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73)
도훈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유니폼이나 교복을 입게 되면 보통 이름표를 달잖아요.”
“그야 그렇지. 그런데 그렇게만 들어서 통 이해가 안 되는데?”
강영웅의 말에 주변 사람들이 눈을 빛냈다.
모두가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쑥 빼고 도훈의 말을 기다렸다.
모두의 시선이 모이자 도훈은 할 수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뭐, 이름표를 달게 되면 범죄율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는 보고서가 있거든요. 시카고 보고서라고 들어 보셨을 거예요. 솔직히 온라인이나 거리에서 발생하는 대부분 범죄가 익명성이라는 그늘에서 벌어지는 범죄잖아요. 그래서 저는 아까 그 친구에게 이름표를 달아 줬어요.”
“진짜 이름표를 달았다는 이야기야?”
“제가 선생님도 아니고 어떻게 이름표를 달아요. 그냥 이름과 주소를 알아낸 게 전부죠.”
도훈은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길고양이에게 집착하는 사람을 유레카로 끌어들였다고 하면 질문 세례를 받아야 할 것이 분명했다.
도훈의 표정을 본 강영웅이 헛기침을 했다.
“흠…….”
“자신이 어디에 사는 누구라는 것만 알아도 저렇게 행동 못 하거든요. 참 신기한 일이죠?”
“그건 어떻게 알아냈는데?”
마치 탐정이 된 듯 의심 가득한 눈으로 도훈을 바라보는 강영웅.
도훈은 손사래를 쳤다.
“이거 꼭 수사하는 것 같잖아요.”
“그러니까 빨리 말해.”
“이건 비밀인데…….”
도훈의 말에 강영웅이 미간을 좁혔다. 그 모습에 도훈은 바로 말을 바꿨다.
“뭐,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디 있어요.”
“헉.”
강영웅이 허탈한 표정으로 탄성을 터뜨렸다.
물론 나머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에 도훈이 어깨를 으쓱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서류 가방에서 고양미가 서명한 서류를 꺼냈다.
도훈은 할 수 없이 반 정도는 밝히기로 했다.
도훈이 내려놓은 전속 계약서를 본 사람들이 눈을 크게 떴다.
옆에서 그 내용을 보던 강영웅이 입맛을 다셨다.
“쓸데없는 데 돈을 썼네.”
“전혀 쓸모 없지는 않죠. 우리 아티스트들의 쾌적한 생활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건데요.”
도훈이 말한 것은 진짜 환경은 아니었다.
앞으로 그들에게 줄 히트곡들을 말함이었다.
내성적인 그녀의 성격상 따로 작곡실을 마련해 줘야 할 것이었다.
즉, 유레카에는 얼굴을 비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흔히 말하는 통조림 시스템하에서 철저히 굴릴 것이다.
앞으로 필요한 곡은 적어도 연간 100곡 정도 될 것 같았다.
그중 10곡 정도는 그녀에게 뽑아낼 것이었다.
10곡을 뽑으려면 실제 작곡해야 하는 곡은 열 배 정도가 될 것이다.
도훈은 힐끔 자신의 가방을 바라봤다.
계약서에 서명하며 숨을 참던 그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앞으로 일 년 뒤면 그녀에게 제시한 계약금 1억이 얼마나 헐값인지를 알게 될 것.
* * *
다음 날 아침 도훈은 기숙사로 쓰는 주택 입구에서 팔짱을 끼고 누군가를 기다렸다.
그 옆에는 잠을 못 잔 듯 피곤에 찌든 신서희도 함께 나와 있었다.
도훈은 슬쩍 신서희를 바라보며 물었다.
“오늘 오는 게 확실하죠?”
“확실하긴 한데, 대체 뭐 하려고 그 돈을 들여요?”
“신 선생님은 학교 다닐 때 환경미화 안 해 보셨나요?”
“흠, 기억나긴 하는데…….”
신서희가 옛 기억을 떠올리려 할 때였다.
끼익.
기숙사의 앞에 화려한 소형 버스 한 대가 멈췄다.
버스에는 알록달록한 무늬와 알 수 없는 문자가 형형색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이들은 꽤나 화려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살짝 비껴쓴 스냅백을 보면 무대에서나 보던 힙합 뮤지션을 보는 것 같았다.
그들은 상자 하나씩을 들고 도훈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그때 멀리서 허겁지겁 뛰어왔다.
그는 나머지 사람들과는 다르게 평범한 복장에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형 같은 분위기의 남자였다.
그를 본 도훈이 먼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혹시 이도훈 실장님이세요?”
“네, 맞습니다. 잘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작가님 팬입니다.”
“아, 감사하긴 하지만 제가 만화를 벽에 그리기에는…….”
“충분합니다.”
도훈은 사내를 보며 씩 웃었다.
사내의 이름은 신산.
도훈은 기숙사로 쓰는 주택의 벽에 만화에서 나오는 캐릭터들을 그려 넣기로 했다.
원작자인 그가 밑그림을 그려 주면 도훈이 부른 업체가 채색을 하기로 한 것이다.
신산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무리 팬이라고는 하지만, 벽화를 그리는 데 저작권까지 지불하는 건 조금…….”
“조금도 과하지 않죠.”
도훈이 씩 웃자 신산은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는 웃음이었다.
도훈은 그의 심정을 잘 알고 있다.
한때를 풍미했던 만화가라고는 하지만 최근 삼 년 동안은 극심한 슬럼프에 빠진 그였다.
그가 다시 재기하는 것은 그리 멀지 않았다.
단 하나의 작품으로 앞으로 그의 가치가 달라진다.
덕분에 이곳에는 만화거리가 조성되게 된다.
만화거리가 조성되면서 생각지도 못하게 홍대거리에 못지않은 문화거리가 생기게 된다.
도훈이 새겨 놓은 벽화 때문에 그 일이 몇 년 정도 당겨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때 둘의 대화에 신서희가 끼어들었다.
“여기까지 와서 왜 날 모른 척해! 크래이지?”
“앗, 누나, 미안해요. 너무 얼떨떨해서요. 소식도 없는 누나가 갑자기 전화한 것도 황당한데, 제 작품을 벽화로 남긴다니 그게 더 황당…….”
“황당하다고 생각하지 마시죠.”
도훈이 재빨리 끼어들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 모습에 신서희나 신산이나 고개를 갸우뚱했다.
신서희와 신산은 사촌지간이었다.
그 때문에 도훈이 신서희에게 부탁을 한 것.
신서희가 황당해하는 것은 도훈이 저작권이라면서 신산에게 약속한 돈이었다.
자기 말 한마디면 와서 그려 줄 동생인데, 굳이 돈을 주기로 했다는 자체가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잠시 뒤.
신산이 벽화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신서희가 물었다.
“이 실장님, 뭐 하나만 물어볼게요, 진짜 궁금해서 그러거든요.”
“네, 선생님.”
“환경 미화까지는 알겠는데…… 환경 미화하는 데 억 단위로 들진 않잖아요.”
“그죠, 그런데 이건 학급 환경 미화가 아니라는 게 조금 다르죠. 기업 입장의 환경 미화니 조금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그림이 완성되면 보험에 들어 놓을 거예요.”
“보험이요?”
“네, 당연히 보험에 들어야죠. 그래야 훼손되면 보상을 받을 수 있잖아요.”
“혹시…….”
“네, 그 혹시가 맞을 겁니다.”
도훈이 씩 웃었다.
신서희는 도훈의 의도를 알고 혀를 찼다.
“어제 그 일 때문인가요?”
“네,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놔야 우리 식구들이 안심하고 살죠. 저게 비싼 그림이라는 걸 알면 아마 얼씬도 안 할 겁니다. 뭐, 실수한다면 그때는 제가 아니라 보험사를 상대로 꽤나 골치 아픈 싸움을 해야겠죠.”
“흠, 여기로 이사 와야 할 이유가 또 생겼네요.”
“네, 오래 머무르셔도 괜찮습니다.”
도훈이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한쪽 벽에 밑그림을 다 마친 신산이 손을 흔들었다.
“이 실장님, 여기 좀 봐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작가님.”
도훈은 재빨리 신산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한쪽 벽은 이미 마무리가 되어 있었고, 다른 쪽 벽을 바라보며 신산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신산은 벽과 오른손에 든 메모지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도훈이 도착하자 울상을 지었다.
“여기에는 이 실장님이 말한 캐릭터를 그려야 할 텐데, 도저히 감이 안 잡히네요.”
신산이 뒷머리를 긁적이자 도훈이 미안한 표정으로 답했다.
“이건 천천히 해 주셔도 됩니다.”
말을 마친 도훈은 휑한 벽을 바라봤다.
도훈이 부탁한 것은 신산의 캐릭터를 그리는 것만이 아니었다.
남은 벽면에 도훈과 함께 성장할 식구들의 캐리커처를 부탁했다.
“속도가 문제가 아니라 이 정도의 정보라면 아무리 생각해도 특징을 잡을 수가 없어서요.”
신산은 도훈이 적어 준 메모지를 내밀었다.
메모지에는 이름과 특징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다시 보니 이것을 보고 캐릭터를 만들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도훈은 일단 핸드폰을 꺼내서 현재까지 모인 인원들을 신산에게 보여 주며 벽화에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굴을 알려 줄 수 있는 사람들은 아직까지 많지 않았다.
이지유와 가까운 미래에 데뷔할 보이 그룹 중 서찬휘와 우시원 그리고 강영웅과 정여진 정도였다.
도훈은 수첩을 꺼내어 벽에 이름이 빠져 있는지를 한 번 더 확인했다.
그들의 이름을 본 신산이 눈매를 좁히며 물었다.
“유레카에 연예인들이 꽤 많네요.”
“아직까지는 별로 없습니다, 앞으로 영입할 친구들까지 적었습니다.”
“이 실장님은 미래의 계획을 확실하게 세우셨군요.”
“뭐, 그렇죠.”
도훈이 씩 웃으며 수첩을 바라봤다.
수첩의 가장 뒷면에는 도훈만이 볼 수 있는 황금색 글씨가 아직도 떠 있었다.
[보상 인벤토리: D]
무려 두 개의 문장이 새로 생겼다.
둘 다 신서희에게 안무를 보여 주고 얻은 것이다.
도훈은 눈을 가늘게 떴다.
‘D’라는 알파벳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혹시 재능이 D라는 것일까?
그렇다면 매니저로서의 성적은 어떨까?
* * *
며칠 후 유레카의 기숙사는 오랜만에 북적대기 시작했다.
숙소 생활의 꿈에 부풀어 있는 우시원은 기숙사의 앞에서 안경을 슬쩍 올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기대되는 만큼 긴장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서찬휘는 여행이라도 온 것처럼 캐리어를 끌고 신기한지 두리번거렸다.
그 모습에 우시원이 물었다.
“서찬휘! 넌 안 들어가고 거기서 뭐 하냐?”
“시원아, 여기 있는 그림 신기하지 않냐?”
“그거 신산 작가가 그렸던 만화 캐릭터들이잖아.”
“거기 말고 여기.”
“그건 처음 보는 캐릭터 같은데? 다른 작가들이 그렸나 보네.”
우시원은 목을 길게 빼고 그곳을 바라봤다.
서찬휘는 답답하다는 듯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캐릭터 하나를 가리켰다.
“여기 봐, 딱 보면 지유 누나잖아.”
“엥, 그러네.”
“그리고 여기는 강영웅 선배고.”
“조금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여길 잘 봐, 이 부분이 하이라이트니까.”
“그건 누군지 모르겠다.”
“헉, 안경을 썼는데도 시력이 안 좋아진 거야? 아니면 눈이 잘못된 거야?”
“아니, 모르니까 모른다고 하지, 누군데?”
“너잖아.”
“이게 나라고? 생각보다 너무 잘생겼는데…….”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아니, 진짜로 몰라서 그래. 그런 그 옆에 있는 건 누구야?”
“머리 색하고 잘빠진 턱선을 보면 백 퍼센트, 이 몸이시지.”
“헉, 자화자찬의 극치를 달리네. 그런데…….”
우시원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들 옆에 있는 캐릭터들을 바라봤다.
그것은 서찬휘도 마찬가지였다.
서찬휘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혹시 너, 얘네들 아냐?”
그는 검지로 벽화의 인물 하나를 찍었다.
우시원이 재빨리 서찬휘를 잡아끌었다.
“야, 너 그건 왜 만져?”
“왜, 벽화 만지면 안 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