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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77화 (77/250)
  •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77)

    정재웅이 팔짱을 끼고 있을 때 도훈이 음료수를 사 가지고 와서 그중 하나를 내밀었다.

    “일단 드시면서 말씀 나누죠.”

    “네, 감사합니다.”

    정재웅은 갈증이 났는지 캔을 따자마자 허겁지겁 들이켰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양을 들이켰는지, 정재웅은 몇 번 기침을 한 후 가슴을 두드렸다.

    사레들린 것인지 답답해서 두드리는 것인지를 알지 못할 정도로 난해한 표정을 짓는 정재웅 감독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정재웅은 조금 전 받은 통화 내용에 대해 늘어놓았다.

    정재웅의 말에 의하면 김현승이란 배우는 한마디로 고구마 같은 존재였다.

    김현승의 가장 큰 문제는 낯을 가리는 것이라 했다.

    그것도 여자 배우가 앞에 있으면 그 낯가림은 더욱 심해진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도훈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정재웅의 말이 끝나자 도훈이 말했다.

    “그러니까, 낯가림이 심해서 촬영장 분위기를 해치고 있다는 말이지요?”

    “네, 맞습니다, 단 두 번밖에 등장 안 하는 배우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촬영이 힘들 것 같습니다.”

    “그건 잘 판단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는 부탁드립니다.”

    “말씀하세요, 실장님.”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우리가 입은 피해는 받아 내세요.”

    “네?”

    “계약서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보면 분명히 명시되어 있죠.”

    “음, 사실은 그것 때문인데요. 아무래도 조용히 끝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그 친구를 어떻게 달래야 하나를 걱정하고 있거든요.”

    “달래다니요?”

    “그 친구의 뒷배가 좀 탄탄해서 이 바닥에서 일하자면…….”

    정재웅은 변명하듯 말을 늘어놓았다.

    그의 이야기는 간단했다.

    그의 뒷배가 보통이 아니기에 조용히 끝내고 싶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 감독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백이면 백, 투자자 유치를 꼽을 것이다.

    물론 지금 찍는 영화는 상업 영화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작품은 상업 영화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정재웅으로서는 김현승의 존재가 불편한 것이다.

    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고 싶었지만, 여기에서 자신의 주장을 계속할 수는 없었다.

    이 현장의 주인은 바로 정재웅이니 말이다.

    “그럼, 감독님 말대로 하세요. 그리고 그 연기 말입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재웅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 * *

    잠시 후.

    세트장에서는 소란이 일어났다.

    정재웅이 김현승의 매니저를 불러 사정을 이야기한 것이다.

    서민국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정재웅을 바라보고 있었다.

    “감독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서 매니저, 죄송하지만, 김 배우와는 일을 못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한 번 더 생각해 주시죠.”

    “죄송합니다, 제이슨에서 저희 작품에 신경 써 주신 건 알겠지만…….”

    정재웅은 슬쩍 말끝을 흐리며 서민국의 귀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러고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지난주에 펑크 났던 독립 영화 있죠? 그 감독이 제 후배예요. 거기에서도 김현승 배우가 사고를 쳤다더군요.”

    “흠…….”

    서민국이 헛숨을 들이켤 때였다.

    서민국의 뒤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민국이 형이 왜 감독한테 고개를 숙여요?”

    정재웅은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곳에서는 김현승이 정재웅 쪽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때 뒤쪽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쉬는 시간에 이것 좀 듣고 가시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도훈이었다.

    도훈은 오른손으로 핸드폰을 흔들고 있었다.

    정재웅과 김현승이 동시에 고개를 돌리자, 도훈이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천천히 걸어왔다.

    도훈은 김현승을 바라보며 은은한 미소를 띠었다.

    도훈과 시선이 마주친 김현승이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제가 감독님과 얘기하는 거 안 보여요?”

    녀석의 말투가 확 바뀌었다.

    도훈은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순간 도훈의 입가에서 희미한 미소가 피어났다.

    김현승의 모습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천상 연기자였다.

    평소의 모든 것이 연기니 말이다.

    그것도 상대를 맞추어 가면서 말이다.

    도훈의 웃음이 기분 나쁜지 김현승이 목소리를 높였다.

    “왜 사람 성질을 돋우지? 내 한마디면 너 같은 매니저는 그냥 이거야.”

    김현승이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에 도훈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김현승의 배경을 보면 이해를 못 하는 것도 아니었다.

    김현승의 아버지는 국내 굴지의 방위산업체의 대표였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의 어머니.

    그의 집안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은 그의 어머니가 전에 장경자를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냥 인사를 하러 온 것은 아니었다.

    돈을 빌리기 위해 간이라도 빼놓을 듯 아양을 떨던 그 표정이 도훈의 기억 속에는 선명했다.

    하지만 장경자가 아니라, 이 바닥에서의 그녀는 꽤나 입김이 셌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김현승이 망가진 것이 어머니 때문은 아니었다.

    김현승이 망가진 것은 그의 여자 친구 때문이었다.

    여자 친구 하나 때문에 어떻게 배우가 망가지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김현승의 경우는 독립 전에는 어머니에게 의지했고 독립한 후에는 여자 친구에게 의지했다.

    사소한 결정까지도 말이다.

    문제는 김현승의 여자 친구가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딱 잘라서 말하면 가스라이팅의 천재라고 할까.

    전생의 기억으로는 그중 승자는 없었다.

    김현승이나 여자 친구나 모두 연예계에서 사라졌으니 말이다.

    잠시 상념에 잠겼던 도훈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네가 누군데?”

    “나? 그걸 지금 너한테 말해 줄 의무가 있나?”

    “흠…….”

    도훈이 살짝 관자놀이를 눌렀다.

    아무래도 본래의 성격이 막장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무리 막장이라고 해도 신인 배우가 여기에서 이렇게 깽판을 치는 건 이해가 안 되었다.

    도훈은 할 수 없이 녀석의 발작 버튼을 누르기로 했다.

    도훈이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입을 열었다.

    “마마보이.”

    말을 마친 도훈은 슬쩍 팔짱을 꼈다.

    마마보이는 녀석의 역린이었다.

    김현승은 모든 것을 가졌지만, 모든 것을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뭐, 뭐라고?”

    김현승의 눈이 커졌다. 동시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도훈은 그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괜찮은 집안에서 태어나서, 아무 걱정 없이 학교도 잘 다녀, 해 달라는 건 엄마가 다 해 줘, 거기에 외모까지 타고났네…….”

    “지금 대체 뭐라는 거야.”

    “그 정도의 배경과 외모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건 맞아. 그런데 왜 그런 재능을 낭비하는 거지?”

    “대체…….”

    “내가 하는 얘기 끝까지 들어, 사실 나는 마마보이까지는 인정해 줄 의향이 있어. 그런데 왜 엉뚱한 사람한테 휘둘려서 남들 인생을 흔들어 놓냐고.”

    “내가 누굴 흔들어 놨다고 그래?”

    “여기 있는 모든 사람.”

    도훈은 말을 끊고 고개를 돌렸다.

    붐 마이크를 든 채 어깨를 떨고 있는 막내를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저기 있는 저 친구 보여? 네 목소리 하나 담으려고 20분째 마이크를 들고 있어. 힘이 남아돌아서 그런 줄 알아? 작품 하나에 이름 들어가는 게 우리한테는 훈장과 같거든. 배우의 얼굴에 가려서 보이지도 않을 그런 훈장 말이야.”

    “…….”

    “저기 촬영 기사분을 봐, 너 하나 잡으려고 앵글을 보면서 눈도 깜빡이지 않아.”

    “…….”

    “우리 이 배우도 마찬가지야. 혹시라도 촬영장에서 NG라도 낼까 봐, 어제 잠도 못 자고 대사를 외웠어. 그 대사가 그리 길지도 않은데 말이지. 그런데 너는 뭔데 매니저도 아닌 엉뚱한 사람에게 코치를 받아.”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왜 내 앞에서 헛소리를…….”

    “일단 닥치고 이것부터 들어 봐.”

    도훈은 들고 있는 핸드폰을 눌러 녹음 파일을 재생했다.

    ―……그래, 알았어. 꼭 그렇게 할게. 알았다니까, 대본을 수정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고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안심해. 그래…….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에 김현승이 눈을 크게 떴다.

    도훈은 아무렇지도 않게 김현승의 앞을 지나쳤다.

    그러고는 서민국의 앞으로 다가갔다.

    “서 실장님.”

    “네, 이 실장님.”

    눈을 크게 뜨고 도훈을 바라보는 서민국.

    정재웅 감독과 주변 조연출은 마른침을 삼키며 바라봤다.

    그때 도훈이 말을 이었다.

    “김현승 배우가 제이슨의 지시를 받고 저러는 건가요?”

    “네?”

    “이번이 처음이 아니죠?”

    “…….”

    “뭐, 저 정도의 외모와 평균 이상의 연기력이면 언젠가는 뜨겠죠. 그런데 김현승 배우가 지나간 곳에 상처받은 사람들은 어쩔 건가요? 우리 이지유 배우만 해도 김현승 배우가 이 상황에 몰입을 못 하는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고 착각하고 있어요.”

    도훈은 손가락으로 이지유를 가리켰다.

    도훈과 시선이 마주친 이지유는 깜짝 놀라 손을 내저었다.

    그것도 잠시 고개를 푹 숙였다.

    도훈의 지적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정여진과 연기할 때와는 전혀 다른 어색함 때문에 자신이 뭘 잘못했나를 돌이켜 보고 있는 중이었다.

    거기에 더해 자신감은 바닥을 찍었다.

    도훈이 다시 서민국을 바라봤다.

    “김현승 배우가 온 지 딱 두 시간 만에 현장이 초토화됐습니다.”

    “…….”

    서민국은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도 제이슨에서 김현승 배우를 밀어주는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그건…….”

    “배경 때문인가?”

    “자, 잠시만요, 이 실장님. 그건 오해입니다.”

    “혹시 김현승 배우의 여자 친구분이 제이슨 직원인가요?”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여기 녹음된 내용을 보면 엄마도 아니고 여자 친구한테 코치를 받더군요. 엄마한테 독립하고 나서는 여자 친구라…….”

    “음, 그 점은 죄송합니다.”

    “사과는 법정에서 받도록 하죠.”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입은 피해는 제이슨 측에 청구하겠습니다.”

    그때였다.

    김현승이 끼어들었다.

    “청구는 무슨 청구? 이깟 독립 영화 촬영장에서 입은 피해가 얼마나 된다고 그래. 몇백? 아니면 몇천? 그거 물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내 목소리 녹음한 건 책임져야 할 거야.”

    “누구 목소리?”

    “누구 목소리라니? 내 목소리 녹음했잖아.”

    “내가 언제?”

    “방금 했잖아. 그러니까 그건 네가 책임지라고.”

    “나는 네 목소리를 녹음한 게 아니라, 내가 통화하고 있는 도중에 네 목소리가 끼어든 것뿐인데. 그런 통화는 조금 조심했어야지. 그리고 피해액이 몇 푼 안 될 거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많을걸?”

    도훈이 씩 웃으며 김현승을 바라봤다.

    후광이 보일 정도로 배우의 아우라를 뽐내는 친구였다.

    그런데 그런 배우가 자신의 재능만 믿고 촬영장을 초토화시킨다, 그것은 애초에 말도 되지 않았다.

    그것도 자신의 신념이 아니라 타인의 말 한마디에 말이다.

    김현승을 보고 웃던 도훈은 조용히 핸드폰의 전송 버튼을 눌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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