는 양규현을 본 정재원이 나지막이 불렀다.

    그것도 잠시 정재원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양규현의 눈빛이 너무 매서웠기 때문이었다.

    그의 할아버지 양사단이 재계의 호랑이라면 양규현은 새끼 호랑이였다.

    양규현이 이렇게 눈을 매섭게 뜨는 이유는 무대에 올린 정체 모를 친구 때문만이 아니었다.

    이번 행사의 계획을 짤 때 도움을 준 것이 바로 정재원이었다.

    유레카 쪽에서는 강영웅의 스케줄상 시간을 조금 더 미루는 것이 좋다고 제안했다.

    허겁지겁 시간에 맞춰 무대에 오르는 것은 청중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도 했다.

    하지만 정재원은 연예인 나부랭이가 까라면 까는 거지, 하며 그냥 밀고 나가라고 충고했었다.

    지금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정재원.

    그러니 눈에서 불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긴 인트로가 끝나고 무대 위에 조명 하나가 켜졌다.

    팡!

    강렬한 도훈의 효과음이 무대를 장식하자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는 음악이 바뀌었다.

    조명이 점점 밝아지자 사람들은 조명 안에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순간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황백석도.

    장경자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음량이 볼륨이 살짝 커졌다.

    뚜루루뚜!

    순간 웅크리고 있던 사람이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다.

    탁.

    마치 누워 있던 나무젓가락이 중력을 무시하고 꼿꼿이 서는 착각이 드는 동작.

    모두는 살짝 입을 벌렸다.

    지금의 동작은 잠시지만 강영웅의 노래를 기대하기는 이들의 눈까지 잡아 두었다.

    연회장에 모인 관객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이것은 그들의 귀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도훈이 기사에게 준 음악은 우시원이 신서희의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연습했던 원더풀 스테이지였다.

    재미있는 것은 이 곡이 1980년대부터 유행했던 최고의 팝을 엮어 놓은 것이라는 점.

    그들의 귀에는 트로트만큼이나 친숙한 것이 올드 팝송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모인 가운데 도훈이 움직였다.

    전주에 맞춰 상체부터 리듬을 타더니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웨이브.

    물론 도훈의 전공은 아니었다.

    하지만 묘하게도 도훈은 떨리지 않았다.

    마치 서찬휘의 재능이 그대로 몸에 각인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도훈은 슬쩍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봤다.

    손바닥에서는 수첩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 마치 발전기와도 같았다.

    컴퓨터로 치면 CPU가 열을 내며 돌아가는 모습과도 같았다.

    도훈의 발은 아직 스텝을 밝기 전.

    도훈은 보여 줬던 안무를 머릿속에 쫙 펼쳤다.

    머릿속에 필름처럼 펼친 안무들을 지금의 음악과 맞춰 봤다.

    사실 이것은 서찬휘가 전에 도훈에게서 느꼈던 상황이었다.

    그때 서찬휘에게 줬던 해답을 다시 꺼내 쓰고 있던 것.

    도훈은 박자를 셌다.

    ‘하나, 둘, 셋!’

    지금이 들어가야 할 시점이었다.

    타다닥. 탁.

    도훈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그란 조명을 기준으로 아슬하게 경계선을 밟기 시작했다.

    타다닥.

    도훈의 구두 굽 소리가 강력하게 플로어에 울려 퍼졌다.

    도훈은 눈앞에 선이 펼쳐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 선에 자신의 손을 슬쩍 내밀었다.

    모두가 도훈의 모습에 놀라고 있었다.

    숨을 죽이며 지켜보던 사람 중 몇몇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대체 누구지?”

    “혹시 요즘 유명한 비보이까지 초청한 거야?”

    “허허. 누가 무대를 기획했는지 몰라도 역시 젊은 세대는 다르군.”

    “쉿, 조용히 하게. 춤에 방해되면 어떻게 하려고.”

    “자네 목소리가 더 크네.”

    그들이 웅성이고 있을 때 도훈은 무아지경에서 선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몸이 아닌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누군가의 DNA가 몸속에 각인된 듯한 착각.

    사람들 중 누군가는 도훈을 비보이라고 했지만, 다른 이는 도훈을 발레리노가 아니냐고 했다.

    그만큼 도훈의 선은 고왔다.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저거 너튜브에서 본 것 같은데…….”

    “헉. 그러고 보니, 나도 봤네.”

    그들은 더욱더 도훈의 동작이 집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튜브에서 봤던 동작보다 더욱 정갈했다.

    거기에 한술 더 떠 현란하기까지 했다.

    도훈의 동작은 춤이라고 하기보다는 마술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마치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이 추는 것 같은 느낌.

    그것은 당연했다.

    이 춤은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이 추도록 만든 것이었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뮤지션들의 춤과 노래를 무대 위에 옮겨 놓은 것.

    곡이 변하면 춤도 변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아티스트도 바뀐다.

    다시 조명이 살짝 꺼졌다.

    중간에 간주가 나온다.

    세 번째 곡으로 음악이 넘어가는 것.

    다시 조명이 들어왔다.

    같은 복장 같은 사람인데도 묘하게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다음 곡으로 넘어가자 도훈의 동작이 빨라졌다.

    마차 터보 모터를 달아 놓은 듯.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영상을 2배속으로 재생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위화감은 전혀 없었다.

    도훈도 자신의 춤에 만족하며 상황을 즐겼다.

    자신의 연습생이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펼칠 때 도훈의 기분은 어땠을까?

    실수하지 말아라!

    조금 더 정확히!

    매니저의 입장에서 그들을 바라봤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그들은 쳇바퀴 속의 다람쥐가 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연습생들은 하늘을 훨훨 나는 새가 되고 싶을 것이었다.

    도훈이 그랬으니까.

    탁, 탁.

    도훈은 어깨를 들썩이며 음악에 몸을 맡겼다.

    순간 도훈에게 흡수된 수첩이 더욱 빛을 발한다.

    우우웅.

    마치 증기기관차가 김을 뿜듯 수첩이 울린다.

    하지만 도훈은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음악과 자신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뿐이었다.

    따다다!

    드디어 곡이 클라이맥스로 향한다.

    리듬에 몸을 맡기던 도훈의 동작이 점점 빨라졌다.

    2배속이 아닌 4배속으로 영상을 돌리는 듯한 느낌.

    도훈의 동작이 관객들의 뇌리에 박힌다.

    그다음 동작도.

    그다음 동작도 그들의 머릿속을 파고든다.

    도훈의 모습이 그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었을 때였다.

    그의 춤을 보고 있던 관객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들의 뇌리에는 강영웅이 사라진 지 오래.

    탕!

    마지막 스텝이 무대 위에서 울렸다.

    순간 조명이 꺼진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관객들은 계속 무대를 주시하고 있다.

    사탕을 빼앗긴 어린아이처럼 아쉬운 표정으로…….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조명이 켜졌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무대를 보던 이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가 외쳤다.

    “앙코르!”

    그의 한마디에 모두가 하나가 되어 앙코르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황백석이 고개를 갸웃하며 장경자를 바라봤다.

    “저거 혹시 자네 손주 아닌가?”

    “내 손자라고?”

    장경자가 눈을 크게 떴다.

    무대에 집중하느라 그런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도훈의 모습이 어렴풋이 비친 것 같기도 했다.

    장경자가 놀란 눈을 할 때였다.

    그 옆에 있던 양사단이 한숨을 내쉬었다.

    “휴.”

    이전의 한숨과는 약간 다른 느낌의 한숨이었다.

    그 한숨이 담고 있는 것은 안도.

    그 모습에 황백석이 말했다.

    “다행이군.”

    “나도 내 손주가 이런 이벤트를 기획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네.”

    “밥값 했으니 승진시켜야지.”

    “승진은 벌써 시켰고. 이번에 사고 치면 다시 내리려고 했지.”

    양사단이 희미하게 웃자 장경자가 말했다.

    “강영웅은 언제 오는 건지…… 참.”

    약간은 불만 섞인 목소리.

    양사단은 그때야 이 무대의 메인이 강영웅임을 깨달았다.

    양사단은 장경자를 힐끔 바라봤다.

    강영웅이 온다고 해서 여기까지 온 장경자였다.

    강영웅이 오지 않는다면 아마 콧방귀를 뀌고 자리를 뜰 할망구였다.

    양사단은 마른침을 삼켰다.

    “자,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을 마친 양사단은 재빨리 방송실로 뛰어가려 했다.

    그때였다.

    무대 위에서 탬버린 소리가 들린다.

    불은 꺼졌는데 무대 위를 울리는 탬버린 소리.

    뭐지?

    양사단을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였다.

    지금 들려오는 음악은 다름 아닌 오늘 무대의 주인인 최고의 트로트 스타 강영웅의 ‘너만 아니면 돼!’의 인트로였다.

    순간 달려가려던 양사단이 멈췄다.

    그를 쏘아보던 장경자는 슬쩍 고개를 돌려 무대를 응시했다.

    분명히 강영웅이었다.

    일반 무대에서는 강영웅이 탬버린을 치는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소규모의 행사에는 가끔 흥에 겨워 탬버린을 치기도 한다.

    자신의 손주 도훈이 강영웅을 초대했을 때도 똑같았다.

    챙, 챙, 챙.

    탬버린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렸다.

    무대의 불은 꺼져 있지만, 분명 강영웅이었다.

    도훈이 초대했을 때 들었던 탬버린 소리와 완벽하게 일치했으니까.

    장경자는 뼛속까지 강영웅의 팬.

    장경자는 무대 위의 불이 켜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때 인트로가 끝나자 스피커를 통해 강영웅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 그래. 너만 아니면…….

    장경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강영웅의 목소리와 거의 흡사했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강영웅의 데뷔 초반 목소리라고 할까.

    어쨌든 목소리가 약간 달라졌다.

    요즘 컨디션이 안 좋아서 약간 목소리가 거칠어졌지만, 지금 목소리는 한 오 년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신기하네, 무슨 좋은 약이라도 먹었나? 혹시 내가 보내 준 도라지청이…….”

    장경자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다.

    그러고는 흥겹게 어깨를 흔들었다.

    마치 강영웅의 콘서트에 온 것처럼 말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양사단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일단 사업 이야기를 할 발판은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옆을 힐끔 보니 희미한 조명 아래에서 경제인들이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그들의 어깨에 올려진 짐이 지금만큼은 모두 날아간 것만 같았다.

    노사 간의 문제도.

    수출 문제도.

    후계 구도의 문제도.

    지금만큼은 잊을 수 있었다.

    강영웅의 노래는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무대 위에 불이 켜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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