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104)
잠시 조용히 물레방아를 응시하던 신승섭이 말을 이었다.
“세월이라는 게 저 물과 같아서 한번 떨어진 물은 다시 올라오지 못합니다.”
“그거라면 걱정 안 하셔도 좋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인지…….”
“저 물레방아에서 흐른 물은, 펌프로 다시 위로 올리잖아요.”
도훈이 사람 좋은 얼굴로 물레방아를 가리키자 신승섭의 얼굴이 밝아졌다.
“하긴, 그렇네요.”
“제가 펌프가 되어 드리면 어떨까요?”
말을 마친 도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표정에 신승섭이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 모이지 않으면 평생 후회하실 거예요.”
도훈의 표정에는 비장함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 모습에 신승섭인 조용히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봤다.
지금 도훈의 눈빛을 보면 자신의 팬이 분명한 것 같았다.
거기에 어떤 확신까지 가지고 있었다.
신승섭은 다시 도훈을 바라봤다.
그의 표정은 살짝 변했다.
어색하게 웃던 모습은 어디 가고 그는 미간을 좁히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같이 공연하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해요.”
“불가능하다니요?”
“녀석들 중 하나가 심각한 병에 걸렸거든요.”
“병이요?”
도훈은 눈매를 좁혔다.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도훈의 동그랗게 뜬 눈에 신승섭이 표정을 풀었다.
“너무 심각한 표정 짓지 말고요.”
“아니, 무대에 오르고 싶어도 오르지 못할 정도면 심각한 병 아닌가요?”
“사는 데는 지장 없으니까,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아.”
도훈은 살짝 입을 벌리고 신승섭을 바라봤다.
신승섭은 만감이 교차한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친구 중 하나가 언제부터인지 무대만 올라가면 사색이 되어서 마이크를 못 잡더라고요.”
“아, 몸이 안 좋은 건 아니고 멘탈에 문제가 생기셨나 보네요.”
“뭐, 비슷한 겁니다. 그러니까…….”
말을 마친 신승섭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의 이야기는 간단했다.
해체하면서, 시간이 지난 후 모두가 같이 무대에 설 것을 약속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멤버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생겨서 무대에 못 선다는 것이다.
그 멤버가 빠지면 온전한 밴드가 될 수 없기에…….
도훈은 신승섭의 깊은 한숨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도훈만이 알 수 있는 진동이 손바닥에서 울렸다.
지징, 지징.
도훈은 상대가 모르게 손바닥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새로운 글자가 생겨났다.
[진행 중인 퀘스트에 변동 사항이 감지됩니다.]
도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진행 중인 퀘스트라면 ‘방송국을 장악하라’였다.
대체 무슨 변동일까?
의문을 떠올리자 다시 메시지가 바뀌었다.
[난이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동의하시면 알 수 없는 보상이 실버 등급으로 상향됩니다.]
도훈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지난번에는 보상 덕분에 우시원의 실수를 막았다.
수첩이 주는 보상은 자신과 아티스트의 꿈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다.
사실 돈만 벌려고 한다면 이런 고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도훈의 꿈은 자신의 아티스트와 함께 날아오르는 것.
돈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돈으로 안 되는 일이라면 높은 등급의 보상이 필요할 것이었다.
난이도를 올린다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어떻게 할까?
도훈은 씩 웃었다.
이번 생에선 못 먹어도 고였다.
도훈이 고개를 끄덕이자 수첩의 문구가 바뀌었다.
[방송국을 장악하라 퀘스트가 연계 퀘스트로 변경됩니다.]
[알 수 없는 보상이 실버 등급으로 상향되었습니다.]
[단계별로 보상이 추가됩니다. 첫 번째 연궤 퀘스트 보상으로 숨겨진 설정 보기가 추가됩니다.]
[방송국을 장악하라 연계 퀘스트: 1단계 – 시청률을 장악하라기 실행됩니다.]
[시청률 100% 달성 시 성공. 기간: 무제한]
도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숨겨진 설정이라?
컴퓨터 운영 시스템의 숨겨진 폴더 보기와 같은 느낌이었다.
고개를 갸웃하는 도훈의 모습에 신승섭이 물었다.
“이해가 안 되지요? 그 친구 빼고 모이면 될 텐데…… 이렇게 망설이는 것을 보면요.”
“아닙니다. 저는 이해가 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기분 충분히 이해합니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게 아니면 의미 없는 일도 있죠.”
“이 실장은 말하는 게 꼭 중년 같아요.”
“제가 좀 그렇죠…….”
도훈은 말끝을 흐렸다. 도훈이 말한 것은 진심이었다.
자신의 빈소를 지켜 준 친구들과 함께하는 성공이 아니라면 두 번째 삶은 그다지 의미가 없었다.
도훈의 표정에서는 진심이 배어 나왔다.
신승섭도 도훈의 진심 어린 표정을 보더니 마음을 열었다.
그 후 그와 밴드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서서히 무르익어 가는 분위기.
도훈이 씩 웃으며 운을 뗐다.
“그럼 제가 기회를 마련해 드릴게요. 그분의 멘탈만 잡아 주면 괜찮은 거죠?”
“어떻게 이 실장이 해결한다는 거죠? 우리가 20년 가까이 해결하지 못한 일인데…….”
“그냥 믿으시면 됩니다. 그리고 제가 한참 어린데, 그냥 편하게 말씀하세요.”
“어쨌든 그 친구 문제만 해결되면 언제가 됐든, 같이 무대에 서고 싶은 건 사실입니다.”
“에이, 말씀 편하게 하시라니까요. 제가 무대도, 명분도 다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도훈이 씩 웃자 신승섭은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 후 몇 가지 확인을 한 도훈은 자리를 빠져나왔다.
저들을 무사히 무대에 세우기만 하면 퀘스트는 성공.
무한 재능과 무병장수를 위한 보상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십 년 뒤에 대박 칠 프로그램을 현재로 당겨 오기로 했다.
도훈이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숨겨진 설정이란 문구 때문이었다.
수첩의 설정이라고 한다면 이미 적용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보상으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면 조금 더 능동적으로 수첩의 기능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 sw엔터테인먼트의 1팀 사무실.
홍준수와 안소신은 책상 위에 노트북 하나씩을 가져다 놓고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영원히 안 볼 것 같던 둘은 홍준수의 제안으로 다시 뭉치게 되었다.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하면 SW에서 쫓겨나야 하는 홍준수도 문제였지만, 지금 업계에 퍼진 소문 때문에 안소신도 발붙일 곳이 없었다.
그때 홍준수가 제안한 것이 바로 유레카의 원곡이 누군가의 곡을 표절했다는 프레임을 씌우자는 것이었다.
홍준수가 이런 제안을 한 이유는 간단했다.
전 세계의 음악을 뒤지다 보면 그와 비슷한 곡이 하나 정도 나오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원곡에 대한 표절 프레임을 씌우다 보면 그것을 표절한 자신들의 행동도 해프닝으로 끝낼 수 있다는 계산을 했다.
물론 그것에 대해서는 안소신도 동의했다.
툭, 툭.
그들은 쉴 틈 없이 노트북의 키보드를 두드렸다.
사실 더 적극적인 홍준수였다.
홍준수가 한 일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회사를 권력을 이용한 것이었다.
이 사건이 퍼져 나간다면 다른 기획사들도 홍준수를 곱게 볼 리 없었다.
그에 비하면 안소신은 조금 여유로웠다.
그 모습에 홍준수가 눈매를 좁혔다.
“조금 더 열중했으면 좋겠는데…….”
“열심히 하고 있잖아.”
이제는 말까지 놓는 안소신의 모습에 홍준수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이거 해결 못 하면 힘들 텐데, 괜찮겠어?”
“나는 걱정하지 마! 홍 팀장이 문제지, 내가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솔직히 작곡가로서의 도덕적 결함을 안고 가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게 치명적인 것은 아니거든.”
“작곡가로서 표절 딱지가 만만한 게 아니라고?”
“표절 시비 안 붙은 작곡가 있나 봐 봐. 최고의 싱어송라이터들도 그렇게 히트곡 제조기라고 별명 붙은 선배들 보면 주변에서 수군대는 사람 한두 명은 있기 마련이거든. 잘 숨기면 히트곡 제조기가 되는 거고. 못 숨기면 표절 작곡가가 되는 거지.”
“묘한 소신이 있네?”
“지금 내 이름 가지고 장난치는 거야? 그것보다는 회사 뒤통수치려고 한 홍 팀장이 힘들겠지.”
“이게…….”
그때였다. 문 쪽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
둘은 시선을 교환한 뒤 바로 대화를 멈췄다.
홍준수가 말했다.
“들어와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문이 열렸다.
덜컹.
문이 열리고 머리 하나가 살짝 들어오더니 분위기를 살핀다.
그 얼굴을 확인한 홍준수가 물었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2팀장님.”
그 모습에 2팀장은 사무실로 쓱 들어왔다.
홍준수는 자신보다도 나이가 더 많은 2팀장이기에 함부로 할 수는 없었다.
사무실로 들어온 2팀장은 머리를 한번 뒤로 넘기더니 방 내부를 살핀다.
그 모습에 홍준수가 콧김을 내뿜었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불난 집에 부채질하려는 건 아니고 분위기 좀 살피려고 왔지.”
약간은 히죽대는 듯한 모습에 홍준수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허, 아예 대놓고 부채질하시네요.”
“부채질이 아니라니까. 대표님 오시면 우리라고 멀쩡하겠어? 그러니까 분위기를 봐야지.”
“도와주지 않을 거면 그냥 가십시오. 그렇게 괜히 떠보지 마시고요.”
그때였다.
문 앞에 서 있는 2팀장을 바라본 안소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노트북과 연결된 안소신의 헤드폰의 잭이 뽑혔다.
툭.
다다당, 따라.
노트북 스피커에서는 요즘 SW에서 가장 핫한 음원이 흘러나왔다.
“지난번에 들었던 노래네, 그거 분석하고 있던 거야?”
2팀장이 눈을 가늘게 뜨자 홍준수가 손을 내저었다.
“괜찮다니까요. 그냥 신경 꺼 주시는 게 도와주시는 겁니다.”
“그래 알았어, 그냥 갈게.”
그때였다.
2팀장의 뒤쪽에서 누군가가 고개를 갸웃하며 끼어들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건데요. 혹시…….”
살짝 말끝을 흐린 그는 이내 손을 내저었다.
“아니다. 다른 노래네. LA에 있었을 때 자주 듣던 노래랑 코드 몇 개가 겹쳐서 착각했나 보네요.”
그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홍준수는 조심스럽게 그 사내는 살폈다.
치렁치렁한 레게 머리에는 무지개가 뜬 듯 형형색색의 색채로 물을 들였다.
외모만 봐도 어지러울 정도의 사내는 묘하게 구릿빛 피부가 어울렸다.
홍준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봐도 저런 외모의 연습생은 없었기 때문이다.
홍준수의 눈빛을 눈치챘는지 2팀장이 사내를 가리켰다.
“이쪽은 LA에서 활동하다가 최근에 들어온 브라이언 킴이라고 해. 그냥 편하게 킴이라고 불러.”
“아, 팀장님, 그건 제가 할 대사잖아요. 그냥 킴이라고 불러 주세요. 참, 연습생 같은 건 아니고, 프로듀싱과 편곡 쪽으로 잠시 일할 겁니다.”
홍준수의 의문은 아직 가시지 않았다.
이름과 외모 그리고 외국에 있던 사람치고는 한국어 발음이 너무 능숙했다.
홍준수의 표정을 눈치챘는지 브라이언이 말했다.
“저 한국어 공부를 진짜 열심히 했거든요. 그래서 잘하는 거예요. 한국어 하는데 혀 굴릴 필요는 없잖아요.”
그 말에 홍준수가 한 대 맞은 듯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안소신이 급하게 끼어들었다.
“킴이라고 했죠? 지금 코드가 익숙하다고 했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