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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84화 (84/250)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84)

임제호의 말에 한지혜가 고개를 숙였다.

“네, 알겠습니다. 저는 그만 일어나 볼게요.”

“그래, 알았어. 참, 다른 즙도 있는데…….”

한지혜는 더는 답하지 않았다.

뭐, 그리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사람이라고 판단하면 물불 안 가리고 챙긴다고 소문이 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챙긴다는 것이 다양한 건강식품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지혜는 재빨리 회의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 * *

한시라도 건강즙의 마수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덜컹.

쾅.

문을 열었는데 뭔가 걸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다급한 한지혜는 재빨리 회의실의 문을 닫았다.

“휴.”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꺼낸 한지혜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곳에서는 박창성 피디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것도 머리를 감싸 쥐고 말이다.

한지혜가 재빨리 다가가 물었다.

“박 피디님 괜찮으세요?”

“아, 간만에 별 봤네.”

박창성은 이마를 문지르며 빤히 한지혜를 바라봤다.

그 모습에 한지혜가 물었다.

“왜 그러세요?”

“아, 문을 그렇게 급하게 열면 어떻게 해요? 사람이 피할 틈을 줘야지.”

“문이요?”

“왜 모른 척해요? 내가 엿듣는 거 다 알고 갑자기 문 연 거 맞죠?”

“앗,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그런데 왜 엿들어요?”

“궁금해서 엿듣지 왜 엿듣겠어요. 그래도 혼나지는 않았네요. 저는 예능국에 온 첫날 진짜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았어요?”

“맞은 건 아니지만, 그 정도로 정신없이 깨졌거든요. 한 피디는 예능국이 처음이잖아요. 그래서 깨지면 도와주려고 기다리고 있었죠.”

“아…….”

한지혜는 새초롬하게 눈을 뜨고 박창성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예능국에서 지박령이라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하지만 자신을 챙겨 주려는 거니,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적군을 바라보듯 살기 띤 눈으로 바라보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이렇게 도와주려 하는 사람도 있으니 예능국도 그렇게 팍팍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때 박창성이 말했다.

“혹시 도와드릴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한지혜가 막 입을 열려다가 다급하게 말을 멈췄다.

자신이 예능국에 들어오기 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시사교양국이 남극이라면 예능국은 아프리카의 정글이란 말이었다.

남극의 생태계와는 다르게 정글의 생태계는 빠르고 변화무쌍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괜히 도와준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상의하다가는 기획안을 빼앗길 수도 있었다.

“저는 그만 가 볼게요.”

한지혜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러고는 핸드폰의 숫자 키를 눌렀다.

박창성은 떠나는 한지혜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내 도움은 안 받으려고 하네, 시사교양국에까지 소문이 난 건가? 해 줄 말이 아직 남았는데…… 어휴.”

그는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조용히 돌아섰다.

* * *

이틀 후.

도훈은 강시혁의 사무실에 들렀다.

건물로 들어간 도훈이 향한 곳은 역시나 연습실이었다.

연습실에서는 신서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원, 투…… 오케이, 거기서 턴.”

그녀는 지금 우시원과 서찬휘를 집중적으로 레슨하고 있었다.

그녀가 가르치고 있는 것은 지난번에 테스트 곡으로 쓰였던 아윌비백이었다.

덜컹.

문이 열리는 소리에 신서희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도훈이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있었다.

신서희와 눈이 마주친 도훈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한 기색을 띠었다.

“아, 방해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들켰네요. 진짜 도둑처럼 슬금슬금 들어온 건데…….”

“호호, 무슨 도둑이 그렇게 시끄럽게 들어와요?”

“다 제 수양이 부족한 탓이에요. 그런데 급하게 저를 부르신 이유가…….”

도훈은 말끝을 흐리며 신서희를 살폈다.

신서희는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용건은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 주겠다며, 빨리 와 달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얼굴을 보니 그렇게 다급한 용건 같지는 않았기에 의문이 생긴 것이다.

신서희는 의심 어린 도훈의 표정에 활짝 웃었다.

“지난번에 실장님이 주신 가사와 곡의 방향에 대한 답장이 왔어요.”

“아…….”

도훈은 입을 살짝 벌렸다.

얼마 전, 아윌비백의 작곡가가 작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상황을 전해 들은 도훈이 작사와 편곡까지 해서 보냈었다.

도훈이 입을 벌리자 신서희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어머, 왜? 입을 벌리고 그래요. 쇼크받은 건 난데요.”

어이없어하는 신서희의 모습에 도훈이 물었다.

“선생님이 왜 충격을 받으셨어요?”

“내 친구가 하는 말이 바로 그 작사가가 누구냐고 하네요.”

“마음에 안 드시는 부분이 있으신 건 아닌가요?”

도훈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자 신서희가 손을 내저었다.

“마음에 안 들면 누구냐고 묻겠어요? 내 친구가 하는 말이 누군가가 자기 뇌 속으로 들어와서 정리해 놓은 것 같대요. 뭐라고 했더라…… 맞다, 하드디스크를 조각 모음 한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원더풀이라고 몇 번을 외쳤어요.”

“아, 다행이네요.”

“대체 편곡은 누구한테 배운 거예요? 제 친구가 편곡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더라고요.”

“그건…… 그냥 독학했습니다.”

“제 친구가 천재라고 하던데…….”

신서희는 도훈을 보며 말끝을 흐렸다.

그 모습에 도훈이 손을 내저었다.

“헉, 저는 절대 천재가 아닙니다.”

이 말은 진심이었다.

전생에도 천재는 아니었다.

수없이 좌절하고 그 실패를 밑거름 삼아서 일어났던 도훈이었다.

어느 선까지 올라가자, 매니지 파트나 프로듀싱에 있어서 천재라는 소리를 듣긴 했어도 도훈의 기본기는 노력이었다.

그때 우시원이 달려왔다.

“헉, 실장 형 오셨어요?”

우시원이 고개를 숙이려 할 때 뒤쪽에서 서찬휘가 목덜미를 잡아챘다.

그러고는 자신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

“실장 형, 찬휘가 먼저 인사드리겠습니다.”

“야, 네가 먼저 인사하려고 무자비하게 잡아끌면 어떻게 하냐?”

“에이, 물도 위아래가 있는데 인사도 내가 먼저 해야지, 안 그래?”

“야, 그깟 생일 가지고 형 노릇 할 거면 평소에 밥이나 사던지.”

그들이 평소처럼 아옹다옹하자 도훈은 특유의 삼촌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내가 살 테니 기다리고 있어.”

“앗, 실장 형이 사 주신다고요?”

서찬휘가 너스레를 떨자 도훈이 맞받아쳤다.

“그래, 왜 그렇게 봐? 나 못 믿어?”

“믿죠. 연기도 잘하시고. 춤도 잘 추시고. 작사나 편곡까지 천재신데요, 헤헤.”

녀석이 실없이 웃자 도훈은 서찬휘의 머리를 헝클었다.

“너도 천재다. 그냥 편하게 다 같이 천재 하자.”

도훈의 말에 옆에서 가만히 있던 우시원이 안경을 슬쩍 올리며 말없이 웃었다.

그 모습에 도훈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짝.

“내가 저녁에 좋은 소식 가져올 테니 기다리고 있어.”

“좋은 소식이요? 혹시 나머지 멤버 영입이요?”

우시원이 귀를 쫑긋하고 물었다.

그 모습에 도훈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비슷하지.”

도훈은 그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사라진 도훈을 본 우시원과 서찬휘는 서로를 멍하니 바라봤다.

신서희는 둘의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

“보니까 선물을 한 보따리 싸 올 것 같은데…….”

“선물이요?”

우시원이 눈을 빛냈다.

사실 물질적인 선물은 필요 없었다.

지금은 데뷔를 위한 준비가 우시원에게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멤버 영입 때문에 강시혁이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것을 우시원도 알고 있었다.

영입에 박차를 가하려고 여기저기 알아보는 중이었다.

강시혁이 알아본 것은 타 기획사의 연습생들이었다.

방출과 데뷔의 경계선상에 있는 연습생들.

데뷔조에 들어가지 못한 만년 연습생들.

그중에 몇 명은 거의 영입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그 시점에 묘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

SBC에서 유레카의 아티스트를 무대에 올리지 않는다는 소문 덕분에 그들마저 발길을 돌렸다.

강시혁의 눈이 까다로운 것도 있지만, 그 소문 덕분에 지금 신입 멤버 영입은 소강상태였다.

우시원은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쩝.”

“야, 왜 입맛을 다시고 그래 배고파?”

서찬휘가 우시원의 등을 탁하고 쳤다.

그 뒤 당연히 추격전이 벌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신서희가 기분 좋게 웃었다.

별 기대 없이 온 한국이었다.

그런데 도훈과 만난 이후 계속해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그녀는 턱을 어루만지며 기대감 가득한 눈빛으로 도훈이 나간 문을 바라봤다.

* * *

그날 오후.

도훈은 한민국과 함께 MBS 예능국으로 출발했다.

MBS의 앞에서 출입증을 받은 도훈은 아무렇지 않게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띵.

멈춘 엘리베이터로 들어간 도훈은 무의식적으로 예능국이 있는 5층을 눌렀다.

그 모습에 옆에 있던 한민국이 물었다.

“실장님, 혹시 방송국에 와 보신 적 있어요? 아니, 예능국에 와 보신 적 있으세요?”

“처음인데.”

“그런데 왜 이렇게 집처럼 편안하게 다니세요. 저는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던데.”

“그러고 보니 민국이 네가 길치였지…….”

“아, 실장님. 길치는 실장님이죠. 그러니까 더 이상한 거고요. 어떻게 막힘 없이 그렇게 찾아가요. 이 일도 처음이잖아요. 혹시…….”

한민국이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그 모습에 도훈이 슬쩍 시선을 피했다.

생각해 보니 한민국의 의심은 타당했다.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한민국은 도훈의 기사였다.

도훈이 가는 곳에 한민국이 빠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제집처럼 편안히 예능국을 찾아간다?

그건 왠지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도훈은 아무렇지도 않게 태블릿을 꺼냈다.

“여기 봐.”

“네?”

“방송국 안내도 나와 있잖아.”

“아, 안내도…….”

한민국이 말끝을 흐리며 도훈을 바라봤다.

그것도 잠시, 한민국이 다시 말을 이었다.

“실장님한테는 또 이상한 게 있어요.”

“그게 뭔데?”

도훈이 한민국을 바라봤다.

이번 호기심은 진심이었다. 의심받을 만한 일이 있다면 고치는 것이 맞았다.

한민국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연예인들이 이렇게 많이 지나가는데 눈길도 안 주잖아요.”

“아, 난 또 뭐라고…….”

“그게 이상하지 않아요?”

“연예인 매일 보는 매니저가 다른 친구한테 눈 돌리면 우리 친구들은 어떻게 하냐. 시원이나 찬휘도 그렇고 지유도 그렇고 얼마나 서운해하겠어?”

“그거 설득력은 있긴 한데, 조금 이상하네요. 아까도 보니 다른 기획사 친구도 매의 눈빛으로 두리번거리던데요.”

“그새 동종 업계 사람들도 알아보게 된 거야?”

“뭐, 방문객 표찰에 눈에 띄지 않는 외모면 보통 매니저들이더라고요.”

“오호, 눈썰미 좋네.”

도훈이 웃자 한민국은 어깨를 쫙 폈다.

“오랜만에 칭찬 듣네요.”

활짝 웃은 한민국은 자신 있게 앞서 나갔다.

그 모습에 도훈이 외쳤다.

“그쪽 아니다, 민국아.”

“앗.”

한민국이 다급하게 돌아왔다.

잠시 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예상하고 미팅에 참석했던 도훈의 표정은 살짝 굳어졌다.

갑자기 수첩을 넣어 뒀던 안주머니가 뜨거워졌기 때문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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