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98)
한재수 국장의 마음이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박창성은 유레카의 서찬휘와 우시원이 쥐도 새도 모르게 날아갈까 봐 초조했다.
그는 그만큼 그들에게 애정을 품고 있었다.
거기에 오늘 나온 도훈은 그야말로 군계일학이었다.
외모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었다.
매니저가 자신이 케어하는 연습생을 위해서 어디까지 해 줄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 주는 장면은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았다.
어찌 보면 한재수 국장의 억지 때문에 만들어진 명장면이라고 봐도 되었다.
그런데 한재수 국장의 마음이 언제 또 바뀔지 몰랐다.
박창성은 오늘의 결과를 확인하고 집에 들어가야 잠이 올 것만 같았다.
저벅저벅.
박창성은 마라톤 선수처럼 끊임없이 국장실 앞을 왔다 갔다 했다.
벌써 40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계속 앞을 지킬 수도 없는 것이 국장과 마주치면 할 말이 없었다.
그때였다.
덜컹.
국장실의 문이 열렸다.
박창성은 슬쩍 뒤쪽으로 갔다가 국장실로 향했다.
휘적휘적 걸어오는 박창성을 본 임제호는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허, 박 피디 거기서 뭐 해?”
“할 일이 남아 있어서 자료실에 좀 들렀다 오는 길이에요.”
“자료실은 지하잖아.”
“엘리베이터 타고 오는 길이에요.”
“엘리베이터는 반대고.”
“앗, 사람이 어떻게 그래요?”
“내가 뭘?”
“무슨 탐정도 아니고 왜 그렇게 꼬치꼬치 묻고 그러냐고요.”
“아니, 박 피디가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니까 그러잖아.”
“그래요. 국장님과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궁금해서 그랬어요. 이제 됐습니까?”
“그래, 궁금했겠지, 휴.”
임제호는 한숨을 길게 몰아쉬었다.
그 모습에 박창성이 눈을 가늘게 떴다.
“표정이 꼭…….”
“그래 네 예감이 맞다. 오늘따라 끊었던 담배 생각이 난다.”
“대체 무슨 일인데요?”
“너는 알 거 없고 그냥 원칙대로만 처리하면 돼.”
“원칙이라니요?”
“그냥 방송국 원칙 알잖아. 매뉴얼. 사규 같은 원칙 몰라? 딱 거기에 맞춰서 처리해. 아니 너한테 얘기할 게 아니지. 그냥 내가 처리해야지…….”
임제호는 살짝 말끝을 흐렸다.
그 모습에 박창성이 다급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저 궁금한 거 있으면 잠 못 자는 거 아시잖아요.”
“어차피 오늘은 밤샐 거잖아.”
“아 너무하시네.”
“뭐, 어차피 내일이면 알게 될 거 그냥 말해 주지.”
“네, 그냥 까놓고 말씀해 주세요.”
“다른 건 아니고, 유레카에서 썼던 자작곡 말이야.”
“네, 그 귀에 쏙쏙 박히는 곡 말이죠?”
“그래, 그 곡이 표절곡이래.”
“네?”
“왜 그렇게 놀라?”
“아니, 이해가 안 되는 게 하나 있어서요.”
“뭐가 이해가 안 되는지 말해 봐.”
“표절이라고 하면 발표되고 히트 친 다음에 말이 나와야 정상이잖아요. 오디션 무대에서 한번 연주된 곳이 표절 시비가 붙는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지금 표절 시비라고 했잖아?”
“네, 표절 시비요.”
“그건 누가 이의를 제기하는 거지?”
“그야 보통 원작자나 팬들이 하겠죠.”
“그래, 원작자가 오케이 하면 표절 시비가 붙어도 그냥 넘어가는 게 관례지.”
“네, 개떡 같은 관례이긴 해도요.”
“그런데 이번에 이의를 제기한 게 원작자야.”
“원작자요? 원작자가 어떻게 알고요?”
“그러니까…….”
임제호는 설명을 이어 갔다.
그의 말에 박창성은 대화가 왜 그리 길어졌는지를 알 수 있었다.
원작자는 다름 아닌 SW 엔터의 작곡가 안소신이라고 한다.
그는 연습생들과 함께 예선 무대를 보다가 자신이 전에 작곡해 놓은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것을 듣게 됐다고 한다.
그는 덜컥 겁이 나서 재빨리 저작권 등록을 하는 동시에 협회에 이의 제기를 했다고 한다.
이것이 SW 측에서 MBS로 전달한 내용이었다.
방송되기도 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SW 측에서도 원하지 않는바.
원만한 합의를 원한다는 것이 SW의 제안이라고 한다.
거기까지 들은 박창성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게 말이 돼요?”
“잘 짜인 각본이지.”
“선배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그건 우리끼리 이야기고…….”
“휴.”
“내일부터 방송가에는 소문이 쫙 퍼질 거야. SW 쪽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끌고 나가려고 할 테니까. 그러려면 MSG가 살짝 들어간 낱장 광고지는 기본이잖아.”
임제호의 말에 박창성은 고개를 돌려 보일 듯 말 듯 한 초승달을 바라봤다.
역시 이 바닥은 약자가 살아남기에 너무 험했다.
* * *
다음 날 아침.
7팀 사무실.
도훈의 책상 위에서는 마우스가 딸깍딸깍 소리를 내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마우스를 움직이던 도훈의 시선이 메일 하나에 멈췄다.
딸깍.
마우스를 클릭한 도훈이 화면을 살폈다.
도훈의 입가에 살짝 맺히는 미소.
“얘네들은 어떻게 한 치의 오차도 없냐?”
혼잣말이었지만, 옆에서 하품하던 한민국이 다급하게 물었다.
“실장님 왜 그래요?”
“너는 몰라도 돼. 아니, 조금 있으면 알게 될 거야.”
“와, 우리끼리 비밀이 어디 있어요. 무대에 한 번 섰다고 달라지신 겁니까?”
“내가 무대 얘기는 하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잘 기억이 안 나는데요?”
“그러면 이번 달 성과급은…….”
“아, 아닙니다. 기억나요.”
“역시…….”
“뭐가 역시예요?”
“기억력 향상에 제일 좋은 건 역시 머니였어.”
“아, 실장님!”
도훈은 눈을 가늘게 뜬 한민국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며칠 전의 오디션 무대는 도훈은 흑역사라고 생각했다.
전생의 기억에서 무대에 선 경험은 없었다.
명절 특집 같은 프로그램에 소속사의 가수나 배우가 무대에 설 기회는 꽤 많았다.
하지만 자신이 소속사의 연예인보다 더 주목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도훈의 신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 신념이 무너졌다.
하지만 묘한 기분도 들었다.
오디션 무대가 묘한 설렘을 줬기 때문이었다.
그 설렘은 재능 있는 가수나 배우를 찾았을 때의 희열과도 비슷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도훈은 자신의 왼손을 들어 손바닥을 확인했다.
스르륵.
도훈의 손바닥 안에 흡수된 수첩이 자연스레 펼쳐졌다.
그곳에는 도훈이 아직 만나지 못한 친구들의 이름이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능력도 생겼으니 이제 그들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도훈이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때 사무실의 문이 덜컹 열렸다.
도훈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2팀장 한유라가 사색이 된 채 걸어오고 있었다.
폭주 기관차를 생각나게 하는 기세였다.
그 모습에 도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부터 표정이 왜 그래요?”
“이 실장, 소문 못 들었어?”
“무슨 소문이요?”
“아, 미치겠네.”
“혹시 표절에 관련된 소문 말이에요?”
“그래, 듣긴 들었나 보네. 어떻게 할 거야?”
“그냥 헛소문인데 어떻게 해요?”
“그런데…….”
“왜 그런 눈으로 보세요?”
“그거 헛소문 맞아?”
“……음, 팀장님까지 저를 의심하시는 거예요?”
“조금 이상하잖아. 이름도 모르는 작곡가에 작사와 편곡은 이 실장이 했다는 게…….”
슬쩍 말끝을 흐리며 도훈을 보는 한유라의 모습에 한민국이 끼어들었다.
“제가 실장님이 작업하는 거 봤습니다, 팀장님.”
“그게 사실이야?”
“눈도 깜빡이지 않고 몇 시간 동안 집중하셨어요.”
“몇 시간 동안?”
“편곡 아니면 작사?”
“둘 다요.”
“아.”
점점 말이 짧아지더니 짧은 탄성을 이후로 한유라는 입을 꾹 다물었다.
도훈은 둘의 대화에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렇게 말하면 의심만 생기잖아.”
“왜 의심이 생겨요?”
“아, 편곡하고 작사를 하루에 끝내는 사람이 어디 있어?”
“음, 그런가…… 실장님은 그렇게 했잖아요.”
“나야…….”
“혹시 천재라고 하려고 하신 거예요?”
“그날은 정리한 거고 신서희 선생님께 받은 건 한참 전이었어.”
“아, 그랬구나.”
“그날은 집중해서 정리만 했으니 몇 시간에 끝난 거지. 한국어 가사에, 영어 가사 그리고 네 가지 버전의 편곡까지…….”
도훈은 쉴 틈 없이 말을 이었다.
그 모습에 한유라의 눈이 커졌다.
“이 실장이 원래 뮤지션 출신이었어?”
“제가 악보 좀 그려 봤었죠, 들어 보실래요?”
“그래도 될까?”
한유라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도훈을 바라봤다.
도훈은 씩 웃으며 화면 속 폴더 하나를 열었다.
딸각.
도훈이 마우스를 클릭하자 책상 위에 조그만 스피커가 살짝 떨렸다.
두두둥, 딴.
생각보다 큰 볼륨에 도훈이 재빨리 스피커를 만졌다.
“조금 컸죠? 이제는 적당히 맞췄으니 들어 보세요.”
한유라는 팔짱을 끼고 의심 가득한 눈으로 도훈을 바라보며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었다.
그것도 잠시 그녀는 눈을 스르륵 감았다.
도훈이 아닌 음악에만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유라의 어깨가 살짝 들썩였다.
리듬에 몸이 저절로 따라가는 것이다.
사실 한유라는 이 곡을 들어 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새로 영입했다는 보이 그룹과 프로듀서의 경우는 다른 건물을 사용하고 있었다.
가끔 극비리에 키우는 그룹의 경우는 외부 노출을 꺼리기에 이런 전략을 쓰는 예도 있었다.
그렇게까지 노출을 꺼리는데 보이 그룹과 관계없는 2팀이 굳이 그들을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덕분에 그들의 안무나 노래를 확인한 적이 없었다.
계속 어깨를 들썩이던 한유라가 멈췄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묘하게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디서 들었지?’
고개를 갸웃하던 한유라는 이내 입을 딱 벌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에서도 들어 본 적이 없는 곡이기 때문이다.
한유라는 이 곡이 묻히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대부분의 히트곡들은 들어 보면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느낌이 강하다.
머니코드에 신선함을 한 스푼 부었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이 곡은 새로운 머니코드를 만든 느낌이다.
타당!
강렬한 비트와 함께 음악이 끝났다.
한유라는 조용히 도훈을 바라봤다.
“대체…….”
“괜찮았나요? 팀장님.”
“대체 이 실장은 뭐 하는 사람이지? 아니 질문이 잘못됐네. 이거 진짜 표절 아니지?”
한유라는 재차 물어봤다.
곡을 확인하니 묘하게 의심이 더 드는 상황이었다.
“아니에요.”
“그럼, 부사장님께 말해서 유레카에서도 대응해야겠어.”
“그냥 놔두셔도 돼요. 부사장님께는 벌써 말해 놨어요.”
“벌써? 빠르네, 이 실장.”
한유라는 눈을 가늘게 떴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도훈과 이야기하다 보면 묘하게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신입 매니저에게 의지하는 게 조금 이상하기도 했지만, 이것은 사실이었다.
잠시 서로의 근황에 관해서 사담을 주고받은 후 한유라는 자리에서 나갔다.
한유라가 나가자 한민국이 크게 한숨을 뱉었다.
“휴.”
그 모습에 도훈이 물었다.
“왜 그래?”
“저는 한 팀장님만 오면 이상하게 긴장이 되더라고요.”
“그렇게 무서워?”
“무서운 게 아니라 이상하게 긴장돼요. 전에 회장님 처음 만났을 때보다도 더 긴장했네요. 그런데 부사장님께 말씀드린 묘책이 뭐예요?”
한민국은 눈을 가늘게 뜨며 도훈의 대답을 기다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