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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75화 (75/250)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75)

연기는 처음이지만, 많이 알려진 얼굴일 경우 나올 법한 요구였다.

그것도 대중의 시선을 한눈에 받는 그런 연예인 말이다.

도훈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감독님, 혹시 아이돌을 섭외해 오신 거예요?”

“아이돌 아닌데요.”

“네? 그런데 왜 그런 요구를 해 온 겁니까?”

“모르겠어요, 매니저가 좀 깐깐한가 봐요.”

“소속사가 어딘데요?”

“제이슨 기획이요.”

“제이슨 기획이라…….”

도훈은 옛 기억을 더듬어 봤다.

제이슨이라면 배우 전문 기획사였다.

배우 풀은 그렇게 크지 않지만, 탄탄했던 기획사.

그것이 도훈의 머릿속에 떠오른 제이슨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기획사가 망한다.

그것도 배우 하나 때문에 말이다.

이름이 뭐였더라?

한때 영화계에서 주목받았던 배우로 기억하는데, 좀처럼 생각나지 않았다.

도훈은 설마설마하며 정재웅에게 물었다.

“감독님, 혹시 그 배우 이름이 뭐예요?”

“김현승이요, 예명도 아니고 본명이라고 들었어요.”

“김현승.”

도훈의 목소리는 평소와 확연히 달랐다.

옆에 있던 이지유가 놀라서 재빨리 물었다.

“혹시 아는 사람이에요?”

“…….”

도훈은 대답 대신 눈을 빛냈다.

김현승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혼자만 자폭한 게 아니라 소속사까지 물귀신처럼 나락으로 떨어뜨린 사건의 주인공이었다.

뭐, 잘생긴 외모 덕에 앞으로 몇 년은 잘나간다지만, 김현승의 추락은 필연적이었다.

그런데 왜 그 친구가 초원의 집에 출연한다는 것인가?

전생에는 엔딩 크래딧에 이름이 없던 친구였다.

아마도 자신의 투자가 배우 섭외에 불을 댕긴 것 같았다.

아무리 신인이라도 제이슨 정도가 이런 독립 영화에 배우를 내줄 리 없었다.

자신이 투자하고 정여진에 이지유까지 캐스팅되자 판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건 그것대로 좋다고 생각했는데 김현승 같은 친구가 굴러들어 올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도훈의 표정이 심각해 보이자 정재웅은 불안한 듯 마른침을 삼켰다.

감독이 촬영 현장의 제왕이라면 투자자는 촬영 현장의 옥황상제라고 보면 된다.

정재웅이 재빨리 물었다.

“혹시 그 신인이 마음에 안 드시는 겁니까?”

“감독님 캐스팅하실 때 계약은 확실하게 하셨죠?”

“네, 그때 실장님이 주신 계약서에 근거해서 계약했습니다.”

“네, 잘하셨습니다.”

도훈이 활짝 웃자 정재웅이 고개를 갸웃했다.

투자 계약을 할 때 도훈은 계약서 한 장을 내밀었었다.

그 계약서는 분명 배우에게 유리한 계약서였다.

그리고 스태프들에게도 유리하고 말이다.

신인 배우를 싫어하는 눈치인데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였다.

멀리서 검은색 밴 한 대가 천천히 다가왔다.

촬영 라인을 20m 정도 남기고 멈춘 밴에서 훤칠한 키의 사내가 내렸다.

스태프들이 그를 보고 눈을 크게 뜬다.

그 사내는 촬영장으로 오지 않고 밴의 뒷문을 연다.

순간 스태프들의 입이 벌어졌다.

처음 내렸던 사내는 매니저였고 김현승은 이제야 내린 것이다.

현장에서 유일하게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도훈밖에 없었다.

신인 배우에게는 파격적인 대우였다.

저 정도의 아우라를 지니고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김현승이 성큼성큼 다가와 정재웅에게 허리를 숙인다.

“감독님 안녕하십니까.”

듣던 것과는 달리 예의 바른 태도에 정재웅이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히 지난번에 봤던 친구였다.

그때는 동네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외모로 봤는데, 메이크업을 마친 김현승은 180도 달랐다.

정재웅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바라봤다.

정재웅은 스타를 누구보다 많이 만나 본 사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재웅은 CF와 뮤직비디오를 오가며 작업을 하던 감독이었다.

광고에 나오는 것은 선택받은 스타.

그 스타 중에서도 탑 티어라 불리는 이들과 주로 작업을 했던 정재웅이였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김현승은 그 스타들에 못지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정재웅이 멍하니 있자 김현승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혹시 어디 편찮으신 데라도…….”

“아니야, 잘 왔어.”

정재웅이 손을 내저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참, 김 배우가 우리 김 작가님한테 연락했어?”

“연락이라니요?”

“대본 바꿔 달라고 말이야.”

“아, 저는 그런 적 없습니다. 아마 오해 같네요.”

김현승이 미안한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그 모습에 정재웅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렇게 알고 있을 테니 오늘 잘해 보자고.”

그때 그의 옆에 있는 김현승의 매니저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감독님, 이건 저희 제이슨에서 준비한 커피입니다. 이 얼음 그대로 가져오느라 에어컨을 아주…….”

그는 입에 버터라도 바른 것처럼 술술 아부를 늘어놨다.

그의 말에 정신을 차린 정재웅이 손짓했다.

“잘 마실게요. 혹시…….”

“다른 분들 것도 준비했습니다.”

허리를 숙인 매니저는 쏜살같이 스태프들 사이를 누비며 아이스커피를 나눠 줬다.

그 모습에 도훈이 혼잣말을 뱉었다.

“일 잘하네.”

순간 한민국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도훈을 바라봤다.

“에이, 저한테는 왜 잘한다는 말 한마디 없으세요?”

“한 매니저는 원래 잘하잖아. 꼭 말을 해야 알아? 이제는 눈빛만 봐도 알 때가 됐잖아.”

“하긴, 전에도 눈빛만 봐도 알았어요. 그런데 칭찬하는 눈빛이 아닌데 어떻게 합니까?”

“한 매니저가 이제 눈칫밥이 제법 쌓였나 봐.”

도훈이 씩 웃자 한민국이 고개를 기울이며 묻는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사람 마음속까지 다 알고 말이야.”

“헉, 정말이셨어요?”

한민국이 눈을 크게 뜨자 도훈이 손을 내저었다.

“농담이야.”

도훈이 씩 웃을 때였다.

그들과 열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서는 이지유와 김현승이 리허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한 촬영 현장이었다.

도훈은 김현승이라는 시한폭탄이 언제 터질지 궁금했다.

차라리 오늘 터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두 컷밖에 안 되지만, 그를 몰아내는 것이 이번 작품에는 이롭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분위기가 생각보다 좋았다.

혹시 역사가 바뀐 것일까?

도훈이 일으킨 작은 날갯짓으로 연예계 전반에 변화가 생긴 것일까?

도훈이 잠시 상념에 빠져 있을 때였다.

김현승의 매니저가 도훈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씩 웃으며 도훈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김현승 배우 매니저 서민국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지유 배우 매니저 이도훈이라고 합니다. 제 명함도 받으시죠.”

명함을 교환하고 둘은 서로의 명함에 적힌 직급을 힐끔 확인했다.

서민국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실장이시면 대충 이쪽에서 이삼 년은 계셨을 텐데…….”

“처음 보는 얼굴이라서 이상하다는 거죠? 저도 광고 쪽에 있었거든요. 아마 그래서 마주친 적이 없었을 겁니다.”

도훈이 씩 웃었다.

도훈의 말은 반쯤은 사실이었다.

광고 모델을 데리고 촬영장에 간 것은 아니지만, 광고를 담당한 것은 맞았다.

주로 광고주의 입장에서 담당했지만 말이다.

도훈의 설명에 서민국이 뒷머리를 긁적인다.

“그렇겠네요, 저도 배우만 담당하다 보니 드나드는 곳이 그렇게 다양하지는 않습니다.”

그때 한민국이 명함을 꺼내며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민국이라고 합니다. 로드예요.”

“아, 로드시구나. 그러고 보니 저랑 이름이 똑같네요.”

“하하, 정말 똑같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에이, 부탁은요. 저도 삼 년밖에 안 됐어요.”

“저는 연수가 아니라 달수로 계산해야 하네요. 얼마 안 돼서 그런지 정신이 없네요.”

“처음에 다 힘들어요. 그런데 자기가 맡은 배우나 아티스트가 커 나가는 걸 보면 왠지 가슴이 웅장해지죠. 아직은 그 느낌 모르시겠지만요.”

서민국의 말에 도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실장 직급에 기본은 되어 있는 매니저 같은데, 도훈의 기억에는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촬영장에 도착해서 지금까지 보인 모습만을 보면 이 직종에 애착을 두고 있는 것 같은데 조금 이상했다.

전생의 경험 때문인지 도훈은 슬쩍 보기만 해도 이 바닥에 남아 있을 사람인지 떠날 사람인지를 구분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혹시?

도훈은 힐끔 김현승을 바라봤다.

김현승을 바라보던 도훈이 미간을 좁혔다.

아무리 리허설이지만 김현승의 태도가 너무 조심스러웠다.

김현승과 이지유는 지금 연인 사이를 연기하고 있다.

리허설이라지만 둘 사이에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지유의 손이 김현승의 몸에 닿으려 할 때 그는 뒤로 주춤 물러난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이지유를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더니 역시 개 버릇 남 못 준다는 속담이 맞았다.

역사는 바뀐 게 없는 것 같았다.

도훈은 재빨리 서민국에게 물었다.

“혹시 매니저님이 대본 수정해 달라고 요청했나요?”

“무슨 수정이요?”

“아까 감독님께 물어봤는데, 작가님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대본 수정 요청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설마요, 신인 배우가 어떻게 그럽니까. 그건 말도 안 되죠.”

“그렇죠? 그런데 만약에 말입니다.”

“네, 말씀하시죠.”

“신인 배우가 그러면 제이슨에서는 어떻게 합니까?”

“저희 배우가 그럴 리는 없지만…….”

“뭐, 만일이라는 가정이니 편히 말씀해 주세요.”

“매니저라는 게 배우나 아티스트에게는 형이면서 아빠 같은 존재 아닙니까. 그런 실수를 해도 어떻게 합니까, 내 새끼인데……. 잘 가르쳐야죠.”

서민국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 모습에 도훈이 입을 살짝 벌렸다.

서민국의 사람 좋은 얼굴을 보자 이제야 그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뭐, 얼굴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서민국이 왜 연예계에서 사라졌는지 정도는 떠올랐다.

서민국이 사라진 이유는 바로 저놈 때문이었다.

도훈은 다시 리허설 현장을 바라봤다.

그곳에서는 이지유가 난처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녀의 뒤에는 대본을 말아 쥐고 걸어오는 정재웅 감독이 보였다.

정재웅 감독은 콧김을 뿜어 대며 카메라 앵글의 중심으로 걸어갔다.

그는 이지유와 김현승의 중간에 섰다.

양쪽을 번갈아 보던 정재웅의 시선이 김현승에게 멈췄다.

“김 배우, 지금 뭐 하자는 거지?”

“죄송합니다, 감독님.”

“지금 연인 사이잖아. 이 정도로 감정을 잡아야 하는 거야? 지금 이지유 배우가 무슨 사자라도 돼? 김 배우는 먹잇감이고? 왜 자꾸 뒷걸음을 쳐?”

“제가 긴장하다 보니 죄송합니다. 조금만 쉬었다 하면 안 될까요?”

“그럼, 십 분만 머리 식히고 와. 그리고 리허설 들어간 다음에 휴식 없이 슛 들어갈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감독님.”

김현승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는 이번에는 이지유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처음이라서 긴장을 했나 봅니다.”

“아, 네.”

이지유가 어색하게 웃었다.

도훈 쪽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이지유.

도훈의 옆에 있던 서민국은 다급하게 김현승 쪽으로 달려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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