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94)
말을 마친 한리아가 마이크를 내려놓고 이승찬을 바라봤다.
그때 이승찬을 잡고 있던 카메라에 녹화를 나타내는 불이 들어온다.
그 불빛을 확인한 이승찬이 마이크를 들었다.
“그렇죠, 간발의 차이라고 하죠. 그 미묘한 차이가 인생의 굴곡인 것 같습니다. 탈락한 연습생도 힘내고. 합격한 연습생은 본격적인 라운드를 위해서 열심히 준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승찬은 마이크를 내려놓고 손뼉을 쳤다.
카메라가 꺼지고 메인 카메라가 무대 위를 비춘다.
동시에 이승찬이 한숨을 내쉬었다.
“휴.”
이승찬의 한숨에 한리아도 반응했다.
“휴우.”
동시에 한숨을 내뱉은 그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둘의 얼굴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점이었다.
서로를 바라보던 중 이승찬이 먼저 입을 열었다.
“리아야, 오늘 기분이 좀 그렇다.”
“그러게요, 선생님.”
“그냥 오빠라고 하라니까, 무슨 선생님.”
“나이 차이가 얼만데 오빠라고 해요? 제가 선생님보고 오빠라고 하는 순간 저는 그냥 원로가 돼 버리는 거예요. 앞날이 창창한 제가 원로 대우받으면 안 되잖아요.”
“허, 그러니까. 네 이미지 때문에 계속 선생님이라고 부른다는 거지? 실망인데.”
“실망은 이번 오디션이고요. 제가 지난번 케이블 쪽 오디션에도 심사위원으로 나갔었잖아요.”
“그랬지, 그때 나는 본선 심사를 맡았었고.”
“그때는 그래도 입체적이었거든요. 그때가 3D라면 오늘은 꼭 2D를 보는 느낌이에요, 아직까지는요.”
“그래, 내 멋대로 했다면 지금까지 올라온 친구들 다 탈락시켰어.”
“저도요. 솔직히 오늘 제 눈에 들 연습생은 없을 것 같아요.”
“네 눈에 들 연습생이 어디 있어. 네 눈에 드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힘들지. 너 지난번에 슈퍼K스타 우승했던 친구들 별로라고 했잖아.”
“헉, 제가 언제요. 괜히 그런 말 하지 마세요. 그쪽 팬덤이 얼만데, 저 돌 맞아 죽어요.”
“무슨 소리야, 네 팬도 아직 살아 있잖아. 클래스가 어디 가나?”
“심사평 감사합니다, 선생님.”
한리아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숙일 때 무대 위에서 진행자인 장홍철이 마이크를 잡았다.
장홍철은 마이크를 잡고 이승찬과 한리아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이제까지 두 분의 심사평을 잘 들었습니다. 두 분의 마음이 딱 맞는 걸 보니 이건 완전히 이심한심이네요. 앗, 한심이라고 하니 어감이…….”
살짝 말끝을 흐리던 장홍철은 힐끔 반응을 살핀다.
이승찬의 ‘이’와 한리아의 ‘한’을 따서 애드리브를 쳤지만, 분위기가 썰렁해지자, 걱정이 된 것.
눈치를 살핀 그는 재빨리 멘트를 이었다.
“오늘 제 개그 타율이 완전히 폭망이네요. 관객이 없어서 그런지 연습생 여러분이 너무 얼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반응 한 푼 주시죠.”
장홍철은 마이크를 내밀었다.
마치 가수가 팬들에게 마이크를 내밀 듯 말이다.
동시에 아래쪽에서 살짝 반응이 왔다.
“장홍철 형 사랑해요.”
“믿고 있어요. 형.”
그 목소리에 장홍철이 피식 웃었다.
“이걸 보고 엎드려 절받기라고 하죠. 그럼, 다음 무대 시작하겠습니다. 유레카에서 온 세 명의 연습생입니다.”
멘트를 마친 장홍철은 슬쩍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세 명의 연습생이 우르르 들어와 무대에 자리를 잡았다.
심사위원인 이승찬은 그들의 프로필을 살폈다.
그러던 중 볼펜으로 끄적인 프로필을 발견했다.
그것은 도훈의 프로필이었다.
급조된 프로필을 본 이승찬의 눈이 커졌다.
이승찬은 다급하게 한리아에게 손짓했다.
그 모습에 한리아가 슬쩍 몸을 기울였다.
둘이 살짝 가까워지자 이승찬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거 잘못된 거 아니야?”
“뭐가요?”
“여기 스물여덟이라고 쓰여 있잖아. 스물여덟이면 너보다 더 많잖아. 그게 말이 돼?”
“헐, 저보다 더 많은 게 어때서 그렇게 정색을 하세요?”
“아니, 내 말은 스물여덟이 무슨 아이돌이냐고.”
“아, 그럼 진작 그렇게 말씀을 하시지.”
“대충 얘기하면 알아들어야지, 안 그래?”
“아까 잠깐 들은 건데 저기 연습생 중 하나가 매니저래요.”
“매니저?”
“유레카를 떨어뜨리려고 예능국장이 작업 쳤다고 하던데요.”
“유레카를?”
“어떤 기업에서 압력을 넣었다네요. 이유를 잘 모르겠고요. 저도 카더라 통신으로 전해 들은 거라…….”
“그럼, 쟤네 그냥 통과시키자.”
“네?”
“재미있잖아. 한재수 국장 놀라는 것도 재미있고. 사람을 불러 놓고 꼭두각시로 만든 것도 맘에 안 들고 말이야.”
“저는 그렇게는 못 해요.”
“왜 못 하는데?”
“실력도 안 되는데 어떻게 올려 보내요?”
“이제까지 한 건 뭔데?”
“그래도 미세하게나마 올려 보낸 친구들이 조금 나았어요. 솔직히 백지 한 장 차이도 아니지만요.”
“그런데…….”
“왜요? 선생님.”
“저 친구 중 스물여덟 살 먹은 매니저가 누구야?”
이승찬이 무대 위를 가리켰다.
이승찬은 무대 위에 어느 한 곳을 가리킨 것은 아니었다.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무대 위에 선 세 명을 가리켰다.
그 모습에 한리아도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게요. 스물여덟이라고 보이는 사람은 없는데요. 그런데 여기 보니까…….”
한리아가 말끝을 흐렸다.
“왜 그래? 리아 씨.”
“아니, 여기 보니까. 다른 친구들은 열여덟이에요.”
“열여덟?”
“그럼 열 살 차인데 저렇게 구분 안 되면…….”
“지금 노안이라고 하고 싶은 거야?”
“그건 아니지만…….”
한리아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때 무대 위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 들리거든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장홍철이었다.
장홍철은 피식 웃으며 이승찬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이승찬이 팔짱을 끼며 대응했다.
“귀도 밝지 어떻게 들었어?”
“지금 마이크 켜졌어요.”
“마이크?”
이승찬의 눈이 커졌다.
마이크에 불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그제야 발견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승찬은 무대를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지금 보니, 셋 모두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이승찬은 자신도 모르게 헛기침했다.
“흠, 내가 농담한 거 알죠? 그렇게 마음에 담아 두지 말고.”
그때 연습생 중 하나가 억울하다는 듯 물었다.
“제가 그렇게 나이가 들어 보이나요? 좀 억울해요, 선생님.”
순간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오늘 처음으로 터진 웃음이었다.
갑자기 터진 웃음에 이승찬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어찌 보면 자신의 실수였고 연습생 중 둘에게는 치명타였다.
간접적으로 디스를 한 상황이었다.
그때였다.
한리아가 이승찬의 어깨를 톡톡 쳤다.
이승찬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왜 그래?”
“저기 임 감독님이 난리 났는데요.”
“임 감독?”
임 감독이면 총괄인 임제호 CP를 말함이었다.
이승찬은 고개를 돌려 메인 카메라 옆을 바라봤다.
그곳에서는 임제호가 말아 쥔 큐시트를 돌리고 있었다.
분위기가 좋으니 계속 가라는 뜻이었다.
이승찬은 한숨을 쉬었다.
이것은 자신에게도 치명타였다.
이 장면이 방송으로 나간다면 눈이 어쨌느니 감이 떨어졌느니 하는 악플이 달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승찬은 재빨리 마이크를 잡았다.
“농담인 거 알죠? 설마 내가 그걸 모르겠어요?”
“그럼, 매니저님이 누군데요?”
“그러니까…….”
이승찬은 살짝 망설였다.
지금 물어본 친구는 아닐 것이니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잠깐의 망설임이 다시 웃음을 만들어 냈다.
그때 한리아가 이승찬의 앞에 프로필을 내민다.
그곳에는 이름 하나에 굵은 펜으로 동그라미가 쳐 있었다.
그 이름을 본 이승찬이 연습생들의 이름표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한 곳에 시선을 멈췄다.
“아, 이도훈 매니저님이군요. 하도 동안이라서 제가 못 알아봤네요.”
이승찬은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것은 명백히 자신의 실수였다.
그때 서찬휘가 다시 물었다.
“지금 옆에 있는 한리아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거잖아요.”
“흠.”
이승찬이 헛기침했다.
그 모습에 도훈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다른 연습생 같으면 심사위원석을 보며 이렇게 편하게 얘기하지는 못할 것이 뻔했다.
하지만 서찬휘는 무대가 안방인 듯 휘젓고 있다.
디스를 당해서 따지는 것 같지만, 지금 서찬휘가 하는 행동은 분량을 빼는 것이었다.
계획적인지 아니면 본능인지는 몰라도 지금 서찬휘의 행동에 피디들은 열광하고 있었다.
도훈은 슬쩍 고개를 돌려 우시원을 바라봤다.
순간 도훈의 눈이 커졌다.
무대에 올라 더 안정감을 보이는 서찬휘에 비해 우시원은 석상이 되어 있었다.
무대 아래에서는 대범한 척하더니 지금은 잔뜩 긴장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때 프로필을 넘기던 한리아가 질문을 던졌다.
“우시원 연습생, 얼마 전에 소속사를 옮겼다고 하던데…….”
한리아는 우시원에게 흥미가 당기는지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우시원은 갑자기 석상이 된 채 멍하니 있었다.
도훈은 재빨리 우시원의 옆으로 갔다.
그러고는 슬쩍 우시원의 등을 토닥였다.
“우시원.”
우시원은 그제야 눈을 크게 뜨고 한리아를 바라봤다.
“아, 죄송합니다.”
우시원이 어색하게 웃자 한리아가 마주 웃었다.
“괜찮아요, 원래 신인이라는 게 조금 당황해야지 재미있는 거죠. 그럼 질문 다시 드릴게요. 그러니까…….”
한리아는 질문을 다시 던졌다.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나 좌절 등 인터뷰 대본을 중심으로 질문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정작 도훈은 머리가 멍해졌다.
우시원을 토닥이면서 자신의 손바닥에서 이상한 형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직사각형 모양의 투명한 물체가 도훈의 손바닥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도훈은 재빨리 고개를 흔들었다.
이것은 환영임이 분명했다.
전생에는 아무리 긴장해도 이렇게 환영을 본 일은 없었는데…….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세차게 고개를 흔든 도훈은 다시 손바닥을 바라봤다.
“헉.”
도훈이 옅은 비명을 토해 냈다.
손바닥에서 일렁이던 투명한 물체가 점점 형체를 갖춰 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회귀할 당시도 이렇게 놀라지는 않았다.
도훈이 당황한 모습을 보이자 옆에 있던 서찬휘가 물었다.
“형, 왜 그래요?”
“아무것도 아니야. 혹시 말이야…….”
“왜요?”
“이거 보여?”
도훈은 서찬휘에게 자신의 손바닥을 보여 줬다.
그 모습에 서찬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생명선은 진한데요. 사실 저 손금 못 봐요.”
“아, 손금 봐 달라는 게 아니라…….”
도훈은 말을 맺지 못했다.
따가운 시선 때문이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 보니 이승찬과 한리아가 자신을 쏘아보고 있었다.
둘 다 팔짱을 끼고 입을 굳게 다문 것이 회초리를 든 훈장님 같은 모습이었다.
도훈은 재빨리 상황을 파악했다.
서찬휘의 반응을 보아 손바닥에서 일렁이는 형체는 자신만이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그 문제는 다음에 생각하기로 하고 지금은 두 심사위원을 달래야 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더 긴장을 해서요. 생각해 보십시오. 갑자기 규칙이 바뀐 데다가 인원을 맞추려다 보니 이렇게 느닷없이 무대에 섰는데, 긴장 안 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도훈의 말에 이승찬과 한리아는 서로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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