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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85화 (85/250)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85)

힐끔 보니 수첩이 다시 빛을 내고 있었다.

그것은 이곳에 원수 아니면 은인이 있다는 것.

도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주위를 둘러봤다.

정답은 원수.

다름이 아닌 전생의 적을 만나게 된 것이다.

배신자의 오른팔 역할을 하던 친구.

누구보다 앞장서서 자신의 등에 비수를 꽂았던 놈의 얼굴을 보니 산전수전 다 겪은 도훈이라고 해도 표정 관리가 안 되었다.

그것도 잠시 도훈은 표정을 수습하고 명함을 꺼냈다.

그때 명함 지갑에 같이 딸려 온 수첩이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수첩에 순간 하나의 이름이 스쳤다.

[홍준수.]

그것이 앞에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현재는 SW의 팀장으로 있다.

그것도 실세라 불리는 1팀장.

SW의 중심은 아이돌이었다. 1팀에서 맡고 있는 것이 보이 그룹 두 팀이었다.

그중 하나가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의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미스트였다.

아무래도 이 미팅 자리에 유레카만 부른 것이 아닌 게 분명했다.

SW까지 불렀다는 것은 그만큼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고 봐야 했다.

눈앞에 있는 홍준수는 도훈이 들어왔는데도 본체만체 손에서 태블릿을 놓지 않고 있다.

그렇다는 것은 도훈이 기획사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 얘기는 임제호 CP와 안면이 있다는 얘기였다.

시사교양국에 있었던 한지혜가 그를 알 리는 없으니까.

그때 한민국이 그를 가리키며 귓속말을 했다.

“아까 본 사람이 저 사람이었어요.”

“…….”

도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그의 앞으로 다가가 살짝 헛기침했다.

“흠.”

그 기침 소리에 홍준수가 고개를 돌렸다.

약간은 푸짐하게 생긴 인상은 분명 플러스 요소다.

거기에 살짝 모자란 머리숱은 애잔함을 자아낸다.

어찌 보면 부족해 보이는 외모였다.

하지만 그는 뱃속에 칼 한 자루를 숨기고 있는 사람이었다.

형님 먼저, 하면서 손을 내밀고는 상대가 먼저 가면 등 뒤에서 비수를 꽂는 유형의 인간.

도훈을 발견한 그는 놀란 듯 화들짝 일어났다.

탁.

일어나면서 그는 허벅지를 탁자에 부딪쳤다.

허벅지를 어루만지며 급하게 명함을 찾는다.

이렇게 어리숙한 행동이 다 계산된 것이라고 한다면 누가 믿을까?

그 어리숙한 콘셉트가 상대방에게 편안함을 준다.

그것이 그의 무기.

홍준수는 명함을 건넸다.

“아, 오늘 미팅에 참석한다는 유레카의 실장님이시군요. 저는 SW의 홍준수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유레카의 이도훈이라고 합니다.”

도훈도 해맑게 웃으며 명함을 꺼냈다.

명함을 건넨 도훈은 홍준수의 명함을 쓱 살펴보고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어이쿠, 팀장님이시군요. SW에서 팀장이시면…….”

도훈은 슬쩍 말끝을 흐렸다.

그 모습에 홍준수가 살짝 미간을 좁힌다.

“무슨 일이라도…….”

“그게 아니라, SW에서 팀장이시면 다른 기획사에서는 본부장급 아닌가요? 왠지 임원분 보는 느낌이라서 좀 어려워서요.”

“하하, 같은 업계 사람끼리 편하게 지내요.”

“거기에…….”

도훈이 명함을 보며 다시 말끝을 흐리자 홍준수가 고개를 갸웃한다.

“이번에는 또 뭔가요?”

“1팀이면 미스트가 있는 곳이잖아요.”

“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좀 아시네요.”

“에이, 이 바닥에서 미스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미스트를 바닥에서 키워 내신 팀장님을 모르는 사람도 없고요.”

“저를 아세요?”

홍준수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물었다.

꼭 도를 아느냐는 그런 표정이다.

도훈은 손을 내저었다.

“이렇게 뵌 건 처음이지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도훈은 청산유수처럼 말을 이어 나갔다.

대부분이 홍준수에 대한 칭찬이었다.

어찌 보면 아부로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민국은 조금 달랐다.

유레카의 대표인 도훈이 홍준수에게 아부할 리는 없었다.

가능성은 하나였다.

스카우트.

한민국의 고개가 점점 기울어졌다.

계속 의문이 쌓인 것이다.

이렇게 기획사 사람과 대화가 자연스러우니 그게 더 이상했다.

한민국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얼마 전까지는 연예계에 대해서는 자신보다 모르던 도훈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완벽하게 달라져 있었다.

도훈은 끊임없는 노력을 해 왔음이 분명했다.

그런데 자신은 어떠한가?

지금 대화를 듣고 있으니 자신이 모르는 용어가 오가고 있었다.

오늘따라 공부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한민국은 이제 이까지 꽉 깨물었다.

도훈은 기회를 줬고 자신은 기회를 얻었다.

단순히 운전만 하다가 끝낼 경력에 매니저라는 명함을 얹어 주었다.

한민국이 결심을 다지고 있을 때였다.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처음 들어온 것은 눈에 익은 한지혜였다.

한민국은 반갑게 달려가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피디님.”

“잘 지내셨어요, 매니저님. 이쪽은…….”

한지혜는 뒤쪽에 있는 임제호 CP를 소개했다.

한민국은 명함을 건네며 넙죽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부장님.”

명함을 받은 임제호는 명함의 앞쪽만 보고 손을 내밀었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이도훈 실장이 맞죠?”

“앗, 저는 한민국이라고 합니다. 이 실장님은 뒤쪽에…….”

한민국은 뒤쪽을 가리켰다.

뒤쪽에서 도훈이 달려와 명함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유레카의 실장 이도훈이라고 합니다.”

“이쪽이 이 실장이었군요, 하하.”

“네, 제가 피디님들 보면 달려가서 인사하라고 했더니만…….”

도훈이 말끝을 흐리며 한민국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임제호가 활짝 웃었다.

“저도 신입 피디 들어오면 똑같이 교육하는데…… 이 실장이랑 나랑 통하는 데가 있군요.”

“영광입니다.”

도훈이 씩 웃었다.

그때 한민국의 핸드폰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디딩, 디딩.

핸드폰을 확인한 한민국이 재빨리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에 임제호가 물었다.

“혹시 바쁜 일이라도 있나요?”

“아닙니다, 제가 부탁한 게 있어서 잠깐 나갔습니다.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그때 뒤쪽에서 대화를 지켜보던 홍준수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안녕하세요, 저도 있습니다.”

“오, 홍 팀장도 왔군. 일단 차부터 한잔하지.”

임제호가 힐끔 한지혜를 바라봤다.

막내 피디인 한지혜가 재빨리 회의실의 옆으로 다가간다.

그 모습에 홍준수가 재빨리 먼저 달려갔다.

바람처럼 달려간 홍준수는 구석에 있는 미니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냈다.

홍준수는 음료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탁. 탁.

마치 MBS 예능국의 직원처럼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홍준수가 올려놓은 것은 음료수만이 아니었다.

어떻게 미리 준비했는지는 몰라도 음료수에 마카롱과 샌드위치 등 간식까지 준비해 놓았다.

임제호와 한지혜의 앞에 음료수를 놔둔 홍준수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도훈을 바라봤다.

“어이쿠, 이걸 어떻게 하죠?”

“…….”

도훈이 말없이 고개를 갸웃하자 홍준수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신다는 이야기를 못 들어서 준비를 못 했네요. 아무래도…….”

홍준수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가 준비한 간식은 세 명에 맞춰 있었다.

그 모습에 도훈은 어깨를 으쓱했다.

홍준수는 전생의 기억대로 진짜 준비가 철저한 인간이었다.

말끝을 흐리자 옆에서 보던 한지혜가 끼어들었다.

“저는 괜찮으니 제 것을 이 실장님께…….”

“저는 괜찮습니다.”

도훈이 아무렇지 않게 손을 내저었다.

그 모습에 홍준수가 말을 이었다.

“이걸 죄송해서 어쩌죠, 다른 분이 오신다는 걸 몰라서요, 하하.”

그의 말에 한지혜는 미간을 좁혔다.

자신은 도훈을 부르면서 다른 이가 참석한다는 것을 말해 주지 못했다.

그녀도 10분 전에야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제호가 이 회의의 인원에 대해서 통보하지 않았을 리는 없었다.

그 증거가 임제호의 표정이었다.

미안한 표정과 고마워하는 표정이 반반이다.

마치 탕짜면처럼 말이다.

미안한 표정은 도훈에게 돌아가는 몫이고 고마움은 홍준수의 몫이다.

한지혜는 테이블 아래로 손을 꽉 쥐었다.

자신의 사람을 챙기는 걸로 유명한 임제호를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MBS 밖의 인원까지 자신의 사람이라 생각하면 알뜰히 챙긴다는 것이다.

아이디어는 분명히 도훈이 냈다.

거기에 자신이 양념 한 스푼 정도를 얹었다.

그런데 외부인이 끼어든다니!

홍준수를 바라보는 한지혜의 표정은 그리 곱지 않았다.

그들은 간식을 앞에 두고 시답지 않은 이야기로 잠시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야기의 중심은 대부분 임제호의 푸념이었다.

“와, 진짜 예능국의 위기라니까요. 여러분들이 좀 도와줘야겠습니다.”

그때였다.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덜컹.

그곳에서는 한민국이 얼굴이 시뻘게진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헉헉, 시, 실장님.”

한민국은 양손에 거대한 쇼핑백을 네 개나 들고 있었다.

그 쇼핑백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몰라도 최대한 조심스럽게 들고 있는 한민국의 모습은 누가 봐도 힘들어 보였다.

숨이 넘어갈 것 같은 한민국의 모습에 도훈은 재빨리 달려갔다.

“이건 내게 줘, 한 매니저.”

“아, 고마워요, 실장님.”

한민국에게서 쇼핑백을 건네받은 도훈은 임제호에게 걸어갔다.

그 모습에 임제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쇼핑백을 들고 오자 조심스러워진 것이다.

임제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게 뭔가요? 혹시 선물 같은 거라면 넣어 두시죠.”

“간식인데요.”

도훈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자 임제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간식이라니요?”

임제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도훈을 바라봤다.

쇼핑백이 보통 고급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근처 베이커리나 매점에서 사 온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간식이라니 이해가 안 되었다.

그때 도훈이 홍준수가 깔아 놓은 간식을 가리키며 말했다.

“홍준수 팀장이 준 간식이 뇌물이 아니니 제가 드리는 간식도 괜찮겠죠?”

말을 마친 도훈은 쇼핑백에서 간식을 꺼내 놓았다.

순간 임제호의 눈이 커졌다.

분명히 간식은 맞았다.

그런데 그냥 간식이라고 얻어먹기에는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그것은 포장지에 있는 마크 때문이었다.

[미라클 호텔, 오아시스]

돈이 있어도 못 간다는 미라클 호텔 레스토랑의 이름이었다.

임제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오아시스는 그가 지난해에 들렀던 곳이었다.

하지만 일정이 불규칙한 예능국의 특성상 예약을 해 놓고도 취소했던 식당이었다.

임제호는 슬쩍 도훈을 바라봤다.

‘대체 어떻게 알고?’

그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도훈이 말을 이었다.

“한지혜 피디에게 들었습니다. 이쪽 음식을 좋아한다고 해서 준비했습니다.”

“아.”

임제호가 입을 탁 벌렸다.

다급히 표정을 수습한 임제호는 도훈과 한지혜를 번갈아 봤다.

그러고는 한지혜에게 작게 속삭였다.

“와, 한지혜 피디, 진짜 눈치 빠르네. 역시 시사교양국이야.”

“아, 아니에요.”

한지혜가 당황한 듯 손을 흔들며 힐끔 도훈을 바라봤다.

그들의 모습에 도훈은 흐뭇하게 웃었다.

이번에 준비한 것은 한지혜의 얼굴을 살려 주기 위해서 준비한 선물이었다.

이것이 홍준수에게 가벼운 잽을 먹일 줄은 몰랐었다.

홍준수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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