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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74화 (74/250)
  •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74)

    서찬휘 질문에 우시원이 답했다.

    “여기 봐, 경고장 붙어 있잖아.”

    “어디?”

    서찬휘는 위쪽에 붙어 있는 경고장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이 벽화는 고액의 예술품입니다. 훼손 시에는 그에 상응하는…….]

    경고장의 문구는 부드러웠지만, 알맹이를 생각해 보면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서찬휘는 마른침을 삼킨 후 우시원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저기 있는 사람 진짜 모른다는 거지?”

    “난 몰라. 진짜 처음 보는데, 옆에 몇 명 더 있잖아. 우리까지 하면 하나, 둘, 셋…….”

    “딱 다섯이네.”

    서찬휘가 답하자 우시원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강 피디님은 우리가 다섯이라고 했나?”

    “많으면 일곱 명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고는 했지만, 아직 정해진 건 없다고 하셨는데…….”

    서찬휘가 말끝을 흐리자 우시원이 서찬휘를 잡아끌었다.

    “내일 물어보면 되지, 일단 짐 정리부터 하자.”

    “잠시만…….”

    “또 왜 그러는데?”

    “이거 우리 맞나 다시 확인 좀 하고.”

    “네가 우리 맞다고 했잖아.”

    “그래도 잠깐만 기다려, 사진이라도 찍어 놓게.”

    말을 마친 서찬휘는 핸드폰을 꺼내 벽화를 찍었다.

    그러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 모습에 우시원이 물었다.

    “그렇게 좋아?”

    “그럼, 좋지. 이 벽화에 우리를 그려 놨다는 게 무슨 뜻이겠어?”

    “그게 뭔 말이야, 쉽게 말해 봐.”

    “이 벽화에 우리를 그려 놨다는 건 우리와 끝까지 간다는 게 아니겠어? 설마 이 벽화에 나와 있는 우리를 지우겠어?”

    “실장님이 그건 약속했잖아. 일단 빨리 들어가자.”

    우시원이 서찬휘를 잡아끌었다.

    서찬휘는 캐릭터를 더 구경하려다가 우시원의 힘에 질질 끌려갔다.

    “비쩍 마른 놈이 힘은 왜 이렇게 센 거야?”

    “야, 내가 마르긴 왜 말라, 안쪽에 근육이 촘촘히 쌓여 있구만.”

    우시원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서찬휘가 다시 톡 쏘듯 말했다.

    “근육은 무슨 근육이야.”

    “야, 떠들지 말자. 명색이 기숙사잖아. 그러다가 사감 선생님한테 혼난다.”

    우시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주위를 살폈다.

    그 모습에 서찬휘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여기 사감 선생님이 어디 있어, 신 선생님도 오늘 저녁에나 오신다고 했잖아.”

    “그래? 그럼 그때까지는 우리가 왕인 거네.”

    “하하, 밀림의 왕이지.”

    서찬휘가 기분 좋게 웃을 때였다.

    둘의 뒤에 조그만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림자의 정체는 강시혁이었다.

    강시혁이 눈을 가늘게 뜨고 서찬휘를 바라봤다.

    “네가 왕이라는 거지?”

    “아, 피디님 언제 오셨어요?”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사감 선생님이 왜 없어?”

    “네?”

    “내가 사감 선생님이다.”

    “헉.”

    서찬휘의 눈이 커졌다.

    그때 우시원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런데 실장님은 어디 계세요?”

    “왜 나한테 이 실장을 찾아?”

    “강 피디님의 영혼의 단짝이잖아요.”

    “흠, 단짝이라…….”

    강시혁은 팔짱을 끼고 근래의 일을 떠올렸다.

    우시원의 말대로 근 한 달 동안은 소울 메이트라 말할 수 있었다.

    도훈은 한 회사의 대표.

    그런데 최근에는 모든 시간을 자신과 새로 생길 팀에 투자한 것 같았다.

    그때 우시원이 재촉하듯 물었다.

    “오늘은 이 실장님 안 오시는 거예요?”

    “오늘은 이지유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 촬영장에 간다고 들었어.”

    강시혁의 말에 우시원이 눈을 빛냈다.

    하지만 그저 눈을 빛내며 입술을 달싹일 뿐이었다.

    그때 서찬휘가 대신 입을 열었다.

    “아, 촬영장…… 거기가 어딘데요?”

    “어디였더라…….”

    잠시 말을 멈춘 강시혁이 슬쩍 핸드폰을 꺼내 메모를 확인했다.

    “의정부 쪽이네, 스몰랜드라는 유원지야.”

    “스몰랜드라…… 오늘 쉬는 날인데 거기 놀러 가면 안 돼요?”

    “뭐, 오고 싶으면 오라고 하긴 했는데, 너희들 안 피곤해?”

    “저희는 괜찮아요.”

    우시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옆에 있는 서찬휘의 옆구리를 콕 찍었다.

    서찬휘는 그제야 한 박자 늦게 답했다.

    “저도 시간 괜찮아요.”

    “내가 시간을 물어본 게 아니잖아, 오늘 연습 시작하고 처음 받는 휴일인데 거길 가자고? 가는 데만 한 시간 반이다, 이놈들아.”

    “그래도 가고 싶습니다, 피디님.”

    우시원이 강시혁의 앞으로 한 발 나왔다.

    그 모습에 강시혁이 혀를 찼다.

    “쯧, 네가 무슨 군인이냐? 말투가 갑자기 왜 그래?”

    “꼭 가고 싶어서 그러죠.”

    우시원이 눈을 빛내자 강시혁이 못 말린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답했다.

    “그래, 그러면 갔다 와.”

    “네, 감사합니다. 피디님.”

    유치원생이 손 배꼽 인사를 하듯 우시원이 정중히 허리를 숙이자 강시혁은 피식 웃었다.

    “그래, 인사는 그만하고 짐이나 올려놓고 가 봐.”

    “그게 아니라…….”

    “괜찮다니까, 혹시 나보고 짐을 올려다 달라는 건 아니지?”

    “그건 아니죠, 설마 우리가 하늘 같은 피디님께 그런 부탁을 할 리가 없잖아요.”

    “그런데 왜 그렇게 목을 길게 빼고 있어? 꼭 먹이를 찾아다니는 하이에나처럼…….”

    강시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사실 목을 길게 빼고 있는 모습은 하이에나라고 하기보다는 미어캣과 흡사했다.

    그때 서찬휘가 잽싸게 앞으로 나섰다.

    “아, 답답해, 제가 말씀드릴게요.”

    “그래, 뭔가 문제인지 말해 봐.”

    “문제는 간단하죠, 저희가 거기까지 가는 방법을 모른다는 거죠. 뭐, 방법을 모른다기보다는 일단 차가 없잖아요. 버스에 전철을 갈아타고 가려면 촬영 다 끝난 거거든요.”

    “흠, 원하는 게 뭔데?”

    “같이 가 주시면 안 될까요?”

    “헉, 얘네들 봐라…… 오늘은 너희들 휴일이기도 하지만, 내 휴일이기도 해. 절대 불가.”

    “에이, 왜 자꾸 그러세요. 어차피 오늘 할 일도 없으시잖아요.”

    “얘네들이 왜 그래, 내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 사람인데…….”

    “할 일이요? 여자친구도 없으시면서.”

    “흠…….”

    강시혁의 미간이 급속도로 좁아졌다.

    그 모습에 서찬휘가 재빨리 말을 이었다.

    “제가 누굽니까, 송파의 마당발 찬휘잖아요. 피디님 여자 친구도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책임질 테니까요.”

    “이러다 시간 다 가겠다, 일단 짐부터 갖다 놓고 내려와.”

    강시혁이 손짓하자 우시원과 서찬휘가 번개처럼 사라졌다.

    그는 위로 짐을 가지고 올라간 둘이 내려올 동안 담장을 바라봤다.

    신산의 만화 캐릭터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누군가를 찾아 끊임없이 눈동자를 굴렸다.

    그것도 잠시, 그는 한곳에 시선을 멈췄다.

    그의 입꼬리는 천천히 올라갔다.

    그곳에는 강시혁의 캐리커처가 그려져 있었다.

    강시혁 또한 이 벽화에 얼마의 돈이 들어갔는지도 알고 있었다.

    이 벽화에 자신의 얼굴을 넣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큰 의미는 아닐지 몰라도 최소한 등을 지지는 않겠다는 것이 속내일 듯했다.

    그때 다시 내려온 우시원이 강시혁에게 다가왔다.

    “피디님, 표정이 왜 그래요?”

    “에이, 딱 보면 몰라 감동하셨잖아.”

    “그게 무슨 말이야?”

    “저기 봐, 피디님도 벽화 속에 있잖아. 눈매며 지금 입고 계신 재킷도 똑같잖아.”

    “앗, 그러네, 신기하다.”

    그때 강시혁이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감동했다고 그래.”

    “어, 눈빛이 그렇잖아요.”

    “내가 이 캐릭터 보고 그런 게 아니라, 여기가 너무 깨끗해서 그런 거지.”

    “그러고 보니 신기하네요.”

    “돈이 좋긴 좋네.”

    강시혁이 기분 좋게 웃었다.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며칠밖에 안 됐지만, 기숙사 앞은 청정 지역이 되었다.

    뭐, 가끔은 지나가던 사람들이 셀카를 찍는 장소가 되었지만, 누군가 고양이 먹이를 준다든지,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아예 없어졌다.

    * * *

    의정부에 있는 스몰랜드.

    ‘스몰’이라는 말 그대로 이곳은 규모가 크지 않은 놀이공원이었다.

    하지만 있을 것은 다 있기에 놀이공원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에서는 단골로 등장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 놀이공원의 회전목마 부근에는 촬영 중임을 나타내는 라인이 쳐져 있었다.

    라인의 밖이나 안쪽이나 무더위 때문인지 바닥에서 일렁이는 열기가 눈에 보일 정도였다.

    스태프들은 그 열기에 맞서 촬영 장비를 조심스레 움직이고 있었다.

    회전목마를 중심으로 앵글을 잡아야 하지만, 그렇게 넓지 않은 공간이기에 최대한 벽 쪽으로 붙어서 촬영하는 수밖에 없었다.

    벽으로 붙자니 열기는 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벽에서 나오는 열기를 그대로 받아야 할 판이었다.

    그렇다고 방향을 바꾸면 촌스러운 스몰랜드의 벽이 나오기에 그럴 수도 없었다.

    덕분에 벽 쪽으로는 촬영 장비들이 빡빡하게 들어차 있었다.

    촬영 장비를 다 옮긴 스태프들은 숨을 몰아쉰다.

    그때 도훈이 이지유와 함께 나타났다.

    정재웅 감독은 재빨리 뛰어나와 도훈과 이지유를 맞았다.

    “조금 늦게 나와도 되는데 왜 그렇게 빨리 나왔어요?”

    “이지유 배우가 미리 나와서 동선 좀 체크한다고 해서요.”

    도훈이 씩 웃으며 이지유를 가리켰다.

    “감독님도 미리 나와 계시는데 제가 늦게 오면 좀 그렇잖아요.”

    이지유가 답하자 정재웅이 입맛을 다신다.

    “쩝, 아직 남자 배우는 오지도 않았는데…… 미리 와서 동선 체크는 뭐 하러 해.”

    “그래도 이 더위에, 저 혼자 차 안에 있을 수는 없잖아요.”

    “에휴, 그 신인 놈이 우리 이지유 배우 반만이라도 닮았으면 좋겠네.”

    정재웅이 불만 섞인 목소리로 답하자 도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과 같은 태도는 도훈이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정재웅은 지금까지 이게 웬 떡이냐 눈에 불을 켜며 작품에 매진하고 있었다.

    도훈이 재빨리 물었다.

    “감독님, 혹시 무슨 일 있어요?”

    “아니, 그 신인 배우가 이상해서 그렇죠.”

    “신인 배우가 이상하다니요?”

    “갑자기 오늘 아침에 김 작가한테 전화 왔대요.”

    “다솜이한테 전화를 해요?”

    도훈은 눈매를 좁혔다.

    작가한테 전화를 했다는 것은 배역, 그것도 대사나 캐릭터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지금 여기에 올 신인 배우가 할 역할에는 그런 문제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신인 배우가 등장하는 장면은 딱 두 곳이다.

    이지유에게 프러포즈하는 장면이고 또 하나는 그녀를 배신하는 장면이다.

    드라마라면 씬스틸러에서 갑자기 조연으로 바뀔 수도 있지만, 영화의 특성상 중간에 배역의 비중을 높이는 경우는 없으니 말이다.

    두 장면에서 등장하는 데다가 대사도 그리 많지 않은데 불만이라는 게 나올 수 있을까?

    도훈은 혹시나 하고 물었다.

    “혹시, 배역 비중을 높여 달라고 사정을 하던가요?”

    “그게 아니라 프러포즈 장면을 고쳐 달래요.”

    “네?”

    “아니, 대본을 보고 출연하기로 했으면서 왜 매니저한테 휘둘려요.”

    “자, 잠시만요. 대본을 수정해 달라고요? 그럼, 비중을 높여 달라는 뜻 아닌가요?”

    “그게 아니라 프러포즈할 때 신체적 접촉이 전혀 없게 해 달래요.”

    “키스 씬도 없잖아요.”

    “손잡는 것도 안 된대요. 매니저가 허락을 안 한다고요.”

    순간 도훈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이 정도의 요구라면 독립 영화에 나올 법한 신인의 요구가 아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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