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70)
신서희의 말에 도훈은 미간을 좁혔다.
이 곡은 작곡가와 작사가가 같다.
전생의 기억으로는 그랬다.
그런데 갑자기 뜬금없이 작사가를 구하려고 하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작곡가가 작사까지…….”
도훈은 재빨리 말끝을 흐렸다.
왠지 자신이 끼어드는 바람에 작사가가 바뀐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도훈은 말을 바꾸었다.
“작곡가가 작사까지 하는 건 힘들긴 하죠. 그럼 제가 아는 분이 있는데 그분한테도 부탁해 볼까요?”
“실장님이 아는 분이요?”
“네, 제가 잘 아는 사람입니다.”
“혹시 강 피디님이요?”
신서희가 강시혁을 힐끔 바라보자 도훈이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그런데 원가사는 영어로 하고 번역을 하는 방향으로…….”
“그것도 걱정 없습니다. 영어 가사와 한국어 가사까지 완벽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도훈의 자신감에 신서희는 눈을 크게 떴다.
놀람도 잠시 신서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누군지 알 수 있을까요?”
“음, 그러니까…….”
도훈이 말끝을 흐리자 신서희가 눈을 가늘게 떴다.
사실 궁금하기도 했고 필요하기도 했다.
이번에 한국에 들어온 것은 단순히 놀러 온 것이 아니었다.
가능하면 괜찮은 실력을 갖춘 국내 뮤지션과 친분을 쌓고 싶었다.
그것은 국내의 음악을 외국에 알리고 싶어서였다.
신서희가 외국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무엇일까?
신서희와 작업한 이들 대부분은 그녀가 사는 곳의 컬쳐에 호기심을 가졌다.
문제는 그 대상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한국이라는 나라는 없었다.
단지 동양이라는 단어로 묶어서 한국을 생각했다.
조금 더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중국과 일본.
나머지는 그저 동양이었다.
뭐, 그들을 욕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신서희도 저 멀리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조그만 섬나라나 유럽의 구석에 붙어 있는 조그만 나라의 이름은 모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생각한 것이 한국의 문화를 널리 알리자는 것이었다.
그 방법 중 가장 좋은 것이 한국의 작곡가나 작사가를 자신이 아는 외국의 팀과 연결해 주는 것이다.
언젠가는 한국의 아티스트가 빌보드를 점령하는 것을 꼭 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싱어가 차트의 정상에 오르기에는 벽이 높았다.
한국의 뮤지션이 만든 곡을 현지 가수에게 주는 것이 더 빠르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심각한 표정을 본 도훈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아직은 이름이 그다지 알려지지 않아서요. 이름이 알려지려면 아마도 몇 년은 있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실력만큼은 제가 보장하죠.”
“뭐, 실장님이 보장하신다니 믿어야죠. 그런데 친하신 분은 맞죠?”
“그러니까…….”
“표정을 보니 아마추어 작사가분과 그리 친하지 않으신 것 같네요.”
“친하긴 합니다. 이틀에 한 번 정도는 얼굴을 보는 사이니까요.”
도훈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의 말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그 작사가라는 것이 바로 도훈, 자신이었으니까.
요즘에는 밤낮없이 바쁜 관계로 거울도 이틀에 한 번 정도밖에 못 보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도 거울을 못 보고 나왔다.
뭐, 거울을 못 본 것까지도 좋지만, 재킷 안쪽에서 울리는 수업도 확인 못 했다.
어색하게 웃는 도훈의 모습에 신서희가 희미하게 웃었다.
때론 상대가 무색해질 정도로 당당하지만, 저렇게 한발 뒤로 뺄 때는 왠지 살짝 인간미가 느껴졌다.
신서희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네, 그럼 부탁드려요.”
“저만 믿고 맡겨 주세요, 선생님.”
도훈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이야기는 얼마간 계속 이어졌다.
그 중심에는 당연히 우시원이 있었다.
도훈도 신서희와 대화를 나누는 중간중간에 서찬휘와 어깨동무하며 활짝 웃고 있는 우시원을 바라봤다.
도훈은 그때마다 묘한 웃음을 지었다.
이 웃음은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했다.
전생에 그리 오랜 시간을 보냈는데도 우시원에 대해서 몰랐던 것이 있다는 게 신기한 것이었다.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던 도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그만 일어나겠습니다. 한 달 동안 우리 친구들 잘 부탁드립니다.”
“자, 잠시만요.”
신서희가 당황한 표정으로 따라 일어났다.
그녀의 표정에 도훈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 그러세요? 선생님.”
“제가 레슨하기로 한 건 원더풀 스테이지였잖아요. 그런데 그 안무는 모두 마무리가 된 게 아니었나요?”
“에이, 그런 섭섭한 말씀을…….”
“섭섭하다니요.”
“우리가 정한 안무라고 했지 원더풀 스테이지 한 곡은 아니었잖아요.”
“그러니까…….”
신서희는 팔짱을 끼고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잘 생각해 보니 안무 한 가지만 레슨하기로 한 것은 아니었다.
우시원의 실력이 워낙 형편없었기에 한 가지의 안무만을 위해 계획을 짰다.
그 당시는 그 안무 하나만을 소화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사정이 달라졌다.
거기에 기한도 남아 있다.
문제는 신서희 자신이 해결한 일은 하나도 없다는 점이었다.
과연 자신이 받은 만큼 일을 해 줄 수 있을까?
결론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다’였다.
여기서 조용히 물러날 생각이었다.
물론 도훈과의 약속을 철저히 지키기로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더 남아 달라니?
신서희의 선택지에 없던 제안이었다.
그때 도훈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제 말 맞죠.”
“실장님 말이 맞는데…… 뭐랄까? 지금 카오스의 도가니네요.”
“오늘은 좀 쉬세요, 이따 회식이나 같이하죠.”
“회식이요?”
“시원이 합격 기념으로 제가 한턱 내기로 했잖아요. 그러니 선생님도 오셔야죠.”
“음, 갈게요.”
“네, 그럼 제가 미리 말해 놓겠습니다.”
도훈이 씩 웃자 강시혁이 고개를 갸웃하며 끼어들었다.
“벌써 식당을 잡은 거야?”
“잡긴 잡았지.”
“거기가 어딘데?”
“우리 기숙사.”
“그게 무슨 말이야? 기숙사라니?”
“아, 공짜로 생긴 기숙사가 있어서 거기에 자리를 만들기로 했어. 시원이도 그렇고 찬휘도 그렇고…… 뭐, 고기만 투뿔이면 장소는 상관없다고 하고.”
“뭐, 몇 명 안 되니 조촐하게 집에서 먹는 것도 괜찮겠지.”
“조금 사람이 있긴 한데…….”
“그게 무슨 말이야?”
강시혁이 눈을 크게 떴다.
그 옆에 있던 신서희는 무슨 일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 * *
그날 저녁.
유레카의 기숙사.
유레카의 기숙사의 유일한 입주민인 이지유는 동생 강민과 함께 정신없이 준비하고 있었다.
도훈의 전화를 받은 것은 불과 두 시간 전.
기숙사로 쓰이는 주택의 앞마당에서 회식을 하겠다고 연락이 온 것이었다.
도훈이 미리 준비하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숙사의 유일한 입주민인 자신이 준비를 안 한다면 누가 한다는 말인가?
이지유는 자신의 사비로 마트에서 재빨리 주문하고 앞마당을 치우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청소하고 있는 이지유의 귀에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누나 고양이는 어떻게 해, 쫓을까?”
“흠, 어떻게 하지?”
이지유가 고개를 갸웃하다가 강민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제법 귀엽게 생긴 고양이 몇 마리가 기숙사의 입구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이지유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곳에 보니 먹이통이 놓여 있었다.
“강민아, 저 먹이통 네가 놓아 둔 거야?”
“난 아닌데.”
“그럼 누굴까? 여기는 우리밖에 사는 사람이 없잖아.”
이지유는 고개를 갸웃하며 주변을 살피며 한기를 느끼는 듯 어깨를 살짝 떨었다.
유레카가 기숙사로 쓰는 이곳은 두 동짜리 건물이었다.
흔히 통빌라라고 불리는 구조의 주택.
제법 규모가 있어서 한 동에 여덟 가구가 들어설 수 있으니 모두 열여섯 팀이 입주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 넓은 공간을 혼자 쓰다 보니 이지유와 강민은 요즘 살짝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런데 낯선 사람이 고양이 먹이통을 놔뒀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소름이 돋은 것이다.
그때 강민이 소리쳤다.
“누나, 여기 봐. 이상한 글씨가 적혀 있어.”
“어디?”
이지유가 재빨리 강민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누런 골판지가 세워져 있었다.
비석처럼 벽에 버티고 있는 골판지에는 누군가가 붉은 글씨를 써 놓았다.
[이 먹이는 본인이 사비를 들여서 만든…….]
“헉, 이게 뭐야!”
이지유가 비명을 질렀다.
강민도 황당하다는 듯 골판지에 적힌 글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저주에 가까운 글이 적혀 있었다.
자세히 보니 붉은 것은 립스틱으로 써 놓은 것 같았다.
이지유는 자신도 모르게 슬쩍 물러났다.
그곳에 적혀 있는 내용은 간단했다.
먹이통과 먹이는 누군가가 자신의 돈으로 사 놓은 것이기에 그것을 치우면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었다.
뭐, 여기까지는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그런데 가장 밑에 있는 문장이 황당했다.
민형사상 책임 전에 이 먹이통을 치운 사람을 지옥에 떨어뜨리겠다는 것이었다.
이지유는 슬쩍 강민을 바라봤다.
강민이 겁을 먹었는지 살짝 어깨를 떤다.
거기에 눈이 촉촉한 것이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이지유는 불길한 느낌에 일단은 후퇴하기로 했다.
“일단 하던 일 마저 끝내자 강민아.”
“응, 누나. 그런데 왜 저런 짓을 하는 거지?”
“뭐, 길고양이 먹이 주는 사람도 있으니…….”
“그게 아니라, 왜 고양이를 미워하게 만드는지 이해가 안 돼서.”
“그게 무슨 말이야? 강민아.”
“저 먹이통이 아니어도, 저렇게 귀여운 고양이를 보면 내 용돈을 털어서라도 줬을 거야, 누나.”
“음.”
“그런데 저 글자를 보고 나니 고양이가 싫어졌어.”
“아, 그 말이었구나. 그래도 너는 원래 동물을 좋아했잖아.”
“이제는 싫어, 왜 남의 집에다가 저런 걸…….”
“됐으니까, 일단 우리는 준비부터 하자.”
“알았어, 누나.”
강민이 자리로 돌아가 청소를 시작하자 이지유는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순간 이지유의 눈이 커졌다.
“앗, 강민아, 비상이야, 비상. 이제 한 시간 반밖에 남지 않았어.”
이지유의 동작이 점점 빨라졌다.
누가 보면 초능력자인 줄 알 정도였다.
이지유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하지만 힘든 기색은 없었다.
이지유는 지금이 너무 행복했다. 도훈을 만난 후 자신은 받기만 했다.
자신을 구렁텅이에서 꺼내 준 것도 도훈이고 재능을 일깨워 준 것도 도훈이었다.
그녀는 요즘 연기의 맛을 알았다. 덕분에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그녀에게 아쉬운 것이 한 가지 있었다.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었지만, 이지유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오늘 그 기회가 왔다.
도훈을 위해, 아니 유레카를 위해 소소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날이 온 것이다.
앞마당을 청소하고 마트에서 시킨 식자재를 냉장고에 넣어 놨다.
그러고는 지하에 있던 의자들을 앞마당에 꺼내놨다.
탁탁.
이지유가 손을 털며 흐뭇하게 앞마당에 세팅된 회식 장소를 바라봤다.
“누가 했는지 멋있네.”
“나도 했어, 누나.”
“알았어, 강민이도 많이 도와줬지.”
그때였다.
누군가가 기숙사 건물 앞에서 기웃거렸다.
이지유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쪽을 바라봤다.
자세히 보니 어떤 여자가 안쪽을 힐끔 보고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