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110)
사실 홍준수도 이해가 안 되는 면이 있었다.
그것은 이도준이 왜 그렇게 유레카의 몰락을 바라냐 하는 점이었다.
유레카의 대표가 이도준의 사촌 동생인 것까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막대한 비용까지 써 가면서 유레카의 몰락을 바라는 것은 조금 신기했다.
만약 그것이 이익 때문이라면?
유레카를 집어삼킬 것을 생각해 먹을거리 몇 점은 남겨 둬야 하는 것이 이치에 맞았다.
하지만 이도준은 철저하게 유레카의 몰락을 바라고 있었다.
이익이 아닌 감정적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홍준수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살짝 떨었다.
자신이 그 사촌 동생, 즉 이도훈의 입장이라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은 것이다.
자신이 그의 입장이라면 아마도 한국을 떠났을 것이었다.
그때였다.
장 비서의 목소리가 홍준수의 귓전을 때렸다.
“홍 팀장님, 시간은 확인하셨습니까?”
“네, 확인했습니다. 취재진 보면 아시겠지만, 이제 곧 도착합니다.”
홍준수는 주변을 보며 눈짓했다.
마이클 윌의 인기는 생각보다 엄청났다.
SBC와 MBS, KBC 등 지상파뿐만 아니라 케이블과 인터넷 뉴스의 기자들까지 나왔다.
그들은 항공편이 나오는 전광판을 보며 방송 장비를 체크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장 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국에서 나온 취재진의 행동을 보면 마이클 윌과 그들의 악단이 곧 도착할 것이 분명했다.
모두가 웅성거리는 가운데 안내 방송이 나왔다.
―지금 LA발…….
동시에 홍준수 일행은 마른침을 삼켰다.
LA오케스트라를 초청한 주체는 서울시.
서울시에서 나온 공연 담당자에게 자신들이 마이클 윌과 잠시 독대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한 상태였다.
그때였다.
공항 게이트가 열리자 여기저기서 셔터 소리가 울려 퍼진다.
찰칵. 찰칵.
홍준수는 재빨리 한 발 나가 그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것도 잠시 홍준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취재진의 표정이 조금 이상했기 때문이다.
‘뭐지?’
그가 의문을 떠올릴 때 누군가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홍 팀장님.”
“아, 김미영 팀장님이시군요. 그런데 마이클 윌이 보이지 않네요.”
“그게…….”
그는 멋쩍은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때 장 비서가 물었다.
“무슨 일인지 말씀해 주시죠.”
“마이클 윌 단장은 몇 시간 전에 벌써 도착해서 짐을 풀었답니다.”
“혹시 숙소가 어디죠?”
“비밀로 해 달랍니다. 그리고 마이클 단장이 다른 미팅은 미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도 지금에서야 확인한 내용이라…… 죄송합니다.”
그녀의 말에 장 비서와 홍준수는 황당하다는 듯 서로를 바라봤다.
* * *
그날 저녁, 유레카의 별관 연습실.
도훈은 버릇처럼 연습실의 거울을 보고 있었다.
우시원과 서찬휘는 스타플레이어의 합숙 녹화방송에 합류했다.
둘이 없는데도 도훈은 본능처럼 이 연습실에 들른 것이다.
도훈은 거울을 보며 피식 웃었다.
거울 속에서 우시원과 서찬휘의 잔상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잘하고 있을까?”
“그럼, 잘하고 있겠지. 어떻게 만든 기회인데.”
강시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도훈이 피식 웃었다.
“하긴, 녀석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지.”
“이 실장이 무슨 문제야? 스타플레이어는 지금 난리가 났는데.”
강시혁의 말은 사실이었다.
지난번에 방송되었던 스타플레이어의 첫 편은 생각보다 엄청난 반응 불러왔다.
지금 MBS의 스타플레이어 시청자 게시판은 그 열기를 반영하듯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스타플레이어의 합숙 촬영분의 방영은 한 달 동안 진행된다.
한 달 뒤면 합숙이 끝나고 본격적인 생방송 모드로 바뀐다.
그 말에 도훈이 손을 내저었다.
“스타플레이어랑 나랑 무슨 상관이야?”
“제일 화제가 된 게 이 실장이고 그다음이 우리 유레카잖아.”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지.”
도훈이 팔짱을 끼고 창밖을 바라봤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너튜브에 떠도는 유사성 영상에 대해서 해명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신서희가 해결해 주기로 장담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신서희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연습실의 문이 열렸다.
덜컹.
신서희가 뭐가 그리 급한지 평소답지 않게 뛰어왔다.
“이 실장님.”
그녀의 모습에 깜짝 놀란 도훈이 물었다.
“왜 그러세요? 신 선생님.”
“혹시 내일 시간 되세요?”
“음.”
도훈이 눈을 가늘게 뜨며 일정을 떠올렸다.
사실 그리 한가한 편은 아니었다.
지금 ‘추억을 소환하라’의 퀘스트도 20일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추억을 소환하라는 퀘스트의 진도가 뜨뜻미지근한 것은 회전목마의 나머지 멤버들과 연락이 닿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때 신서희가 말했다.
“내일 머니 윌과 만나기로 했는데 시간 안 되세요?”
“네?”
도훈이 눈을 크게 떴다.
“머니 윌, 그 친구가 한국에 들어왔어요.”
“당연히 만나야죠. 장소가 어딘데요?”
“JK 마리오 호텔이요.”
“아, 장소가 묘하네요.”
도훈이 눈매를 좁혔다.
JK 마리오는 강남에 있는 5성급 호텔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관리하는 것이 바로 미라클 그룹이라는 점이었다.
도훈의 표정을 본 신서희가 피식 웃었다.
“이 실장이 걱정하는 거 처음 보네요.”
“걱정하는 건 아니고 누가 훼방을 놓지 않을까 해서요. 그곳은 적진이거든요.”
“호호, 재미있는 말이네요. 문자로 장소와 시간 줬어요. 오케이?”
신서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가장 답답한 것이 신서희였다.
머니 윌과 마이클 윌이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말하면 그녀도 시원할 터다.
그런데 마이클은 그것을 비밀로 해 달라고 하며 자신이 만나서 다 밝힐 것이라 했다.
신서희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훈이 활짝 웃으며 답했다.
“네, 감사합니다. 신 선생님.”
도훈은 신서희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이제 내일이면 표절에 대한 의혹도 사라질 터다.
* * *
마이클 윌은 초조한 눈빛으로 JK 마리오 호텔의 VIP룸에서 상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이클 윌은 다시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그 모습에 악장이 피식 웃었다.
“마에, 왜 그렇게 시간을 봅니까? 벌써 몇 번인지 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럼, 벽시계 놔두고 자꾸 손목시계를 확인하는 것도 아십니까?”
악장은 검지로 벽시계를 가리켰다.
마이클 윌은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제가 그랬나요?”
마이클 윌이 고개를 갸웃하자 악장이 다시 물었다.
“그럼, 지금 한 시간이나 남은 건 알고 계시나요?”
“헉, 그렇게나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니!”
마이클이 놀라자 악장이 놀리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지금, 꼭 첫 데이트를 앞둔 소년 같습니다.”
“그것보다는 조금 더 절실합니다, 하하.”
마이클이 빙긋 웃을 때였다.
VIP룸의 문이 스르륵 열렸다.
순간 마이클은 마른침을 삼켰다.
문틈으로 단발머리의 여성이 눈인사한다.
그 모습에 마이클이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 보는 얼굴의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마이클의 모습에 여인이 슬쩍 문으로 들어와서 인사를 건넸다.
“익스큐즈 미, 저는 공연 책임자인 김미영 팀장이라고 합니다.”
“아,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여기에는 어쩐 일이신지요?”
“공연 때문에 급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말씀하세요.”
“제가 아니라 다른 분들이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음…….”
마이클은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시간은 50분 이상 남아 있었다.
다른 이야기도 아닌 공연에 관계된 이야기라고 하니 지나칠 수가 없었다.
마이클이 말했다.
“그럼, 20분 정도만 시간 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에스트로.”
김미영 팀장은 고개를 숙인 뒤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입 모양으로 말했다.
그 뒤에 있는 것은 세 명의 사내였다.
홍준수와 안소신 그리고 장 비서였다.
그들 중 가장 앞에 선 것은 외국어에 능통한 장 비서였다.
장 비서는 마이클에게 간단한 인사를 건넨 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마이클, 혹시 저희가 보낸 메일에 대한 답을 듣고 싶습니다.”
“메일이라면?”
“네, 맞습니다. 곡에 관한 확인만 해 주시면 거금을 드린다는 제안을 했었죠?”
“…….”
마이클이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자 장 비서는 다시 말을 이었다.
“마이클의 곡을 머니 윌이라는 작곡가가 표절한 것이 유감이라고만 밝혀 주시면 됩니다.”
“…….”
마이클의 눈이 더 빛났다.
그 모습에 옆에 있던 홍준수 팀장이 끼어들었다.
“제가 봐도 표절 맞습니다. 그러니 한마디만 해 주십시오. 표절은 예술계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을 장 비서가 통역하자 마이클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혹시 말입니다. 표절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표절이 아니라니요? 누가 봐도 표절입니다. 이런 걸 눈감아 주신다면 진정한 음악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홍준수의 억양이 다소 높아 보이자 장 비서는 손짓했다.
목소리를 낮추라는 표시였다.
그때였다.
다시 문이 열렸다.
스르륵.
장 비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인 하나가 들어오고 그다음에는 사내 하나가 들어왔다.
그런데 뒤에 들어오는 사내의 얼굴이 매우 익숙했다.
장 비서의 눈이 점점 커졌다.
사내는 장 비서의 앞에 오더니 물었다.
“장 비서님이 여긴 왜…….”
“이 대표님이 여긴 왜.”
서로 같은 말을 던진 두 사람은 상대를 바라보며 눈매를 좁혔다.
그 모습은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그때 신서희가 마이클에게 다가갔다.
“마이클, 내가 말한 친구가 바로…….”
신서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이클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도훈을 향해 뛰었다.
훤칠한 키의 외국인이 뛰어오자 모두가 움찔했다.
홍준수와 장 비서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물론 도훈도 경계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오직 신서희만이 활짝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마이클은 그녀의 오랜 친우였다.
분야는 다르지만, 예술적으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기에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는 둘도 없는 친구였다.
신서희는 양팔을 벌리며 말했다.
“오, 마이클! 잘 지냈어?”
하지만 마이클은 그녀를 지나쳐 갔다.
휙.
그녀는 신서희의 옆에 있는 도훈을 힘껏 끌어안았다.
순간 도훈이 비명을 터뜨렸다.
“헉.”
“쏘리, 괜찮아요?”
마이클이 재빨리 팔에 힘을 풀며 뒤로 물러났다.
도훈이 마이클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 눈빛에는 많은 의문이 담겨 있었다.
그는 현재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적군이 아닌 아군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과장스러웠다.
사실 도훈과 머니 일은 그리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겨우 메일 두 번 주고받은 것이 모든 대화였다.
그에게 원곡을 받은 뒤 작업하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영어 가사와 한국어 가사 그리고 네 개의 편곡 버전을 보낸 것이 전부였다.
얼마 후 그에게 완성된 곡을 받은 후 소통은 없었다.
그런데 왜 이리 반가워한단 말인가?
누가 본다면 어릴 적 헤어진 친구를 만나는 장면으로 오해할 듯싶은 정도였다.
도훈보다 더 놀란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바로 홍준수 일행이었다. 그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서로를 바라보며 입 모양으로 상황을 묻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