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96)
그 뜻에는 너도 아이돌 아니냐는 뜻이었다.
그 말에 발끈한 한리아가 외쳤다.
“저는 은퇴했잖아요. 그리고 이건 계획 밖이잖아요.”
“우리가 계획이 어디 있어? 다 국장님 계획이지.”
“그래도…….”
“에이, 특별 케이스라는 것도 있잖아. 이 김에 히든 찬스 쓰지.”
그 말에 무대 위에 있던 장홍철이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은 히든 찬스 없습니다.”
“미리 당겨쓸게요, 하하.”
이승찬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 말에 장홍철은 고개를 돌렸다.
멀리 있는 임제호에게 물어보기 위함이었다.
임제호의 신호를 받은 장홍철이 재빨리 멘트를 이었다.
“그럼, 나머지 두 명의 심사평에 대해서 살펴볼까요?”
그때 한리아가 말했다.
“저는 우시원 연습생을 택하겠어요. 자신만의 색이 독특해요. 살짝 어설픈 면도 있지만, 부족한 만큼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한리아가 마이크를 내려놨다.
그러고는 옆을 힐끔 바라봤다.
“선생님이 마지막 심사평 해 주셔야죠.”
“노래 잘 들었습니다.”
이승찬이 씩 웃으며 마이크를 내려놓자 무대 위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선생님, 저는요?”
그 목소리에 이승찬이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질문을 던진 것은 서찬휘였다.
서찬휘는 머리가 멍해진 상태였다.
이승찬이 생각지도 못하게 도훈에게 합격을 외친 것이다.
거기에 한리아가 우시원에게도 합격 통보를 한 것이다.
그럼 남은 것은 서찬휘뿐이었다.
앞으로 만들어질 팀의 리더이자 부동의 에이스인 자신이 선택을 못 받았다는 게 황당할 따름이었다.
서찬휘의 당황한 모습에 무대 주변은 잠시 침묵에 빠졌다.
그때 이승찬이 마이크를 들었다.
“제가 매니저에게 합격을 준 것은 그 밑에 있는 연습생은 당연히 합격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노려보지 마세요. 서찬휘 연습생.”
이승찬의 말에 서찬휘의 눈이 커졌다.
동시에 무대 아래에서 지켜보던 연습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올 패스네.”
“오늘 처음이잖아.”
“유레카가 이 정도였나.”
그 술렁임이 진정될 때쯤 장홍철은 다시 멘트를 이었다.
“그럼, 다음 순서 올라오세요!”
* * *
무대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간 우시원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 옆에 서찬휘는 아직도 감정이 주체가 안 되는지 손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던 강시혁의 입가에는 보기 좋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우시원과 서찬휘의 어깨를 토닥이던 강시혁이 도훈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도훈의 모습이 너무 이상했기 때문이다.
도훈은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며 눈도 깜빡이지 않고 있었다.
거기에 도훈의 오른손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강시혁은 조심스럽게 도훈에게 다가갔다.
그때 신서희가 강시혁의 어깨를 잡았다.
“피디님.”
“아, 신 선생님, 아무래도 이 실장을 진정시켜야 할 것 같아서요.”
“피디님도 데뷔 때 그 설렘을 아시잖아요. 이 실장님은 지금 정신이 없으실 거예요.”
“네? 무슨 데뷔요?”
“자신의 곡이 처음 라디오에서 울려 퍼질 때.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아이돌이 처음 생방송에 출연했을 때 같은 게 데뷔 아닐까요?”
“아…….”
“이 실장한테 이번 무대가 그랬을 거예요.”
신서희는 흐뭇하게 도훈을 바라봤다.
하지만 도훈이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없어졌던 자신의 수첩이 손바닥 위에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 수첩에는 황금빛 글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히든 퀘스트. 열혈 매니저를 달성하셨습니다. 보상으로 매니저의 비밀 수첩이 활성화됩니다.]
이 메시지는 무대 위에서 처음 봤었다.
이 메시지와 함께 다른 메시지가 이어졌다.
[매니저의 비밀 수첩은 손쉽게…….]
이런 설명이 줄줄이 이어졌었다.
설명이 쏜살같이 지나갔지만, 도훈은 당황하지 않았었다.
읽을 수도 없는 속도였지만, 이상하게 설명이 기억 속에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매니저의 비밀 수첩이라는 것은 간단했다.
보상으로 받은 능력을 자신이 키우는 연예인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기능이 메인이었다.
다른 기능도 있겠지만, 지금 알 수 있는 기능은 이것 하나였다.
보상 인벤토리에 가지고 있던 알파벳이 바로 그 능력이라는 것이었다.
도훈이 가지고 있던 능력은 D, C, A였다.
그 능력을 골라서 줄 수는 없었다.
매니저의 비밀 수첩은 상대에게 부족한 능력을 자동으로 채워 주니 말이다.
도훈이 우시원에게 전해 준 능력은 바로 댄싱 능력.
그 능력이 우시원에게 전해지자 알파벳 하나가 사라졌다.
사라진 알파벳은 D.
아마 Dance의 약자인 듯싶었다.
황당한 것은 우시원에게 전달한 능력이 도훈의 몸에도 각인되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무대는 완벽하게 끝이 났었다.
도훈은 지금 손바닥 위에 메시지를 살피고 있는 중이었다.
메시지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런 메시지가 계속 이어지는데도 무대를 무사히 끝마친 것이 대단했다.
지금 보상 인벤토리는 D가 없어지고 두 개의 알파벳만이 남아 있었다.
[보상 인벤토리: C, A]
보상 인벤토리의 아래에도 문구가 떠 있었다.
그곳에는 누군가가 보내는 메시지로 도배되고 있었다.
[매니저는 만능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매니저의 비밀 수첩이 추구하는 이상입니다. 돈이나 시간으로도 살 수 없는 기회를 잡으십시오. 그것이 매니저의…….]
지금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메시지.
사실 회귀까지 한 도훈이었다.
두 번째 삶을 사는 도훈이 놀랄 일은 없었다.
도훈이 이렇게 손까지 떨며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그것은 메시지가 멈추지 않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교장 선생님 훈화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뭐, 도훈이 안 보려고 마음만 먹으면 안 보는 방법도 있었다.
이 수첩은 수다의 신이 만든 것이 분명했다.
* * *
도훈이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을 때 연습생 그룹의 여기저기서는 소란이 일어났다.
“대체 저 매니저는 뭐 하는 사람이지?”
“그러게…… 매니저가 저렇게 군무를 완벽하게 소화한다고?”
“아 제기랄, 저러면 연습생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잖아. 거기에 작사까지 했다고?”
“아까 나온 노래는 영어 아니었어?”
“그러게…… 그거 혹시 인터넷에서 다운받아서 온 거 아니야?”
“아, 녹음이라도 해 둘걸.”
모두가 수군대는 가운데, 가장 입을 쑥 내밀고 있는 그룹이 있었다.
그들은 SW의 연습생들이었다.
그들 중 박찬우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콧김을 씩씩 내뿜고 있었다.
그 모습에 옆에 있는 다른 연습생이 박찬우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조심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박찬우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멀리 있는 유레카의 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진짜.”
“진정하라니까.”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SW의 폐급이었던 우시원이 저렇게 변했어. 너는 저게 이해가 돼?”
박찬우는 깔보는 듯 우시원을 선배라 안 하고 친구처럼 불렀다.
“저 정도 실력이 될 때까지 부단히 노력했겠지.”
“노력이라고? 네가 우시원을 알아?”
“…….”
“SW에서 우시원만큼 노력한 연습생은 없었다. 그런데도 안 되니까 방출된 거고.”
“그렇다고 저 선배한테 그렇게 화낼 건 없잖아.”
“너는 내가 우시원한테 화내는 것처럼 보여?”
“그럼 아니냐?”
“우리 매니저 그리고 팀장까지 능력 부족이라고는 생각 안 해 봤어?”
“그게 무슨 말이야?”
“생각해 봐, 몇 년을 썩고도 번번이 데뷔조에서 떨어진 폐급이 저렇게 달라졌어.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
“옮기고 나서 달라진 거 아니야? 우리 연습할 때 1팀장이 끼어들잖아.”
“그야…….”
“지는 기본도 모르면서 이래라저래라 하면서 안무에 끼어들 거면 거울이라도 보라고 해. 그거 따라 하면 우리 폼은 완전히 망가져.”
“흠.”
동료 연습생은 할 말이 없어서 헛기침으로 대신했다.
일정 부분은 박찬우의 이야기가 맞았다.
자신의 담당도 아닌데 중간중간 끼어들어 연습까지 방해하는 것이 바로 1팀장이었다.
안무가 잘못되었다며 시범을 보여 줄 때도 많았다.
말도 안 되는 동작에 말도 안 되는 덩치.
그런 상태로 시범을 보이는 데 좋아할 연습생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홍준수는 계속 자신이 모든 것을 안다는 듯 연습생에게 압력을 넣었다.
보기에는 사람이 좋아 보이지만, 몇 년 전에는 야구 배트로 연습생을 관리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의 표정을 본 박찬우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SW에 잘나가는 그룹이 미스트밖에 없는 거야. 미스트도 실질적으로는 유레카의 강시혁이 키웠다고 들었어. 그리고 죽 쒀서 개 준 거지.”
“찬우야, 듣겠다.”
“들으라고 하지. 솔직히 이번에 내 힘으로 붙은 거지 SW 백으로 붙은 거 아니잖아.”
박찬우의 말에 다른 연습생들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들 중 하나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박찬우, 다음 라운드 올라갔다고 자랑하는 거야?”
“왜 그래?”
“떨어진 우리 앞에서 할 말은 아니지.”
동료 연습생의 말에 박찬우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후끈 달아오른 열기는 연습생들의 가슴을 뛰게도 했지만, 그들과 소속사 간의 작은 균열도 만들었다.
* * *
하지만, SW의 홍준수 팀장은 자신이 데려온 연습생들은 신경도 쓰고 있지 않았다.
그는 자리를 벗어나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SW의 작곡가 하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안 작가, 되겠어? 안 되겠어?”
“하, 될 것도 같고…….”
“딱 부러지게 예스, 노로 대답해. 안 그러면 다른 친구한테 맡길 거니까. 아까 봤지, 이승찬도 넋 놓고 노래 듣고 있었어. 그만큼 상품 가치가 있다는 거야.”
“저도 봤어요.”
“그럼, 결심한 거야?”
“네, 맡겨 주세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이름은 안소신.
SW 소속의 작곡가 그룹에서는 중간 정도에 자리 잡은 사내였다.
둘의 대화는 간단했다.
유레카가 보여 준 안무에 쓰였던 아윌비백을 살짝 수정해서 협회에 저작권 등록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중에 유레카를 몰락시키는 무기로 사용될 것이다.
단순하게 유레카를 침몰시키고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귀에 쏙쏙 박히는 멜로디는 아직도 머릿속에서 빙빙 돌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마법과 같은 멜로디와 가사.
국내에서 대박을 칠 것이 분명했다.
홍준수는 안소신을 바라봤다.
“안 작가, 솔직히 말해 봐. 이 멜로디 들어 본 적 없지?”
“네, 없어요, 최소한 국내에서는요. 그런데 혹시…….”
“혹시 뭐?”
“해외에서 발표된 노래면 어떻게 하죠?”
“하하, 무슨 걱정을 그렇게 해?”
“…….”
“머니 코드라고 몰라? 작곡가니까 나보다 더 잘 알 것 아니야. 그런 식이면 다 걸려.”
“트렌드를 따라가는 건 괜찮지만 이건 완전히 베끼는 수준이잖아요.”
“요즘, 히트곡 중에 안 베낀 거 대봐. 걸리면 자숙하면 되고, 안 걸리면 한국의 모차르트 소리 듣는 거야. 그리고 작사는 내가 한 거다.”
“네, 알겠습니다.”
안소신이 고개를 끄덕이자 홍준수는 입꼬리를 올리며 몸을 돌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