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101)
예능국장인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만큼 유레카에서 가져온 곡이 매력적이기 때문이었다.
피디들은 이 곡이 스타플레이어가 초반부를 이끌어 나가는 데 꼭 필요하다고 했다.
그것은 한재수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한재수가 국장까지 올라온 것은 정치질만으로는 불가능했다.
그가 예능국에서 갈고닦은 감각은 아직 멀쩡했다.
하지만 정치적인 문제가 걸려 있었다.
누군가의 부탁으로 프로그램에서는 유레카를 지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마친 연락이 온 것이 홍준수였다.
홍준수는 유레카의 곡이 표절 곡이라고 넌지시 정보를 전했다.
거기에 정상적인 프로그램 편성을 위해서는 썩은 싹은 빨리 잘라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모든 것이 정치적인 상황과 맞아떨어졌다.
한재수는 홍준수의 말을 믿고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이번 회의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결과를 확인하고 보니 얼굴이 후끈거렸다.
그에게 홍준수와 안소신은 오물이었다.
한재수는 자신이 그 오물을 뒤집어썼다고 생각했다.
끊을 때는 끊어야 했다.
한재수는 핸드폰을 들고 누군가에서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 말 없이 천천히 걸어가는 한재수.
홍준수와 안소신을 바라보던 모두는 고개를 돌렸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느꼈는지 한재수가 걸음을 멈췄다.
그때 마친 그의 옆에 홍준수가 있었다.
한재수는 홍준수를 넌지시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 프로그램에서 sw엔터 연습생은 퇴출입니다.”
“네?”
홍준수의 눈이 커졌다.
상황이 묘하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고를 친 것은 맞지만 sw엔터와 MBS가 등을 질 만한 일은 아니었다.
“지금 안 총괄한테 문자 보내 놨으니 앞으로 일은 실무진과 상의하세요.”
말을 마친 한재수는 신승섭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신승섭도 한재수에게 마주 인사를 건넸다.
둘은 잠시 서로를 바라봤다.
그 눈빛은 이 사건과는 관계없다.
그들의 눈빛이 담고 있는 것은 추억이었다.
1980년대를 대표하던 록 그룹의 뮤지션과 1980년대에 이를 악물고 현장을 누볐던 피디.
지금만큼은 과거의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재수의 눈빛은 말하고 있었다.
‘언제 우리가 이렇게 나이를 먹었지?’
‘눈 깜짝할 사이.’
신승섭의 눈빛이 답했다.
잠시 시선을 교환하던 한재수가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터벅터벅.
그가 내는 구두 굽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모두가 빠져나갈 때 도훈은 아직 자리에 앉아 있었다.
도훈은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히든퀘스트 ‘적반하장을 타파하라’를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이 산정됩니다.]
도훈은 입을 벌렸다.
어떻게 보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히든 퀘스트라니!
그때 다시 새로운 글자가 나타났다.
[재능: M, Y]
새로운 보상에 도훈은 눈을 가늘게 떴다.
도훈은 수첩 아래쪽을 바라봤다.
[보상 인벤토리: C, A, M, Y]
M과 Y라는 알파벳이 늘어났다.
도훈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저 알파벳이 어떤 재능을 뜻하는지는 앞으로 알아보면 될 터다.
보상까지 확인한 도훈은 고개를 돌렸다.
이제 신서희와 함께 돌아가야 했다.
옆을 바라보던 도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던 신서희가 안 보였기 때문이다.
도훈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두리번거리던 도훈의 고개가 멈췄다.
신승섭이 앉아 있는 곳에 신서희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분노와 허탈함 등 복합적인 감정으로 시간을 보낸 신승섭은 난데없는 상황에 석상이 되어 버렸다.
처음 보는 여자가 자신을 초롱초롱한 눈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달싹이는 입술과 초롱초롱한 눈을 보건대, 눈앞에 여자는 자신을 아는 것이 분명했다.
처음 보기는 해도 이름을 알고 있긴 했다.
작곡가 머니 윌의 대리인으로 이 회의에 참석한 신서희라고 서류에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하늘에 맹세코 그녀를 본 적은 없었다.
신승섭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죄송하지만, 저를 아세요?”
신승섭은 신서희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때 달싹이던 신서희의 입이 열렸다.
“오빠.”
“오빠라니요?”
신승섭의 눈이 한계까지 커졌다.
그 모습에 신서희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죄송해요.”
“죄송할 건 없는데, 갑자기 오빠라고 하니…….”
기억을 더듬던 신승섭이 눈을 가늘게 떴다.
생각해 보니 성이 자신과 똑같았다.
그렇다면…….
“혹시 먼 친척뻘 되시나요?”
“그게 아니에요.”
“그럼 대체…….”
“저, 회전목마 팬이었어요. 제가 초등…… 아니, 초등학교 때요.”
“초등학교요?”
“그러니까…….”
신서희는 쉴 틈 없이 자신의 팬 이력을 털어놓았다.
그 모습에 신승섭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신승섭의 눈빛에 맴도는 것은 아련한 추억이었다.
자신을 기억하는 팬을 마주한 것이 얼마 만이던가?
신서희의 수다에 젊은 시절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만 같았다.
신서희가 밝힌 이야기는 간단했다.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과 유원지에 갔다가 회전목마의 공연을 봤다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들어온 것은 쉴 틈 없이 드럼을 두드리던 신승섭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회전목마의 팬이 된 그녀는 그들이 나올 때면 빠지지 않고 TV를 켰다고 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녀가 공연장을 방문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는 회전목마가 해체되었다는 점이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추억의 배경 음악은 신서희의 수다.
그녀의 수다가 끝나자 신승섭의 머릿속을 채우던 추억의 조각들도 멈췄다.
잠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신승섭.
그 모습에 신서희가 물었다.
“괜찮으세요?”
“아, 이거 조금 민망해서요.”
“혹시 제가 실수라도 한 건가요? 오 마이 갓.”
신서희는 자신의 입을 막으며 눈을 크게 떴다.
신승섭은 재빨리 손을 흔들었다.
“아니에요. 오랜만에 팬이라고 밝힌 분을 보니까. 감개무량해서 잠깐 정신 줄을 놨었네요.”
“와, 오랜만에요?”
“그렇죠, 회전목마가 해체된 게 벌써 20년 가까이 됐으니까요.”
“와, 진짜 오래됐네요.”
신서희는 손뼉을 쳤다.
그때였다.
그들의 옆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흠.”
신서희는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도훈이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제가 방해한 건 아닌가요?”
“아니에요, 이 실장님. 이쪽은…….”
신서희가 도훈을 소개하려 했다.
도훈은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어요. 신승섭 선생님이잖아요. 이 바닥에서 선생님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도훈의 말에 신승섭이 허탈하게 웃는다.
“허, 이거 참, 오늘 내가 밥이라도 사야 하는 분위기인가요? 그런데 서류 제출 전까지는 외부에서 만나는 건 규정 위반이라서요.”
살짝 뒤를 한발 물러서는 신승섭.
사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협회 규정상 표절 사건에 얽힌 당사자들과 어울리는 것은 규정 위반이었다.
도훈은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괜찮습니다, 여기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영광인데요.”
활짝 웃는 도훈의 표정에 신승섭이 다시 웃었다.
도훈의 표정은 누가 봐도 진심이었다.
“허, 젊은 분이 자꾸 비행기를 태우네요.”
“빈말이 아닙니다.”
“어쨌든 고맙습니다,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신승섭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도훈은 멀어지는 신승섭을 조용히 바라봤다.
비록 티는 안 냈지만, 도훈은 적잖게 놀랐다.
지금 대화를 나누고 있는 신승섭은 도훈과 인연이 있는 자였다.
그는 도훈이 은혜를 갚아야 할 사람 중 하나였다.
도훈이 처음 연예계에 몸담았을 때 도움을 줬던 이들 중 하나.
도훈은 그에게 음악을 배웠었다.
도훈은 신승섭이 전생에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항상 한 가지 소원이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지만 정작 그는 그 소원이 뭔지를 말해 준 적은 없었다.
도훈은 일부러 물어보지는 않았다.
자신이 그 소원을 이루어 줄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훈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그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그 소원이 대체 뭐냐고 말이다.
그때는 도훈이 그의 소원을 이뤄 줄 수 있다고 생각한 때였다.
하지만 그는 도훈이 물어볼 때마다 고개를 저었다.
도훈의 힘으로는 이루어 줄 수 없는 소원이라고만 밝혔다.
아무리 도훈이 높이 올라가도 그는 항상 같은 말만 반복했다.
도훈은 전생에도 늘 궁금했다.
그의 소원은 과연 무엇일까?
그때였다.
갑자기 손목이 저렸다.
순간 느껴지는 진동.
지잉, 지잉.
도훈은 재빨리 손을 펼쳤다.
순간 손바닥에서 황금빛 글자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도훈은 조용히 몸을 돌리며 손바닥을 확인했다.
점점 발전하는 매니저의 비밀 수첩은 이제는 진동 모드까지 장착한 것 같았다.
놀람도 잠시 도훈은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 보니 그냥 수첩으로 들고 다닐 때도 진동 모드는 있었던 것 같았다.
메시지를 확인한 도훈은 눈을 크게 떴다.
[퀘스트 ‘방송국을 장악하라!’가 생성되었습니다. 기간: 더 늦기 전에. 보상: 알 수 없음.]
이제는 대놓고 퀘스트를 던지는 매니저의 비밀 수첩이었다.
도훈은 자신도 모르게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생각해 보면 매니저의 비밀 수첩이 추구하는 방향성과 자신이 이루려는 꿈은 같았다.
그때 누군가 도훈의 어깨를 두드렸다.
상념에서 깨어난 도훈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신서희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의문이 하나 떠올랐다.
“선생님,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네, 물어봐요. 오브 콜즈.”
“머니 윌이 누굽니까?”
“아마추어 작곡가예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요. 아마추어 작곡가가 이런 식으로 반응하지는 않거든요.”
도훈은 USB를 가리켰다.
도훈은 요즘 머니 윌과 소통하는 중이었다.
전생의 머니 윌은 얼굴 없는 작곡가로 남았다.
그때는 빛을 못 본 작곡가가 때를 잘 만나 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달랐다.
메일을 통해 음악으로 소통하다 보니 그가 생각보다 거물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증거가 바로 방금 들었던 사운드였다.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그 사운드에서 나오는 연주가 기계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실제 악기로 연주한 것이 분명했다.
그것도 제법 실력을 갖춘 뮤지션들을 모아서 작업한 티가 났다.
그런 일을 벌일 수 있는 아마추어 작곡가가 과연 있을까?
신서희가 흠칫한 표정으로 손을 저었다.
“이 실장님, 왜 이렇게 상상의 나래를 펴고 그래요?”
“하하, 아니에요. 제가 준 편곡본을 작업한 게 너무 전문가 같아서요.”
“아, 그랬구나.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아마추어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 오케이?”
“네, 알겠습니다.”
도훈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신서희는 그제야 미소를 보였다.
* * *
같은 시간 MBS 예능국 회의실.
핸드폰을 확인한 임제호가 눈썹을 꿈틀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창성이 그의 옆에 바싹 붙었다.
“선배님, 무슨 내용이에요, 혹시 협의는 끝났대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