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107)
박창성이 투덜거리자 도훈은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 내가 인성이 되잖아.”
시청률을 찍는 건 유레카가 관여하지 않아도 된다.
스타플레이어의 시청률을 높이는 주체가 누가 되든 관계없었다.
도훈은 지금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을 MBS의 제작진들을 떠올렸다.
아마 어떤 방향으로 드리프트를 해야 할지 난감할 것이었다.
어쨌든 도훈은 MBS가 진정 곰이 되길 바라고 있었다.
재주는 곰이 넘고 보상은 도훈이 차지하면 되니까!
* * *
같은 시간 SW의 1팀 사무실.
홍준수도 노트북으로 스타플레이어의 게시판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것참, 이놈들은 운도 좋네.”
“실시간 검색어에도 올랐네, 휴”
안소신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소리에 홍준수가 번개처럼 반응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홍준수는 안소신의 뒤쪽으로 다가가 화면을 확인했다.
“헉, 실시간 검색어 10위네.”
“10위에만 있는 게 아니야, 홍 팀장.”
안소신이 스크롤을 올리더니 화면의 한곳을 가리켰다.
그 모습에 홍준수가 고개를 갸웃하며 10위라 쓰여 있는 부분을 손가락으로 찍었다.
“10위에 유레카의 아이돌이라고 쓰여 있잖아.”
“그 위에 잘 봐, 8위에 매니저라고 있잖아. 그게 유레카 관련 검색어야.”
안소신이 8위라 적힌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화면을 다시 확인한 홍준수가 실소를 흘렸다.
“허, 이거 유레카 친구들 완전히 들떠 있겠네.”
“진짜 날리시려고?”
“날려야지. 여기까지 와서 고민할 필요가 뭐 있어?”
“이거 날리기에 너무 아까운데…….”
안소신은 한쪽 눈을 찌푸렸다.
그 모습에 홍준수가 손을 내저었다.
“우리가 못 먹는 건 남이 먹어서도 안 돼. 이건 인정하지? 안소신 씨.”
“인정은 하는데, 아깝잖아.”
“신경 쓰지 말고 일단 챙겨.”
홍준수는 안소신의 가방을 가리켰다.
안소신은 가방에서 뭔가를 찾는 듯 뒤적거렸다.
한참을 찾던 안소신은 USB 하나를 꺼냈다.
그 USB를 조심스레 바라보던 안소신이 옅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잠시만 홍 팀장.”
“왜 그래? 마음이 변한 거야?”
홍준수가 뱀처럼 눈을 가늘게 뜨자 안소신이 손을 저었다.
“그게 아니라. 차라리 이 파일로 유레카와 합의하는 게 어때?”
“합의라니? 그 친구들하고 무슨 합의를 해?”
“혹시 안소신 씨가 작곡한 곡에 표절 시비 붙으면 인정하겠어?”
“…….”
“그 친구들도 마찬가지일걸. 외국 곡 표절해 놓고 아무렇지 않게 우리만 몰아붙였잖아.”
“그건 우리가…….”
“지금 반격할 방법은 이 영상을 익명으로 퍼뜨리는 것밖에 없어. 여론이 유레카를 공격하게 되면 우리에 대한 안 좋은 시선도 자연스럽게 사라질걸? 그러니 일단 나가자.”
홍준수는 사무실을 나갔다.
그 뒤를 따르는 안소신은 USB를 손에 꼭 쥔 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들이 찾는 것은 피시방이었다.
지금 그들은 영상 하나를 퍼뜨리려고 하고 있었다.
그것을 위해서는 추적이 되지 않는 공간이 필요했다.
앞서가던 홍준수는 뒤를 힐끔 돌아봤다.
“안소신 씨 마스크 써.”
“알았어.”
고개를 끄덕인 안소신은 가방에서 마스크를 꺼냈다.
순간 그의 손에 들려 있던 USB가 미끄러졌다.
휙.
깜짝 놀란 홍준수가 재빨리 USB를 낚아챘다.
“휴, 잘못하면 하수구에 빠질 뻔했잖아. 이건 내가 가지고 있을게.”
홍준수는 USB를 자신의 안주머니에 넣었다.
잠시 후.
그들은 북적대는 피시방의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웹 사이트에서 너튜브의 주소를 치고 들어갔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영상을 업로드했다.
그 영상의 내용은 간단했다.
마이클 윌이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작곡한 노래와 아윌비백을 비교하는 영상이었다.
두 개의 곡을 비교한 영상을 유튜브에 풀어 놓고 그 댓글을 작업할 예정이었다.
조회 수와 댓글은 일정 부분 조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홍준수의 전문 분야였다.
그는 망한 곡도 국내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상위권에 올려놓은 적이 있었다.
분위기라는 것이 묘한 게.
망했다고 생각한 곳도 상위권에 머물러 있다 보면 대중은 그 곡의 장점을 찾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장점을 찾다 보면 대중의 시선이 180도 변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너튜브에 올리려는 영상은 조작이 아니었다.
그저 사실을 밝히는 영상이었다.
업로드된 영상을 확인한 홍준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반면 안소신은 연신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영상을 만들면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두 곡이 비슷한 것이 맞긴 했다.
하지만 두 곡은 어떻게 보면 전혀 달랐다.
같으면서도 다른 느낌.
음악성만 따지자면 아윌비백이 완성형에 가까웠다.
그렇게 완성도 있는 곡을 쓴 작곡가가 외국의 동영상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홈친다라?
안소신은 이해가 안 되었다.
거기에 더해 동영상의 주인공이 문제였다.
영상의 주인공인 마이클 윌은 LA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로 활동 중이었다. 금발을 휘날리며 지휘하는 그의 모습은 타임지의 표지에도 가끔 등장할 정도였다.
덕분에 TV쇼의 게스트나 영화의 카메오로도 종종 등장하는 할리우드의 셀럽이자 예술인이었다.
비록 발표된 곡은 아니지만, 그의 곡을 표절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자살행위일 수도 있었다.
표절에 대한 심판은 법적 심판이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대중의 심판.
재미있는 것은 마이클 윌의 경우 한국의 팬층도 제법 많다는 것이었다.
마침, LA오케스트라의 한국 공연이 일주일 뒤였다.
영상이 퍼지면 마이클 윌의 귀에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한국 공연에 맞춰 팬들의 관심도 점점 커지고 있는 지금.
이 영상이 퍼지는 순간 유레카뿐만 아니라 MBS의 스타플레이어도 끝이었다.
그것이 이렇게 비밀리에 영상을 퍼뜨릴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만약에 이들이 영상을 퍼뜨렸다는 것을 MBS나 SW 엔터에서 안다면?
그것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지난번의 사건은 SW 대표가 직접 무마시킨 덕분에 소속 연습생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스타플레이어에 출연하게 된 상태였다.
지금 그들이 날리려는 건 유레카뿐이 아니라 SW의 일부분도 포함되어 있었다.
* * *
이틀 후 장경자의 저택.
식탁 앞에는 이세훈과 이세영 대신에 도훈과 이도준이 앉아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업무 보고에 장경자는 도훈과 이도준을 불렀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동안 둘이 일으킨 불협화음을 이제는 제거해야 할 때였다.
상을 내릴 놈에게는 상을 주고.
잘못한 놈에게는 과감하게 회초리를 내리쳐야 하는 자리였다.
물론 둘 다 잘했다면 달콤한 식혜를 한 사발씩 퍼 줄 예정이었다.
식탁 위는 오늘따라 휑했다.
평소 업무 보고 때 있던 굴비도 없었고 불고기도 없었다.
식탁은 풀때기들로 도배되었다.
식탁 위에는 양 떼들이 뛰어놀면 좋겠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장경자는 도훈과 이도준을 번갈아 바라봤다.
한참 동안 둘을 바라보던 장경자가 입을 열었다.
“도준아.”
“네, 할머니.”
“네가 도훈이를 먼저 쳤느냐?”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도준은 억울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장경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손뼉을 쳤다.
짝.
그 소리에 엄지연이 손에 검은색 장부를 들고 걸어왔다.
엄지연은 조용히 검은색 장부를 장경자에게 건넸다.
장경자는 장부를 받아 들고는 조용히 첫 장을 넘겼다.
후르륵.
국수 넘기듯 책장을 넘기던 장경자의 손이 멈췄다.
“도준아.”
“네, 할머니.”
“50억이면 쌈짓돈은 아니제?”
“네, 50억이라니요?”
“장부에는 네가 퍼 간 돈이 50억으로 나왔는데, 왜 모른 척하지?”
“저는 그런 적이…….”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경자는 장부를 식탁 위에 올려놨다.
탁.
얼마나 세게 내려놨는지 반찬 그릇이 들썩일 정도였다.
이도준의 고개는 자동 우산을 접듯 푹 내려갔다.
그 모습을 확인한 장경자는 고개를 돌려 도훈을 바라봤다.
“도훈아.”
“네, 회장님.”
도훈은 아무런 표정 없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거기에 호칭도 사무적으로 변했다.
도훈은 지금 대화 하나하나가 시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평상시의 업무 보고 자리가 아니었다.
처분을 기다리는 자리였다.
지금 장면의 주인공은 할머니 장경자라는 것을 도훈은 알고 있었다.
도훈은 장경자가 자신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지 궁금했다.
장경자가 다시 손뼉을 쳤다.
짝.
그 소리에 엄지연이 검은색 장부를 들고 왔다.
장경자가 그 장부를 받는 모습에 도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검은색 장부인 줄 알았는데 태블릿이었다.
할머니가 왜 태블릿을?
도훈의 눈동자가 커졌다.
한참을 바라보던 도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제 장부를 안 펴 보시나요? 회장님.”
“예끼, 이놈아! 네놈의 장부는 펴 볼 게 없으니 안 펴 보지.”
“…….”
도훈은 슬쩍 장경자의 눈빛을 살폈다.
순간 도훈은 헛숨을 삼켰다.
부드러운 말투에 비교해 장경자의 눈빛은 복잡했다.
도훈은 다시 장경자가 손에 쥔 태블릿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장경자가 피식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고얀 놈, 왜 남의 패를 훔쳐보려고 해.”
누가 봐도 농담이었다. 하지만 장경자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도준은 입을 떡 벌렸다.
자신에게는 칼 같던 할머니 장경자가 도훈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잠시 이도준은 입꼬리를 보이지 않게 살짝 떨었다.
그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
이도준은 저 태블릿에 들어가 있는 내용을 알고 있었다.
도훈은 장경자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훈은 머릿속으로 앞으로 일어날 여러 가지 가능성을 그려 보았다.
자신이 예상도 못 했던 것을 장경자가 들먹일 수도 있었다.
뭐, 가장 최상의 시나리오는 도훈의 예상 안에 들어 있는 공격이었다.
중요한 것은 태블릿에 무슨 내용이 들어 있느냐였다.
모두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을 때였다.
장경자가 태블릿의 전원을 켰다.
그러고는 툭툭 화면을 터치해서 뭔가를 띄운다.
장경자는 태블릿을 탁자 위에 올려놨다.
“도훈아, 이게 너지?”
장경자의 목소리에 도훈은 눈매를 좁혔다.
장경자가 가리킨 화면에는 자신이 연습생들과 함께 펼친 무대가 재생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자신이고 자막에도 이름이 나와 있었다.
여기까지는 도훈이 예상한 시나리오였다.
“네, 회장님.”
“그냥 할머니라 불러라, 도훈아.”
“네?”
“지금부터 할 얘기는 회사 업무가 아니라 할미가 손자에게 하는 훈육이라 생각해라.”
“네, 할머니.”
“너는 왜 저런 짓을 하는 것이냐? 네 아비가 나를 닮아 노래를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해서 기획사를 만든 것은 맞다마는…….”
장경자는 슬쩍 말끝을 흐렸다.
세상을 떠난 자신의 막내를 들먹였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 듯 슬쩍 천장을 올려다봤다.
도훈은 잠시 심호흡했다.
장경자의 질문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연예계가 좋아서 연예 기획사를 차렸지만, 오너가 저렇게 무대에까지 올라야 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원래 답은 정해져 있었다.
다만, 말투나 억양 그리고 표정까지 신경을 써야 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