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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76화 (76/250)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76)

그렇게 서로 자신의 편을 찾아가듯 진영을 맞췄다.

도훈은 준비된 파라솔 옆에 이지유를 앉히고 시원한 생수를 건넸다.

“이 배우, 수고했어.”

“수고는요, 뭘. 그런데 실장님…….”

이지유가 울 듯한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

그 모습에 도훈이 재촉하듯 물었다.

“그냥 편하게 말해 봐.”

“그러니까…… 제가 매력이 없는 걸까요?”

“그게 무슨 말이야? 이지유가 왜 매력이 없어? 그 매력으로 데뷔도 하고 광고도 찍고 스크린에 얼굴 비추는 거 아닌가?”

“그게 아니라, 저 배우님이 집중을 못 해서 그렇죠. 뭔가 여자로 안 보는 느낌이 들어서요.”

“그건 지유 잘못이 아니야.”

도훈이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자 이지유의 눈이 반짝인다.

“정말로요?”

“그래, 가끔 연기해서는 안 되는 인간이 있거든…….”

“네?”

“그 얘기는 거기까지.”

그때였다.

도훈의 핸드폰이 울렸다.

지이잉, 지이잉.

도훈은 재빨리 자리를 벗어나 스태프들에게 방해가 안 되게 전화를 받았다.

촬영 중이 아니라도 여기는 엄연한 일터.

라인 안에서 전화를 받는 것은 감독과 조연출에 한정된다.

전화를 받고 온 도훈이 이지유에게 말했다.

“지금 강시혁 피디랑 시원이가 온다네. 참, 찬휘도.”

“아…….”

“혹시라도 저 친구가 불편하면 말해.”

“왜요?”

“찬휘나 시원이를 쓰지, 뭐.”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감독님하고 작가님이 다 정한 건데, 배우를 바꾸겠다는 말씀이에요?”

“뭐, 가능한 이야기지, 배우가 제 몫을 못 한다면 말이야.”

“설마요, 명색이 제이슨에서 추천한 배우잖아요.”

이지유는 손을 흔들었다.

도훈은 조용히 웃기만 했다.

도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김현승이 걸어간 곳으로 향했다.

얼마 가지 않아 도훈은 김현승이 있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김현승은 열심히 통화 중이었다.

누군가를 설득하듯 손짓을 해 가면서 열심히 설명을 이어 가는 김현승.

도훈은 쫑긋 귀를 세웠다.

그러고는 도훈도 통화하는 척 핸드폰을 꺼냈다.

김현승은 도훈이 근처에 있는 것도 모른 채, 통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 그렇다니까. 아무 일도 없었어. 그런데 감독님이 지금 화가 많이 나셨어…… 아니, 그런 일은 없어. 그런데 약간의 접촉은 필요할 것 같아. ……하, 안 된다고? 알았어.”

옆에서 그의 통화를 듣던 도훈은 조용히 정재웅에게 향했다.

변한 것이 없다는 걸 확인했으니,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정재웅에게 거의 도착했을 때였다.

지이잉, 지이잉,

재킷 안쪽에서 진동이 울렸다.

도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핸드폰은 지금 오른손에 들고 있었으니 안쪽에서 울릴 만한 물건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도훈의 머릿속에 살생부가 떠올랐다.

도훈은 재빨리 수첩을 꺼냈다.

수첩의 맨 뒤가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다.

도훈은 재빨리 수첩을 넘겼다.

다른 글자는 그대로인데 새로운 문장이 하나 나와 있었다.

[가능의 한계를 알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불가능한 영역에 살짝 발을 들여놓아 보는 것이다. 보상: ??]

도훈은 걸음을 멈추고 수첩을 뚫어질 듯이 바라봤다.

이 문장은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명언이었다.

불가능한 영역이라…….

도훈은 불가능한 영역이란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 문장이 의미하는 건 과연 뭘까?

그때 정재웅 감독의 목소리가 귀에 울렸다.

“이 실장님, 거기서 뭐 해요.”

정재웅의 목소리에 도훈은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서는 정재웅이 손을 내밀고 있었다.

도훈이 멀뚱히 보고 있자 정재웅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실장님, 아이스바 싫어하세요?”

도훈은 그제야 정재웅의 손에 있는 아이스바를 보고 있었다.

“이거, 저 주시는 거예요?”

“네, 김 배우 매니저가 가지고 왔어요.”

“에이, 감독님이 하나 더 드시지.”

“이 실장님은 그냥 실장이 아니시잖아요. 그러니까 감독인 제가 직접 챙기는 게 맞죠.”

“하하, 감사해요.”

도훈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웃자 정재웅이 말했다.

“일단 가시죠, 이제 다시 리허설에 들어갈 겁니다.”

정재웅은 촬영 장소로 도훈을 안내했다.

* * *

잠시 후.

정재웅 감독이 앵글의 중심으로 걸어가 두 배우를 향해 디렉팅을 시작했다.

“김 배우는 아까처럼 주눅 들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이 배우는 조금 더 밝은 분위기로…….”

“네, 명심할게요, 감독님.”

“여기부터는 두 배우에 대한 공통적인 사항인데…… 동선은 이쪽에서부터 시작해서…… 여기에 멈출 거야. 그때 회전목마가 돌 거고.”

정재웅은 동선에서부터 그들의 대사 톤까지 하나하나를 지시했다.

그 지시에 김현승이나 이지유 모두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훈은 그들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리허설에서부터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시작된 리허설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속담에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고장 난 시계도 하루 두 번은 맞는다고 말이다.

그런데 김현승은 고장 난 시계가 아니었다.

김현승이라는 분침과 시침은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그들의 리허설이 끝나자 스태프들은 장비를 다시 한 번 점검했다.

조연출은 스크립터를 넘기며 나머지 스태프들에게 외쳤다.

“5분 뒤에 슛 들어가겠습니다. 다들 준비해 주세요. 막내는 어깨 좀 풀고.”

“네, 고마워요, 형.”

붐 마이크를 잡고 있던 막내가 어깨를 푼다.

지금 여기서 가장 힘든 것이 붐 마이크를 든 막내였다.

아스팔트가 녹을 것 같은 이 무더위에서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린 붐 마이크를 앵글 밖으로 올려 잡고 있다는 것은 곤욕일 것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그들의 모습에 도훈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

도훈이 미소 짓는 동안 조연출은 현장을 누비며 장비를 체크했다.

정확히 5분이 지나자 정재웅 감독이 눈을 빛냈다.

“레디.”

그 목소리에 스태프들은 손가락을 말아 쥐었다.

그들의 모습을 확인한 정재웅 감독이 외쳤다.

“액션.”

조연출이 스크립터를 치고 빠지자 이지유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김현승을 바라봤다.

“오빠, 여긴 무슨 일이야?”

“그냥…….”

살짝 입술을 달싹이는 김현승.

그 모습에 이지유가 한 발 다가섰다.

“에? 놀이공원에 사람이 하나도 없네.”

주변을 슬쩍 둘러보는 이지유는 빨리 할 말을 해 보라는 듯 살짝 김현승을 바라봤다.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이지유의 표정.

그때 나란히 걷던 김현승이 멈췄다.

탁.

그가 걸음을 멈추자 뒤쪽에 있던 회전목마가 천천히 돌아간다.

그 모습에 이지유가 입을 벌렸다.

“앗, 아무도 없는데 회전목마가 돌아가네…….”

이지유가 연기하는 것은 완벽한 내숭녀.

이지유는 지금 자신이 프러포즈를 받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알고는 있지만, 기대 가득한 표정을 억지로 짜내는 모습을 보여 줘야 했다.

반면 김현승은 이지유에게 깜짝 선물을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스크린에서 보여 줘야 했다.

그들의 연기를 바라보던 도훈은 입맛을 다셨다.

이지유의 연기는 정여진을 만나고 완벽하게 바뀌었다.

이 정도라면 연기 못한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김현승의 연기도 나쁘지는 않았다.

도훈은 김현승의 장점을 확실히 알았다.

그것은 외모.

그는 외모가 연기력을 커버해 주고 있었다.

그렇다고 연기가 부족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눈에 띄지도 않지만, 빠지지도 않은 실력의 배우였다.

이 정도라면 첫 큐에 오케이 사인이 날 것이 분명했다.

도훈이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때 그들의 대사는 막바지를 향하고 있었다.

지금은 김현승이 회전목마에 달린 선물 상자를 낚아채는 장면.

회전목마를 바라보던 김현승이 유니콘 뿔에 매달려 있는 조그만 상자를 낚아챘다.

탁.

“어라? 왜 여기에 이런 게 있지?”

“앗, 그게 뭐야?”

이지유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자 김현승이 답했다.

“그러게, 한번 열어 봐.”

“열어 봐도 될까?”

살짝 몸을 꼬는 이지유, 그것도 잠시 상자를 열어 본 이지유가 눈을 크게 떴다.

상자에 들어 있는 것은 반지.

이지유의 눈빛이 반짝인다. 하지만 여전히 모르는 척 김현승을 바라본다.

김현승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상자에서 반지를 빼냈다.

이지유의 손을 잡고 반지를 끼워 주는 김현승.

이제 김현승의 대사는 끝났다.

이지유의 대사만 남겨 놓은 상태.

반지를 낀 이지유의 마지막 연기가 시작된다.

“오빠, 너무 예뻐…….”

자리에서 방방 뛰던 이지유가 김현승의 목을 감싼다.

조금은 과격하게 김현승을 끌어안는 이지유.

정재웅 감독의 사인이 떨어지기 바로 전이었다.

김현승이 다급하게 뒷걸음쳤다.

살짝 놀란 이지유가 표정을 숨기고 다시 다가간다.

“오빠.”

지금부터는 애드리브였다.

“…….”

김현승이 다시 뒷걸음쳤다.

이지유가 못 참겠다는 듯 눈짓한다.

왜 그러냐는 신호였다.

하지만 김현승은 고개를 흔들며 계속 뒷걸음쳤다.

이제 벽까지 김현승이 몰린 상태.

그때 정재웅 감독의 외침이 울렸다.

“컷.”

목소리에는 극도의 분노가 담겨 있었다.

NG인지 오케이인지 말 안 해도 알 상황.

황당하다는 듯 김현승을 바라보던 정재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재웅은 콧김을 내뿜으며 걸어가더니 김현승 앞에 섰다.

정재웅이 그를 쏘아봤다.

김현승도 달리 할 말은 없는지, 시선을 피했다.

정재웅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김 배우, 연기하기 싫어?”

“죄송합니다, 감독님. 자꾸 몰입이 안 돼서요. 혹시 상대 배우와 거리 두기를 좀 하면 안 될까요?”

“뭐, 거리 두기?”

“아무래도 너무 가까이 붙으면 제가…….”

“휴, 지금 말 같은 소릴 해. 남자가 자진해서 프러포즈하는 장면이야. 그런데 여기에서 남자가 빼는 게 말이 돼? 거기에 낯가림이라니…….”

그때였다.

조연출이 정재웅의 핸드폰을 들고 뛰어왔다.

“감독님.”

“아, 지금 전화 받을 정신이 어디 있어.”

“아니, 중요한 전화랍니다.”

“어딘데?”

“저기…… 박 감독님.”

“이리 줘 봐.”

핸드폰을 낚아챈 정재웅이 통화를 하며 김현승을 쏘아봤다.

그것도 잠시, 고개를 갸웃한 정재웅이 핸드폰을 가린 채 조연출에게 말했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가자고. 10분 뒤에 모이라고 해.”

“알았습니다.”

조연출이 손을 흔들며 스태프들에게 정재웅의 지시를 전했다.

정재웅은 핸드폰을 든 채 촬영 장소에서 조금 떨어진 나무 그늘 쪽으로 걸었다.

정재웅이 돌아오지 않자 도훈은 나무 그늘 쪽으로 갔다.

그곳에는 정재웅이 비 맞은 강아지처럼 처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에 도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그게…….”

정재웅은 말끝을 흐리며 입술을 달싹였다.

그 모습에 도훈이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없어요, 감독님. 그냥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김현승 배우 때문에 상의드리려고요.”

“그러지 않아도 김 배우에 대해서 할 말이 있었는데 잘됐네요.”

“앗, 실장님도요?”

“네, 저도 마침 말씀드릴 게 있었어요. 그럼 잠시 자리를 좀 옮기실까요?”

도훈이 고개를 돌려 유원지의 휴게실을 바라보자 정재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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