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109)
이도준의 묻자, 장 비서가 자신 있게 답했다.
“연락처를 알아냈습니다. 일단 메일에 한 답장도 왔습니다.”
“표절에 대해서 알고 있대?”
“네, 한국에서 어떤 논란이 있는지 알고 있다고 합니다.”
장 비서는 자신감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에 이도준이 진득한 미소를 피워 냈다.
“그럼 얘기가 쉽겠군. 진척은 있나?”
“협상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협상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지? 만족할 만한 조건을 제시하라고 했잖아.”
“저희가 제안한 금액이 마음에 안 드나 보네요.”
“흠.”
“그럼 더 부르면 되지, 왜 협상을 해?”
“만나서 왜 자신한테 돈을 주면서까지 이러는지 확인하고 싶다네요.”
말을 마친 장 비서 조심스럽게 대답을 기다렸다.
이도준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장 비서를 바라봤다.
“돈을 안 주면 표절에 관한 확인도 안 해 주겠다는 거 아닌가?”
“태도가 좀 미적지근하긴 합니다.”
“제안한 게 얼마였지?”
“미화로 한 장이었습니다.”
장 비서가 검지 하나를 펴자 이도준이 고개를 갸웃한다.
“미화로 한 장이면?”
“만 달러였습니다.”
순간 이도준의 눈썹이 꿈틀댔다.
“열 배로 높여.”
“네?”
“그 정도는 돼야 일이 확실히 진행되지, 안 그래?”
“그래도 십만 달러는 조금…….”
장 비서는 살짝 말끝을 흐렸다.
그도 그럴 것이 과한 금액은 꼬리가 밟히기 마련이었다.
지금은 장경자의 감시망이 그물처럼 조여오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도준은 아무렇지 않게 손을 저었다.
“이번 일의 결과에 따라 그룹 내 후계 구도가 달라질 수 있어. 아니다, 이십만 달러로 높여.”
“헉.”
비서가 헛숨을 들이켰다.
비서의 입장은 당연했다. 간밤에 있었던 도훈과 내기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경자의 집에서 벌어지는 내기는 밖으로 새어 나가면 안 되었다.
다만 그의 비서는 어렴풋이 상황을 짐작하고 있을 뿐이었다.
* * *
삼 일 뒤.
LA 공항을 출발한 항공기가 태평양 상공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기류가 불안정한지 항공기가 상하로 출렁인다.
동시에 기내에서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지금 난기류의 영향으로 잠시…….
출렁. 출렁.
마치 구름다리를 건너는 듯 항공기가 흔들렸다.
그것도 잠시, 언제 그랬냐는 듯 기체가 안정을 찾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졌다.
으앙!
으앙!
쉴 틈 없이 터지는 아이의 울음.
아이는 잘해야 세 살 정도 되어 보였다.
금발에 하얀 얼굴은 울음 덕분에 더욱 창백해 보였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꼭 안았다.
출렁일 때는 너무 무서워 울 엄두도 못 냈는데, 기체가 안정을 찾자 아이가 울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 엄마는 힐끔 주변의 눈치를 봤다.
이륙한 지 7시간, 지금은 몇몇 승객들은 안대를 쓰고 잠이 들어 있었다.
그런 승객들이 아이의 울음에 하나둘 안대를 벗는다.
그중 일부는 미간을 좁히며 아이의 엄마를 노려보기도 했다.
아이의 입을 막을 수도 없는 엄마는 난감했다.
작은 소리로 자장가를 불러 주기도 하고.
그때였다.
금발의 사내가 아이 엄마에게 다가갔다.
그는 팔짱을 끼고 우는 아이를 바라봤다.
아이 엄마는 자신과 아이를 보고 있는 금발 사내를 보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죄, 죄송해요. 아이가 울음을 멈추지 않네요, 정말 죄송해요.”
아이의 엄마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
금발의 사내는 재빨리 손을 흔들었다.
“노노, 아니에요. 제가 도와드릴 게 없나 해서 와 본 거였습니다.”
“네?”
“제가 자장가를 좀 불러 본 경험이 있어서…….”
“아, 말씀은 고맙지만…….”
엄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내는 아이를 바라본다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가, 안녕. 호로록 까꿍.”
“으앙!”
아이의 울음이 더욱 커졌다.
사내는 난감했다.
아이를 달래는 것에 소질이 있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자신을 보자 아이가 댐이 터진 것처럼 눈물까지 쏟기 시작했다.
사내는 아이에게 자장가도 불러 주고 익살스러운 표정도 계속 지어 보였다.
하지만 울음소리의 볼륨은 점점 높아져만 갔다.
사내는 뒤쪽을 힐끔 봤다.
이제는 모든 사람이 울고 있는 아이가 아닌 사내를 보고 있었다.
사내는 지금 상황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 마이 갓.”
작게 혼잣말을 뱉은 그는 지원군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어딘가를 보더니 오른손을 들었다.
그러고는 묘한 원을 그렸다.
동시에 비행기에 타고 있던 몇몇 사람들이 머리 위의 짐칸을 열었다.
그들은 짐칸에서 하드 케이스를 꺼내어 열기 시작했다.
그 장면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이 꺼낸 것은 악기였다.
그것도 실제 악기를 축소해 놓은 듯한 모형이었다.
그때였다.
사내가 뒤쪽을 돌아봤다.
그러고는 손이 어떤 선을 그렸다.
순간 모형으로 생각되었던 악기들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실제 크기의 반밖에 안 되는 바이올린.
비올라 등 손에 들 수 있는 현악기와 여러 관악기들 등 모든 악기들이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소리는 완벽하게 사내의 손이 그리는 선에 반응하고 있었다.
따라라, 따라라.
그들이 연주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브람스의 자장가였다.
누군가는 그 연주에 따라 노래를 따라 부른다.
재미있는 것은 그냥 자장가가 아니라 완벽하게 편곡되었다는 것이다.
자장가의 음률은 맞는데 이 자장가를 듣고 잠이 들 아이는 없을 것이었다.
잠보다는 차라리 춤을 출 것 같은 자장가가 한참 동안 이어졌다.
순간 아이가 울음을 멈췄다.
아이는 울음을 멈추고 어깨를 살짝 들썩였다.
그 모습에 사내는 살짝 손을 멈췄다.
순간 아이의 볼살이 달싹인다.
다시 울 것 같은 분위기.
사내는 다시 지휘를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지만 승무원들은 사내를 제지하지 않았다.
기장에서부터 승무원 모두 그들의 정체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세기가 결항하면서 할 수 없이 일반 여객기에 나눠 타게 된 LA오케스트라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악기는 조심스럽게 비행기 화물칸에 보관된 상태.
그들이 들고 있던 조그만 악기들은 새로운 공연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들이라고 들었다.
승무원 중 하나는 꿈을 꾸는 듯한 눈빛으로 그들의 연주를 감상했다.
그때 다른 승무원이 말했다.
“언니, 저 아이한테 이거라도 주는 게 좋지 않겠어요? 이건 견과류도 없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그 승무원이 내민 것은 바로 조그마한 초코바였다.
“조금 나중에 주면 안 될까?”
“왜요?”
“지금 갖다 주면 연주를 못 듣잖아, 이런 기회가 흔해?”
“헉, 언니.”
그때였다.
연주가 멈췄다.
아이의 울음소리도 멈췄다.
어찌 보면 순서가 반대일지도 몰랐다.
아이가 울음을 멈췄기에 연주가 멈춘 것이 맞았다.
잠시 동안 기내에 흐르는 침묵.
누군가가 손뼉을 쳤다.
짝짝.
그것은 전염병처럼 퍼져 나갔다.
짝짝짝.
마치 연주회의 2막처럼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지자 사내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부드러운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앙코르는 안 받겠습니다.”
그의 넉살 좋은 멘트에 기내에서는 킥킥대는 웃음소리가 다시 퍼졌다.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저 사람 마이클 윌 아니야?”
“헉, 맞네. 미국의 3대 마에스트로, 마이클 윌이야.”
“와, 그럼 지금 들은 게…….”
“중요한 건 공짜로 들었다는 거지.”
“에이, 녹화라도 해 둘걸. 저 사람은 녹화하고 있는데.”
“그럼, 녹화 영상 공유해 달라고 할까?”
“너, 한국어 알아? 저 사람 한국 사람 같은데…….”
그들은 누군가를 바라봤다.
웅성거리는 소리를 뒤로하고 마이클 윌은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옆에 있던 악장이 마이클에게 말을 걸었다.
“마에, 그러기에 일등석에 타시라니까요.”
“내가 말했잖아. 죽어도 단원들하고 같이 죽는다고. 타이타닉에서 혼자 빠져나가는 선장은 매력이 없어, 조지.”
“헉, 마에…….”
마이클은 악장의 탄성에 답하지 않았다.
그는 어둠 속에 조금씩 보이는 구름을 보며 며칠 전에 자신에게 날아온 메일을 떠올렸다.
갑자기 한국에서 자신을 이리 찾는다니?
조금 이상한 일이었다.
한 통은 정중하게 자신의 정체를 묻는 내용이었다.
그에 반에 다른 한 통의 메일은 다짜고짜 돈을 들이밀며 표절 확인을 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메일에 답장한 이유는 그들의 의도가 궁금해서였다.
음악이라는 게 사람의 삶을 소리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던가?
마이클 윌은 항상 사람들의 삶에 가까이 있고 싶었다.
그래야 진정한 음악이 나온다고 생각했다.
마이클이 한국으로 향한 이유도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어서였다.
마이클은 자신의 친우에게 어떤 음악에 대해서 상의했다.
자신이 현재 몸담고 있는 것은 다소 따분한 클래식이지만, 친우에게 준 음악은 팝이었다.
분야는 다르지만, 삶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은 동일했다.
뭐, 자칫 잘못하다가는 현재 쌓아 놓은 지휘자의 명성에도 금이 갈까 정체를 못 밝힌 것도 있었다.
그래서 친우에게는 자신을 머니 윌이라 소개하라고 부탁했었다.
그런데 그 친우에게 묘한 답장이 온 것이다.
그 답장에는 자신이 만든 원본을 완벽하게 편곡한 곡이 들어 있었다.
그것도 여러 개의 버전으로 나눠서 말이다.
거기에 더 기가 막힌 것은 영어로 가사까지 붙여서 완벽하게 악보를 만든 것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마이클은 놀랐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상대가 마음을 정확하게 읽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이클은 자신보다도 자신의 음악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어찌 보면 미래의 자신이 편곡해 준 것만 같았다.
대체 어떻게?
가사와 편곡 버전을 확인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자 마이클의 가슴을 쉴 틈 없이 뛰었다.
그는 자신이 고민하는 부분을 정확히 짚어 냈다.
그냥 짚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완성해 주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그는 천재였다.
그 조그만 나라 한국에 그런 천재가 있었더니!
이것은 한마디로 서프라이즈였다.
마이클은 그 천재와 꼭 한번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마이클은 그 만남을 위해서 한국 공연을 택한 것이다.
사실 친우에게 이야기할까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마이클은 미리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다.
자신의 호들갑으로 그 천재적인 음악가가 자취를 감출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마이클이 생각하는 천재라는 족속들은 모두 괴팍하기 그지없었다.
마이클이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 목적지에 도착하오니, 승객 여러분께서는…….
마이클은 안내 방송에 따라 안전벨트를 착용했다.
* * *
4시간 후.
홍준수는 ‘웰컴 마이클 윌’이라는 피켓을 들고 두리번거렸다.
홍준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것은 미라클의 이도준 본부장과 직접 통화를 한 직후였다.
홍준수의 옆에는 이도준의 오른팔인 장 비서가 나와 있었다.
이도준 본부장은 총알을 아끼지 말고 쓰라 했다.
거기에 5개 국어에 능통한 자신의 비서까지 지원 인력으로 보냈다.
홍준수는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