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93)
도훈이 팔짱을 끼고 우시원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스피커에서 다시 안내 방송이 울렸다.
―유레카 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은 무대 뒤에서 대기해 주십시오.
그 멘트가 몇 번씩 반복되자 도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도훈은 여유 있게 웃었다.
이렇게 무대에 오르게 된 김에 즐기고 돌아올 예정이었다.
팀별로 무대에 오르는 것은 맞지만, 뽑히는 것은 개인의 능력이었다.
대충 그들과 어울려 준 다음 조용히 내려오면 되었다.
도훈의 뒤를 따르는 서찬휘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서찬휘는 이전에 도훈이 보여 줬던 안무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 안무를 바탕으로 보여 줬던 퍼포먼스가 신서희를 놀라게 하지 않았던가?
그 춤이 바로 오늘 무대에서 보여 줄 아윌백의 군무였다.
어쩌면?
서찬휘가 의문을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도훈이 그의 어깨를 탁탁 두드렸다.
깜짝 놀란 서찬휘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왜 그러세요?”
“아니 뭘 그렇게 생각해, 일단 앉아.”
“네, 실장 형.”
서찬휘가 앉자 무대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카메라맨이 핸디캠을 들고 천천히 걸어왔다.
그 카메라맨의 앞에는 이번 진행자 중 하나인 장효현이 마이크를 들고 있었다.
지금 무대 쪽의 진행은 MBS의 개그맨인 장홍철이 맡고 있고 뒤쪽은 장효현이 맡아서 진행하는 상태.
둘 다 MBS의 개그맨이라는 점이 공통점이었다.
거기에 둘은 쌍둥이였다.
약간은 수다스러운 오빠 장홍철에 비해 장효현은 차분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장효현은 한 손에 든 큐시트를 힐끔 보더니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유레카 여러분.”
“안녕하세요, 선배님.”
우시원이 모범생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그런 우시원 덕분에 서찬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네, 반가워요, 저는 장효현이라고 해요.”
“알고 있어요. 선배님 모르면 간첩이죠.”
서찬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장효현도 그 모습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시답지 않은 인터뷰가 슬쩍 진행되다가 큐시트를 확인한 장효현이 힐끔 도훈을 바라봤다.
“여기 보니 빨간색 볼펜으로 표시된 게 있어서요.”
“네, 말씀하세요.”
“연습생이 아니라 매니저시라고…….”
“네, 맞습니다.”
“헉, 그런데 여기에 어떻게 참석하시게 된 거예요?”
“뭐, 갑자기 규칙이 바뀌는 바람에요. 그러니까…….”
도훈의 말을 듣던 장효현은 눈을 크게 뜨며 카메라맨에게 신호를 보냈다.
도훈을 자세히 잡으라는 신호였다.
특이 사항을 전달받고 대충 시간만 보내면 끝나는 것이 무대 뒤 사전 인터뷰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녀의 본능이 말해 주고 있었다.
도훈의 모습이 꽤 많은 분량을 잡아먹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도훈의 인터뷰가 시작되자 옆에서 바라보고 있던 다른 팀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매니저가 무대에 선다고?”
“혹시, 사람이 없어서 매니저까지 나온 거야?”
“헐, 완전히 막장이잖아.”
“MBS가 막장인 거야? 아니면 유레카가 막장인 거야?”
그들은 쉴 새 없이 도훈과 유레카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았다.
인터뷰에 대답하고 있던 도훈은 슬쩍 뒤를 돌아봤다.
도훈은 그들의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나같이 이도준과 연결된 기획사의 연습생들이었다.
도훈은 장효현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만 자리를 비워도 될까요?”
“화장실 급하시구나, 긴장되시죠?”
“네,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네, 다녀오세요, 그동안 저는 두 친구 인터뷰 마무리할게요.”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도훈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뒤쪽으로 갔다.
도훈이 간 곳은 화장실이 아니었다.
도훈은 자신과 유레카를 험담하는 연습생의 앞에 섰다.
그러고는 품에서 수첩을 꺼냈다.
그것은 살생부로 쓰는 수첩이었다.
도훈은 그들을 잠시 힐끔 바라봤다.
그러고는 수첩에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다시 힐끔 보고 수첩에 적고를 반복하는 도훈의 모습은 누가 봐도 이상했다.
그들 중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도훈에게 다가왔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이름 적고 있다.”
“이름이요?”
“나는 이제까지 내 뒤통수에 대고 욕한 놈을 놔둔 적이 없거든. 네 이름이 정시한이지?”
“앗, 어떻게 아셨어요?”
“거기 적혀 있잖아.”
도훈은 상대가 달고 있는 명찰을 가리켰다.
그 명찰은 진행요원들이 나눠 준 명찰이었다.
정시한이라는 연습생은 깜짝 놀라 명찰을 숨겼다.
동시에 뒤쪽에 있던 다른 친구들도 명찰을 가렸다.
그 모습에 도훈이 씩 웃었다.
“미안하지만, 다 적었다.”
“대체 지금 뭐 하시는…….”
“원래 떠드는 아이들 있으면 대표가 적잖아. 그런 거 비슷한 거라고 보면 돼. 불안하지?”
“…….”
정시한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도훈을 바라봤다.
도훈의 말대로 그는 매우 불안했다.
그때였다.
뒤쪽에서 진행요원이 외쳤다.
“유레카, 다음 차례입니다.”
그 말에 도훈은 수첩을 다시 품에 집어넣었다.
그때였다.
도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수첩에서 다시 빛이 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주머니의 안쪽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것은 분명 수첩에 적힌 정체불명의 글자가 분명했다.
도훈은 다시 수첩을 빼려 안쪽 주머니를 뒤졌다.
“뭐지?”
도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안주머니에 넣어 놨던 수첩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도훈은 주변을 둘러봤다.
도훈과 대화를 나눴던 연습생들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당황도 잠시 도훈은 어깨를 으쓱하고 다시 무대 쪽으로 걸어갔다.
정체불명의 글귀가 저절로 나타나는 수첩이었다.
도훈이 생각하기에는 자신의 회귀와도 관계가 있는 물건이었다.
뭐, 어련히 나타나겠거니 하며 피식 웃었다.
그때 도훈 일행은 무대 뒤에 도착했다.
진행요원이 도훈을 바라보며 쪽지를 건넸다.
“이건 인터뷰 질문지예요, 일단 숙지하시고. 다음 무대에 오를 예정이니 대기해 주세요. 오 분 뒤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도훈은 질문지를 받아 살폈다.
이전에 미리 받았던 질문지와 같았다.
아마도 복습 차원에서 전해 준 것 같았다.
도훈은 고개를 돌려 서찬휘와 우시원을 바라봤다.
둘은 도훈에게 등을 돌리고 뭔가를 속닥거리고 있었다.
도훈이 고개를 갸웃할 때 서찬휘가 갑자기 어깨를 들썩인다.
그 모습에 도훈이 눈매를 좁혔다.
“서찬휘! 괜찮은 거야?”
도훈은 서찬휘의 어깨를 잡고 슬쩍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순간 도훈의 눈이 커졌다.
서찬휘가 눈물을 글썽이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야?”
“그, 그게 아니라요…….”
서찬휘가 말을 못 잇자 도훈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팼다.
그때 우시원이 한숨을 쉬며 끼어들었다.
“휴, 실장 형, 그냥 놔두세요.”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닌데? 그냥 놔두라고?”
도훈이 서찬휘를 흔들었다.
하지만 서찬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우시원이 재빨리 답했다.
“얘 지금 웃고 있는 거예요.”
“웃어?”
“원래 웃음이 터지면 꼭 저래요. 잘 안 터져서 그렇지, 지금처럼 웃음이 터지면 못 말려요.”
“갑자기 왜 웃음이 터진 건데?”
“아까 실장 형이 그 친구들을 반장처럼 수첩에 막 이름 적고 그랬잖아요. 그게 웃겨서…….”
우시원도 입술을 씰룩였다.
그 모습에 도훈은 한숨을 쉬었다.
뒤쪽에서 험담하던 친구들을 교육시킨 방법은 도훈의 입장에서 저급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대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도훈이 그들을 훈계한 이유는 그들에게 일침을 놓기 위함이 아니었다.
도훈은 그저 우시원과 서찬휘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서 그런 모습을 보여 줬다.
진지하고 엄격하게 그들을 타이르다가는 우시원과 서찬휘가 더 주눅이 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다소 장난스러운 방법을 택했는데, 그것이 서찬휘를 이렇게 자극할 줄은 몰랐었다.
도훈은 서찬휘의 등을 토닥이며 그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몇 마디 하자 서찬휘의 웃음이 바로 멈췄다.
그 모습에 우시원이 물었다.
“어, 어떻게 하신 거예요?”
“직접 찬휘한테 물어봐.”
도훈은 말을 마치고 무대 뒤로 다가섰다.
그 모습에 고개를 갸웃한 우시원이 물었다.
“실장 형이 뭐라고 한 거야?”
“나중에 말해 줄게.”
서찬휘가 딱 잘라 말했다.
우시원은 더는 묻지 않았다. 서찬휘의 표정이 묘하게 비장했기 때문이다.
그들을 바라보는 도훈은 슬쩍 미소를 피워 냈다.
도훈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웃다가는 무대 위에서 도훈에게 밀릴 수도 있다고 한 것밖에 없었다.
그 한마디에 자극받은 서찬휘는 표정을 바꾼 것이다.
댄스는 서찬휘의 모든 것이었다.
도훈은 몸을 풀 듯 관절을 돌렸다.
그들을 케어하기 위한 도훈의 노력은 여기까지였다.
이제부터는 그들에게 짐이 안 되도록 노력을 해야 했다.
똑같이는 따라 하지 못하더라도 최대한 비슷하게는 맞춰 줘야 했다.
도훈은 조용히 눈을 감고 그들의 연습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간단한 안무의 반복이기에 동선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무대 쪽에서 박수 소리가 흘러나왔다.
짝, 짝, 짝.
아마 앞 팀의 공연이 끝난 것 같았다.
이제는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해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무대 쪽에서 진행 요원이 손짓한다.
“유레카 연습생들 이쪽으로!”
그의 손짓에 도훈이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오르자 심사위원석과 진행자가 보인다.
중간중간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하고 안타까움의 탄성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 * *
심사평을 마친 이승찬은 불만 어린 눈으로 자신이 적어 놓은 심사표를 바라봤다.
이승찬은 현재 소속이 없는 프로듀서였다.
그가 성공적으로 데뷔시킨 아이돌만 열 팀이 넘지만, 지금은 휴식 중이었다.
그는 판에 박힌 시스템에 염증을 느끼고 자신이 기획사를 차려야 하나 고민 중이었다.
그러던 중 MBS 예능국장의 연락을 받고 스타플레이어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
그것도 잠시 이승찬은 옆을 힐끔 바라봤다.
그의 옆에는 또 다른 심사위원인 한리아가 있었다.
그는 걸 그룹 출신의 안무가였다.
이승찬은 한리아와 여러 번 작업했었다.
그 덕분에 한리아는 이승찬을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이승찬은 그런 무거운 호칭을 원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이승찬이 그녀를 바라보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그녀가 오늘의 오디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서였다.
그녀는 매의 눈으로 심사평이 쓰여 있는 심사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눈빛이 탐탁지 않은 것 같았다.
이승찬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빛의 의미를 알 것 같아서였다.
대형 기획사의 연습생들은 이미 출연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은 상태였다.
어쩌다 보니 거기에 맞춰서 심사평마저 바꿔야 했다.
판에 박힌 시스템이 싫증 나서 회사에서 나왔는데 오디션마저도 그가 속해 있던 시스템과 똑같다는 것에 짜증이 났다.
이승찬은 자신이 느끼는 것과 한리아가 느끼는 것이 같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때 한리아가 심사평을 마쳤다.
“합격한 연습생이나 탈락한 연습생 모두 수고했어요. 합격과 불합격의 실력 차는 종이 한 장도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렇지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