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103)
도훈이 다시 강시혁에게 물었다.
“그럼, 뒤통수치려던 친구들은 대충 정리된 건가?”
“그렇지, 그런 양 본부장한테 연락할 생각은 어떻게 한 거야?”
“적의 적은 친구잖아.”
“양 본부장이 홍 팀장의 적인 건 어떻게 알았고?”
강시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눈빛에는 의심이 가득 차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작전은 무작정 밀어붙인 것이 아니었다.
SW에 대한 정보는 양대세 본부장으로부터 받았다.
사실 양대세가 이번 일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설 줄은 강시혁도 몰랐다.
그런데 도훈의 말을 듣고 연락을 해 보니 반응이 놀라웠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양대세는 홍준수가 자신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이이제이의 전술을 쓴 것이다.
거기까지는 이해가 됐지만, 가장 궁금한 것은 SW의 내부 사정을 어떻게 알고 있었냐는 점이다.
SW에 몸담았던 자신도 모르는 상황을 도훈은 훤히 뚫어 보고 있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다.
강시혁의 시선이 도훈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야 감이지.”
도훈은 씩 웃었다.
그때였다.
신서희가 연습실의 가운데에서 외쳤다.
“다들 허리 업.”
그 외침에 모두가 가운데로 모였다.
신서희는 그들에게 잔을 돌렸다.
“찬휘하고 시원이는 콜라.”
“콜라요?”
서찬휘가 입을 쑥 내밀자 신서희가 눈을 가늘게 떴다.
“왜? 싫어? 그럼 사이다로 줄까?”
“그냥 생수 마실래요.”
“생수?”
“지금부터는 몸 관리해야죠.”
서찬휘는 생수병을 하나 잡았다.
그러고는 우시원을 바라봤다.
“너도 잡아.”
“나는 그냥 콜라 마실래.”
“우시원, 그러다가 살찌면 카메라에 앵글에 가득 찬다. 잘못하면 넘칠 수도 있어.”
“미안한데 나는 살 안 찌는 체질이잖아. 너는 관리해. 나는 맘껏 먹을 테니.”
“이런 배신자 같으니!”
태풍이 지나가자 둘은 여유를 찾았는지 다시 아옹다옹하며 장난을 시작했다.
* * *
같은 시간.
JK 유통의 본부장실.
태풍은 SW만을 쓸고 간 것이 아니었다.
이도준도 그 태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방금 통화를 끝낸 이도준은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으로 책상을 쳤다.
쾅!
순간 책상 위에 있던 필기구들이 덩실덩실 춤을 췄다.
이도준은 전화기를 들었다.
잠시 후 그의 비서가 나타났다.
비서를 본 이도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알아봐.”
“네, 알아보겠습니다.”
“지금 당장.”
“네, 지금 당장 알아보겠습니다.”
비서는 고개를 숙인 뒤 재빨리 방을 빠져나갔다.
괜히 여기에 머물러 있다가는 어떤 화를 당할지 몰라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도준은 요즘 상태가 안 좋았다.
물론 상태뿐이 아니었다.
회장인 장경자에게 비자금을 압수당한 것도 모자라 지분에 대한 위협까지 받고 있었다.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언제 사고를 쳐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비서만이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미라클의 모든 직원이 지금의 싸움에 주목하고 있었다.
갑자기 얼굴을 내민 막내 도훈과 미라클의 황태자 이도준과의 대결.
처음에는 뻔한 승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묘한 양상을 나타냈다.
회장 장경자는 앞선 몇 번의 승부에서 도훈의 손을 들어 줬다.
임직원들은 그것이 사심이 없는 객관적인 평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만큼 이도준의 처리는 안일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지금도 협찬이란 명목으로 미라클의 돈을 허공으로 뿌리고 있다는 것을 임직원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이도준은 모르고 있었다.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할머니 장경자가 미울 뿐이었다.
“휴.”
한숨을 내쉬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도준은 뭔가 결심한 듯 이를 뿌드득 갈았다.
* * *
일주일 후.
검은색 승합차가 올림픽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운전석에는 한민국이 진지한 표정으로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그 옆에는 창문을 반쯤 열어 놓은 채 도훈이 바람을 맞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한민국이 말했다.
“에어컨 켰는데, 왜 문을 열어 놓고 그래요?”
“바람 좀 맞아 보고 싶어서 그러지.”
“에이, 재벌은 뭐가 달라도 다르네요.”
“그게 무슨 말이야? 바람 맞는 거랑 재벌이랑 무슨 상관이라고?”
“서민들은 창문을 열어 놓든지 에어컨을 켜 놓든지 둘 중 하나만 하거든요.”
“오, 그런 마음가짐 좋아.”
피식 웃은 도훈은 창밖을 바라봤다.
이 정도의 사치는 충분히 누려도 된다고 생각했다.
휘휙.
창밖에 들어오는 바람에 도훈은 살짝 눈을 감았다.
도훈은 바람을 맞을 때면 찌든 때가 씻겨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그건 세월의 흔적일지도 몰랐다.
도훈은 슬쩍 자신이 손바닥을 확인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일을 할 때였다.
승합차가 향하는 곳은 얼마 전 들렀던 저작권협회였다.
신승섭은 이제 유레카와 홍준수 간의 분쟁에 대해 끝을 맺었다.
자료를 정리하고 협회에 그것을 보관하면 그의 일은 끝나는 것.
나머지는 당사자 혹은 법원의 판단에 맡겨야 했다.
정확히는 법원까지 갈 필요도 없는 상황이었다.
양대세를 통해 폭탄 하나를 sw엔터 측에 던져 놨으니 그들이 알아서 처리할 터였다.
적반하장으로 고개를 들이밀던 짐승의 날카로운 이빨은 빼놨으니 이제 그쪽은 걱정 안 해도 됐다.
도훈이 그를 만나려는 이유는 이번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었다.
묘하게 신승섭이 마음에 걸려서였다.
도훈은 신승섭이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멀리 보이는 한강의 수평선을 따라 구름이 한가롭게 흘러간다.
구름을 감상하며 도훈은 턱을 괴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의문들이 구름을 타고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프로그램 하나가 떠올랐다.
그것은 추억 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전생의 기억으로는 앞으로 십 년 뒤에 론칭될 프로그램.
이 프로그램이 떠오른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이 무대에 선다면 누군가에게는 젊은 날을 떠올리게 할 기분 좋은 추억이 될 것이었다.
이것은 시청률로 증명이 되었다.
덕분에 추억 여행은 시즌 4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방송국을 장악하라는 미션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재밌는 건 회전목마는 수많은 요청에도 불구하고 추억 여행에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훈은 자신의 추측을 이번 만남에서 확인할 작정이었다.
도훈이 신승섭과 만남에서 할 말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올림픽대로를 빠져나온 차가 잠시 신호에 걸리자 한민국이 물었다.
“실장님, 뭐 하나만 물어볼게요.”
“편하게 물어봐.”
“요즘 들어서 실장님한테 묘한 버릇이 생긴 것 같아서요.”
“버릇이라고?”
도훈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묻자 한민국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답했다.
“꼭 커닝 페이퍼 보는 것처럼 손바닥을 보시잖아요.”
“내가 그랬나?”
“요즘 자주 그러세요. 하도 궁금해서 손바닥에 뭐가 있는지 힐끔 봤잖아요. 그런데…….”
한민국이 말끝을 흐리자 도훈이 물었다.
“그런데라니?”
“아무리 봐도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생각했죠. 실장님이 요즘 너무 무리하셨구나 하고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없던 버릇도 생긴다고 하잖아요.”
한민국의 말에 도훈은 헛숨을 삼켰다.
그러고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사실 도훈은 찔끔했었다.
누군가 자신의 손바닥에 뜬 수첩을 본다면?
그런 걱정으로 잠시 긴장했었다.
“그러니까. 우리 민국이가 날 걱정해 줬다는 거지?”
“제가 얼마나 실장님을 걱정하는데요. 제 밥줄이잖아요, 헤헤.”
한민국은 실없이 웃었다.
그 모습에 도훈도 마주 웃었다.
이번 생은 배신자를 골라내고 아군만 곁에 둘 작정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아군이 점점 늘어나는 것만 같았다.
* * *
강서구의 한 전통찻집.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을 앞에 두고 도훈은 신승섭과 마주 앉았다.
옆에 앉은 한민국은 연신 코를 킁킁대며 주변을 둘러본다.
그 모습에 도훈이 물었다.
“한 매니저, 뭘 그렇게 봐?”
“꼭 한의원에 온 것 같아서요.”
한민국이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이자 앞에 앉은 신승섭이 웃었다.
“하하, 젊은 친구들 취향은 아니죠. 저도 처음에 왔을 때는 여기가 한의원이 아닌가 착각을 했죠. 그런데 나이를 먹다 보니 이 향기가 왠지 친근해지더라고요.”
신승섭이 찻집의 내부를 가리켰다.
도훈도 그의 손가락을 따라서 찻집의 전경을 바라봤다.
찻집의 중앙에 흐르는 물.
그 아래에는 한적하게 물레방아가 돌아간다.
거기에 은은히 풍기는 한약재 냄새.
“저도 이런 분위기와 향기 좋아합니다.”
“그래요?”
“네.”
도훈은 씩 웃었다.
회귀 덕분에 신체의 나이는 어려졌지만, 감성은 그대로인 것 같았다.
왠지 오늘따라 마음이 편안해진 것은 전통찻집의 차향 때문이 아닌 듯싶었다.
그들은 앞에 놓은 찻잔을 들었다.
차로 입술을 적신 신승섭은 눈을 가늘게 뜨고 도훈을 바라봤다.
“그런데 저를 보자고 하신 이유가 뭐죠? 이미 일은 다 끝났고…….”
“이번 분쟁 때문은 아닙니다. 그냥 팬으로서 궁금한 게 있어서요.”
“궁금한 거요?”
“마이크를 놓기에는 아직 젊지 않으세요?”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70년대 밴드들도 재결성하는 게 요즘 추세 아닌가요?”
“흠.”
“솔직히 80년대 후반에서 90년도 초반 하면 떠오르는 건, 회전목마 하나밖에 없거든요.”
도훈의 말에 신승섭의 눈이 잠시 반짝였다.
그것도 잠시,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딱 보기에도 고등학교 졸업한 지 얼마 안 됐을 것 같은데 어떻게 우리 밴드에 대해서 그렇게…….”
“초등학교 때부터 팬이었습니다.”
“초등학교라…….”
신승섭이 눈을 가늘게 뜨자 도훈이 말을 이었다.
“제가 좀 어려 보이죠? 이래 봬도 조금 있으면 서른입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신승섭이 놀란 듯 묻자 도훈이 어색하게 웃었다.
“현장에서 어린 친구들을 관리하다 보니 외모도 비슷해진 것 같네요.”
“푸웁.”
“왜 웃으세요? 선생님도 나이보다 젊어 보이세요. 그게 다 소싯적에 팬들과 소통하셔서 그런 거 아닌가요?”
“나를 띄워 주는 걸 보면 나이는 맞는 것 같네요. 아니 조금 더 들었을 수도 있고…… 일단 우리 밴드의 팬이었다는 것까지는 알겠어요.”
“네, 팬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정을 모른다니 조금 이상하군요.”
신승섭이 고개를 갸웃하자 도훈이 다시 물었다.
“혹시 맴버들 각자의 사정 말씀인가요?”
“보컬 창석이는 지금 우크라이나에 가 있고. 흥수는 거제도에 내려가 있어요. 또…….”
그는 멤버들의 이야기를 쉴 틈 없이 늘어놓았다.
무대를 떠난 그들은 가장이라는 짐을 어깨에 지고 각자의 분야에서 정신없이 살고 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사실 그가 한 이야기는 도훈도 익히 아는 내용이었다.
댐이 터진 듯 대량의 넋두리를 늘어놓던 신승섭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러고는 어색하게 웃으며 도훈을 바라봤다.
“허, 제 얘기만 했네요. 어쨌든 각자의 사정이 있다 보니 다시 무대에 서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런데 멤버분들과 같은 무대에 서고 싶으신 건 맞죠?”
“음…….”
신승섭은 작은 신음을 흘리며 찻집의 한가운데 있는 물레방아를 바라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