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105)
안소신의 질문에 킴이 어깨를 으쓱했다.
“네, 그랬어요. 그런데 다른 노래가 맞아요. 뭔가 샘플링한 듯한 느낌도 들지만…….”
무슨 대수냐는 듯한 킴의 표정에 비해 안소신의 눈은 빛났다.
자신이 찾는 노래가 바로 그런 노래였기 때문이다.
“그 노래가 뭔지 알려 줄 수 있어요?”
“뭐, 어렵진 않죠. 너튜브에도 나와 있을 테니까요.”
“너튜브에요?”
안소신이 고개를 갸웃하자 킴은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안소신의 노트북을 집어 들고는 검색을 시작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킴은 노트북을 안소신에게 내밀었다.
순간 안소신이 고개를 갸웃했다.
너튜브 화면 섬네일에는 오케스트라의 연주 장면이 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소신의 표정을 본 킴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너튜브의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너튜브 안에서는 오케스트라가 연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오케스트라의 연습 장면이었다.
안소신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을 보여 주는 킴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곡이 유레카의 아윌비백과 비슷할 리 없었다.
지휘자가 지휘봉을 잡고 단상을 딱딱 친다.
동시에 연주자들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던 지휘자가 지휘봉을 서서히 움직인다.
바이올린과 첼로가 서서히 소리를 높여 나간다.
이어지는 관악기.
그때까지만 해도 안소신은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곡조가 바뀌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들리는 피아노 소리.
그 소리에 맞춰 연주자들의 템포가 달라졌다.
촬영자는 지휘자의 표정을 살핀다.
백발의 지휘자는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떴다.
언제까지 가는지 보자는 듯 이를 악물고 지휘를 이어 나간다.
슬쩍 현악기 쪽을 바라보는 지휘자.
그의 시선에 현악기는 바로 원래의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머지 연주자는 묘한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연주 곡이 귀에 많이 익었다.
뭐지?
안소신은 고개를 갸웃하며 너튜브에 빠져들었다.
어느덧 연주가 끝나자 지휘자는 지휘봉을 내려놓고 단원들을 쏘아본다.
그때 그 지휘자의 뒤에서 누군가가 나타난다.
순간 연주자들이 모두 일어나며 ‘해피 버스데이 마에스트로’라 외친다.
모두가 외치자 지휘자는 이것이 자신을 위한 깜짝 퍼포먼스라는 것을 알고 눈을 크게 뜬다.
그때 뒤에서 나온 사내가 방긋 웃으며 말한다.
―아버지, 제 곡 어땠어요?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는 지휘자.
그때 연습장을 가득 울리는 박수.
아들과 단원이 지휘자를 위해 준비한 깜짝쇼였다.
영상이 멈추자 킴이 말을 이었다.
“방금 여기서 연주한 곡이 제법 인기를 끌었거든요. 사실 이 곡을 샘플링하려고 원작자한테 손을 내밀었는데 다 거절당했어요.”
킴이 멈춘 영상 속의 사내를 가리켰다.
그 사내는 지휘자의 아들이었다.
한참을 보던 안소신이 눈을 크게 떴다.
“저 사람 마이클 윌 아니에요?”
“네, 맞아요.”
킴이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서 지켜보던 홍준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마이클 윌이 누구야?”
홍준수의 질문에 안소신은 잠시 헛기침했다.
“흠.”
“왜 그래?”
홍준수가 고개를 갸웃하자 안소신은 턱짓으로 2팀장과 킴을 가리켰다.
심각한 안소신의 모습에 2팀장은 손을 흔들었다.
“지금 우리 때문에 말을 못 하는 거야? 그럼 자리를 비켜 줘야지. 그럼, 일 잘 처리하고.”
“저도 가 보겠습니다.”
킴이 2팀장을 따라 나가자 홍준수가 눈매를 좁혔다.
“왜 그래?”
“마이클 윌이면 미국에서는 제일 핫한 지휘자 중 하난데 그걸 몰라?”
“모를 수도 있지.”
“그걸 자랑이라고 해?”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그렇다면…….”
“홍 팀장님 지금 들었잖아. 분명히 몇 마디 정도는 걸고 넘어갈 수 있어.”
말을 마친 안소신은 주위를 둘러본다.
누군가 듣는 사람이 있는지를 걱정하는 모습이다.
홍준수도 덩달아 주변을 살폈다.
문밖이 조용하다는 것을 확인한 홍준수가 말을 이었다.
“그렇지, 확실히 비슷한 부분이 있어.”
“그 정도면 머니 윌이나 이도훈을 깎아내리는 건 충분하고.”
“오케이.”
“그런데, 이걸 어떻게 하지? MBS로 쪼르르 달려가서 억울하다고 할 수도 없고.”
안소신이 한탄하듯 말하자 홍준수가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 소리에 안소신이 물었다.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
“기다렸다가 터뜨리자.”
“기다렸다가 터뜨리자니?”
“다음 주가 방송이잖아.”
홍준수가 벽에 걸어 놓은 달력을 가리켰다.
그 모습에 안소신이 고개를 갸웃했다.
“방송 나가면 우리는 끝이잖아.”
“아니지, 방송에 나가고 우리가 여론을 조성하는 거야.”
“여론이라고?”
“SW 댓글 관리 내가 한 거 알잖아. 손 몇 번 쓰고 이 정도의 증거라면 그쪽 작곡가는 한 방에 보낼 수 있어.”
“흠, 그러면 스타플레이어는?”
“프로그램이 중요한가? 우리가 중요하지.”
홍준수가 눈을 빛내자 안소신도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틀 후.
유레카의 별관 연습실.
평소 같으면 우시원과 서찬휘의 땀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연습실에는 난데없이 치킨 냄새가 솔솔 흘러나오고 있었다.
연습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강시혁은 치킨 냄새에 혀를 찼다.
“이 실장, 이거 너무한 거 아니야?”
“왜 또 그래?”
“아니, 월드컵 경기를 관전하는 것도 아니고 왜 치킨을 시켜?”
“우리 애들 첫 방송이면 시사회 정도는 함께해야지.”
“그러니까, 시사회장에서 치킨 시키는 법이 어디 있냐는 말이지.”
“치킨 없이 각본 없는 드라마를 어떻게 보냐고. 강 피디도 이거 하나 먹어.”
도훈이 닭 다리 하나를 건네자 옆에 있던 우시원이 볼멘소리로 외쳤다.
“실장 형, 그 닭 다리 제가 찜한 건데…….”
“에이, 부족하면 더 주문하면 되지.”
“정말로요?”
우시원이 눈을 크게 뜨자 도훈이 사람 좋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치킨이 문제야? 내일이면 합숙 들어가잖아.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 들어보면 솔직히 군대 훈련소보다 힘들다더라. 그냥 군대 좀 일찍 간다는 각오로 파이팅하자.”
도훈의 말에 우시원이 치킨을 오물거리다가 석상처럼 굳어 버렸다.
슬쩍 옆을 보니 서찬휘도 원망스러운 눈으로 도훈을 바라본다.
그 모습에 도훈이 씩 웃었다.
녀석들에게 군대란 무엇일까?
입대해서 해야 할 고생은 녀석들의 머릿속에 없을 것이다.
녀석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시간이 삭제된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데뷔를 못 한다면?
즉, 군대는 녀석들에 있어서 데뷔 마감일이었다.
그때 강시혁이 끼어들었다.
“이 실장은 왜 애들 겁주고 그래.”
“내 말 맞잖아.”
도훈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자 강시혁이 타박한다.
“에이, 맞는 말이긴 해도…….”
살짝 말끝을 흐린 강시혁의 표정이 도훈과 판박이다.
둘의 모습을 지켜보던 신서희가 한숨을 쉬었다.
“둘 다 왜 애들 겁주고 그래요.”
신서희는 둘을 눈으로 흘기더니 우시원과 서찬휘의 어깨를 다독였다.
“이틀 뒤면 합숙해야 하니까. 든든하게 먹어 둬.”
“고마워요, 선생님밖에 없어요.”
우시원이 밥그릇을 바라보는 강아지처럼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그래, 내가 전에 오디션 프로그램 도와준 적 있잖아. 그래서 잘 알아.”
신서희가 엄마처럼 푸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순간 강시혁이 손뼉을 치며 신서희를 바라봤다.
“생각해 보니 신 선생님이 케이블 프로그램에서 안무 담당했죠?”
“네, 그걸 이제야 기억하다니 조금 서운하네…….”
“하하, 아니에요. 그때 엄청나게 엄격했잖아요. 참가자들 눈에서 눈물을 쏙 빼놨던 장면이 기억나는데…… 그거 연출이죠?”
강시혁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옆에 있던 서찬휘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끼어들었다.
“에이, 연출이겠죠. 선생님이 그렇게 나올 리가 없죠.”
서찬휘는 신서희를 바라봤다.
서찬휘가 보는 신서희는 그야말로 엄마 같은 선생님이었다.
엄격할 때는 엄격하지만, 칭찬에 인색하지 않았다.
서찬휘도 그 당시 방송을 봤었다.
지금의 모습과는 180도 달랐기에 서찬휘는 그것이 연출이라 장담할 수 있었다.
우시원도 고개를 저으며 한마디 거들었다.
“아마 악마의 편집 같은 걸 거예요. 솔직히 그렇게 몰아치고 그러면 멘탈이 안 터지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렇죠, 선생님?”
갑자기 몰아친 질문에 신서희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는 우시원과 서찬휘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포근한 미소와 함께 답했다.
“편집이나 연출이 아니야, 얘들아.”
“네?”
우시원이 되묻자 신서희가 손을 내저었다.
“방송국에서 심사위원이나 출연자들 뽑을 때 캐릭터가 확실한 사람들만 뽑거든.”
“…….”
“아마 이번에도 만만한 심사위원이나 선생님은 없을 거야. 내가 나갈 때야 군무 같은 춤은 없었지만, 지금은 여럿이 호흡을 맞춰야 해서 회차가 거듭될수록 힘들 거니까. 단단히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앗, 내가 너무 겁을 줬네.”
그 모습에 도훈이 빙긋 웃었다.
“저희가 겁준 건 농담인데 선생님은 완전히 팩트로 눌러 주시네요, 하하.”
“아, 쏘리예요, 쏘리.”
신서희가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우시원과 서찬휘의 표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그때였다.
누군가 불을 껐다.
탁.
“이제 첫방 시작이에요.”
한민국의 목소리였다.
그는 노트북을 들고 도훈의 옆에 앉았다.
모두는 간식거리에서 스크린으로 시선을 옮겼다.
화면에서는 광고가 나오고 있다.
화면의 오른쪽 위에는 ‘스타플레이어’라는 문구가 찍혀 있다.
도훈을 힐끔 옆을 바라봤다.
그곳에서는 우시원과 서찬휘가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오늘이 데뷔 무대인 것이다.
드디어 광고가 끝나자, 스타플레이어의 타이틀이 화면에 나왔다.
화면을 가득 채운 금빛 별들이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하면서 글자를 만들어 나간다.
그 글자가 다시 흩어지더니 검은색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가운데 나타나는 점 하나.
그것은 마치 반딧불 같았다.
그 불빛이 점점 커진다.
사람들은 그것이 불빛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게 되었다.
불빛은 스포트라이트였다.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것은 어떤 사내였다.
사내가 카메라를 향해서 손을 흔든다.
여기까지 아무런 대사도 내레이션도 없다.
그때 사내가 마이크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스타플레이어의 진행을 맡게 된 서재후입니다.
화면이 조금 더 확대되었다.
카메라는 사내의 전신을 잡는다.
검은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트.
서재후는 그 스포트라이트를 밟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인사를 마친 서재후가 살짝 미소를 짓는다.
서재후는 MBS의 간판 아나운서.
퇴사 후 프리로 뛸 거라는 소문은 있었지만, 이번 스타플레이어의 진행을 맡으며 그 계획을 뒤로 미뤘다는 풍문이 들리고 있었다.
훤칠한 키에 날렵한 턱선 그리고 귀에 착착 감기는 목소리는 서른 중반 나이의 그를 주요 프로그램의 메인 MC로 올려놨다.
그는 큐시트를 힐끔 보더니 마이크를 다시 들었다.
―이제 위대한 전사들의 위대한 여정이 시작됩니다. 시청자 여러분들 준비되셨습니까?
동시에 함성이 울려 퍼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