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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86화 (86/250)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86)

폭풍 같은 처음 인사가 지나가고 본격적인 미팅이 시작되었다.

임제호의 질문은 초반부터 날카로웠다.

“여기는 우리 MBS와 모 케이블 방송의 저녁 시간대별 시청자 성향입니다. ……지상파의 시청자 성향이 다르다는 걸 고려할 때 지상파에서 아이돌 오디션이 먹힐까요?”

“죄송하지만, 기존 시청자들 중심으로 편성하실 거라면 그리 어울리는 포맷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울리지 않는다라…… 그렇다면 왜 이런 포맷을 제안했지요?”

“언제까지 케이블에 시청자를 빼앗기고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흠…….”

“이제는 케이블 쪽에서 시청자를 끌어와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주요 소비층도 점점 낮아지는 추세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케이블과 지상파의 절대적인 숫자가 이제는 줄어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십 대들이 채널을 돌리는 순간에 부모들은 할 수 없이 이 프로그램에 시선을 고정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요?”

“부족하지 않습니다.”

“근거는요?”

“아이돌 연습생들이 보여 줄 매력입니다.”

“매력이라…….”

“한마디로 외모죠. 조금 냉정한 이야기지만 외모가 개연성이 된 시대입니다.”

도훈은 쉬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도훈의 설명에 임제호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가 된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도훈의 설명이 다 끝나자 임제호는 힐끔 옆을 바라봤다.

“홍 팀장이 봤을 때는 어때요? 만약에 이런 포맷으로 진행한다면 SW에서는 적극적으로 나설 것 같아요?”

“음, 저는 다소 부정적입니다. 아이돌이라는 것이 소속사별로 색이 확실합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하나에다가 몰아넣고 살아남은 사람 위주로 팀을 꾸린다는 것이 조금은 식상합니다.”

“식상하다라……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홍 팀장.”

“이건 마치 소속사에서 하는 평가와 똑같지 않습니까? 저희 SW 같은 경우는 주간 평가에서부터 시작해서 월말 평가까지 살얼음판이 생각날 정도로 철저하게 평가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평가 자체가 익사이팅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홍준수의 대답이 끝나자 임제호가 도훈을 바라봤다.

“그렇다는군, 이 실장도 한번 생각을 말해 봐요.”

“그건 애착이 없어서가 아닐까요?”

“애착이라고요?”

“연습생을 아무 감정 없이 습관적으로 평가하다 보면 몰입이 안 되죠. 프로그램을 그렇게 만들면 실패죠. 시청자에게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 피디의 역량이고요.”

도훈은 임제호를 보며 씩 웃었다.

그 뒤로 포맷에 관한 토론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임제호가 손뼉을 쳤다.

짝짝.

그 소리에 모두는 말을 멈추고 임제호를 바라봤다.

임제호는 미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다음 일정 때문에 아무래도 그만 마치고 다음에 한 번 더 일정을 잡아야 할 것 같군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훈이 회의실을 빠져나가려는데 임제호가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이도훈 실장.”

“네?”

“잠시, 우리 얘기 좀 할까요?”

밖으로 나가려던 도훈은 한민국에게 눈짓을 했다.

그 모습에 한민국은 한지혜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회의실에는 임제호와 도훈만 남은 상태.

임제호는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조금 이상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요?”

“지난번 한지혜 피디의 기획안을 대부분 도와줬다고 들었는데…….”

“네, 맞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기획안에서 보여 줬던 말을 반도 안 한 것 같아서요.”

“적에게 모든 것을 다 털어놓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적이라고요?”

“부장님이나 한지혜 피디를 말하는 건 아닙니다. 제가 들은 이야긴데, SW 쪽에서 SBC 오디션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붙었다고 하더군요. 대충 들어 보니 심사위원 중에는 미스트의 하이도 포함됐고요.”

“어, 그게 진짜예요?”

“저도 아는 분에게 들은 얘기라서요.”

말을 마친 도훈은 어색하게 웃었다.

임제호의 눈이 살짝 돌아간다.

그 모습에 도훈이 말을 이었다.

“지금 안 하시면 최초라는 타이틀은 SBC 쪽으로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최초라…….”

임제호가 눈을 빛냈다.

순간 도훈은 테이블 밑으로 말아 쥔 주먹에 힘을 주었다.

눈앞에 임제호 CP는 믿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전생에는 이런 대규모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이 성공하는 것은 사 년 뒤였다.

그 프로그램을 성공시킨 사람이 바로 임제호 CP였다.

지금과 다른 점이라면 지상파가 아닌 케이블로 자리를 옮겨서였다.

하지만 사 년 정도의 시간은 문제될 것이 없었다.

필요한 경험치는 도훈의 머릿속에 모두 들어 있으니 말이다.

최초라는 타이틀은 방송물을 먹는 사람들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성배였다.

최고는 언제든 깨질 기록이지만, 최초는 영원히 남을 수밖에 없으니까.

살짝 임제호의 눈빛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도훈은 여기서 말뚝 하나를 박아야 했다.

홍준수를 이대로 두고는 임제호에게 속마음을 보이며 일을 진행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SW 엔터와 SBC와 관계를 넌지시 이야기했지만, 임제호와 홍준수가 십 년간 이어 온 ‘신뢰’라는 두꺼운 끈을 단번에 끊어 내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이대로 돌아간다면 지금 나눈 얘기까지 모두 홍준수에게 털어놓을 수도 있었다.

즉, 도훈이 이제까지 한 이야기로는 부족하다는 말이었다.

SW와 SBC가 어떤 포맷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들던 MBS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컸다.

SW가 보통 회사던가?

그들이 보유한 아이돌이 빠지면 MBS에서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아이돌 체육대회를 진행할 수 없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뭐, 인원이 부족해서 진행할 수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만큼 화제성이 떨어진다는 말이었다.

그때 임제호가 물었다.

“이런 포맷은 확실히 지상파에서 해야겠지요?”

“지상파에 어울리는 포맷은 아닙니다.”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그럼 이제까지 얘기한 게 모두…….”

임제호가 황당한 듯 말을 맺지 못하고 도훈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도훈은 재빨리 말을 이었다.

“지상파에 어울리는 포맷이 아니고 MBS에 어울리는 포맷이죠.”

“허, 그 말이었어요?”

“네, 물론이죠. 참, 지난번에 SBC에서 대박 났던 ‘언니야 학교 가자’ 말이에요…….”

도훈은 슬쩍 운을 떼며 임제호를 바라봤다.

‘언니야 학교 가자’는 연예인들이 고등학교로 돌아가면서 펼치는 리얼 예능이었다.

처음에는 교실에서 펼치는 예능이 뭐가 새롭냐는 반응이었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시청률이 올라가 아직도 시즌을 이어 나가는 프로그램이었다.

연예인들의 멋진 모습보다는 리얼하게 망가지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왔던 것.

항상 무대에서 멋진 모습만 보여 주고.

누군가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던 연예인들이 옆집 아저씨처럼, 옆집 형이나 누나처럼 나오는 장면은 어찌 보면 반전 매력이었다.

모든 이미지를 소비하고 서서히 잊혀 가는 연예인에게도 이 프로그램은 기회가 되었다.

처음에는 출연을 고사하던 연예인들이 회차가 거듭될수록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 줄을 설 정도였다.

한마디로 예능계의 스테디셀러라고 할 만큼 자리를 잡은 프로그램이다.

임제호의 미간이 살짝 접혔다.

프로그램 이름에 반응하는 것을 보니 일단 미끼는 문 것 같다고 도훈은 판단했다.

임제호는 금방 표정을 수습하고 물었다.

“그 얘기는 왜 꺼내신 거죠?”

“MBS에서 먼저 기획안이 올라왔다는 소문을 들어서요.”

“그렇긴 하죠. 그런데 포맷이야, 돌고 도는 거 아닌가요? 뭐, 제 기획안이 새로운 것도 아니고…….”

“연예인이 망가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는 콘셉트는 당시로써는 신선했죠. 혹시 그거 아시나요?”

“뭘 말입니까?”

“‘언니야 학교 가자’의 담당 피디가 누구더라…….”

“오대수 피디요?”

“네, SBC의 오대수 피디하고 SW의 홍준수 팀장이 이종사촌이라고 들었습니다.”

“네?”

“저도 들은 얘기라서…….”

도훈은 슬쩍 말끝을 흐렸다.

임제호와 홍준수의 신뢰에 작은 흠집을 내 놨으니 그 줄이 끊어지는 것은 서로 알아서 할 일이었다.

홍준수가 임제호에게 들은 정보를 이종사촌인 오대수에게 전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임제호가 ‘언니야 학교 가자’를 두고두고 아쉬워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을 성공시키고 나서도 입맛을 다시던 것이 그 프로그램이었으니까.

임제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다가 다시 제 색을 찾은 것은 몇 분이 흐른 뒤였다.

임제호는 헛기침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흠, 손님을 놔두고 제가 실수했군요.”

“아닙니다.”

도훈은 그에게 인사를 건네고 회의실에서 나왔다.

* * *

이 주 뒤.

최초라는 말에 자극을 받았는지 임제호는 말도 안 되는 추진력을 보여 줬다.

단 이 주 만에 국장에게 편성을 구두로 약속받은 것이다.

그들의 물망에 오른 기획사는 모두 서른 군데가 넘었다.

중소 기획사까지 모두 포함한다면 그 규모가 훨씬 더 커지겠지만, 일단 1차로 잡은 것이 상위 30개의 기획사였다.

그렇다면 유레카는 어떻게 되었을까?

30위라는 순위에는 들지 못했다.

하지만 임제호는 약속한 것이 있기에 유레카를 프로그램의 상비군 명단에 포함했다.

여기서 상비군이란 촬영 전 문제가 생길 것을 고려해서 30위 밖의 기획사에서 확보한 쓸 만한 연습생을 말한다.

상비군은 물론 피디의 권한이었다.

MBS의 회의실에서는 임제호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에 최종 논의를 벌이는 중이었다.

임제호는 빔프로젝터를 정면으로 받으며 팔짱을 끼고 있었다.

임제호가 옆으로 물러나자 하얀 스크린 위에는 제목 하나가 떠 있었다.

[스타플레이어]

본래 기획안에는 올스타 아이돌이라는 이름이었지만, 임제호는 그 제목이 다소 촌스럽다는 이유로 바꾸었다.

물론 스타플레이어나 올스타 아이돌이나 모두 임제호가 붙인 이름이었다.

하나는 현생에.

하나는 전생에 말이다.

물론 이것은 도훈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는 첫날 모였던 피디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모두에게 일정을 설명한 임제호는 스크린의 한쪽을 가리켰다.

“자, 이쪽 맡을 사람. 선착순 두 명.”

임제호가 가리킨 곳은 스타플레이어 상비군 취재 일정이었다.

그곳을 보던 피디들은 모두 고개를 돌리기에 바빴다.

한지혜만이 눈을 반짝이며 임제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임제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와, 이것 봐라, 일하기 싫다는 거지?”

임제호의 말에 박창성이 손을 들었다.

“박 피디 할 말 있으면 해 봐.”

“취재할 곳이 유레카 아닙니까?”

“유레카 맞아. 그런데 그게 왜 문제가 되지?”

“생각해 보십시오. 유레카 전신이 어딥니까? JK 아닙니까? 이제까지 JK가 아이돌을 데뷔시킨 적이 있었나요? 굵직굵직한 아티스트와 배우는 몇몇 있지만, 아이돌 쪽은 완전히 황무지 아닙니까? 그런데 거기에서 연습생을 건진다는 건 무리가 아닐까 해서요.”

말을 마친 박창성은 주변을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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