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108)
도훈은 신제품 발표회에 선 사람처럼 표정을 조절하며 입을 열었다.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할머니. 다만 제가 저 무대에 선 이유는 분명히 밝히고 싶습니다.”
이도준이 눈을 부라리며 입을 열었다.
“도훈아 잘못했으면 일단 고개를 숙이고 다신 안 그러겠습니다, 하고 사과하는 게 예의다.”
그 말에 장경자의 눈썹이 꿈틀댔다.
막 입을 열려던 장경자는 고개를 돌려 이도준을 바라봤다.
그 눈빛에 이도준은 고개를 숙였다.
다시 고개를 돌린 장경자가 말했다.
“어서 말해 봐라.”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체면 따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제 목표는 제 연습생들을 무대에 올리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나선 덕분에 그 목표를 이뤘고요.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네?”
“하지만 모든 일에는 결과가 중요한 법이지.”
“결과라면…….”
“지금 이런 상황 말이다, 도훈아.”
장경자는 태블릿 화면을 툭툭 치더니 도훈에게로 화면을 내밀었다.
도훈은 재빨리 화면을 확인했다.
장경자가 내민 것은 너튜브의 화면이었다.
그곳의 맨 위에는 하나의 검색어가 떠 있었다.
―유레카 표절.
그 제목으로 검색해서 나온 영상들이 그 아래로 쭉 떠 있었다.
장경자는 그중 하나를 클릭했다.
장경자는 영상은 확인하지 않고 화면을 내려 댓글을 보여 줬다.
―와, 작은 기획사라고 해서 응원했더니 쓰레기네.
―그러게 말이야. 딱 떡잎부터 글러 먹었다.
―그럼 작사한 매니저도 표절인가?
―에이, 그건 아니지. 매니저가 작사한 건 맞지.
―매니저가 불쌍하네, 그 작곡가가 누구길래 매니저하고 연습생을 물 먹인 거지?
―그러게 말이야. 다음 주가 마이클 윌 내한 공연인데. 어떻게 하나?
―그런데 머니 윌하고 마이클 윌하고 친척 아니야? 똑같은 윌이잖아.
―에이 설마, 어쨌든 유레카는 이렇게 스타플레이어 탈락하겠네.
―어떻게 하냐?
―어떻게 하긴, 쓰레기는 꺼져야지.
도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댓글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상황인지 대충 감이 잡혔다.
재미있는 것은 댓글 중 일부는 선을 벗어났다는 것이다.
전생에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도훈이었다.
이런 댓글이 뭘 의미하는지를 모르지는 않았다.
그중 몇몇 댓글에는 분명 의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무대에 막 얼굴을 비친 우시원이나 서찬휘 그리고 눈에 띄지도 않는 유레카라는 기획사가 그들에게 악플을 받는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감정을 건드릴 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저 정도의 열렬한 악플을 받으려면 아직 한참은 더 성장해야 한다.
모든 것은 빛이 있어야 어둠이 있는 법.
유레카는 아직 저 정도의 악플을 받을 만한 빛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는 것이 도훈의 생각이었다.
도훈은 이도준을 힐끔 바라봤다.
이도준은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도훈이 씩 웃었다.
그러고는 시선을 돌려 장경자를 바라봤다.
“저건 사실이 아닙니다.”
“사실이 아니다라?”
장경자가 미간을 좁히자 도훈이 말을 이었다.
“네, 사실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의 반전도 일어나겠지요. 저는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설명해 줬으면 좋겠구나.”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 유레카는 아직 제대로 된 그룹을 배출해 낸 적이 없습니다. 팬덤도, 기대감도 제로인 유레카가 이 정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는 것은 획기적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댓글 중 미라클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는 거죠.”
“오호.”
“그 말은 지금 유레카가 아무리 망가져도 미라클의 이미지는 훼손시키지 않을 거란 말입니다.”
“그것도 일리가 있는 것 같구나.”
“아마, 내일부터는 미라클에 관한 내용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그건 또 무슨 이유더냐?”
“간단합니다, 누군가가 할머니와 제 대화를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였다.
이도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탁자를 쳤다.
탁.
그러고는 도훈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네가 지금 나를 의심하는 거야? 이런 미친…….”
욕을 하려던 이도준은 재빨리 자신의 입을 막았다.
잠시 흥분해서 장경자의 앞이라는 것을 깜빡한 것이다.
그때 장경자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이건 도준이가 화낼 만했다. 근거 없이 형제를 의심하면 안 된다.”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솔직히 저도 너튜브와 온라인에 어떤 내용이 퍼진 줄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서 말해 봐라.”
“문제는 제가 알게 된 것이 오늘 오전이었습니다. 너튜브나 온라인에서 상황을 살피는 저도 오늘 알았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그룹 비서실로부터 언제 보고를 받으셨죠?”
“그야…….”
“아마 어젯밤에 받으셨을 겁니다.”
“오호.”
장경자가 재미있다는 듯 도훈을 바라봤다.
도훈의 말은 사실이었다.
분명히 비서실에서 엄지연으로 전달한 것이 어젯밤이었다.
그리고 내용을 정리해서 오늘 아침에 엄지연이 장경자에게 전달했고 말이다.
마치 점쟁이가 된 듯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짚어 가는 도훈의 모습에 장경자의 표정이 살짝 풀렸다.
그때 도훈이 말을 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게 누구에게 나왔느냐죠. 비서실에서부터 파 보면 누군가가 나올 겁니다. 회계 프로그램보다 때때로 장부가 더 정확하듯 아마 개인적으로 캐물으면 그 진원지가 나오겠죠.”
도훈은 다시 한 번 이도준을 바라봤다.
이도준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도훈의 이야기에서 틀린 점은 하나도 없었다.
생각해 보니 자신이 조금 성급했던 것도 있었다.
SW의 홍준수에게서 연락을 받고 비서를 통해서 내용을 정리해서 장경자가 알도록 조치했다.
그런데 시점이 문제였다.
이도준이 이를 갈고 있을 때였다.
도훈이 손을 내밀었다.
갑작스러운 도훈의 행동에 이도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뭐 하는 거냐?”
“저랑 내기 하나 하실래요?”
“내기라?”
이도준은 눈을 가늘게 떴다.
노려보는 건지 경계를 하는 건지 모호한 표정이었다.
반면에 장경자는 슬쩍 뒤로 물러나 팔짱을 꼈다.
그 모습에 옆에 있던 엄지연이 속삭였다.
“회장님, 말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말리긴 왜 말려? 엄 비서.”
“그래도…….”
“원래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게 아니겠어? 그리고 손주들 싸움 구경하는 것도 간만이니 괜히 나서지 마, 엄 비서.”
“네, 알겠어요, 회장님.”
엄지연은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들의 대화는 도훈에게도 똑똑히 들렸다.
역시 장경자였다.
약한 자식을 돌보기보다는 강한 놈을 후계자로 만들겠다는 그의 철학이 담겨 있는 대화였다.
도훈은 슬쩍 웃었다.
마음대로 날뛸 수 있는 판이 만들어진 것이다.
도훈은 손을 내저었다.
“아, 안 되겠네요. 지난번에도 저한테 져서 기숙사 건물 빼앗기셨잖아요. 여기서 더 빼앗기면 입지가…….”
“얘기해 봐라.”
“지금 형님은 유레카의 작곡가가 표절했다고 확신하시는 거죠?”
“그럼, 반박할 증거라도 있다는 게냐?”
“반박할 증거는 없어도 증인은 있을 것 같습니다.”
“증인이라…….”
“아윌비백과 비교되는 저 원곡의 저작권자를 만나 보면 되겠죠.”
“그게 누구지?”
“저가 나와 있잖아요. 마이클 윌이라고요. LA오케스트라의 지휘자.”
“흠, 지휘자라?”
“그 사람한테 직접 물어보면 사실은 분명히 나오겠죠.”
“푸웁.”
이도준은 실소를 터뜨렸다.
“왜 웃으시죠?”
“네 말이 복어가 몸집을 부풀리는 것과 같아서 그러지. 내가 충고 하나 할까?”
“네, 마음대로 하세요.”
“몸집을 부풀린 복어는 잘못하면 터지기 마련이지.”
“과연 그럴까요? 저는 복어를 노리는 늑대가 위험하다고 봅니다. 잘못하면 복어 독에 당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저 지휘자가 과연 확인해 줄까?”
“확인을 못 하면 그것도 제 잘못이겠죠. 원래 무죄는 본인이 밝혀야 하는 게 이 바닥의 생리 아닙니까?”
“잘 아는구나? 너는 무엇을 걸겠느냐?”
“회사를 걸겠습니다. 형님은 무엇을 거시겠습니까?”
“…….”
“유레카의 값어치만큼의 지분을 거십시오.”
“그러마, 받아들이지.”
“네, 그럼…….”
도훈이 고개를 돌려 장경자를 바라봤다.
장경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알아서들 하거라. 너희에게 내릴 벌이나 상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미루겠다. 그리고…….”
장경자는 엄 비서를 바라봤다.
엄 비서가 재빨리 답했다.
“말씀하세요, 회장님.”
“녹음해 놨나?”
“네, 물론 해 놨죠.”
엄지연이 어디선가 녹음기를 꺼내 흔든다.
그 모습을 장경자가 흡족하게 바라봤다.
“역시 우리 엄 비서가 최고다. 나머지는 엄 비서한테 맡길 테니. 부탁 좀 하마.”
엄지연이 장경자를 부축하며 말을 이었다.
“네, 회장님. 내일 강영웅 씨 콘서트 있으시잖아요. 빨리 올라가서 쉬세요.”
“맞네, 중요한 일을 앞뒀으니 컨디션 관리를 해야겠네. 너희들도 엄 비서와 이야기 잘 나누다 돌아가거라.”
장경자는 도훈과 이도준을 번갈아 봤다.
그 모습에 도훈과 이도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몇 걸음 가던 장경자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녀는 자신의 손자들을 다시 한 번 번갈아 봤다.
그러고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였다.
그녀가 사라지자 엄지연은 도훈과 이도준의 내기를 문서로 만들었다.
구두 약속보다는 서면으로 처리하는 것을 선호하는 장경자이기에 만드는 문서였다.
엄지연은 이런 일에 능숙했다.
눈 깜짝할 양식에 맞춰 문서를 작성했다.
그 계약서의 문장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도훈과 도준은 그 계약서에 서명을 한 뒤에야 일어날 수 있었다.
그 계약서는 각자 한 부씩을 갖고 나머지는 장경자가 보관할 터다.
도훈은 장경자의 저택에서 나오며 뒤를 바라봤다.
그곳에서는 이도준이 어느 때보다 진한 미소를 피워 내고 있었다.
도훈은 고개를 갸웃하며 멀리서 기다리고 있는 한민국을 향해서 걸어갔다.
뒤쪽에서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마치 참았던 웃음을 터뜨리듯 이도준이 미친 듯 웃고 있었다.
“하하.”
누가 뭐라 하든 이도준은 지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누가 봐도 이번 승부는 자신의 승리였다.
승패는 마이클 윌이라는 음악가의 손에 달려 있었다.
이런 승부를 제안한 사촌 동생 도훈은 한마디로 바보였다.
돈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모르는 것이 바로 도훈이 패배하는 원인이라 생각했다.
모든 승부에 있어서 돈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다.
승부가 누군가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은?
이도준이나 도훈, 둘 모두에게 칼자루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칼자루를 쥔 누군가를 움직이면 되었다.
그 동력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돈이었다.
이도준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러고는 핸드폰을 잡았다.
장경자와 엄지연이 안 보이는 곳으로 가게 되면 바로 비서에게 연락해서 조처할 것이었다.
이도준은 희열에 몸을 바르르 떨었다.
* * *
다음 날 아침 JK유통의 본부장실.
그의 오른팔인 장 비서가 노크도 없이 벌컥 들어왔다.
이도준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재빨리 물었다.
“어떻게 됐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