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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79화 (79/250)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79)

어딜 가든 그룹의 센터를 찜해 놓을 만큼 뛰어난 외모였다.

조금 전 이곳에 폭탄 한 방을 떨어뜨리고 간 김현승에게 뒤지지 않는 외모였다.

소위 말하는 얼굴 천재가 바로 우시원이었다.

도훈은 동선 밖에서 턱을 괴고 리허설 장면을 바라봤다.

그때 옆에서 옅은 탄성이 들려왔다.

“아…….”

그 소리에 힐끔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김현승의 매니저 서민국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서민국이 여기에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도훈 때문이었다.

김현승이 촬영 현장에 떨어뜨리고 간 폭탄이 수류탄이라고 한다면 도훈이 제이슨 쪽에 떨군 폭탄은 핵폭탄이었다.

그야말로 초토화.

제이슨의 대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서민국에게 현장 상황을 보고하라고 했다.

서민국은 처음에는 이곳에 잠깐 남아 있다가 스태프들이 철수하면 대표에게 보고한 후 회사로 돌아가려고 했다.

한 명 있는 남자 배우가 사라졌으니 촬영이 중단되는 것은 불 보듯 훤했다.

그런데 상황이 묘하게 돌아갔다.

서민국은 처음에는 코웃음 쳤다.

그가 보는 김현승은 자신만의 독특한 아우라를 지닌 천재였다.

그도 김현승의 성격이 개차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배우라는 직업의 특성상 현장에서만 제 몫을 해 준다면 나머지는 자신이 커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김현승을 대신할 신인이 있다고?

그것은 불가능했다.

명품 백을 매던 사람이 어떻게 시장 골목에 있는 보세 메이커를 쓰겠는가?

항상 비즈니스석을 타던 사람이 어떻게 이코노미석에서 편안히 잠을 청하겠는가?

그는 자신의 배우인 김현승이라는 명품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우시원을 바라보자 그 환상이 깨진 것이다.

저건 인간계의 외모가 아니었다.

앵글의 중심에 서자 우시원은 더욱 빛을 냈다.

그가 김현승이라는 콩깍지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멍하니 우시원을 바라보고 있는 서민국의 모습에 도훈이 살짝 헛기침했다.

“흠…….”

그 소리에 서민국이 고개를 돌렸다.

“혹시 저 친구도 맡으신 겁니까?”

“네, 제 아티스트입니다.”

“아티스트요?”

“아이돌 지망생이거든요. 뭐, 곧 데뷔할 테지만요.”

“저 정도의 외모면 스크린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요?”

“뭐, 하나만 하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그렇긴 하네요.”

“잘생겼죠?”

질문을 던진 도훈은 씩 웃으며 다시 우시원을 바라봤다.

도훈은 서민국의 대답을 확인할 필요 없었다.

분명히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테니까.

그때였다.

멀리서 보기에도 우시원의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도훈은 재빨리 우시원에게 달려갔다.

감독이 디렉팅 중이긴 했지만, 급조된 상황이었고 우시원도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우시원에게 배역을 권한 이유는 하나였다.

아이돌이 되어서 무대 위에 서다 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더라도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도훈은 이번 일이 좋은 경험이 되리라 판단했다.

도훈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우시원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한번 해 보고 결정하는 게 어때?”

“이거 무대와는 다르게 묘하게 떨리네요.”

“내가 근래에 들은 얘기인데…… 어떤 일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영역에 아주 살짝 발을 들여놓는 거라네.”

도훈이 씩 웃었다.

물론 살생부로 쓰는 수첩에 나와 있는 문자였다.

그때 긴장이 풀렸는지 우시원이 살짝 웃었다.

“네, 명언이네요.”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정재웅이 끼어들었다.

“아서 클라크의 명언이죠.”

잠시 후.

정재웅의 외침이 촬영장에 울렸다.

“레디, 액션!”

카메라가 돌아가고 붐 마이크가 이지유와 우시원을 따라 움직인다.

그것도 잠시, 정재웅이 외쳤다.

“컷, 잠시만 자리에서 대기합니다.”

정재웅의 외침에 몇 안 되는 스태프들이 표정을 풀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실망감보다는 잘해 보자는 신호였다.

정재웅은 자리에서 일어나 앵글 가운데로 걸어갔다.

* * *

잠시 후.

모니터를 바라보던 정재웅의 한숨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딱 1% 부족하네. 그런데…….”

정재웅은 말을 잇지 못했다.

서찬휘까지 모두 투입한 상황에서 건질 만한 컷을 찾아보던 정재웅은 아쉬운 듯 몇 번이고 촬영분을 뒤적였다.

“감독님, 괜찮은 것 같은데요. 발음도 이 정도면 보통은 넘고요.”

같이 모니터를 바라보던 조연출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건넸다.

정재웅은 그이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모니터 속 우시원을 가리켰다.

“음, 자네 말이 맞아.”

“그런데 왜 그러세요? 그냥 쓰시든지 나중에 재촬영하시면 될 것 같은데요.”

“전체적인 그림도 괜찮고 마스크도 최고인데, 어딘지 모르게 바스트 샷부터가 너무 어색해서…….”

정재웅은 슬쩍 우시원을 바라봤다.

그때였다.

조연출이 고개를 갸웃하며 어딘가를 바라봤다.

그 모습에 정재웅이 물었다.

“어디를 그렇게 봐?”

“감독님, 어차피 촬영 접으실 거죠?”

“일단 여기서 더 끄집어낼 게 없으니 접어야지.”

“그럼, 한 컷만 다시 가 보는 것이 어때요?”

“우시원? 아니면 서찬휘?”

“아니, 저기 이 실장님이요.”

“이 실장님?”

“생각해 보세요. 자세히 보면 마스크도 배우 뺨칠 정도잖아요. 어색하지도 않고.”

“배역에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고 배우 하면 누구나 다 배우 하게?”

“아까 이지유 배우하고 대본 연습할 때 제가 옆에서 봤거든요. 그런데 발성하고 딕션이 신인 배우보다 나아요.”

“조연출이 보기에 그 정도라고?”

“그때는 어차피 배역이 정해져 있으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이 배역을 한번 부탁드려 보는 게 어때요? 밑져야 본전이잖아요.”

“음, 그런데, 응해 줄까?”

정재웅이 눈을 빛내며 도훈을 바라봤다.

제작자나 감독이 단역으로 출연하는 것은 어찌 보면 흔한 일이었다.

흔히 말하는 카메오는 유명인들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감독이나 제작자도 가끔 등장하기도 한다.

해외의 경우는 감독이나 제작자가 정기적으로 등장해 하나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자리 잡은 때도 있다.

물론 전제는 하나다.

그 배역에 완벽하게 녹아드는 것이다.

녹아들지 못하는 컷의 경우는 아무리 유명인이라도 편집에서 날아가기 마련이다.

유명 영화 시리즈에서 가면을 쓰고 등장했던 영국의 황태자가 너무 큰 키 때문에 편집에서 잘린 경우도 있다.

잠시 뒤.

정재웅이 고개를 끄덕이자 조연출은 대본을 말아 쥐고 도훈에게 달려갔다.

허겁지겁 달려오는 조연출을 보고 도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이세요? 혹시 다시 들어가야 하나요?”

“네, 한 컷만 더 가 보자는 의견이 나와서요.”

조연출은 자신의 의견이 아닌 척 딴청을 부렸다.

그 모습에 도훈이 물었다.

“그럼, 누굴 준비시킬까요? 아무래도 시원이가…….”

“죄송한데, 실장님이 직접 해 주시면 안 될까요?”

“네? 제가요?”

“우시원 배우와 서찬휘 배우의 경우에는 더 끄집어낼 수 없을 것 같아서요. 실장님은 진짜 회사원에, 나이도 딱 맞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제가…….”

“에이, 그렇게 빼지 마시고요. 이런 경우 많잖아요.”

“이런 경우라니요?”

“친구 오디션에 같이 갔다가 데뷔하고, 촬영장에 구경 왔다가 단역으로 데뷔하고요. 그런데 실장님의 경우는 대본까지 완벽하게 외우고 계시잖아요.”

“흠, 일단 마스크가…….”

“메이크업도 안 하시고 그 정도면 어디 가서 안 빠집니다. 그리고 이지유 배우의 약혼자는 지문에 대한민국의 가장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되어 있잖아요. 이 실장님보다 적임자는…….”

“왜 그러세요?”

“생각해 보니 평범하지는 않으시지만, 어쨌든 부탁드릴게요. 제작자이시니 이 정도 카메오 출연은…….”

조연출은 입에 꿀이라도 발라 놓은 것처럼 줄줄이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에 있던 강시혁이 도훈의 등을 떠밀었다.

“나도 이 실장이 하는 연기 한번 보고 싶은데 어떻게 하지?”

“와, 강 피디까지 나를 사지로 몰아넣네.”

도훈이 혀를 차자 조연출이 말을 이었다.

“이번 기회에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실 수도 있죠.”

“됐습니다.”

“아, 그래도…….”

“준비해 주세요. 이건 제 작품이기도 하잖아요. 감독님이 까라면 까야죠.”

“아, 그 뜻은 아니고요.”

“농담이에요.”

도훈이 손을 흔들자 조연출이 그제야 굳었던 표정을 풀었다.

조연출은 활짝 웃으며 정재웅 감독을 향해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그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도훈은 자신의 재킷을 힐끔 바라봤다.

다시 뜨거워지는 심장.

그 중심에는 반짝이는 수첩이 있었다.

자신의 배우를 위해서라면 연기든 노래든 직접 뛰라고 수첩이 주는 에너지라 생각했다.

이제는 수첩의 힘을 받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도훈이 이지유와 함께 앵글 중심에 서자 정재웅 감독이 다가와 물었다.

“리허설 없이 그냥 들어가도 되겠죠.”

“네, 괜찮습니다.”

“혹시 대본은…….”

“이지유 배우 상대하면서 외웠으니까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걱정되는 점이 하나 있는데요.”

“말씀하세요, 이 실장님.”

“제가 나온 필름 들고서 편집실에서 킥킥대면서 웃기 없습니다.”

“에이 그럴 리가요.”

정재웅은 손을 세차게 흔들었다.

그 모습에 도훈이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고 하던데…….”

“앗, 절대 아니니까. 편하게 하세요. 애드리브도 좋아요. 그냥 편하게…….”

그것도 잠시, 정재웅 감독이 표정을 바꾸었다.

“래디.”

정재웅 감독의 외침에 조연출이 카메라 앞에서 슬레이트를 들었다.

“씬 넘버 24, 3-1 들어갑니다.”

조연출의 슬레이트 치는 소리에 정재웅 감독이 외쳤다.

“액션.”

정재웅 감독의 목소리에 이지유와 도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사를 치면서 회전목마 쪽으로 가는 도훈과 이지유.

둘의 모습에 정재웅은 팔짱을 꼈다.

앞서 봐 왔던 세 명의 배우처럼 똑같은 대사와 똑같은 동작이 모니터에 그려졌다.

정재웅의 표정은 앞선 세 명의 배우를 바라볼 때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조금 다른 점이라고는 모니터로 상체를 점점 기울인다는 점이었다.

정재웅은 자신도 모르게 모니터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점점 다가가고 있었다.

마치 모니터 속으로 빠져들 것처럼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그것도 잠시 정재웅은 고개를 갸웃했다.

화면에서 뭔지 모를 위화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정재웅은 씬이 거의 끝날 때쯤에야 그 위화감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도훈 때문이었다.

앞서 봤던 사람들은 신인 배우라는 선입견을 품고 지켜봤다.

그 선을 기준으로 오케이와 NG를 결정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도훈의 대사와 동작을 보니 묘하게 그 기준이 높아진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도훈을 신인의 기준이 아닌 중견 연기자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도훈과 이지유의 연기가 끝났다.

정재웅의 사인이 안 떨어지자 이지유는 마지막에 나와 있는 지문의 동작을 계속 펼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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