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116)
도훈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참, 오늘은 따로 갈 거지.”
“음,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말을 마친 도훈은 한민국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한민국이 다급하게 물었다.
“왜 그래요? 실장님.”
“신 선생님하고 강 피디 잘 모시고 가라고. 나 없다고 액셀 막 밟지 말고.”
“헉, 제가 무슨…….”
“지난번에도 분노의 질주 찍었잖아. 나 그때 죽는 줄 알았다.”
“그때는 실장님이 밟으라고 했잖아요.”
“그래도 정도껏이지.”
도훈은 손을 흔들며 자신의 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 * *
며칠 뒤 스타플레이어 2화 방영 시간.
유레카 별관의 연습실에서는 도훈과 강시혁 그리고 신서희가 방송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시혁은 치킨 조각을 한 입 넣고 오물거리더니 힐끔 도훈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콜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아까부터 계속 반복된 행동에 도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 강 피디.”
“아…….”
탄성만 내지른 채 입술만 오물거리는 강시혁의 모습에 도훈이 다시 물었다.
“와, 나 숨넘어가겠다. 그냥 빨리 말해. 강 피디.”
“다른 건 아니고……. 다음 주부터 녹화 현장에 나가기로 했잖아.”
“그건 벌써 얘기했잖아.”
“시원이랑 찬휘한테 도움 줄 거지?”
“에이, 무슨 내 도움이 필요해. MBS에서 나한테 원하는 건 딱 얼굴 잠깐 비쳐 주는 건데…….”
도훈은 말끝을 흐리며 웃었다.
많은 뜻이 담겨 있는 웃음이었다.
하지만, 강시혁은 그 웃음의 의미를 모르는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쩝.”
그때 신서희가 손뼉을 쳤다.
짝짝.
“지금 시작해요. 이제부터는 잡담 금지예요.”
신서희가 스크린을 가리켰다.
모두가 스타플레이어 2화 영상을 바라볼 때 도훈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도훈이 확인해야 할 것은 손바닥에 흡수된 수첩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손바닥이 빛나기 시작했다.
도훈은 재빨리 수첩을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수첩에는 새로운 글귀가 나와 있었다.
[1단계 – 시청률을 장악하라! 달성률: 100%]
[보상이 산정됩니다.]
[실버 등급 룰렛이 지급됩니다.]
[숨겨진 설정 보기가 추가됩니다.]
도훈은 눈을 크게 뜨며 떨리는 마음으로 보상 인벤토리를 확인했다.
[보상 인벤토리 1: C, A, M, Y]
하지만 기존에 있던 보상 이외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인벤토리 뒤에 붙은 숫자였다.
‘1’ 표시가 붙은 걸 보면 인벤토리가 하나 더 늘었다는 말이었다.
도훈이 추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글귀가 주르르 하고 내려왔다.
[2단계 퀘스트에 도전하시겠습니까? 실버 등급 룰렛이 골드 등급 룰렛으로 변경 지급됩니다.]
수첩이 내기를 걸어오는 느낌이었다.
새로운 글귀에 도훈은 살짝 고민을 했다.
그것도 잠시, 도훈은 재빨리 필요한 문구를 찾았다.
그것은 약속한 기능이었다.
[숨겨진 설정 보기]
그 옆에는 친절하게 설명이 나와 있었다.
[숨겨진 설정 중 해당 내용에 필요한 메뉴를 검색합니다.]
동시에 돋보기 모양의 아이콘이 수첩에 표시되었다.
그것은 누가 봐도 검색 기능이었다.
도훈이 의문을 떠올리자 검색 기능이 활성화되며 해답을 뱉어 냈다.
[시청률의 산정은 수첩의 주인이 관련된 모든 방송의 누적 시청률입니다.]
자신과 관련된 시청률의 모든 합이라고 한다면?
자신이 스타플레이어에서 하차해도.
우시원과 서찬휘가 탈락해도 시청률은 누적된다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 자체의 기획에 도훈이 참여했으니까.
그렇다면?
순간 도훈의 눈이 빛났다.
고민은 필요 없었다. 도훈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글귀가 바뀌었다.
[방송국을 장악하라 연계 퀘스트: 시청률을 장악하라 2단계가 실행됩니다.]
[시청률 10,000% 달성 시 성공. 기간: 무제한]
[보상이 골드 등급으로 상향되었습니다.]
도훈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
여기까지는 이미 예상한 범위였다.
도훈은 다시 어딘가를 바라봤다.
그것은 돋보기 모양의 아이콘이었다.
도훈은 머릿속으로 다시 의문을 떠올렸다.
순간 예상 밖의 글귀가 나타났다.
[숨겨진 설정에 대한 검색은 하루 한 번이 한계입니다.]
도훈은 어깨를 으쓱하며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방송이 끝났는지 벌써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 * *
다음 날 아침.
도훈은 눈을 뜨자마자 검색을 시작했다.
그것은 자신이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저승사자의 도움으로 회귀한 것까지는 이해가 되었었다.
하지만 중간중간 겪는 낯선 경험들은 아직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낯선 경험들이란?
자신이 연기하고 춤을 추는 재능을 가졌다는 점이었다.
거기에 무대에 서면 외모까지 빛을 발하는 이유는 솔직히 이해가 안 되었다.
의문을 떠올리자 뒤를 이어 손바닥 위에서 글귀가 나타났다.
[수첩의 숨겨진 기능 중 동기화가 있습니다. 당신의 영향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수첩의 주인이 케어하는 연예인들의 능력과 동기화됩니다. 똑같아진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장점을 흡수한다는 설정입니다.]
글귀를 읽은 도훈은 눈을 크게 떴다.
그들에게 최선을 다하면 그들의 장점이 자신의 장점으로 돌아온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도훈은 그제야 무대 위에서 심사위원들이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 극찬을 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도훈은 턱을 어루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것도 잠시 도훈은 입가에 미소를 피워 냈다.
연예인들의 장점이 자신의 무기가 된다면?
아마도 그들을 정상으로 올려놓는 데 도움이 될 것이었다.
그때였다.
도훈의 핸드폰이 울렸다.
디리링.
화면을 본 도훈은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할머니.”
상대는 장경자였다.
도훈은 사실 오늘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10,000%라는 어마어마한 시청률에도 주눅 들지 않았던 것은, 오늘 장경자가 제안할 자리 때문이었다.
* * *
도훈이 도착한 것은 삼성동의 인터크루 호텔의 연회장이었다.
가장 큰 연회실의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휘황찬란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으며 실내에는 검은색 정장과 컬러풀한 드레스가 정신없이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도훈은 슬쩍 시간을 봤다.
도훈은 오늘 누군가의 초대를 받았다.
아직 초대 시간에는 늦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시간이 없다고 바득바득 우겼지만, 장경자는 이곳으로 도훈을 보냈다.
도훈이 만날 누군가는 장경자의 친구인 황백석 회장.
황백석 회장은 패션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
패션업을 기초로 여기저기 손을 뻗치더니 그가 손을 안 댄 곳이 없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도훈은 드디어 황백석 회장을 찾았다.
도훈은 저 멀리서 눈에 익은 인물을 발견했다.
그는 연회장의 중앙에서 한 손에 와인잔을 든 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도훈은 그의 앞으로 다가가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허, 자네가 장 회장은 손자군. 나 기억나나?”
“혹시 제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하하, 머리가 좋다더니 진짜였구만.”
“아닙니다.”
“그런 건 숨길 필요가 없지.”
“숨기는 게 아니라 머리가 좋다는 얘기는 거의 들어 보지를 못해서요.”
“여기서는 돈 잘 벌면 머리 좋은 거야.”
황백석은 손가락으로 주변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제법 많은 기업인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의 손을 따라 도훈이 고개를 돌리자 황백석 회장은 만족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자네, 내가 왜 불렀는지 아나?”
“죄송하지만, 그건 듣지 못했습니다.”
“흠, 이거 섭섭한데.”
“섭섭하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죠?”
“장 회장이 내가 전하라는 말을 다 전하지 않은 모양이라서.”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저기, 저 아이 보이는가?”
황백석 회장은 어딘가를 가리켰다.
도훈의 시선은 그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자연스레 이동했다.
그곳에는 한 여인이 동년배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도훈은 눈매를 살짝 좁혔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지만, 도훈은 모른 척 말했다.
“저 파란 드레스를 입고 있는 숙녀분 말씀이시죠?”
“그래, 저 아이를 말하는 거지, 어떤가?”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황백석의 말에 도훈은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머리도 좋은 친구가 왜 모른 척하나?”
“진짜 모르겠습니다.”
“장 회장은 괜찮다고 했네.”
“…….”
도훈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딱 벌렸다.
그 모습에 황백석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 사람답게 보이는군.”
“저 조금이 아니라 많이 당황했습니다.”
“뭐, 젊은이들이 말하는 소개팅 자리라고 생각하게. 나도 자네가 마음에 들거든. 대충 자네에 대해서 조사를 해 보니 묘한 구석이 많더구먼, 요즘 들어 보인 행보는 놀라울 정도고 말이야.”
말을 마친 황백석은 옆에 있던 비서에게 뭐라 속삭였다.
그러더니 비서는 파란 드레서의 여인을 황백석의 옆에 데려왔다.
황백석이 말했다.
“여긴 내 손녀 수영이라네, 이쪽은 장경자 회장의 손자 이도훈. 서로 인사 나누지.”
황백석은 둘을 번갈아 봤다.
도훈은 어색하게 웃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도훈이라고 합니다.”
“저는 들었다시피 황수영이라고 해요.”
황수영은 화사하게 웃었다.
그 미소를 확인한 황백석 회장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나는 그만 자리를 피해 줄 테니, 둘이서 대화를 나누게.”
그 말을 마지막으로 황백석 회장은 자리에서 사라졌다.
순간 황수영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화장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바뀌는 표정.
누가 봐도 기분 나쁘다는 뜻이었다.
도훈은 그 표정을 보고 입을 열었다.
“불편하시면 그만 가 보겠습니다.”
“불편하긴 하지만, 이렇게 태어났으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되잖아요.”
황수영이 작게 속삭이자 도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시간만 때우자는 말이었다.
도훈도 장경자의 비위를 웬만큼 맞춰 줘야 했다.
지분이나 성공보다도 그것은 장경자의 건강을 위해서였다.
도훈은 장경자가 왜 이런 자리를 마련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그것은 기업가로서의 정략결혼 따위가 아니었다.
간절한 할머니의 마음 때문이었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대신해서 도훈을 결혼시켜야 한다는 마음.
받아 주지는 못해도 척을 할 수 있었다.
영혼 없는 대화를 이어 가던 도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것은 황수영이 자꾸 시간을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에 도훈이 물었다.
“약속 있으신가 봐요?”
“미스트 콘서트요.”
“네?”
“미스트 콘서트에 늦었어요. 어떻게 예매한 표인데.”
황수영은 절망한 듯 발을 동동 굴렀다.
그 모습에 도훈은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때였다.
누군가 도훈의 어깨를 톡톡 친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촬영장에서 인사를 나눴던 정재원이 비웃음 어린 표정으로 도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실장은 여기에 왜 왔어? 혹시 심부름이라도 온 거야?”
“아, 정 피디님이시군요.”
살짝 고개를 숙인 도훈이 정재원을 바라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