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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100화 (100/250)
  •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100)

    도훈이 결심한 듯 눈에 힘을 주자 신승섭이 물었다.

    “이도훈 선생님 쪽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도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도훈의 답변에 회의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 술렁임 속에 가장 놀란 것은 신승섭이었다.

    이렇게 인정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보통 이런 자리를 만들게 되면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무마하든가 아니면 법정까지 가는 것이 맞았다.

    그런데 도훈의 표정에 미안함은 아무것도 없었다.

    뒤쪽에서 회의를 지켜보던 한재수 국장도 눈을 크게 떴다.

    그때 도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천천히 신승섭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터벅터벅.

    묘하게 침묵이 감도는 회의실에 도훈의 구두 굽 소리는 제법 크게 울려 퍼졌다.

    신승섭의 앞에 선 도훈은 재킷에서 USB 하나를 꺼냈다.

    그러고는 그의 앞에 올려놨다.

    “이게 뭔가요?”

    신승섭이 고개를 갸웃하자 도훈이 답했다.

    “두 번째 곡을 틀어 주시죠. 시간이 남으면 나머지도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이걸요?”

    “이 곡을 듣고 판단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단, 안소신 작곡가가 동의한다면요.”

    도훈은 안소신 쪽을 바라봤다.

    안소신은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서로의 의견을 확인하려고 나온 자리니까, 저는 좋습니다.”

    “그럼, 이도훈 선생의 의견대로 이 곡을 듣고 다시 한 번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신승섭은 도훈이 준 USB를 오디오에 연결시켰다.

    그러고는 다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두르르라, 단, 단.

    인트로가 시작되자 신승섭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안소신과 홍준수가 협회에 등록한 곡과 아예 똑같았다.

    코드가 비슷한 것이 아니라 호흡 하나, 모든 소절이 동일했다.

    신승섭은 조용히 도훈을 바라봤다.

    도훈은 해맑게 웃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신승섭은 도훈이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을 바꾸었다.

    그가 보기에 도훈은 또라이였다.

    아예 똑같은 곡을 가지고 어떻게 반박한단 말인가?

    탁.

    곡이 끝나자 회의실은 그 어느 때보다 고요해졌다.

    홍준수는 한재수 국장을 바라봤다.

    한재수 국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도훈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승섭 선생님.”

    “지금 이게 판단할 거리가 됩니까?”

    “저는 선생님의 판단을 듣고 싶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이건 똑같은 곡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릴까요?”

    “네, 말씀해 주시죠.”

    “이 경우는 법원의 판단이 필요 없습니다. 문학으로 치면 문장과 쉼표조차도 똑같은 작품입니다. 이건 창작자의 양심이 걸린 문제입니다.”

    신승섭은 도훈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러고는 천장을 바라봤다.

    자신의 잘못을 이렇게 뻔뻔하게 밝히는 인간은 처음이었다.

    그때 도훈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홍준수 팀장님과 안소신 작곡가님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도훈의 질문에 홍준수는 안소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안소식은 탁자 밑으로 손을 가로로 그었다.

    끝장내라는 신호였다.

    홍준수가 탁자를 가볍게 쳤다.

    탁!

    “양심이 있으면 이게 다르다고 우길 수 없죠. 이렇게 같은 곡을 만들어 놓고 지금 무슨 일을…….”

    그때 안소신이 나섰다.

    “이건 같은 창작자로서 수치입니다.”

    “음…….”

    도훈이 침음을 삼켰다.

    도훈은 둘을 번갈아 보다가 신서희에게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도훈의 시선을 받은 신서희가 눈을 크게 떴다.

    “이 실장 갑자기 왜…….”

    “신 선생님은 작곡가 머니 윌 대리인으로 나오셨잖습니까?”

    “그렇죠, 오브 콜즈.”

    “그러면 신 선생님의 의견도 들어야 맞겠죠.”

    “저는 이 실장하고 똑같다고 했잖아요, 오케이?”

    “네, 그럼…….”

    도훈은 장내를 천천히 둘러봤다.

    그러고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두 곡은 완벽하게 같은 곡입니다. 가사까지 후렴구 몇 개만 빼고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표절이 아니라 카피입니다.”

    도훈의 말에 신승섭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표절을 인정한단 말씀인가요?”

    도훈이 자신의 서류 가방을 집어 들며 답했다.

    “그 표절의 기준이란 게 협회에 작품을 언제 등록했냐인가요?”

    “흠,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법원에서 판단할 근거 중에 가장 중요하겠죠. 사실 그것 말고 더 정확한 자료는 없지 않습니까?”

    신승섭의 말에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도훈은 다시 신승섭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서류 가방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그것은 몇 장의 서류였다.

    서류를 신승섭의 앞에 올려놓은 도훈은 말을 이었다.

    “이걸 먼저 확인해 주시죠.”

    “이게…….”

    신승섭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서류와 도훈을 번갈아 봤다.

    그러고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건 지난달에 작품을 협회에 등록했다는 확인서 아닙니까? 어디 보자…….”

    신승섭은 다시 서류를 바라봤다.

    신승섭은 서류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다시 말을 이었다.

    “한두 작품도 아니고 제목도 다 다르네요. 그런데 이 서류를 왜 제게 보여 주는 거죠? 제가 보기에는 이번 표절 건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곡인데요.”

    신승섭이 고개를 갸웃하자 도훈이 말을 이었다.

    “방금 들었던 곡이 바로 서류에 있는 곡 중 하나입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승섭의 눈이 커졌다.

    놀란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그때 도훈이 말을 이었다.

    “지금 똑같은 곡이라고 모두가 인정한 곡 말입니다. 그 곡은 이미 협회에 등록해 놓은 지 오래입니다. 물론 원곡은 아닙니다.”

    “원곡이 아니라면…….”

    “편곡 버전도 제목을 달리해서 모두 협회에 등록해 놨습니다. 그 USB에 들어 있는 모든 곡이 아윌비백의 편곡 버전들입니다.”

    “…….”

    “이 곡을 처음 받았을 때 가사를 붙이면서 느낀 점이 있었죠.”

    “그게 뭐죠?”

    “곡이 워낙 귀에 쏙쏙 박힌다는 점입니다.”

    “네, 맞습니다. 그건 저도 인정합니다. 그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누군가는 이 곡을 카피하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더군요.”

    “흠.”

    “현재 음악계를 보십시오. 살짝 변주를 주는 것만으로도 표절의 범위를 벗어나는 게 현실 아닌가요? 여론이 기울지 않으면 법정에서도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죠. 뭐, 지금처럼 아예 똑같지 않다면요…….”

    도훈은 살짝 말끝을 흐리며 안소신과 홍준수를 바라봤다.

    신승섭도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안소신을 바라봤다.

    시선이 마주친 안소신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신승섭이 한숨을 쉬었다.

    “저런 경우는 처음이군요.”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솔직히 제가 미리 손을 써 놓지 않았다면 작곡가님께 고개를 들지 못할 뻔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신승섭이 도훈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이 왜 제게 사과를…….”

    “음악계에서 일어난 일이 아닙니까?”

    신승섭은 조용히 천장을 올려다봤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것도 자신의 앞에서 말이다.

    그가 이렇게 한숨을 쉬는 것은 어찌 보면 음악계 현실에 대한 한탄이었다.

    그때였다.

    회의실 한쪽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신승섭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안소신이 홍준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안소신은 콧김을 내뿜고 있었다.

    그 모습에 홍준수가 안소신의 어깨를 다독였다.

    “일단 진정하고 여길 나가서 대책을 생각해 보자고.”

    씩씩대던 안소신이 입을 열었다.

    “대책이요? 무슨 대책?”

    “일이 꼬였으면 같이 풀어 봐야지.”

    “이 일을 왜 같이 풉니까?”

    “그럼 같이 풀지 않으면 누가 풀어?”

    “홍 팀장님이 책임지셔야죠.”

    안소신이 미간을 좁힌 채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일을 이렇게 만들어 놨으면 책임을 지셔야죠.”

    안소신의 눈에서는 레이저라도 나올 것 같았다.

    홍준수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헛웃음을 쳤다.

    “허, 미치겠네.”

    “뭐가 미칩니까?”

    “내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잖아.”

    “……”

    안소신은 아무 말도 못 하고 홍준수를 바라봤다.

    이건 한마디로 적반하장이었다.

    그때 홍준수가 말을 이었다.

    “자기 곡을 등록해 놓은 것도 자네고 이 일을 이슈화시킨 것도 자네잖아. 그런데 왜 나를 끌어들여? 내가 도와주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일단 나는 일어날 테니 자리 정리하고 와.”

    “잠시만요.”

    안소신이 들릴까 말까 하는 목소리로 답했다.

    달라진 분위기에 홍준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멈췄다.

    “또 뭔데?”

    “이거 듣고 가세요.”

    “뭘 들어? 표절 곡은 이제까지 신물 나게 들었잖아.”

    “그래도 듣고 가세요.”

    말을 마친 안소신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고는 화면을 툭툭 눌렀다.

    순간 핸드폰에서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 그거 된다니까…… 그래, 걱정하지 말고.

    -잘못되면 책임지실 건가요?

    -내가 다 책임질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니까. 그놈들은 아마추어야. 아마추어. 아마 저작권도 등록 안 해 놨을 거야. 일개 매니저가 작사했다고? 그놈들도 어디서 베껴 왔을걸…….

    핸드폰에서 재생되는 것은 두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때 홍준수가 외쳤다.

    “미쳤어! 그걸 여기서 왜 꺼내?”

    “그럼, 나 혼자 뒤집어쓰라고요?”

    “이리 내!”

    홍준수가 손을 뻗치자 안소신이 핸드폰을 뺏기지 않기 위해 뒤로 손을 돌렸다.

    순간 핸드폰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날아간 곳은 하필이면 신승섭이 있는 곳이었다.

    신승섭은 날아오는 핸드폰을 잡았다.

    그때 대화가 끝났다.

    하지만 핸드폰을 힐끔 본 신승섭은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다.

    다시 두 남자의 대화가 핸드폰에서 흘러나왔다.

    신승섭은 그 핸드폰을 자신의 마이크 아래에 내려놨다.

    “이것도 회의록에 적어야 할 것 같으니 잠시만 기다리세요.”

    신승섭의 말에 대꾸하는 이는 없었다.

    잠시 후 다시 재생된 두 남자의 대화가 끝났다.

    탁.

    신승섭은 핸드폰을 옆으로 밀어 놨다.

    자신이 경찰도 아니고 이것을 압수할 권리는 없었다.

    일단 모든 사안은 정확하게 녹음이 되었다.

    판결이라는 것을 내리지는 못해도 그는 이것을 공론화시킬 정도의 힘은 있었다.

    신승섭의 입에서 다시 한숨이 흘러나왔다.

    “휴.”

    그럴 것이라고 하는 추측과 지금처럼 증거가 명확히 나온 상황은 전혀 달랐다.

    아마도 녹음이 되고 있다는 것을 잠시 깜빡한 채 둘 사이에 오가야 할 증거를 까 버린 것 같았다.

    사실 저 증거가 없더라도 홍준수와 안소신이 벌인 것은 엄연한 범죄였다.

    하지만 이렇게 증거가 나왔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이건 법정까지 갈 필요도 없는 사안이었다.

    아니, 법정의 선고보다도 더 강력했다.

    신승섭은 주변의 반응을 살폈다.

    모두가 입을 벌린 채 안소신과 홍준수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모두가 허탈하게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다른 시선으로 이 상황을 보고 이가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MBS의 예능국장 한재수였다.

    한재수의 굳게 닫혀 있던 입술이 쉬지 않고 달싹였다.

    그의 표정과 입술 모양을 보면 그가 뱉어 낸 단어는 욕이 분명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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