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61)
김민석이 손을 흔들자 최대한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톡 쏘았다.
“제 목소리가 뭐가 큽니까? 제가 시킨 화장실 청소도…….”
“목소리가 너무 커, 일단 목소리 좀 낮추라고!”
김민석이 손바닥을 연신 아래로 내리며 재촉했다.
그 모습에 더욱 기고만장해진 최대한이 목소리를 높였다.
“솔직히 제가 여기 붙어 있고 싶어서 있는 줄 아십니까? 솔직히 제가 어떤 끈을 잡고 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이도준 본부장님 한마디면 부사장님 정도는…….”
최대한은 이도준이라는 이름에 엑센트를 주었다.
그만큼 믿을 수 있는 끈이었다.
최대한은 슬쩍 김민석을 바라봤다.
자신의 말에 입술만 달싹이는 것이 영락없이 비 맞은 강아지 꼴이다.
물론 김민석이 안절부절못하는 것은 다른 이유에서였다.
그것은 도훈의 지시 때문이었다.
도훈이 이 상황을 미리 김민석에게 말해 주었다.
장경자로부터 전화가 올 것이고 도훈이 통화하는 사이에 일어난 모든 일은 생방송 되는 것과 똑같을 것이라고 말이다.
도훈은 이 상황을 면접이라 생각하라고 했다.
즉, 알아서 처신하라는 것이었다.
김민석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지금 자신의 면접 점수는 몇 점일까?
일개 과장 하나가 이렇게 안하무인으로 덤벼드는 것을 장경자가 안다면 어떻게 될까?
김민석은 이제까지 참아 왔던 울분이 가슴속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죽은 아내와의 약속 때문에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 그리고 그 후에는 눈까지 닫고 살았다.
한마디로 미라클의 충견이 되어 살아왔다.
그런데 미라클의 주인도 아니고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놈이 자신의 앞에서 짖고 있었다.
그것도 자신을 쫓아내려고 말이다.
김민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떡 일어난 김민석을 본 최대한이 깜짝 놀라 살짝 몸을 뒤로 젖혔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도 자리에서 일어나 김민석을 바라봤다.
표정은 다르지만, 둘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서로를 죽일 듯 보고 있었다.
한참을 보던 김민석 부사장이 입을 열었다.
“내가 네 오 년 선배다. 그런데 나한테 뭐라고?”
“내가 선배님한테 뭐라고 했습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화를 내십니까?”
도리어 화를 내는 최대한.
김민석은 힐끔 도훈이 통화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이곳의 상황이 모두 도훈의 핸드폰을 통해 장경자에게 중계되고 있었다.
부사장이 과장 따위에게 몰리는 상황이 장경자에게 전달되어서는 안 되었다.
본래 김민석은 복지부동의 아이콘과 같은 존재. 하지만 여기에서는 자신을 드러내야 했다.
김민석은 미간을 좁히며 최대한을 노려봤다.
“이 새끼야, 이 회사의 주인이 누군데 그래?”
“이 회사의 주인이 누구긴요? 이세훈 대표님 게 아닙니까?”
“유레카의 정관에는 이도훈 대표님이 딱 등재되어 있는데, 왜 여기가 이세훈 대표님 거야? 이도훈 대표님은 어디 가고!”
김민석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고는 힐끔 핸드폰을 들고 있는 도훈을 바라봤다.
도훈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이 여기까지는 성공이었다.
하지만 최대한은 전혀 기죽지 않고 김민석을 쏘아봤다.
한참을 노려보던 최대한이 결심한 듯 소리 질렀다.
“장경자 회장님이 돌아가시면 미라클을 누가 물려받겠어요?”
“이렇게 정정하신데 뭘 돌아가셔…….”
“지지 않는 꽃은 조화밖에 없는 법입니다.”
“자네, 말을 가려서 하지.”
“뭘 가려서 합니까? 그룹 전체를 이세훈 대표님이 물려받으면 그다음은 당연히 이도준 본부장님 차지가 되는 게 순리인 걸 뻔히 아시면서 왜 헛발질을 하십니까?”
그때였다.
도훈이 핸드폰을 들고 아무렇지 않게 자리로 돌아왔다.
그 모습에 최대한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 실장, 지금 무슨 짓…….”
최대한은 말을 멈췄다.
도훈이 갑자기 핸드폰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최대한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도훈을 바라보며 무슨 뜻이냐는 듯 턱짓했다.
하지만 도훈은 한 걸음 더 다가와서는 핸드폰을 내밀었다.
“빨리 받아 보세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최대한이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 이게 무슨 짓이지?”
“우리 할머니가 과장님 좀 잠깐 바꿔 달래요.”
“할머니? 누구 할머니가?”
최대한이 눈을 흘기자 도훈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누구 할머니긴요, 제 할머니죠.”
“하하, 이 실장, 너 미쳤구나.”
“왜 웃으세요?”
“조금 또라이 같은 구석이 있기는 해도 설마설마했는데, 지금 보니 완전히 또라이 맞네. 회사에서 힘든 일이 생겼다고 할머니한테 일러? 네가 무슨 마마보이냐? 아니지 그랜드마마보이네.”
“자꾸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 우리 할머니는 기다리시는 걸 싫어해요.”
도훈이 재촉하듯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있던 김민석 부사장은 두 눈을 찔끔 감았다.
지금 최대한이 내뱉었던 말들을 생각해 보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최대한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일단 핸드폰을 받았다.
그러고는 뾰로통한 목소리로 물었다.
“신입 사원 할머니라고 하셨죠? 댁의 손자 교육 좀 잘 시키십시오. 회사에 와서 이게 무슨 짓입니까?”
그때였다.
수화기 너머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최대한은 핸드폰을 보고 고개를 갸웃하며 혼잣말을 뱉었다.
“귀가 먹었나?”
그때였다.
핸드폰 수화기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놈아.
그 소리에 고개를 갸우뚱한 최대한이 다시 핸드폰을 잡았다.
최대한 과장은 상대가 그냥 할머니가 아닌 치매에 걸린 할머니라 확신했다.
“전화 받았습니다.”
―내가 너 때문에 혈압약 먹고 왔다. 네가 지금 얘기한 게 모두 사실이렷다.
“뭐가 사실입니까?”
―네가 얘기한 거 말이다. 미라클의 회장이 죽고 나면 회사가 이도준 것이 된다고 한 게 누구냐? 아니다, 내가 너랑 말함 짬이 아니지, 일단 엄 비서와 얘기해라.
“비서는 무슨 비서, 일단 약부터…….”
최대한이 말끝을 흐리며 표정을 바꾸었다.
그는 힐끔 김민석을 바라봤다.
김민석은 아직도 두 눈을 찔끔 감고 있었다.
그 모양이 도훈이 안타까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마치 매 맞기를 기다리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지금 할머니에서 도훈의 누나로 보이는 여인이 전화를 넘겨받았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어딘가 익숙했다.
과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자신이 이도훈 실장의 누나를 알 리가 없었다.
게다가 목소리에는 포스가 가득했다.
지금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딱 어울리는 여인을 하나 알고 있었다.
그는 미라클의 저승사자라 불리는 여인이었다.
장경자 회장의 비서 역할을 하지만, 미라클의 중요한 일이 있을 적마다 칼춤을 추는 것이 엄지연 비서였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마지막에 한 말이, ‘엄 비서와 얘기해라’였다.
하필 이야기가 안 좋은 쪽으로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왜일까?
지금 수화기 너머에서는 계속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답할 수는 없었다.
이것은 본능이었다.
딱 한 마디만 잘못 말하면 황천길로 갈 수 있다는 동물적인 본능.
그때였다.
도훈이 핸드폰을 다시 가져갔다.
마치 얼음 땡 놀이를 하다가 얼음이 된 것 같은 모습으로 굳어 있는 최대한.
도훈은 최대한의 모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엄지연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한참을 통화하던 도훈이 통화를 끝내고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도훈은 최대한을 바라봤다.
최대한은 도훈의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때 도훈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최대한 과장님!”
도훈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
최대한 과장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그때 김민석이 도훈의 앞에 서서 살짝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제가 잘 타이르겠습니다.”
“대표…….”
최대한이 도훈을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그제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알았다.
갑자기 모든 일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었다.
재벌가에서 보면 가끔 신분을 속이고 신입 사원으로 입사할 때도 있다.
이렇게 대표가 일반 직원으로 속이고 근무하는 경우는 없지만, 말이다.
그때였다.
자신이 이제까지 뱉은 말들이 머릿속에 쭉 떠올랐다.
이제 자신을 지켜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믿던 이도준조차 자신을 지켜 줄 수는 없었다.
그때 최대한의 귓가에 도훈의 날 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과장님.”
“네?”
최대한이 눈을 크게 뜨자 도훈이 조곤조곤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지금부터 벌어질 일들을 대충 말씀드릴게요.”
“지금부터 벌어질 일이라니요?”
최대한의 눈이 커졌다.
마치 수렁에 빠진 것처럼 희망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을 때 도훈이 다시 말을 이었다.
“오늘은 할머니가 안정을 취하셔야 하니, 아마 오늘 당장은 별일 없을 거예요.”
“…….”
“일단 내일 오전에 출근하자마자 미라클의 감사실에서 호출 명령이 떨어질 거예요.”
“가, 감사실이라니요?”
“아시면서 그런다.”
“제가 뭘 안다고…….”
“그런 식으로 직원 떨어낸 게 최 과장님이시잖아요.”
“제가 그런 적이 어디 있다고 그러십니까?”
“아마 지금 최 과장님은 여기서 나가자마자 도준이 형한테 연락을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으실 거예요.”
“도준이 형이라니요?”
“도준이 형과 제가 사촌 사이인 거 아시잖아요.”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본부장님이 이 실장님이 대표님이라는 걸 알고 계셨다고요?”
최대한은 눈을 크게 떴다.
미리 말만 해 줬다면 이렇게 일이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갑자기 원망의 화살이 이도준에게 향하는 순간이었다.
그때 도훈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도준이 형이 말 안 했어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도준이 형도 제가 대표직보다는 현장직이 좋아서 실장으로 일하고 있는 걸 아실 텐데요.”
“음…….”
“뭐, 계속 말씀드릴게요. 일단 감사실에서 나오면 최대한 과장님의 죄도 죄지만, 도준이 형과의 관계도 집중적으로 감사할 겁니다. 도준이 형이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모든 것이 자기 것이 된다고 그랬다면서요?”
“저는 그런 적이…….”
“아까 할머니도 들었고 여기…….”
도훈은 말끝을 흐리며 품속에서 소형 녹음기를 꺼냈다.
동시에 녹음기의 버튼을 눌렀다.
툭.
―회장님이 돌아가시면…….
도훈의 말대로 그곳에서는 최대한 과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최대한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도훈은 그 모습에 다시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세요. 일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 자기 사람이라고 하면서 최 과장님을 품으려고 할까요?”
“왜, 왜 이러십니까? 제가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여기서 쫓아내면 되는 거 아닙니까?”
“지금 저한테 따지는 겁니까? 그리고 제가 과장님을 쫓아내면 저한테 남는 게 뭐죠?”
“남는 거라니요?”
최대한의 눈이 커졌다.
그 모습에 도훈이 해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뒤통수를 거하게 맞은 일이 있습니다. 그 일을 겪은 후 드는 생각이 뭔지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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