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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88화 (88/250)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88)

그 상태에서 박창성이 질문을 이었다.

“둘 중 아무나 대답해도 되는데, 나는 정말 궁금하거든요. 무슨 문제가 있기에 데뷔를 못 했는지…….”

박창성이 살짝 말끝을 흐리며 우시원을 바라봤다.

우시원이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인다.

대신 서찬휘가 답했다.

“그건 비밀이라서 여기서 답변드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비밀이라고?”

박창성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모습에 이번에는 우시원이 입을 열었다.

“이건 방송에서 풀 이야기라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실장 형이 그랬어요.”

“실장 형이 누군데요?”

“제 마음속의 선생님이죠.”

우시원의 말에 박창성은 재빨리 큐시트를 넘겨 유레카의 정보를 찾았다.

쓱 훑어본 박창성이 말을 이었다.

“지금 선생님이라고 하면 안무는 신서희 선생님이고 보컬이나 프로듀싱 쪽은 강시혁 피디가 맡고 있잖아요.”

“그건 그런데 제 단점을 고쳐 주신 분이라서요, 헤헤.”

우시원이 실없이 웃었다.

박창성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을 두드렸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몰라도 자신에게 말을 해야 오늘 촬영 분량에서 포인트를 줄 수 있었다.

사실 없는 얘기까지 지어내서 어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비밀이라니!

잠시 그들과 인터뷰를 나누고 난 박창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다시 연습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연습 장면을 촬영하고 있을 때 박창성의 옆에 한지혜가 다가왔다.

“선배, 분량은 많이 건졌어요?”

“흠, 건지긴 했는데…….”

“왜 그래요? 혹시 녹화분 날아간 거예요?”

“그게 아니라 유레카란 기획사 말이야, 많이 수상해.”

“에이, 뭐가 수상해요. 여기 제가 잘 아는 기획사예요. 불법적인 게 있을 수 없어요.”

“그런 얘기가 아니라, 저 친구들 봐.”

“저 친구들이 왜요?”

“딱 보면 감이 안 와?”

“잘하잖아요, 저 정도면 수준급 아니에요?”

한지혜가 고개를 갸웃하자 박창성이 사건의 진실을 밝혀낸 탐정처럼 눈을 빛냈다.

“저 정도 실력에 저 외모로 만년 연습생이었다는 게 이해가 돼?”

“저 정도 외모라고 한 건, 저 오른쪽 친구를 말하는 거죠?”

한지혜가 서찬휘를 가리켰다.

박창성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왼쪽.”

“저 정도 외모는 흔하지 않나요? 평균치보다 약간 높은 수준. 저 정도로는 화면으로 시청자들에게 어필 못 해요.”

한지혜는 고개를 흔들었다.

도훈과 인연이 있지만, 평가는 정확히 내려야 했다.

그때 박창성이 눈을 빛냈다.

“조금만 기다려 봐, 외모가 확 달라질 테니까.”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선배.”

“변신하는 세일러문, 아니 슈퍼맨처럼 안경 하나에 확 바뀐다니까.”

박창성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눈을 빛냈다.

고개를 갸웃한 한지혜는 팔짱을 끼고 우시원과 서찬휘를 바라보다가 시간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씁쓸하게 웃었다.

이곳에 카메라가 설치되자마자 연습이 시작되었으니 벌써 네 시간째였다.

이건 아이돌이 아니라 운동선수가 훈련하는 정도의 난이도였다.

그때 다시 음악이 멈췄다.

한지혜는 우시원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박창성이 말한 매력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헉.”

한지혜도 낮은 탄성을 흘렸다.

안경 하나로 저렇게 분위기가 변하다니 신기했다.

한지혜는 조용히 주변을 둘러봤다.

박창성이 아빠 미소를 짓고 있다.

마치 자신이 발굴해 낸 연습생을 바라보는 매니저의 눈빛이다.

완전히 몰입한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던 한지혜는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 촬영을 시작할 때에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이곳이 유레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촬영이 시작되자 그는 이곳이 유레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녀는 강시혁을 인터뷰하고 오는 길이었다.

스타플레이어의 명단에 넣긴 했어도 기획사의 역사가 너무 부족했다.

그리고 시스템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강시혁과 인터뷰를 하며 전에 읽었던 수필 하나가 생각이 났다.

방망이 깎는 노인.

강시혁은 딱 방망이 깎는 노인과 비슷했다.

대량으로 연습생을 모아서 시스템이라는 틀에 집어넣고 아이돌을 찍어 내는 다른 기획사들과는 달랐다.

한 명, 한 명에 들이는 공이 너무 컸다.

한지혜는 그런 시스템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위험부담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꾹꾹 눌러 담아서 데뷔를 시켰는데 그 그룹이 실패한다면?

한지혜에게 있어 유레카가 아군이긴 했지만, 믿을 만한 아군이 아니라 생각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같이 온 선배 피디가 그들의 매력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한지혜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연습생 하나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지혜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곳을 담당하는 강시혁이 현재 보유한 연습생은 둘이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상대가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한지혜 피디? 어디 아파요?”

순간 한지혜의 눈이 커졌다.

놀람도 잠시, 한지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를 아세요?”

“지금 무슨 말이에요? 며칠 전에도 봤잖아요.”

“며칠 전이라고요? 그럼 혹시…….”

“저 이도훈이에요.”

“헉.”

“왜 그렇게 놀라는 겁니까? 이거 슬슬 기분 나빠지려고 하네요.”

도훈은 미간을 좁혔다.

한지혜는 그제야 손뼉을 쳤다.

짝.

그 소리에 도훈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아, 깜짝이야. 오늘따라 이러는 이유가 뭡니까?”

“이제 이 실장님 같네요.”

“저 같다는 건 뭡니까?”

“사실 방금까지는 연습생인 줄 알았어요.”

“연습생이요?”

“항상 세미 정장 차림이시잖아요. 헤어스타일도 그렇고요. 지금처럼 입으니까, 한…….”

한지혜가 말끝을 흐렸다.

그 모습에 도훈이 재빨리 물었다.

“지금처럼 입으니까 이상해요?”

“십 년은 젊어 보여요.”

“십 년이면…….”

도훈은 힐끔 우시원과 서찬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만큼 깎으면 찬휘랑 시원이하고 동갑인데요.”

“진짜 그렇게 보여요.”

한지혜는 뭐가 그렇게 웃긴지 손가락으로 도훈을 가리키며 실실 웃었다.

한지혜는 진심이었다.

평소 도훈의 복장을 보면 항상 블랙 혹은 네이비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덕분에 한눈에 봐도 회사원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청바지에 가벼운 라운드 티 하나만 걸치고 있었다.

시원해 보이는 것을 떠나 한눈에 봐도 고등학생의 외모였다.

그때 옆에 있던 박창성도 고개를 갸웃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진짜 연습생이 아니라고요?”

“아니, 선배는 왜 뒷북이에요. 이쪽은 유레카의 이도훈 실장이에요. 실세니까 미리 친해 두세요.”

한지혜가 의미심장한 웃음으로 도훈을 가리켰다.

그 모습에 도훈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명함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이도훈이라고 합니다.”

명함을 받은 박창성의 눈이 커졌다.

“정말 실장이네요. 그래도 이 바닥에서 몇 년을 굴러야 달아 주는 직책 아닌가요?”

“제가 금수저라서요.”

“푸웁, 동안에다가 유머 감각도 있으시네요.”

“감사합니다.”

“저는 MBS 예능국의 박창성이라고 합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혹시 안 좋은 이야기는 아니겠죠?”

“에이, 설마요.”

“수상한데요.”

박창성은 눈을 가늘게 뜨며 도훈의 표정을 살폈다.

누군가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면 좋은 이야기를 했을 리는 없었다.

박창성의 눈이 더욱 가늘어지자 도훈은 손을 저었다.

“정말 좋은 이야기들만 들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진짜 수상합니다.”

“제가 관상을 좀 볼 줄 아는데, 피디님은 왕이 될 상입니다.”

“왕이요?”

박창성은 살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건 아부를 넘어서 실언 수준이었다.

칭찬도 정도껏 하지 방송가에서 왕이란 칭호를 받는 사람이 몇이나 있던가?

작가 중 몇 명, 연기자 중 몇 명 등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왕이라니!

“관상은 과학이라는 거 아시죠?”

“네, 과학이요?”

“에이, 예능국 피디인데 모르고 계셨나요?”

“들어 본 것 같기는 합니다.”

“보통 관상이라는 게 막연한 점괘와는 다르거든요. 관상은 어떻게 보면 통계학이에요. 이런 관상을 지닌 사람은 이런 삶을 살았다. 이런 관상을 가진 사람에게는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

“그렇죠.”

“뭐, 그런 일들이 쌓여서 학문이 된 거죠. 그래서 옛 선조들을 보면 관상학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이야 통계학이 워낙 발달하다 보니 조금 희미해졌지만요. 거기에 관상을 인위적으로 바꾸는 사람들도 있으니 통계학적으로 봐서도 의미를 잃었죠.”

“인위적으로 바꿨다니요?”

“성형이요, 혹시 성형하신 건 아니죠?”

“아, 아닙니다.”

“그럼 제 말이 맞을 겁니다.”

도훈의 말 중 반은 진실이었다.

관상에 관한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박창성이 왕이 될 상이라는 것이 진실이었다.

박창성은 MBS에서는 빛을 못 보는 피디였다.

하지만 임제호를 따라 케이블로 옮기면서 자신의 능력을 펼친다.

덕분에 전생의 기억 속에 박창성과의 인연이 꽤 있었다.

케이블에서 문어발식으로 프로그램을 총괄하던 게 박창성이니 마주치지 않으려 해도 불가능했다.

다행인 것은 그와의 만남이 악연이었던 적은 없었다.

도훈은 박창성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은 뒤 한지혜에게 USB를 건네고 서찬휘와 우시원 쪽으로 걸어갔다.

도훈이 자리를 뜨자 박창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게 뭐야? 한 피디.”

“저 둘에 대해서 방송에서 어떻게 살려야 하나에 대한 자료 같아요. 기획사에서 보통 이렇게 정리해서 주잖아요.”

“지금 볼까?”

“뭐, 카메라도 멈췄으니 잠시 쉴 겸 확인하죠.”

한지혜가 씩 웃으며 노트북을 꺼냈다.

USB를 노트북에 넣고 자료를 확인하던 한지혜의 눈이 커졌다.

이것은 그냥 자료가 아니었다.

스타플레이어의 구성에 대한 아이디어였다.

지금은 스타플레이어 편성이 잡힌 상황.

지금부터는 모두의 아이디어를 몰아넣어야 했다.

뼈대는 다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지금부터는 살을 붙여야 하는 상황.

도훈이 준 USB에 들어 있는 자료는 한마디로 뼈대에 붙일 재료들이었다.

한지혜는 힐끔 고개를 돌려 우시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도훈을 바라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한 사람이었다.

피디들보다 더 구체적이고 피디들보다 더 진심으로 이 프로그램을 사랑하고 있었다.

한지혜는 고개를 돌려 박창성을 바라봤다.

의견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박창성을 바라보던 한지혜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박창성은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다.

번뜩 정신을 차린 한지혜는 박창성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정신을 차린 박창성이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한지혜가 말했다.

“선배, 침 흘러내릴 것 같아요.”

“앗.”

“왜 그렇게 놀라신 거예요?”

“아니, 이상하게 이 아이디어가 딱 와닿아서.”

“저도 와닿긴 했지만, 그렇게 넋을 잃고 볼 정도는…….”

“그게 아니라 내가 말할까 말까, 고민했던 아이디어들이거든.”

“에이, 설마요.”

“조금 다르긴 해. 난 그저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고 그냥 상상만 한 건데, 이 제안서는 훨씬 구체적이니까.”

박창성은 제안서를 가리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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