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65)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반주는 작은 소리로 연습실 문틈에서 흘러나올 뿐이었다.
그런데 도훈의 스텝에서 그 음악이 느껴졌다.
서찬휘는 도훈의 댄스를 보고 있자니 음악이 귓전에 맴돌았다.
대형 앰프를 틀어 놓은 것처럼 귓가에 윙윙대는 소리.
그것은 분명 착각이 아니었다.
지금 울리는 것은 서찬휘의 귀가 아니라 심장이었다.
순간 서찬휘의 눈이 빛났다.
서찬휘는 도훈의 배경에 대해 강시혁에게 들어서 대충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재벌가의 사람이 어디서 이런 춤을?
서찬휘가 춤의 문외한이라면 이렇게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서찬휘는 이태원 바닥에서 내놓으라 하는 춤꾼이었다.
그런데 도훈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냄새가 느껴졌다.
아니, 자신보다도 더 날것의 느낌이 강했다.
그때 안쪽의 음악이 멈췄다.
탁.
도훈의 스텝도 멈췄다.
마지막 스텝이 끝나자 복도에는 정적이 맴돌았다.
도훈은 마지막 동작 그대로 멈춰 있었다.
서찬휘는 탄성을 지를 생각도 못 했다.
도훈의 동작이 머릿속에 수없이 재생되며 동시에 댄스를 통해 가슴으로 느낀 음악이 귀를 간지럽히는 것만 같았다.
그의 상념은 깨운 것은 연습실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덜컹.
문이 열리고 조그만 얼굴 하나가 나왔다.
그 얼굴의 주인은 우시원이었다.
그는 미어캣처럼 얼굴을 쭉 빼고 도훈과 서찬휘를 번갈아 바라봤다.
우시원이 고개를 갸웃하며 입 모양으로 말한다.
“거기서 뭐 해?”
말투로 봐서는 서찬휘에게 묻는 것이다.
서찬휘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손을 내저었다.
“난 괜찮아.”
“아니, 뭐 하냐고 물어봤더니, 괜찮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찬휘야, 어디 아파?”
우시원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서찬휘를 바라봤다.
서찬휘는 다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별거 아니야, 이 실장님께 춤 배우고 있었어.”
“춤, 무슨 춤? 정말 댄스 말하는 거야?”
“…….”
서찬휘는 뭐라 답할지 몰라 힐끔 도훈을 바라봤다.
사실 서찬휘가 바로 답하지 못한 것은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아서였다.
재벌 3세가 날것과 같이 살아 숨 쉬는 춤을 춘다고?
분명 자신이 잘못 봤을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요즘 일이 많지 않았던가.
생각을 이어 나가던 서찬휘는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그것은 도훈에 대한 선입견 때문일 수 있었다.
도훈은 수렁에 빠진 자신과 강시혁 그리고 우시원을 구해 준 은인이었다.
지나가다 도훈을 보면 아우라가 넘실거린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서찬휘가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도훈이 답했다.
“신 선생님이 낸 미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었어.”
“아, 그 춤 말이구나.”
우시원이 미안한 듯 서찬휘를 바라봤다.
그 표정에 서찬휘가 물었다.
“왜 그런 표정을 하고 그래. 네가 그런 표정 지으면 꼭 밥이라도 사 줘야 할 것 같잖아. 부담된다.”
“내 이런 표정 한두 번 보냐? 그냥 솔직하게 말한다.”
“뭘 솔직히 말해?”
“새로운 안무 선생님한테도 컷 당했어.”
“헉.”
“그래서 강 피디님하고 이 실장님이 이렇게 뛰어다니는 거야.”
“그런데 너는 왜 나왔어?”
“강 피디님이 창피하다고 나는 나가 있으래. 벌써 세 번째 도전이야.”
그때였다.
안쪽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이 멈췄다.
순간 복도에 있던 셋이 안쪽을 바라봤다.
강시혁의 고개가 폴더폰 꺾이듯 축 아래로 향했다.
누가 봐도 결과는 뻔했다.
그 모습에 도훈이 슬쩍 녀석들에게 턱짓했다.
“이제 들어가 보자.”
“네, 실장님.”
“네, 알겠습니다.”
서찬휘와 우시원이 선생님의 뒤를 따라가는 유치원생처럼 도훈을 따라 연습실로 들어왔다.
그들이 들어오자 신서희가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도훈은 정체 모를 미소에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강시혁을 바라본 순간 그 의미를 깨달았다.
강시혁의 하얀색 셔츠가 피부색으로 변해 있었다.
땀 때문에 딱 달라붙어 색이 변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뭐, 소나기를 맞고 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어 있었다.
강시혁이 도훈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그 모습에 도훈이 고개를 숙였다.
최선을 다한 전우에 대한 예의였다.
그런데 강시혁의 미소가 더 진해졌다.
천천히 도훈 쪽으로 오던 강시혁이 손짓했다.
“이제는 이 실장 차례야.”
도훈은 그 미소의 정체에 대해서 알았다.
이제 도훈이 보여 줄 모습에 대한 기대감인 것 같았다.
그 미소에 도훈이 마주 웃었다.
“내가 나설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찬휘가 왔거든.”
도훈이 서찬휘의 어깨를 감싸며 턱짓했다.
“내가 했으니까. 이 실장 차례 아닌가? 이리로…….”
강시혁은 우시원의 안무 선생님을 영입하기 위한 자리라는 것은 까마득하게 잊고 도훈에게 손짓한다.
“찬휘도 같은 팀이잖아.”
도훈은 힐끔 신서희를 바라봤다.
신서희가 고개를 끄덕인다.
“오케이, 인정해요.”
“헉, 선생님, 이 실장부터 해야 하는 게 순서가 아닌가요?”
“음…….”
신서희가 턱을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그때 서찬휘가 한 발 앞으로 나오면 외쳤다.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오, 좋아요, 그런 도전 정신 그레잇이에요.”
신서희가 활짝 웃자 강시혁이 고개를 떨구며 도훈의 옆으로 왔다.
그는 조용히 도훈에게 속삭였다.
“난 시원이를 위해서 세 번이나 도전했는데. 거기에 난 타고난 몸치인데도…….”
억울한 듯 도훈을 바라보는 강시혁.
도훈은 사람 좋은 얼굴로 웃었다.
“지금은 시원이가 중요하니까, 에이스가 나서는 게 맞지.”
“…….”
강시혁은 말없이 도훈을 바라봤다.
그에게는 더는 따질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시선을 돌려 연습실의 가운데로 향하는 서찬휘를 바라볼 뿐이다.
드디어 서찬휘가 연습실의 정중앙에 섰다.
서찬휘가 강시혁 쪽을 바라봤다.
서찬휘는 허락을 구하듯 눈을 빛내며 강시혁을 바라봤다.
서찬휘를 바라보던 강시혁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왠지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시혁의 눈이 서찬휘의 시선을 따라 움직였다.
그곳에서는 도훈이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미소 짓던 도훈이 고개를 끄덕인다.
따라서 서찬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강시혁이 눈을 크게 떴다.
그들이 이 정도로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한 것이다.
순간 스피커를 타고 전주가 흘러나왔다.
뚜루루뚜!
순간 서찬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주에 맞춰 상체부터 리듬을 탔다.
아직 발은 플로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서찬휘는 방금 도훈이 보여 줬던 안무를 머릿속에 쫙 펼쳤다.
머릿속에 필름처럼 펼친 안무들을 지금의 음악과 맞춰 본다.
서찬휘는 박자를 셌다.
‘하나, 둘, 셋!’
지금이 들어가야 할 시점이었다.
탁.
서찬휘가 드디어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타다닥.
강렬한 그의 스텝이 플로어에 울려 퍼졌다.
서찬휘는 자신의 머릿속에 그린 선에 자신의 팔다리를 끼워 넣었다.
원래 안무라는 것이 그렇다.
안무를 자신에게 맞추는 것이 아닌 안무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첫 번째 단계였다.
어찌 보면 순수한 암기의 영역.
서찬휘는 이 방면에 타고난 춤꾼이었다.
즉, 기본기부터 충실하다는 의미.
그 증거로 그는 도훈이 보여 준 춤을 90% 이상 소화했다.
모두가 서찬휘의 모습에 놀라고 있었다.
서찬휘가 보여 주는 스텝은 중독성이 있었다.
그리 어렵지도 않기에 몇 번만 보면 따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오죽하면 몸치의 첫째와 둘째를 다투는 강시혁과 우시원이 어깨를 들썩일까.
그들은 어깨를 들썩이면서도 내심 놀라고 있었다.
서찬휘의 춤 실력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지만, 음악만 듣고 즉흥적으로 이런 퍼포먼스를 창조할 줄은 몰랐다.
창조의 영역은 서찬휘가 이제까지 보여 주지 않았던 분야였으니 그 놀라움은 더욱 컸다.
이들 중 가장 표정의 변화가 없는 것은 도훈이었다.
도훈은 살짝 입맛을 다셨다.
“쩝.”
아쉬움이 담긴 듯한 소리였다.
여기에 도훈의 복합적인 감정이 담겨 있었다.
한번 보여 준 안무를 저렇게 기억해서 음악에 맞춘다는 것은 놀라운 재능이었다.
하지만 도훈이 보기에는 살짝 아쉬웠다.
어깨를 조금 더 과감히 움직였으면…….
스텝의 폭을 조금 자제했으면…….
아쉬움도 잠시, 도훈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매니저라는 한정된 분야에 경험이 있었을 뿐이었다.
안무는 자신의 영역이 아니었다.
도훈은 전생에 자신의 한계에서 벗어나는 짓을 하는 기획사 대표들을 수도 없이 봐 왔다.
되지도 않는 감성과 능력으로 곡과 안무에 끼어들어서 아티스트를 힘들게 한 대표들이 한둘이던가?
도훈은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고민을 털어낸 도훈은 어깨를 들썩이며 서찬휘의 춤을 즐겼다.
따다다다!
드디어 곡이 클라이맥스로 향한다.
간단한 스텝으로 리듬에 몸을 맡기던 서찬휘의 팔다리가 점점 빨라졌다.
그의 춤을 보고 있던 신서희의 눈빛이 달라졌다.
처음으로 호기심이란 감정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아윌비백의 안무는 아직 완성 단계는 아니었다.
그 곡은 신서희의 절친이 만든 곡이었다.
아직은 데모곡의 형태로 남아 있는 미완성의 곡이었다.
신서희는 그 곡을 듣고 절친과 한 가지를 약속했다.
그 곡이 세상에 나오면 안무는 자신이 만들어 주기로 말이다.
그리고 대충 윤곽을 그려 놨다.
안무라는 것이 멤버의 숫자나 그 구성원의 이미지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대략적인 윤곽은 그려 놓은 것이다.
이 곡을 테스트 주제로 낸 것은 바로 자신의 생각과 맞아떨어지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해외 유명 그룹의 안무를 맡으면서 어느 정도 부는 쌓았다.
이제부터는 즐기면서 일하기로 한 그녀였다.
이 곡의 포인트 한 가지만 자신과 비슷해도 그녀는 이들과 함께하기로 했다.
그런데 서찬휘의 안무가 자신이 그려 놓은 윤곽과 너무 비슷하다.
그냥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그 어렴풋이 그려 놓은 선에 어설프게나마 색을 입혀 놓은 형태였다.
그런데 그 색이 자신의 방향과 딱 맞아떨어졌다.
신서희가 이 안무를 완성한다고 해도 서찬휘가 보여 주는 동작과 동선이 최선이었다.
이것은 타고난 춤꾼의 절대적인 감각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쿵, 쿵.
이것은 스피커의 공명이 아니었다.
신서희의 심장에 울리는 소리였다.
순간 클라이맥스를 찍은 음악이 잔잔한 여운을 남기고 점점 사라졌다.
신서희는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뱉었다.
“지니어스…….”
이것은 그녀의 진심이었다.
천재.
그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방금 서찬휘라고 자신을 소개한 친구는 천재였다.
신서희의 목소리가 조금 컸는지 모두 들을 수 있었다.
그 목소리에 우시원이 눈을 크게 떴다.
“천재라고?”
우시원은 신서희가 말한 천재라는 단어를 되뇌며 눈을 빛냈다.
드디어 신서희에게 안무를 배울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것도 잠시, 우시원의 눈빛이 살짝 죽었다.
정체 모를 감정이 고개를 쳐들어서이었다.
우시원은 휑한 눈으로 서찬휘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서찬휘와 자신 사이에 투명한 벽이 놓여 있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자신의 재능으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