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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82화 (82/250)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82)

곽수정의 말에 김민석 부사장이 물었다.

“그래서? 곽 대리는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지.”

“저는 정치적인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근거는?”

“조금 말씀드리기 뭐하지만…….”

곽수정이 말끝을 흐리자 김민석이 손짓하며 다음 말을 재촉했다.

“누굴 탓하자는 자리가 아니라 적을 알고 우리를 알기 위한 자리니까 편안히 말해 봐.”

“우리 유레카는 SBC에 어떤 존재일까를 생각해 보면 정답은 간단하다고 생각해요. SBC와는 현재 진행하는 일이 없지 않나요? 어떻게 보면 SBC로서는 부스러기도 안 되는…… 앗, 죄송합니다.”

곽수정은 재빨리 자신의 입을 막았다.

그 모습에 회의실에서는 잠시 웃음이 터졌다.

심각한 이야기지만, 곽수정의 당황한 표정이 그들의 긴장을 살짝 풀어 준 것.

그 후 이어지는 곽수정의 이야기는 간단했다.

별 볼 일 없는 유레카를 블랙리스트에 올려놓았다는 것은 누군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토론을 이어 나갔다.

도훈은 그들의 토론을 보며 머릿속에 점수를 매기기 시작했다.

자신이 쓸 인재를 추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이곳이 인사고과의 장이라는 것을 꿈에도 모른 채 계속 토론을 벌였다.

도훈은 조용히 수첩을 꺼냈다.

살생부의 이름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도훈은 그중 한 명의 이름에 시선을 고정했다.

[차명석.]

이도준의 대학 선배이자 끈끈한 정치적 동반자.

기업에서 정치라고 하면 조금은 우스울 수 있지만, 둘은 집안싸움에서 서로 백기사가 되어 준 사이였다.

한참 동안 이름을 노려보던 도훈은 수첩을 넘겨 맨 뒷장을 펼쳤다.

그곳에는 도훈만이 알아볼 수 있는 황금빛 글씨가 적혀 있었다.

[보상 수명: +2]

[보상 인벤토리: D, C, A]

초원의 집 촬영 현장에서 얻은 성과였다.

보상을 바라보던 도훈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다.

앞으로 계속 보상이 나온다면 자신의 수명은 무한대로 수렵하게 되어 있었다.

즉, 더는 시한부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거기에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가 더 있었다.

이 수첩에 나와 있는 메시지가 정확하다면 정해진 수명 이내에 죽을 일은 없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보상 인벤토리에 있는 알파벳은 어디에 쓰는지를 알 수 없었다.

도훈은 조용히 문자 하나를 보냈다.

* * *

같은 시간, MBS의 예능국 회의실.

이곳에서도 유레카와 마찬가지로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주제는 바로 요즘 유행하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케이블 오디션 프로그램의 한 획을 그은 슈퍼K스타의 대항마를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 회의였다.

임제호 CP는 미간을 좁히며 예능국의 피디들을 바라봤다.

“조금 색다른 거 없어? 판에 박힌 이야기만 하지 말고.”

“어차피 성공한 포맷에 대해서는 나와 있는 거 아닙니까, 그대로 베끼죠.”

“야, 장 피디. 너는 그만 좀 베껴. 지난번에도 케이블 방송 포맷 그대로 카피했다가 말아먹었잖아. 지금 중요한 건 스토리야. 겉은 롤스로이스인데 안은 경운기 모터 달아 놓으면 그게 팔리겠어?”

“아, 임 부장님도 너무 비유가 과하신 거 아닙니까?”

“야, 내가 네 체면 봐서 수위 낮춘 거야. 예능 프로그램 2%대는 딱 너 하나밖에 없어. 너는 일단 입에 지퍼 딱 채우고 있어라.”

임제호가 지퍼 채우는 시늉을 하자 회의실은 이내 조용해졌다.

일단 열기를 가라앉힌 임제호가 다시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은 의견 없어?”

임제호 CP는 눈을 가늘게 뜨고 누군가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막내 피디가 있었다.

임제호는 그 막내 피디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막내 피디의 이름은 한지혜였다.

본래에는 사건 수첩 소속의 피디였지만, 이번 프로젝트의 테스크 포스 팀에 임시로 합류한 것이다.

시청률에 대한 감각은 있지만, 예능국에서의 경험이 전무한 그녀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였다.

누군가의 핸드폰 소리가 들렸다.

띠링, 띠링.

계속 울려대는 핸드폰 소리에 피디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띠링, 띠링.

소리는 한곳에서 울리고 있었다.

모두는 그 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한지혜가 당황한 표정으로 핸드폰의 전원을 만지고 있었다.

그 모습에 예능국의 피디들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예능국에서는 초짜와 같은 그녀였다.

선배 피디 하나가 볼펜으로 한지혜의 앞을 톡톡 쳤다.

“한 피디, 시사교양국에서 예의는 안 가르쳐 줬나 봐.”

“아, 죄송해요, 선배님.”

한지혜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요즘 전화 올 곳이 없어 알림을 꺼두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

그때 임제호 CP가 손뼉을 친다.

“뭐, 실수할 수도 있지, 그렇게 무안을 주면 어떻게 아이디어가 나와?”

“그래도 예능국의 기강이…….”

“넌, 입에 지퍼 채우라고 했잖아.”

임제호가 다시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했다.

그 피디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는 예능국의 만년 오인자라 불리는 박창성이었다.

이인자도 아니고 오인자라 불리는 이유는 그의 이력 때문이었다.

경력만 보면 임제호에 이어서 두 번째지만, 그를 앞서 진급한 사람이 벌써 셋이었다.

주변 동료들은 그가 여섯 번째 서열로 밀려나리라는 것에 대해 이견이 없었다.

박창성도 다소 억울한 면이 있었다.

묘하게 망하는 프로그램만 전전했다는 점이었다.

자신이 아이디어를 낸 것도 아니고 다 만들어진 예능 프로그램에 들어가서 세컨드 역할을 했을 뿐인데, 몇 달 안 가서 종영되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끔은 프로그램이 방송을 타기도 전에 엎어지는 예도 있었다.

문제는 이 모든 일이 박창성 한 명에게 일어난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불운한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톡톡 튀는 행동 덕분에 회의 때는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할 때도 많았다.

임제호가 이렇게 단속하는 것도 어찌 보면 장난 반 진심 반이었다.

분위기가 다소 풀어지자 한지혜는 책상 아래에서 조용히 핸드폰의 화면을 눌렀다.

순간 울적한 표정을 하던 한지혜의 눈빛이 살아났다.

그것은 화면에 표시된 이름을 보고 나서였다.

[유레카 이도훈 실장.]

한지혜는 자신도 모르게 문자 메시지를 클릭했다.

한지혜의 귀에는 회의 내용이 들어오지 않았다.

단지 며칠 전 만났을 때의 도훈이 이야기한 것만이 귓가에 맴돌았다.

도훈은 지금의 상황을 정확하게 예측하였다.

앞으로 몇 년간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춘추전국시대가 될 것이라 했다.

사실 이것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도훈은 SBC와 MBS의 행보까지 정확하게 예측하였다.

SBC와 MBS가 케이블의 포맷을 그대로 카피해서 론칭할 것이라는 걸 한지혜는 상상하지 못했었다.

지상파와 케이블의 방향성은 사실 똑같다.

그것은 시청률을 최대한으로 올려 광고비를 뽑아야 한다는 점.

하지만 다른 점도 있었다.

그것은 자유도였다.

케이블이 지상파보다 방송 규제나 시청자가 가지고 있는 잣대에서 조금 더 자유로운 것은 사실이었다.

케이블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이 성공한 것은 어찌 보면 참가자들이 가지고 있는 그들만의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MSG를 흠뻑 뿌린 스토리.

오죽하면 악마의 편집이란 말이 나오겠는가?

그런 편집을 지상파에서 그대로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케이블에서 성공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지상파에서 성공시키려면?

그 해답을 도훈이 제시해 주었다.

지금 도훈과 나누었던 대화 내용이 그대로 예능국에서 흘러나오니 한지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더 웃긴 것은 시간에 딱 맞춰 문자가 온 것이다.

문자의 내용을 다 확인한 한지혜는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한지혜는 자신도 모르게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됐어!”

그 목소리에 회의실은 다시 한 번 술렁이기 시작했다.

한지혜를 감싸 주던 임제호도 이제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듯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쾅!

그 울림에 모두는 석상이 되었고 한지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들었다.

임제호 피디는 한지혜를 바라봤다.

“한 피디.”

“네?”

한지혜는 무슨 일인지 모른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자신이 소리를 질렀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 정도로 도훈의 문자에 집중하고 있었다.

임제호는 그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휴, 한 피디, 예능국으로 파견 나와서 적응하지 못하는 건 이해해. 그래도 창성이 말대로 예의는 지켜야지. 혼자 핸드폰 보다가 소리를 질러? 그걸 용납할 상사가 있다고 생각해? 여긴 방송국이야, 방송국. 그것도 국내 제일의 방송국.”

“…….”

“진검 승부를 앞두고 있는데, 몰래 문자질이나 하면서 분위기를 망쳐. 솔직히 말해, 업무상 문자야?”

“네, 업무상 문자 맞아요.”

“그래 업무상 문자일 리가 없지…… 지금 뭐라고 했어?”

“오디션 프로그램 포맷 때문에 시장조사를 좀 했거든요. 그게 지금에서야 도착해서…….”

한지혜는 쉬지 않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소리를 질렀다는 것을 알았다.

그 때문에 지금 분위기가 난장판이 되었다는 것도 알았다.

일단은 이 상황을 진정시키는 것이 순서였다.

한지혜의 변명에 임제호 CP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금 이 자리는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자리였다.

그런데 시장조사까지 해 왔다고?

이것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직원이 있다고?

이것도 마찬가지로 이해가 안 되었다.

예능국의 피디들은 자신만의 고집이 있기 마련이다.

묘한 곳에 꽂혀서 기획안을 올리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포맷을 밀어붙이기도 한다.

자신의 기획안에 대해서는 온몸을 불사르는 것이 예능국의 피디였다.

그런데 어떤 주제를 가지고 의견을 내보라고 하면 그 열기가 마술처럼 식었다.

그런데 예능국은 처음인 한지혜가 미리 자료까지 준비했다고 하니 임제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흠, 어디 한번 보자고.”

“잠시만요.”

한지혜는 가방에서 태블릿을 급하게 꺼냈다.

그러고는 화면을 잽싸게 톡톡 쳤다.

화면에서 자신이 원하는 자료가 뜨자 한지혜는 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지혜는 임제호가 보기 좋게 태블릿을 돌려 건넸다.

화면을 건네받은 임제호는 자료와 한지혜를 번갈아 바라봤다.

몇 장을 넘긴 임제호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건 짧은 시간 내에 정리한 내용이 아니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나아갈 길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다.

화면을 넘기던 임제호의 손이 멈췄다.

“한지혜 피디.”

“혹시 제가 잘못한 거라도…….”

한지혜는 살짝 눈치를 봤다.

이 자료의 내용은 자신도 입을 떡 벌린 내용이었다.

그만큼 설득력이 있었다.

그런데 임제호가 자료를 끝까지 보지도 않고 자신을 부른 것이다.

그것은 딱 한 가지 경우였다.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했다.

옆에서 둘을 지켜보던 피디들도 안쓰러운 표정으로 한지혜를 바라봤다.

누군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아, 또 깨지겠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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