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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90화 (90/250)
  •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90)

    박창성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임제호가 웃고 있었다.

    “고생했어, 이번 일이 끝나면 한 피디하고 박 피디한테 보너스 지급하라고 기안 올릴 테니 그렇게 알아.”

    “아,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런데…….”

    박창성은 슬쩍 말끝을 흐리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방금까지 보여 줬던 모습과는 확 달라진 모습에 임제호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괜찮을까요?”

    “뭘 그렇게 걱정하는 거야?”

    “바뀐 기획안 말이에요, 유레카 친구들은 모르잖아요.”

    “프로그램이 우선이지, 그게 무슨 상관이야.”

    “이 기획안도 유레카의 이 실장이 준 거잖아요. 그런데 그 친구 뒤통수를 친다고 생각하니 조금 마음에 걸리네요.”

    “어휴, 박 피디는 마음이 여려서 문제야. 그 정도야 감수해야지.”

    “어떻게 보면 기회조차 없는 거잖아요.”

    “기회라…….”

    “유레카에는 진짜 보석 같은 친구들이 있어요. 그 친구들이 이렇게 묻힌다는 게 정말 아쉬워요.”

    “다시 선택하라고 하면 마음 바꿀 거야?”

    “그건 아닙니다.”

    “그럼, 그냥 얼굴에 철판 깔아. 유레카에서 항의하면 윗선에서 시킨 거라고 잘라 말하고. 그리고 이게 무한 경쟁이라는 프로그램의 콘셉트하고도 맞잖아. 그냥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시킨다고 생각해.”

    “휴, 알겠습니다.”

    “괜히 한숨 쉬지 말고.”

    “네, 선배님.”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지혜는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 반복했다.

    이 오디션 프로그램은 한재수의 지시로 유레카에 불리하게 바뀌었다.

    한지혜는 현재 상황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재수와 스타플레이어 피디들은 일종의 거래를 했다.

    그 거래의 내용은 간단했다.

    피디들이 제안한 모든 내용을 받아들이는 대신 한 가지를 양보하기로 했다.

    * * *

    일주일 뒤.

    삼성동 미라클 사옥의 JK 유통 본부장실.

    이도준은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볼펜을 튕기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비서가 입술을 달싹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이도준이 물었다.

    “왜 그러고 있어? 할 말 있으면 말해.”

    “이번에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닌지 해서요.”

    “뭐가 무리야?”

    “SBC 협찬 건에다가 MBS까지 메인 협찬사에 이름을 올리시면…….”

    비서는 말끝을 흐렸다.

    이도준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항상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도준은 피식 웃기만 했다.

    “그게 뭔 걱정인데?”

    “회장님께서 아시기라도 한다면…….”

    “이건 내가 하는 게 아니고 미리클 그룹의 대표이신 아버지가 하는 일이야.”

    이도준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자신은 지금 장경자에게 감시를 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달랐다.

    장경자의 허락 없이도 이 정도의 협찬 계약은 맺을 수 있었다.

    이도준은 아버지에게 이번에 도훈의 기반을 깡그리 날려 버리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원래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어디 있던가?

    뭐, 운도 돈 앞에서는 무용지물인 세상이다.

    만약 누군가와 동전의 앞면이 나올 것인지 뒷면이 나올 것인지 내기를 한다고 치자.

    지면은 판돈을 올려 다시 내기를 걸면 된다.

    다음 판에서 지더라도 다시 판돈을 올리면 되고 말이다.

    그렇게 돈으로 밀어붙이다 보면 언젠가는 승리하게 된다.

    이것은 자만이 아니라 이도준의 철학이었다.

    그런데 묘하게 도훈에게는 돈이면 된다는 그의 철학이 무너져 내렸다.

    돈으로 도훈을 깎아내리려 할 때마다 그 몇 배가 되는 대미지를 자신이 입었다.

    이도준은 그 원인을 최근에 찾았다.

    그것은 어설프게 돈을 써서였다.

    그 어설픔이 자신에게 손해를 안겨다 주었다고 이도준은 생각했다.

    한참 동안 진득한 미소를 피워 올리던 도준이 비서를 바라봤다.

    “MBS 국장한테는 약속을 받아 낸 거지?”

    “네, 약속했습니다. 어떤 방법을 쓰든지, 유레카의 인원은 모두 걸러 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래, 잘했어. 만약에 유레카의 인원이 한 명이라도 올라간다면 협상은 없던 걸로 하겠다는 말도 전해.”

    “절대 못 올라간다고 합니다.”

    “그래도 한 번 더 확인하고.”

    “네, 알겠습니다.”

    비서는 고개를 숙인 뒤 자리에서 벗어났다.

    * * *

    같은 시간 장경자의 저택.

    TV를 보던 장경자는 갑자기 인상을 썼다.

    그 모습에 엄지연 비서가 화들짝 놀라 달려갔다.

    “회장님, 어디 불편하신 데라도 있으세요?”

    “불편한 건 아니고 누가 내 뒤에서 욕을 하는 건지, 귀가 자꾸 간지러워서 그려.”

    “네?”

    “엄 비서야.”

    “네, 회장님.”

    “면봉이나 가져와.”

    “정말 괜찮으신 거죠?”

    엄지연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장경자를 바라봤다.

    그때였다.

    초인종 소리가 스피커에서 울렸다.

    딩동. 딩동.

    그 소리에 장경자가 말했다.

    “면봉은 나중에 찾고 어떤 썩을 놈이 왔나 확인부터 해야겠다.”

    “네, 회장님.”

    엄지연이 인터폰의 화면을 확인하고는 활짝 웃었다.

    그러고는 장경자에게 말했다.

    “썩을 놈은 아니고 막내 손자분인데요.”

    장경자가 코웃음 쳤다.

    “에이, 그놈도 썩을 놈인 건 똑같지.”

    “그래도 제일 좋아하시잖아요.”

    “썩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 언젠가는 다 썩기 마련이지.”

    장경자가 씩 웃었다.

    엄지연은 그 표정에서 장경자가 도훈을 얼마만큼 좋아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 하는 법.

    엄지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건 그래요, 문 열어 줄까요?”

    “그래, 열어 줘.”

    엄지연은 현관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도훈이 쇼핑백 하나를 들고 찾아왔다.

    “할머니! 저 왔어요.”

    “에이, 뭐가 그렇게 바쁘기에 코빼기도 안 비쳐?”

    “제가 바쁜 게 아니라 할머니가 바쁘셨죠, 제가 와도 되냐고 하니까 바쁘다고 오지 말라고 하셔 놓고는 이제 와서 그러시면 저 서운해요.”

    “그래 내가 나빴다, 할미 집에 오는 데 무슨 연락을 하고 와. 그러니 내가 삐친 거지.”

    “하하, 그럼 연락 없이 놀러 올게요.”

    “그런데 그 선물은 뭔고?”

    “이건 엄 비서 선물이에요.”

    “에이, 나는 뒷방 늙은이라는 거네?”

    “할머니 선물은 여기 있어요.”

    도훈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봉투를 본 장경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할미한테 용돈을 줄 리도 없고…….”

    “그렇죠, 현금이 제일 많은 할머니한테 제가 얼마를 드려야 용돈이 될지도 감이 안 잡히는걸요.”

    “그럼 이게 뭔고?”

    “열어 보세요.”

    도훈이 재촉하자 장경자는 호기심이 동한 듯 재빨리 봉투를 열었다.

    그곳에서는 티켓으로 보이는 종이 두 장이 나왔다.

    티켓의 제목을 확인한 장경자가 눈을 크게 떴다.

    “이건, 강영웅 콘서트 아니여?”

    “네, 맞아요.”

    “난 이런 표 필요 없으니 그냥 가져가.”

    “왜요?”

    “몰라서 묻는 건 아니지? 엄 비서야 네가 설명해 줘라, 자꾸 얘기하려니 내 입만 아프다.”

    장경자가 배턴을 엄지연에게 넘겼다.

    엄지연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노력으로 산 표가 아니면 회장님은 콘서트에 안 가세요. 이번에는 콘서트 표를 예매하는 데 실패했거든요.”

    “손주가 노력해서 산 표로도 안 가시는 건가요?”

    “에이, 노력으로 사신 거 아니잖아요. 강영웅 씨 소속사가 유레카고, 유레카 대표가 본인이신데, 그걸 직접 예매하셨을 리는 없잖아요.”

    “예매했는데요.”

    “네?”

    “여기 제가 노트북 버튼이 망가질 정도로 클릭해서 산 거예요.”

    “헉, 진짜요?”

    “아, 못 믿겠으면 여기 보세요.”

    도훈은 재빨리 노트북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그러고는 자신이 예매한 사이트를 켜서 엄지연에게 보여 줬다.

    그 화면을 본 엄지연은 깜짝 놀랐다.

    그곳에는 도훈이 직접 예매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엄지연은 입을 떡 벌렸다.

    “아니, 시간도 없으실 텐데…….”

    “시간 없는 건 엄 비서님이나 할머니가 더하죠. 그래도 저는 숨 돌릴 틈 정도는 있어요.”

    도훈은 너스레를 떨며 장경자를 다시 바라봤다.

    “그래도 안 가실 거예요?”

    “네 성의를 봐서 가야지.”

    “저도 취미에 돈을 쏟아붓는 타입은 아니에요, 그건 할머니 닮은 것 같네요.”

    “그래, 나는 취미에 돈지랄하는 놈들이 제일 밉더라. 취미는 순수해야 하는 거여.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놈은 희망이 없는 기여.”

    “네, 그렇죠. 그런데 그런 사람 한 명 아는데요.”

    “그런 사람이라니?”

    “돈이면 다 된다는 사람 말이에요.”

    “흠…….”

    “안 궁금하세요?”

    “네가 말한 사람이 도준이 아닌가?”

    “어떻게 아셨어요?”

    “그놈이 집안 말아먹으려고 작정했다는 소식은 들었다.”

    “MBS 쪽도 들으셨나요?”

    “거기까지 돈지랄을 한 거여?”

    “아, 제가 괜히 얘기했나 보네요.”

    도훈이 미안한 표정으로 장경자를 바라봤다.

    “그 얘기 하려고 왔으면서, 왜 모른 척해?”

    “아, 눈치채셨네요, 하하.”

    “그건 너희들끼리 알아서 승부를 내. 승부에 대한 상금은 내가 따로 준비할 테니.”

    장경자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에 도훈은 깨달았다.

    이도준이 MBS까지 손을 뻗친 것을 장경자는 알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사실 도훈은 이도준이 지금처럼 천방지축 날뛰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는 후계 구도에서 멀어지니 말이다.

    SBC가 이상한 소문을 퍼뜨린 것은 그다지 상관없었다.

    그것은 살을 내어 주는 것과 같았다.

    이제는 상대의 뼈를 취할 준비를 하면 되었다.

    * * *

    스타플레이어, 예선 당일.

    검은색 승합차가 잠실 학생 체육관의 야외 주차장에 멈췄다.

    승합차에서 내린 한민국은 손으로 햇볕을 가리며 한숨을 쉬었다.

    “휴, 푹푹 찌네요.”

    “땅 꺼질라, 왜 그렇게 한숨을 쉬어.”

    “이제는 더위가 가실 때도 됐는데, 푹푹 찌니 힘이 쭉 빠지잖아요.”

    “안에는 에어컨 나올 거니까, 조금만 참아.”

    “여기 에어컨 고장 났다고 하던데요.”

    한민국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때 뒤따라오던 강시혁이 깜짝 놀라 물었다.

    “한 매니저, 진짜야?”

    “네, 제 조카가 지난주에 여기서 행사했거든요. 진짜 쪄 죽는 줄 알았대요.”

    “와, 이거 사람 죽이려고 하네.”

    강시혁도 고개를 흔들었다.

    더위에 약한 것은 강시혁도 마찬가지였다.

    약간은 푸짐한 체격 덕분에 더위에 누구보다 취약한 그였다.

    그때 뒤쪽에서 우시원과 서찬휘가 신서희와 함께 걸어왔다.

    신서희도 다급하게 손으로 챙을 만들었다.

    “덥긴 덥네요. 이건 완전히 테러블이에요.”

    그 말에 도훈이 웃었다.

    “선생님은 그냥 쉬고 계시지.”

    “오늘은 우리 제자들이 데뷔하는 날인데 보러 와야죠.”

    신서희의 말에 우시원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데뷔요?”

    “시원아, 카메라에 얼굴 나오면 그게 데뷔지.”

    신서희가 사람 좋은 얼굴로 웃었다.

    처음 왔을 때의 까칠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신서희는 어제부로 계약 기간이 끝난 상태였다.

    그런데도 오늘 우시원과 서찬휘를 위해 동행을 한 것이다.

    그들은 각자 짐을 들고 체육관 내부로 들어섰다.

    도훈은 주변을 돌아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체육관의 에어컨이 고장 났다는 것만 빼면 준비는 제법 잘되어 있었다.

    무대의 배치도 깔끔했고 카메라만 해도 본방송을 찍는 것처럼 마련해 놓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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