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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113화 (113/250)
  •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113)

    임제호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당연히 출연하지.”

    “그게 비중이 꽤 높아도요?”

    “당연히 하지.”

    “아, 사람이 왜 이렇게 뻔뻔해요. 그리고 이 실장님을 연습생들한테 포함해 놓으면 유레카 쪽에 치우친 방송이라고 뭐라고 할 건 뻔하잖아요.”

    “저기 봐 봐. 시청자들이 원하잖아. 생방송은 말고 딱 녹화분만 얼굴 비춰 달라고 해봐. 연습생 신분 말고 특별 심사위원도 괜찮으니까.”

    임제호는 비 맞은 강아지처럼 처량한 표정으로 박창성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박창성이 고개를 재빨리 돌렸다.

    임제호의 저런 모습을 보는 것은 이것이 세 번째였다.

    그 표정에 속아서 총알받이가 된 게 벌써 두 번이다.

    사실 상관으로서 지시하는 것보다 이렇게 인간적으로 부탁하는 것이 거절하기가 더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만은 거절해야 했다.

    그때 임제호가 박창성의 어깨를 톡톡 친다.

    박창성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동자에 임제호의 처량한 얼굴이 비쳤다.

    박창성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 미치겠네. 계획을 이렇게 마음대로 바꿔도 돼요? 이건 기획 의도가…….”

    “창성아!”

    임제호가 근엄한 목소리로 부르자, 박창성이 힘없이 대답했다.

    “네, 선배님.”

    “총괄이 나야. 그런데 내가 못 바꾸면 누가 바꾸니?”

    “아, 그건 그렇죠.”

    박창성이 뒷머리를 긁적이자 임제호가 말했다.

    “그럼, 일단 화장실부터 가자.”

    “전 괜찮아요.”

    “내가 급해서 그래. 나 혼자 갔다 오면 너 튈 거잖아. 그러니까 같이 가.”

    “헉.”

    박창성이 헛숨을 들이켰다.

    그것도 잠시 박창성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선배님 그거 아세요?”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지금 재방송 시청률도 대박이에요.”

    “재방송?”

    임제호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도 그럴 것이 재방송 가지고 시청률을 운운할 정도의 프로그램은 최근에 없었기 때문이다.

    “무려 5%예요, 5%. 그 정도면 대박 아닌가요? 재방 시청률이 그 정도면 광고료가…….”

    “잠시만, 뭔가 이상하지 않아?”

    “뭐가요?”

    “왜 표절 문제가 쏙 들어갔지?”

    “어라, 생각해 보니 그걸 잊고 있었네요.”

    박창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타오르던 이슈가 한 번에 꺾인 것이다.

    박창성이 고민에 빠진 듯 눈매를 좁히자 임제호의 손가락이 화장실을 가리켰다.

    “넌 안 급하냐?”

    “참, 그렇지!”

    박창성이 스프링처럼 화장식 쪽으로 튀어갔다.

    * * *

    유레카의 7팀 사무실.

    한민국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실장님! 왜 해명을 안 하세요?”

    “무슨 해명을 해?”

    “마이클 윌이요. 바로 밝히시는 게 좋잖아요.”

    “이슈가 쏙 들어갔잖아. 그런데 내가 뭐하러 변명을 해. 뭐, 나중에 누군가 불씨를 지피면 그때 대응해야지. 정답이 나와 있으니 내겐 좋은 무기잖아.”

    도훈이 씩 웃자 한민국이 입을 벌렸다.

    한민국은 지금 도훈이 낚시를 하려고 한다 생각했다.

    도훈은 한민국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조용히 손바닥에 있는 수첩을 바라봤다.

    오늘 아침에 보니 수첩에 적힌 내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1단계 – 시청률을 장악하라! 달성률: 29%]

    아무 일도 안 했는데 시청률이 29%까지 올랐다.

    도훈은 팔짱을 끼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해 봤다.

    고민도 잠시, 도훈은 바로 결론을 내렸다.

    이전에 생각한 대로 목표 시청률 100%는 누적이 맞았다.

    거기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재방송도 포함한 것이라는 점이다.

    어찌 보면 땅 짚고 헤엄치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문제는 지금 퀘스트가 1단계라는 점이다.

    어떤 게임을 막론하고 1단계에서 벽을 느끼게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후가 문제였다.

    그때 도훈의 핸드폰이 울렸다.

    디딩. 디디딩.

    갑자기 걸려 온 전화에 도훈은 눈매를 좁혔다.

    “안녕하세요. 유레카의 이도훈입니다.”

    대화를 시작한 도훈의 눈매가 더욱 가늘어졌다.

    툭.

    도훈이 전화를 끊자 옆에 있던 한민국이 쓱 옆으로 다가왔다.

    “무슨 내용인데 그렇게 심각해요?”

    “우시원과 서찬휘의 면회 일정이 오늘로 잡혔다네.”

    “무슨 일정이 그래요? 지난번에 규칙 바꿀 때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하더니…….”

    “뭐, 이유가 있겠지. 한 매니저.”

    도훈의 말에 한민국이 눈을 가늘게 떴다.

    “실장님, 지금 너무한 거 아닌가요?”

    “한 매니저 뭐가 문젠데?”

    “에이, 왜 또 그렇게 부르세요? 그냥 이름 부르세요. 그게 친근하고 더 좋아요.”

    한민국이 너스레를 떨며 친한 척 도훈의 옆에 찰싹 달라붙는다.

    그 모습에 도훈은 피식 웃었다.

    한민국이 저러는 것은 도훈이 무대에 서고 나서부터였다.

    그전까지는 상관과 부하의 수직적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반면, 도훈이 무대에 서고 나서부터는 묘하게 지금처럼 친근하게 다가온다.

    마치 연예인을 대하듯 말이다.

    도훈이 손을 내저었다.

    “알았으니 그만하고 무슨 얘긴지 말해 봐.”

    “그러니까…….”

    한민국은 자신의 의견을 속사포처럼 털어놓기 시작했다.

    핵심은 간단했다.

    스타플레이어에서 면회라는 제도를 만들어 놓고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터.

    그런데 갑자기 날을 잡아 면회를 하라는 건 불공정하다는 것이었다.

    그 설명을 들은 도훈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민국아, 언제부터 이렇게 열정적이 됐어?”

    “실장님이 이번 달부터 제 월급 올려 준다는 말씀하신 뒤부터요.”

    한민국의 대답에 도훈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명백한 이유였다.

    “그렇구나.”

    “뭐가 그렇구나예요, 실장님. 지금 돈이 문제가 아니잖아요. 시원이하고 찬휘가 손해 볼지도 모르는 일이라고요.”

    “아마, 손해는 안 볼 거야.”

    “왜요?”

    “오늘 면회를 하라는 건 내게 부탁할 게 있다는 게 뻔해.”

    “부탁이요?”

    “그러니까, 꼭 내가 가야 한다고 찍어서 말했겠지.”

    “왜 실장님을…….”

    “짐작 가는 게 몇 가지 있는데, 그건 만나 봐야 할 것 같고. 일단 강 피디랑 신 선생님 모시고 먼저 가 있어.”

    “먼저 가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실장님?”

    “선약이 있어서. 나는 따로 가야 할 것 같아. 그래서 차도 가져왔어.”

    “선약이요? 거기에 운전을 하신다고요?”

    한민국이 눈을 크게 떴다.

    그 모습에 도훈이 물었다.

    “왜 그렇게 놀라고 그래?”

    “아니, 운전도 못 하시잖아요.”

    “내가 왜 운전을 못 해?”

    “그러니까…….”

    한민국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머리를 열심히 굴린다.

    그러더니 재빨리 말을 이었다.

    “직접 운전하신 적이 없잖아요. 운전은 이제까지 다 제가 했는데…….”

    한민국이 도훈을 빤히 바라봤다.

    도훈도 곰곰이 지난날을 떠올려봤다.

    전생에 매니저를 하면서 누군가에게 운전대를 맡긴 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전생의 기억일 뿐이고.

    이제까지는 생각해 보니 직접 운전을 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것마저 한민국은 본 적이 없다.

    한민국의 눈에는 도훈이 가지고 있는 운전면허증은 흔히 말하는 장롱 면허일뿐이었다.

    도훈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걱정하지 마, 나 운전 잘해.”

    “언제부터요? 혹시 운전 연수 따로 하신 거예요?”

    “운전은 타고났어.”

    말을 마친 도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훈은 사무실을 빠져나가면서 강시혁에게 전화했다.

    한민국과 먼저 스타플레이어의 녹화 현장으로 출발하라는 부탁이었다.

    * * *

    그날 오후 후.

    파주의 스타플레이어 촬영 현장.

    도훈은 검은색 세단에서 내려 천천히 입구로 걸어가며 조금 전 만난 한지혜의 말을 떠올렸다.

    이지유의 욕설 사건 때부터 연을 맺기 시작한 한지혜는 변하지 않은 도훈의 아군이었다.

    도훈은 사전 정보를 얻기 위해 한지혜를 만나고 왔다.

    성과는 그리 없었지만, 일단 방송국 내부의 분위기는 대충 알 수 있었다.

    도훈의 존재는 어찌 보면 계륵.

    현장에서 뛰는 제작진 입장에서는 도훈이 필요하지만, 방송국의 윗선에서는 그리 반기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것이 이도준의 입김 덕분이라는 것을 도훈은 알 수 있었다.

    “휴.”

    한지혜와 나눴던 대화는 한숨으로 날려 버린 뒤 도훈은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제작진 중 몇 명은 휴식 시간인 듯 커피를 들고 그늘에서 사담을 나누고 있었다.

    도훈은 그들 틈을 가로질러 약속 장소로 나갔다.

    약속 장소는 촬영을 위해 보기 좋게 세팅되어 있었다.

    그곳에서는 한민국을 비롯해 강시혁과 신서희가 앉아 있었다.

    그들의 옆에는 스타플레이어의 제작진들이 열심히 뭔가를 설명하고 있다.

    도훈은 조용히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피디님들.”

    도훈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자 모든 시선이 모였다.

    강시혁은 벌떡 일어나더니 도훈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이 실장, 나하고 얘기 좀 하자고.”

    “강 피디, 갑자기 왜 그래?”

    “잠시만…….”

    잡아끄는 강시혁의 모습에 도훈은 음료수 자판기 앞으로 끌려갔다.

    강시혁은 음료수를 하나 건넨 후 말을 이었다.

    “이 실장, 저 친구들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

    “뭐가 이상한데?”

    “자꾸 이 실장만 찾아. 아무래도 뭔가 있는 것 같아서 말해 두는 거야.”

    “음…….”

    “지난번에 짐작 가는 게 있다고 하지 않았어?”

    “뭐, 날 찾는 거 보면 부탁 같은 거 아니겠어?”

    “부탁은 우리가 해야지. 제작진에서 무슨 부탁을 해?”

    “그야 모르지. 어쨌든 이야기해 줘서 고마워.”

    “내가 조금 감이 좋잖아. 이따 저 능구렁이들이 옭아매려고 하면 잘 빠져나오라고.”

    “오케이.”

    도훈은 씩 웃고는 세팅된 촬영 장소에 합류했다.

    그곳은 이전에는 없었던 피디 한 명이 도훈을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그는 슬쩍 다가와 도훈의 옆에 앉았다.

    그러고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박창성입니다. 전에 인사드렸었죠.”

    “그럼요, 사전 인터뷰 때문에 연습실에 방문하셨잖아요. 그 뒤로도 회의실에서 따로 뵌 적도 있고요.”

    “네, 다행히 기억하시네요.”

    “어떻게 잊을 수가 있습니까? 제가 포맷까지 드렸는데 예선 당일 날 뒤통수 때리셨잖아요.”

    말을 마친 도훈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박창성이 손을 내저었다.

    “그건 오해입니다. 프로그램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 이벤트를 만든 겁니다. 이번 이벤트로 혜택을 받으셨잖아요. 제가 알기로는 유레카의 인지도가 여기서.”

    박창성을 잠시 대화를 멈추고 손바닥을 테이블 높이로 맞췄다.

    그러고는 말을 다시 이었다.

    “저 위쪽까지 올라갔죠.”

    박창성은 자신의 머리 꼭대기에 손바닥을 맞췄다.

    허리 부근에 있던 인지도가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갔다는 설명이었다.

    도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박창성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유레카라는 말은 전신인 JK엔터테인먼트보다도 익숙하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레카를 설명하려면 이전 이름을 밝혔어야 했다.

    하지만 스타플레이어의 첫 방송이 나온 후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JK라는 이름은 뒤로 잊혔고 모두가 유레카라는 이름을 떠올린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의도였다.

    도훈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게 저희를 도와주시려고 한 건 아니잖아요.”

    “아, 그건…….”

    박창성은 할 말을 잃은 듯 말끝을 흐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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