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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117화 (117/250)
  •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117)

    스타플레이어의 녹화장에 있던 그가 이곳에 온 것도 신기하지만, 더 신기한 것은 그의 태도였다.

    그는 촬영장에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말을 놓고 있었다.

    임제호도 안 하는 짓을 처음 본 정재원이 하다니.

    안하무인이란 별명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다만 밖에서 몇 배나 더 새는 바가지일 줄은 몰랐었다.

    정재원은 슬쩍 도훈을 깔아본다.

    도훈보다는 조금은 작은 키.

    그런데도 눈을 살짝 아래로 깔아보며 대화를 이어 가는 정재원.

    “무슨 일인지 말해 봐, 도와줄 테니.”

    “괜찮습니다, 피디님.”

    “그럼 내일 보자고, 이 실장.”

    “네, 피디님.”

    도훈이 답하자 정재원은 손을 흔들고는 어디론가 걸어갔다.

    그는 여기저기 휘젓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인사하기 시작했다.

    마치 악수하는 기계를 보는 느낌.

    도훈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그 옆에 있던 황수영의 얼굴도 비슷했다.

    다만, 호기심을 느끼는 대상이 달랐을 뿐이었다.

    그녀가 호기심을 느끼는 대상은 바로 도훈이었다.

    갑자기 피디니 실장이니 하는 호칭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할아버지 황백석은 며칠 전 맞선을 보라고 했었다.

    그녀는 황백석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결혼은 먼 훗날의 일이었다. 당장은 현실에 충실해야 했다.

    물론 여기서 현실이라는 것은 덕질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덕질은 조금 남달랐다.

    남들이 보기에는 덕질이지만, 그녀는 어떤 대상에 빠져들지는 않았다.

    대상을 보고 열광하는 그 열기를 느끼고 싶을 뿐이었다.

    덕분에 팬덤이 가장 강하다는 국내 최고의 보이 그룹, 미스트의 공연은 빠지지 않고 간다.

    인트로에서는 숨을 죽이다가 아이돌의 숨소리 하나에 터지는 함성.

    콘서트에 가서 그런 열기를 느끼다 보면 그녀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었다.

    사실 그녀의 꿈은 걸 그룹의 일원이 되어 무대에 서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똑같았다.

    뻔한 스토리지만, 가족들의 반대로 그 꿈은 접어야 했다.

    그 후로 그녀는 대리 만족을 위해 무대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회사 생활 이외의 시간은 모두 콘서트를 가는 데 사용한다고 봐도 되었다.

    오늘은 미스트의 콘서트가 있는 날.

    힘겹게 티켓을 예매했다.

    하지만 카드를 압수한다는 협박 덕분에 할 수 없이 이런 자리에 끌려온 것이다.

    황수영은 계속해서 도훈을 바라봤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자 호기심이 동한 것이다.

    그것도 잠시,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할아버지가 이제까지 소개시켜 준 남자들은 모두 후계자 수업을 받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기업의 후계자가 평범하다고 하면 조금 이상할지 몰라도 그녀가 보기에는 평범했다.

    동년배의 재벌가의 자녀 중 후계자 수업을 안 받는 사람이 있던가?

    물론 황수영도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잠시 그녀의 상념을 뜬금없는 벨 소리가 깨었다.

    띠링, 띠링.

    그와 동시에 할아버지가 소개해 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화 받으시죠.”

    “…….”

    황수영은 말없이 도훈을 바라봤다.

    도훈이 손으로 황수영의 왼손을 가리켰다.

    그곳에서는 황수영의 핸드폰이 작은 벨 소리를 토해 내고 있었다.

    황수영은 그제야 그것이 자신의 벨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전화를 받자 하이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야, 이…….

    그 소리는 도훈에게 들릴 정도였다.

    황수영은 재빨리 핸드폰을 껐다.

    통화 상대는 자신의 친구 이보라였다.

    이보라는 황수영의 오래된 친구였다.

    오늘 미스트의 콘서트를 같이 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곳으로 끌려왔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친구에게 연락도 못 했다.

    애초에 친구와 같이 간다는 것도 깜빡했다.

    이것이 그녀의 단점이었다.

    그녀는 건망증이 심하기로 친구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것.

    핸드폰을 급하게 숨긴 황수영이 말했다.

    “죄송해요. 약속이 있었는데 제가 깜빡하고 연락을 못 해 줘서 많이 화났나 보네요.”

    “그 약속이 미스트 콘서트인가요?”

    “네, 맞아요. 그런데 안 놀라시네요.”

    “콘서트에 가는 게 놀랄 일인가요?”

    “제 주변에는 콘서트보다는 클래식 연주회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요.”

    “저는 둘 다 좋아합니다, 음악을 좋아하거든요.”

    도훈이 웃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도훈은 전생에 같이했던 친구들을 떠올린다.

    도훈이 포근한 미소를 짓자 황수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콘서트 얘기를 하는데 이렇게 진심으로 좋아하는 표정을 보인 남자는 처음이었던 것이다.

    황수영은 잠시 상대와 대화를 이어 가기로 했다.

    “저기…….”

    “이도훈입니다.”

    도훈이 다시 한 번 이름을 밝히자 황수영이 어색하게 웃었다.

    “죄송해요. 정신이 없어서 이름도 까먹었네요. 도훈 씨는 누구 좋아하세요.”

    “음, 미스트도 좋아하지만…….”

    “좋아하지만요?”

    “제가 좋아하는 분야가 워낙 많다 보니, 보이 그룹, 걸 그룹 아니, 다른 장르도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합니다, 뭐.”

    “어? 저랑 취향이 똑같으시네요.”

    “…….”

    “아, 제가 한 우물만 파는 성격이 아니라서요. 오늘도 여기 온 게 강영웅 씨 온다고 해서 미스트 콘서트를 깜빡하고 끌려온 거잖아요.”

    “네? 영웅이 형이요?”

    “형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성이 다르잖아요.”

    “아, 영웅이 형하고는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거든요.”

    “정말로요? 혹시 광고 업계나 그런 쪽에…….”

    “그건 아니고 영웅이 형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습니다.”

    “혹시 연락도 주고받는 그런 사이인가요?”

    “자주 보는 사이입니다, 집들이 때는 가서 밥도 먹고 왔는데요.”

    도훈은 전에 집들이에 갔던 기억을 떠올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헉.”

    황수영이 비명을 터뜨렸다.

    모두가 한 번쯤은 돌아볼 정도의 큰 소리로.

    그녀는 재빨리 입을 막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진짜요?”

    “네.”

    “강영웅 씨가 제가 차애인데.”

    “차애요?”

    “네, 두 번째로 좋아하는 가수라고요.”

    “그건 아는데, 장르가 너무 달라서요. 보이 그룹하고 트로트하고는 너무 거리가…….”

    “저는 무대의 열기가 좋거든요.”

    “아, 그러시구나.”

    도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은 그 후에도 비슷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들이 대화를 이어 나갈 때 연회장의 구석에서는 당황한 표정의 사람들이 땀을 흘리고 있었다.

    * * *

    연회장의 방송실.

    한 사내가 소리친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지금 영동대교가 꽉 막혔답니다.”

    “그럼 잠실대교로 돌아서 오면 되잖아.”

    “이미 다리 위라서…….”

    “그럼 헬기라도 불러서 데려와.”

    “…….”

    직원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지금 소리치는 사람은 산하그룹의 양규현이었다.

    이번 일을 맡지 않았다면, 저 연회장의 어딘가에서 다른 그룹 후계자들과 사담을 나누고 있어야 할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번 연회를 주최한 것이 산하그룹이다 보니 졸지에 책임자가 된 것.

    양규현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가수 하나가 펑크를 낼 수도 있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고 저런 일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 당연지사.

    하지만 문제는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후계자 구도를 결정한다는 점이었다.

    이런 실수 하나가 그룹 지분의 1%를 좌지우지한다고 생각하면 이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그때 방송실의 문이 열렸다.

    덜컹.

    양규현은 반사적으로 미간은 좁히며 샤우팅을 날렸다.

    “노크도 없이!”

    “아, 죄송해요, 형.”

    “재원이였냐?”

    양규현이 정재원을 바라봤다.

    둘은 부모들의 인연으로 어릴 적부터 호형호제하던 사이였다.

    정재원은 눈을 가늘게 뜨고 상황을 살폈다.

    하지만 이렇게 봐서는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정재원이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심각해요?”

    “초대 가수가 좀 늦는다네. 영동대교 위에서 묶였대.”

    “뭐, 그거야 종종 있는 일 아닌가요?”

    “종종 있는 일이긴 하지, 그런데 우리 할아버지가 누구냐?”

    “앗, 그 생각을 못 했네요.”

    정재원이 재빨리 태도를 바꿨다.

    양규현의 할아버지 양사단은 재계의 호랑이라 불린다.

    직원들에게도 엄격하지만, 자식들에게는 더 엄격한 인물.

    사소한 실수 하나로 후계 구도에서 탈락할 수도 있었다.

    살짝 일그러진 양규현의 표정을 본 정재원이 물었다.

    “혹시, 시간을 때워 줄 대타는 없나요? 그러고 보니 진행을 볼 개그맨은 따로 섭외했잖아요.”

    “지금 그게 문제다.”

    “왜요? 개그맨도 영동대교 위에 있대요?”

    “그래.”

    “네? 소속사도 다르잖아요.”

    “그런데 진행자가 강영웅 차를 얻어 타고 오는 길이었다고 해.”

    “그럼 다른 사람을 찾아봐야죠.”

    “없으니까 이러지. 지금 나라도 무대 위로 올라가야 할 판이야.”

    “시간 얼마 남았죠?”

    “딱 십 분 남았다. 지금 영동대교는 사고 수습이 끝나야 움직일 수 있다고 하니 적어도 30분은 끌어 줘야 하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냐?”

    “음…….”

    “참, 너는 방송 일 하잖아. 아무나 한 명 빨리 불러 봐.”

    “아는 친구들이 있긴 한데, 여기 십 분 안에 올 친구는 없어요. 십 분이면 시동만 걸어도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요.”

    “너도 방송물 헛먹었네.”

    양규현은 고개를 돌렸다.

    어릴 적부터 아닌 사이긴 해도 서열이 존재하는 법.

    양규현에게 정재원은 그저 먼지에 불과했다.

    양규현의 냉랭한 태도에 정재원이 이를 악물었다.

    다른 곳에서라면 왕으로 군림할 수 있지만, 이곳은 왕들이 모여 있는 자리였다.

    그도 자신이 이곳에서는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먼지가 별이 되기 위해서는 별 가까이 붙는 수밖에 없는 법.

    사실 정재원이 촬영 현장에서 나온 것은 이곳에 오기 위함이었다.

    그가 툴툴댄 것은 맞지만, 그것은 이도훈이라는 이방인을 몰아내기 위함이었지 현장을 떠난 진짜 이유는 아니었다.

    정재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양규현을 도와줄 실마리가 보일 것도 같았다.

    ‘도훈이라…….

    거기에 유레카?

    그리고 스타플레이어의 예선.

    모든 것이 합쳐지자 정답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정재원은 재빨리 양규현에게 다가갔다.

    “형, 좋은 수가 있어요.”

    “그게 뭔데?”

    “여기에 연예인 비스무리한 놈이 하나 와 있거든요.”

    “비슷하니 그게 무슨 말이야?”

    “강영웅 소속사의 매니저인데, 이번에 저희 프로그램 예선 무대에서도 공연했어요. 그러니까, 비슷한 거죠. 그냥 땜빵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음…….”

    “올라가서 구실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그거 나름대로 신선하잖아요.”

    “신선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무대에 잠깐 올라서 웃음을 주고 내려올 수도 있단 말이죠.”

    “어디 있어?”

    “제가 얘기할 테니 형은 잠시 기다리세요.”

    “알았어, 당장 무대에 올려. 같은 소속사라고 하니 명분도 확실하네.”

    양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정재원은 진득한 미소를 지었다.

    정재원이 원하는 것은 딱 하나였다.

    이도훈이라는 이 바닥 뜨내기에 무대 위에서 어릿광대가 되는 것이다.

    정재원은 그날의 무대가 우연이라고 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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