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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111화 (111/250)
  •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111)

    모두의 뒤 시선을 한데 모은 도훈과 마이클.

    도훈이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윌.”

    “저도 반가워요, 도훈.”

    마이클이 도훈의 손을 잡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홍준수는 눈을 크게 떴다.

    장 비서는 표정 관리가 안 되자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때였다.

    도훈이 물었다.

    “저분들은 왜 오셨나요?”

    “그러고 보니 이분들이 급한 일이 있다고 했죠. 아까 뭐라고 했더라…….”

    마이클은 힐끔 홍준수를 바라봤다.

    순간 홍준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이 노려야 할 먹이가 마이클 윌의 오래된 친구라는 것은 상상도 못 했다.

    그렇다면…….

    순간 홍준수는 앞에 캄캄해졌다.

    그때 장 비서는 뒤쪽으로 물러나더니 어디론가 문자를 보냈다.

    돌발 상황이었다.

    장 비서에게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한 권한이 없었다.

    후퇴까지도 자신의 상관이 이도준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장비서는 재빨리 뒤로 뛰어가 문자를 날렸다.

    톡톡.

    홍준수와 장 비서가 혼란에 빠져 있을 때 마이클은 아무렇지도 않게 손짓했다.

    “도훈, 일단 이리로 앉죠. 여기는 우리 악장 피넬리입니다.”

    “안녕하세요.”

    도훈은 악장 피넬리와 악수했다.

    도훈과 신서희가 테이블에 앉자 나머지 사람들은 눈치를 보고 있다.

    그때였다.

    장 비서가 전화를 끊고 천천히 걸어왔다.

    조금 전 어쩔 줄 모르던 표정은 어디 가고 그의 살짝 하얀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먹이를 바라보는 늑대와 같았다.

    그가 다가오자 도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도훈은 조용히 마이클을 바라봤다.

    홍준수와 장 비서가 여기에 온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장 비서는 마이클의 앞에서 말했다.

    “백만 달러 어떻습니까? 마이클.”

    “백만 받고 천만으로 올리겠습니다.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마이클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 모습에 도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장 비서가 무슨 이유로 여기에 있는지 감이 잡혔지만, 돈이 오가는 이유까지는 몰랐다.

    그때 도훈이 말했다.

    “저도 걸어도 될까요?”

    “아닙니다, 도훈. 이건 저와 저 사람 간의 거래입니다.”

    마이클이 손을 흔들자 도훈은 팔짱을 끼고 둘을 바라봤다.

    장 비서는 얼굴이 벌게진 채 더는 말을 못 하고 있다.

    그는 지금 미칠 것만 같았다.

    그는 이런 업무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상사의 지시이기에 해야만 했다.

    속된 말로 까라면 까는 것이 이 바닥이었다. 말이 좋아 재벌 3세의 비서지, 이도준이 손가락 하나 까닥하면 바로 짐을 싸야 하는 처지가 아니던가.

    그는 할 수 없이 다시 문자를 보냈다.

    툭툭.

    그때였다.

    바로 장 비서의 핸드폰이 울렸다.

    장 비서는 그 자리에서 전화를 받았다.

    순간 도훈이 들릴 정도의 육두문자가 핸드폰에서 흘러나왔다.

    오죽하면 스피커폰 모드를 누른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였다.

    그 육두문자는 장 비서에게 퍼부은 것이겠지만, 모두가 들었다.

    한국어를 모르는 마이클 윌도 그것이 욕설인지는 바로 알아챘다.

    마이클이 말했다.

    “지금 당장, 나가 주시죠.”

    그 말에 장 비서가 핸드폰을 끊지 못한 채 나갔다.

    그들이 자리를 떠나자 실내에는 묘한 침묵이 돌았다.

    그때 도훈이 말을 이었다.

    “일단 정리 좀 해 보죠.”

    “네, 말씀하세요.”

    마이클이 답하자 도훈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마이클 윌과 머니 윌이 동일 인물이라는 거죠?”

    “네, 맞아요. 그런데 놀라지 않으시는군요.”

    “우리 사촌 형이 마이클 윌과 접촉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니 내가 만난 사람이 머니윌이자 마이클 윌일 수밖에 없죠. 그런데 왜 정체를 안 밝히신 겁니까?”

    “팝과 클래식 둘 다 좋아합니다. 그런데 서로의 경계는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

    도훈은 탄성을 터뜨렸다.

    놀라움의 감정은 조금도 들어 있지 않았다.

    사실 마이클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어이가 없었다.

    마이클은 몇 년 뒤면 LA오케스트라를 떠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사비를 들여서 악단을 만든다.

    그 악단에서 추구하는 음악은 클래식의 대중화.

    클래식에 여러 가지 퍼포먼스를 곁들이며 음악을 시각화한 음악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그런데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 했다니 어이가 없는 것이다.

    그때 마이클이 희미하게 웃었다.

    “이제야 놀라시는군요. 진짜 만나고 싶었습니다, 도훈.”

    “저도 보고 싶긴 했는데…….”

    도훈이 살짝 말끝을 흐리자 마이클이 다급하게 물었다.

    “왜 그러시죠?”

    “반응이 너무 과격한 것 같아서요.”

    “혹시 백아와 종자기에 대해서 아십니까?”

    “백아와 종자기요? 그건 중국의 고사에서 나오는 인물들 아닌가요? 그걸 마이클이 어떻게 아십니까?”

    “사실, 도훈의 메일을 받고 나서 떠오른 게 백아와 종자기의 고사였습니다. 참, 그 고사는 대학 때 동양의 문학이란 과목에서 배웠습니다. 그 고사를 배울 때는 솔직히 이해가 안 됐습니다. 저런 판타스틱한 우정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해 봤죠.”

    “제 메일을 보고 그런 생각을 가졌다는 게 저는 조금 이해가 안 됩니다.”

    “너무 제 얘기만 했나 봅니다. 가사와 편곡을 보고 제가 느낀 게 뭔지 아십니까?”

    “뭔가요? 짚이는 것이 없네요.”

    도훈이 어깨를 으쓱하며 답하자 마이클이 숨도 쉬지 않고 바로 말을 이었다.

    “저보다도 저를 더 잘 아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감탄이었습니다. 도훈이 본 건 제 악보 아닌가요?”

    “그렇죠.”

    “그런데 도훈이 제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아…….”

    도훈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그가 오버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도훈이 전생의 최고 프로듀서인 것은 맞았다.

    하지만 그의 곡을 완벽하게 편곡할 수 있었던 것은 전생의 기억 때문이다.

    그 곡을 편곡하는 데 불과 네 시간.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서 완성해 낸 것이다.

    즉, 그 곡을 완성한 것은 도훈이 아니라 전생의 마이클이었단 이야기였다.

    그가 몇 년을 고민한 결과를 도훈은 풀어놨을 뿐이었다.

    그런 곡을 마이클이 봤으니 자신의 고민이 싹 풀렸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백아와 종자기의 고사를 떠올린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백아와 종자기의 고사가 낳은 유명한 단어가 지음이었다.

    지음이 아니던가?

    누가 종자기고 누가 백아인지는 모르지만, 마이클은 상상을 키워 나갔을 것이다.

    사실 머니 윌과 마이클 윌이 동일 인물이라는 것은 전생에도 몰랐다.

    전생의 마이클 윌은 철저하기 신분을 속였으니까.

    도훈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뜨자 마이클이 말했다.

    “속인 것은 미안합니다.”

    “별말씀을요. 사람마다 다 가면 하나 정도는 쓰고 사는 게 현대잖아요. 괜찮습니다.”

    “도훈도 가면을 쓰고 있나요?”

    “지금 이 얼굴 가면입니다.”

    “네?”

    마이클이 놀리자 신서희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그건 농담이에요. 마이클, 조크 알죠? 이 실장도 이런 걸 보면 굉장히 짓궂다니까요.”

    “하하, 미안해요.”

    도훈이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이자 마이클이 웃었다.

    순간 어색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

    신기한 것은 이때부터 너 나 할 것 없이 말문이 열린 것이다.

    마이클은 점점 대화에 빠져들었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팝뿐 아니라 클래식에 있어서도 마이클이 추구하던 방향과 비슷한 것이었다.

    물론 이것도 도훈이 전생의 기억을 바탕으로 대화를 이끌어 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이번 표절 건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다.

    “하하, 그건 제가 발표한 것도 아니고 그냥 즉흥적으로 만들었던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표절이 돼요?”

    “그러게 말이에요.”

    도훈이 맞장구치자 마이클이 말했다.

    “이번 기자회견 때 발표해 버릴까 해요. 그러면 잠잠해지겠죠. 도훈이 몸담고 있는 유레카에도 영향이 없겠죠.”

    “마이클, 혹시 말입니다.”

    “왜 그러시죠? 도훈.”

    “그 발표 나중에 하면 안 될까요?”

    “잠잠해져야 도훈이 편할 거 아닙니까?”

    “저는 잠잠해지는 건 원하지 않아요.”

    “그럼 뭘 원하는데요.”

    “조금 자극적인 것을 원합니다. 대중은 극적인 걸 원하는 게 아니겠어요?”

    “오, 저랑 똑같습니다, 도훈.”

    “그럼, 발표 일자는 제가 얘기해 드릴 테니 부탁드리겠습니다. 참, 증명해야 할 사람이 한 명 있는데 그분하고는 미리 통화해 주실 수 있겠죠?”

    “물론이죠, 지금도 가능합니다.”

    “지금이요?”

    “물론이죠.”

    마이클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 모습에 도훈이 핸드폰을 꺼냈다.

    도훈은 단축 번호를 눌렀다.

    * * *

    장경자의 저택.

    엄지연과 장경자는 지금 외출 준비로 한참 바빴다.

    정신없이 갑자기 울리는 장경자의 핸드폰.

    띠리링, 띠리잉.

    “정신없는데 웬 전화야! 엄 비서야, 전화 좀 받아 봐.”

    “네, 회장님.”

    엄지연이 번개처럼 달려와 장경자의 핸드폰을 들었다.

    발신인을 확인한 엄지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화면에 도훈의 이름이 찍혀 있었던 것.

    “네, 엄 비서입니다.”

    엄지연은 통화를 하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것은 숙제를 끝냈으니 장경자를 바꿔 달라는 도훈의 부탁 때문이었다.

    “회장님, 전화 받으셔야 할 것 같은데요. 유레카 대표한테 전화 왔어요. 숙제를 다 끝냈다고 하는데요.”

    “아, 하필이면 오늘…….”

    장경자는 미간을 좁히며 엄지연에게 핸드폰을 건네받았다.

    “이놈아, 뭐라고?”

    고개를 갸웃하던 장경자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것도 잠시 엄지연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엄 비서가 녹음하면서 통역 좀 해.”

    “네?”

    “도훈이가 어떤 코쟁이를 바꿔 주더라고.”

    “아, 알겠어요, 회장님.”

    엄지연은 핸드폰을 건네받은 뒤 상대의 대화를 기록해 나갔다.

    A4 용지가 가득 찼을 때야 통화가 끝났다.

    엄지연은 숨이 찬지 심호흡을 한 뒤 메모한 종이를 들고 장경자의 앞으로 갔다.

    “회장님, 여기 있어요. 그런데 왜 영어 못하는 척하셨어요?”

    “내가 영어 좀 한다는 건 엄 비서밖에 모르잖아. 그건 일급비밀이야.”

    장경자는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엄지연도 마주 웃었지만, 내심 뜨끔했다.

    장경자가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를 웬만큼 한다는 것을 안 것은 고작 삼 년 전이었다.

    장경자는 기업들의 모임에서도 외국어를 모르는 척 능청을 떨어 왔던 것.

    사람들은 장경자가 외국어를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녀의 뒷담화를 비롯한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던졌던 것이다.

    장경자는 그 이야기들을 넙죽 머릿속에 넣었고 말이다.

    그러니 정보 싸움에서 승자는 장경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장경자는 첫째 며느리와 둘째 며느리의 속마음도 대충은 알고 있었다.

    장경자가 그들이 불어로 나누는 대화를 듣고는 엄지연에게 한 말이 있었다.

    그것은 인성만 본다면 첫째와 둘째는 벌써 아웃이었다는 이야기였다.

    다행히 엄지연은 항상 혼자였다.

    다른 이의 뒷담화를 나눌 상대도 없다는 것이었다.

    고아였던 탓도 있지만, 미라클에 입사에서도 혼자였다.

    미라클 장학생이라는 것은 다른 이들이 그녀를 멀리할 이유로 충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그녀에게는 행운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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