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99)
도훈이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묘책이라니?”
“방금 부사장님께 대책을 말해 놨다고 하셨잖아요.”
“대응하지 말고 그냥 있으라고 했는데.”
“헉, 어떻게…….”
“그냥 가만히 있어야 이기는 상황이니까.”
“그게 무슨 말이에요?”
“원래 사냥할 때 처음부터 요란하게 소리 내는 사냥꾼이 어디 있어? 몰이할 때가 되면 소리도 내고 사냥개도 내보내고…….”
도훈은 쉴 틈 없이 사냥에 관해서 설명을 이어 갔다.
설명을 듣던 한민국이 물었다.
“사냥이라니요? 사냥당하는 건 저희 같은데요.”
“그게 바로 핵심이지.”
“네?”
한민국은 눈을 크게 뜨며 다시 물었다.
하지만 도훈은 대답 없이 팔짱을 끼고 창밖을 바라봤다.
도훈은 전생에 이것과 비슷한 일을 수도 없이 당했다.
마지막에 뒤통수를 맞을 때도 표절 문제가 얽혀 있었다.
대비책은 딱 하나였다.
철저한 선점.
세계는 지금 특허 전쟁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저작권도 똑같다.
손을 써 두지 않으면 넋 놓고 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상대가 겁을 먹고 꽁무니를 빼게 하는 방법은 하책이었다.
이 수첩에 있는 적들은 나물 무치듯 철저히 발라 줘야 제맛이었다.
* * *
SW 엔터의 대회의실.
그곳에서는 팀장급 이상이 모인 전체 회의가 진행 중이었다.
홍준수의 설명이 끝나자 모두는 눈을 빛냈다.
그들의 모습은 먹이를 발견한 야수의 모습이었다.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지금 말씀하신 게 확실합니까?”
“네, 확실합니다. 어떻게 새어 나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추어 작곡가와 작사가가 SW의 곡에 손을 댄 것 같습니다.”
“혹시 증거 있습니까?”
“증거야 대 보면 알겠죠. 저도 화들짝 놀라서 부랴부랴 협회에 저작권 등록을 마쳤습니다. 안소신 작곡가와 함께 말이죠.”
홍준수는 힐끔 안소신을 바라봤다.
그 눈빛에 안소신이 말을 받았다.
“사실 그날 그 곡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제 곡과 유사한 부분이 너무 많은 겁니다. 표절이라는 게 정확히 밝히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이 경우에는 너무 판박이라서요.”
안소신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처음에는 망설였던 그도 홍준수에게 설득당한 지 오래였다.
그때 누군가가 조용히 손을 올렸다.
“내가 질문 하나만 하지.”
목소리의 주인공은 은테 안경에 하얀색 와이셔츠를 입은 전형적인 회사원 스타일의 중년 사내였다.
그의 이름은 양대세.
SW의 본부장을 맡은 사내였다.
양대세를 힐끔 본 안소신이 입을 열었다.
“말씀하시죠.”
양대세는 고개를 갸웃한 뒤 홍준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홍 팀장, 이 문제는 우리가 유리한 거 확실한 거지?”
“네?”
“확실하냐고.”
“네, 확실합니다.”
“그럼, 추진해. 잘못될 경우, 홍 팀장과 안소신 작곡가가 책임지고.”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내가 처음 듣는 곡 맞지?”
“네, 맞습니다.”
“여기에서 그걸 들어 본 사람이 있나?”
양대세는 힐끔 주변을 바라봤다.
양대세와 눈이 마주친 팀장들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양대세가 말을 이었다.
“증거는 둘만 가지고 있는데, 책임을 회사에서 지는 건 조금 너무하지 않나?”
“…….”
“결과를 가져오면 그때 얘기하자고.”
“네, 알겠습니다.”
“그전까지는 둘이 알아서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네, 알겠습니다. 지금 즉시 협회 쪽과 유레카 쪽에 통보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홍준수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정중히 숙인 고개와는 다르게 그는 표정을 한껏 찌푸렸다.
그는 본부장인 양대세가 싫었다.
양대세는 항상 원리 원칙만을 내세우며 몸을 사리는 스타일이었다.
홍준수는 이번 일이 끝나면 본부장 자리는 자신의 것이 될 것이라 믿었다.
미라클, MBS 그리고 히트곡의 지분까지 모두 자신이 가져올 것이라 확신했다.
* * *
삼 일 후, MBS 예능국 회의실.
넓은 회의실에는 두 명의 사내만이 덩그러니 마주 보고 있었다.
두 사내는 임제호와 박창성이였다.
말없이 종이컵에 든 커피믹스를 바라보던 박창성이 입을 열었다.
“선배님, 이게 말이 됩니까?”
“말이 안 될 건 또 뭐야?”
“얘기를 들어 보니 결과는 뻔하잖아요. 이렇게 결론을 내놓는 게 어디 있습니까?”
“너도 국장님께 들었잖아. 결과가 뻔한데 어떻게 해?”
“저는 좀 이해가 안 되네요.”
“박 피디가 유레카 친구들한테 너무 감정이입을 해서 그래.”
“잘하잖아요. 특색도 있고요. 열정도 있고요.”
“그것만 가지고 되나?”
“로비요? 스타플레이어는 투명하게 하기로 했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손 안 대고 있는 거잖아. 지금쯤이면 회의 거의 끝나 갈 테니까 소식 들려올 거야. 그 결과 보고 나서 얘기하자고.”
“저작권 협회에서 나올 결과는 뻔하다면서요?”
“그야 모르지.”
말을 마친 임제호는 조용히 창밖을 바라봤다.
그 방향은 저작권 협회가 있는 서쪽이었다.
여의도에서 30분 거리에 위치한 한국음악저작권협회.
그곳의 회의실에는 SW 엔터의 관계자와 신서희 그리고 도훈이 마주 보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MBS의 예능국장인 한재수까지 자리에 나와 있었다.
그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곳에는 조정위원회에서 대표로 나온 인물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신승섭.
그는 1980년대를 대표하던 록 그룹, 회전목마의 드러머 출신이었다.
그에게 찬란했던 시절은 한여름 밤의 꿈이었다.
인기 멤버들이 모두 솔로로 데뷔하자 그는 길 잃은 양이 되었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던 신승섭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현재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은 가장 인기가 없는 자신밖에는 없다는 게 아이러니였기 때문이다.
사실 회전목마의 히트곡 중 대부분이 그가 창작한 작품이었다.
덕분에 그는 브라운관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뒤에서 후배들을 키우며 음악계에 몸을 담을 수 있었다.
물론 이제는 창작 작업에서는 손을 뗐다.
눈 깜짝할 사이에 변화하는 트렌드를 따라가기에는 너무 벅찼기 때문이었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저작권협회의 업무를 도맡아 하고 있었다.
그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뮤지션이자 협회의 초창기부터 궂은일을 도맡아 해 오면서 이곳을 지킨 고인물이었다.
이 바닥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지만, 대중 중 그의 존재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뭐, 지금은 후배들조차도 그의 얼굴을 기억하는 이는 없었다.
지금처럼 말이다.
그는 조용히 양쪽의 인물을 바라봤다.
그중 눈길을 준 것은 SW 엔터 소속의 작곡가라고 밝힌 양소신이었다.
3년 차 작곡가라고 밝혔지만, 그는 자신을 몰라봤다.
신승섭은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섭섭한 마음이 표정에서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그 표정을 후배들에게 보일 수는 없었다.
그때였다.
안소신의 반대쪽에 있던 젊은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법정에 가게 되면 피고소인의 신분이 될 작사가 이도훈이었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자신을 알아보는 듯 살갑게 웃고 있다.
거기에 반갑다는 듯 살짝 고개를 숙인다.
사실 자신에게 잘 보여 봤자 득이 될 것은 없었다.
신승섭은 그저 구경꾼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저작권협회라는 것이 저작권을 언제 등록했느냐에 대한 흔적을 남기는 곳이지 법적으로 분쟁을 해결하는 것은 법원으로 넘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전에 조정이란 대화의 장을 열 수는 있었다.
지금의 경우는 SW 엔터 소속의 작곡가인 안소신의 요청에 의해 마련된 자리였다.
거기에 이 곡과 연관된 프로그램인 스타플레이어를 맡고 있는 MBS 예능국장의 입김도 제법 작용했다.
이도훈이라는 작사가는 어찌 보면 인상을 써도 모자랄 자리였다.
신승섭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까닥이며 그의 인사를 받았다.
도훈이라 소개한 젊은이의 표정이 더욱 밝아졌다.
그 표정을 본 신승섭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생을 별로 안 해 본 젊은이가 분명했다.
그러니 이렇게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신승섭은 이번 일이 평범한 일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작권 등록을 하고 삼 일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무래도 냄새가 심하게 났다.
주변을 바라보던 신승섭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회의록 작성을 위해서 녹음을 해도 되겠습니까? 양쪽에서 동의하시면 바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신승섭은 SW의 안소신을 바라봤다.
안소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든지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도훈도 이어서 답했다.
“저도 좋습니다, 대신…….”
갑자기 마지막에 묘한 단어를 붙이자 신승섭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 선생님은 무슨 일이시죠?”
신승섭은 깍듯하게 호칭을 붙이며 도훈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도훈이 어색하게 웃었다.
“다른 건 아니고 저도 녹음을 해도 좋은가 해서요. 물론 SW 측도 녹음할 것을 부탁드립니다. 그래야 자료가 공평하게 흘러가지 않겠습니까?”
“제가 회의가 끝나는 대로 자료를 공유하겠지만, 따로 녹음해도 괜찮습니다.”
신승섭의 말에 SW의 홍준수가 기분 좋게 웃으며 핸드폰을 꺼내 녹음 버튼을 눌렀다.
그 모습에 신승섭이 말을 이었다.
“그럼, 다들 동의한 것 같으니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양쪽에서 제출한 음원을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신승섭은 USB를 오디오에 연결시켰다.
그러고는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두르르라, 단, 단.
인트로 부분이 나오자 신승섭은 팔짱을 끼고 귀를 기울였다.
이곳에 오기 전에 몇 번이고 들어 봤던 노래였다.
목소리는 녹음 안 됐지만, 그의 눈앞에는 가사를 프린트한 서류가 놓여 있었다.
신승섭은 자신도 모르게 가사를 읊조려 봤다.
가사가 입에 살짝 안 붙는 부분도 있었지만, 조금만 손을 보면 히트곡이 될 싹이 보였다.
그때 음악이 끝나자 그는 말을 이었다.
“그럼, 이어서 다음 곡을 들어 보겠습니다.”
단, 단.
음악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신승섭은 눈을 가늘게 떴다.
두 번째 노래는 머니 윌이란 작곡가와 이도훈이 작사한 곡이었다.
두 노래는 붕어빵처럼 똑같았다.
그런데 가사를 읊조려 보니 두 번째 노래가 더 자연스러웠다.
두 번째 노래는 손을 볼 곳이 없었다.
신승섭은 조용히 도훈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어색한 곳이 없다는 것이 원곡이라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오히려 원곡을 완벽하게 편집했다고 오해를 받을 수도 있었다.
두 곡을 다 듣고 난 신승섭은 말을 이었다.
“제가 듣기에도 두 곡은 흡사합니다. 안소신 선생님은 이 곡을 며칠 전에 협회에 등록하셨죠?”
“네, 맞습니다. 작곡한 것은 벌써 몇 해가 지났습니다. 제가 아마추어 시절 작곡한 작품인데, 누군가의 손으로 이렇게 세상에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는 쉴 틈 없이 준비한 대사를 뱉었다.
그 모습을 보던 도훈은 턱을 괴고 홍준수와 안소신을 번갈아 봤다.
뱀의 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편이 되면 뒤통수를 조심해야 하고 적이 되면 앞과 뒤를 모두 조심해야 하는 자들.
도훈은 둘을 이번에 확실히 밟고 가기로 결심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