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60)
문을 열고 세세하게 살피던 최대한은 피식 헛웃음을 뱉었다.
“진짜 철저히 닦았네, 이거 미친놈 아니야. 매니지팀이 아닌 시설관리로 보내도 될 것 같은데…….”
최대한이 말한 사람은 도훈이었다.
최대한이 도훈에게 집착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사실 최대한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JK엔터테인먼트의 대표를 꿈꾸고 있었다.
자신의 뒷배경이 그룹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이도준이기에 품을 수 있는 희망이었다.
물론 당장 대표의 자리로 오를 수 있다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에서 버티다 보면 분명히 자신이 대표가 될 날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미라클 본사로 발령받을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용의 꼬리가 되는 것보다는 뱀의 머리가 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며 이곳에 남았다.
그 결정을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직은 과장이긴 하지만 이곳에서 절대 권력을 휘두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얼마 전 그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갑자기 회사의 대표가 바뀐 것이다.
그것도 미라클을 이끌어 나가는 가문의 직계로 말이다.
그냥 직계라고 하면 포기하고 말겠지만, 최대한이 보기에는 떨거지 하나가 자신의 케이크에 포크를 꽂은 것이었다.
그런데 새로 온 직원 중에 대표의 라인이라는 놈을 발견했다.
그러니 그냥 둘 수가 없었다.
최대한이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것에는 이곳에서 잘리더라도 이도준의 밑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였다.
그가 이렇게 회사의 물을 흐려 놓는 이유 중 하나도 이도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새로 들어온 직원에게 말도 안 되는 화장실 청소를 시켰다.
이도준의 사람이 아닌 다른 라인은 철저하게 괴롭힌다.
그것이 그의 순수한 의도였다.
그런데 최대한이 원하는 그림이 살짝 엉클어졌다.
보통 새로 온 직원에게 화장실 청소를 시키게 되면 처음에는 열심히 한다.
하지만, 딱 삼 일이 지나면 뻗어 버린다.
오죽하면 작심삼일이란 말이 딱 생각날 정도였다.
그런데 이놈은 뭔가 달랐다.
화장실을 청소하기 위해서 태어난 놈 같았다.
대표와 이름이 같아서 어느 부잣집의 도련님이라 생각했는데, 아무리 봐도 밑바닥에서 바득바득 구른 티가 난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완벽하게 청소를 해 놓을 리가 없었다.
최대한은 실망한 표정으로 나왔다.
그때 그의 눈에 여자 화장실이 들어왔다.
최대한은 입꼬리를 올리며 여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순간 안에 있던 직원 하나가 비명을 질렀다.
“앗.”
“점검차 나왔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과장님, 아무리 그래도 여자 화장실에 불쑥 들어오시면 어떻게 해요?”
“다 업무라니까?”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되죠.”
하지만 최대한은 막무가내로 직원들을 몰아냈다.
그러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화장실을 살펴본 최대한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자리로 걸어갔다.
“역시 여자 화장실은 청소를 안 했네, 확실히 괴롭혀 주겠어.”
그때였다.
그의 앞에 있는 전화기가 울렸다.
따르릉.
가만히 보니 내선 전화였다, 그것도 부사장실의 전화.
최대한은 일부러 받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부사장으로 올라간 김민석도 대표의 라인이었다.
그의 전화를 급하게 받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최대한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보통 몇 번 울리고 나면 끊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전화벨은 멈출 줄 모르고 계속 울렸다.
최대한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수화기를 들었다.
“인사팀의 최대한 과장입니다.”
―지금 내 전화인 걸 모르나? 최 과장.
“아, 전화기 램프가 고장 나서 부사장님인 줄 몰랐습니다.”
―허, 진짜 안하무인이군.
“제가 뭘 어쨌다고 그러십니까?”
―일단 부사장실로 오게.
“지금요?”
―지금 바로 오게, 빨리…….
툭.
최대한은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탕비실 쪽으로 가서 커피 믹스를 타기 시작했다.
종이컵을 든 최대한은 어슬렁어슬렁 인사팀이 있는 파티션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홍보팀의 곽수정 대리는 입맛을 다셨다.
“저래도 되는 건가? 아무리 인사팀 과장이라고 해도 부사장님보다 높은 건 아니잖아요.”
“그러게 말이야.”
잠시 경영지원 본부에 놀러 왔던 매니지 2팀의 한유라도 혀를 찼다.
최대한이 자리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곽수정이 뭔가 생각난 듯 손가락을 튕겼다.
“최대한 과장이 본사로 갈 거라는 소문도 있던데요. 그래서 막판에 저렇게 기세등등한 거 아닐까요?”
“본사는 무슨…… 지금 소문이 흉흉하던데.”
“무슨 소문이요? 한 팀장님.”
“최대한 과장 뒷배가 미라클 본사의 이도준 본부장이잖아.”
“그건 다 아는 거잖아요.”
“지금 이도준 본부장이 반성문 쓰고 있다더라고요.”
“반성문이요? 무슨 학생도 아니고 왜 반성문을 써요.”
“장 회장님 지시라던데.”
“아.”
곽수정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장경자 회장이라면 가능한 일이었다.
뭐, 조금 오버한다면 회초리를 들 수도 있는 것이 장경자였으니까.
그때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곽수정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경영지원 본부에 있는 모든 직원이 고개를 쑥 내밀고 있었다.
그 모습에 곽수정이 외쳤다.
“왜 다들 그런 눈빛으로 보세요?”
“아니, 본사의 이도준 본부장 얘기 좀 더 해 봐요.”
직원 중 하나가 재촉했다.
그 모습에 한유라가 벌떡 일어났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리고 지금 들은 얘기도 절대 제가 한 얘기 아니에요. 괜히 애먼 사람 잡지 마세요.”
한유라는 손을 좌우로 흔든 뒤 재빨리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지자 남아 있는 직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유라가 당황하는 것을 보니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는 눈빛이었다.
한편 복도를 거닐던 한유라는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도훈을 보고는 재빨리 다가갔다.
마치 먹이를 발견한 독수리처럼 밀이다.
하지만 눈빛만은 달랐다.
“이 실장, 잠깐만 나 좀 봐.”
“안녕하세요, 한 팀장님.”
“인사는 됐고, 나 좀 봐.”
“무슨 일 때문에 그러세요?”
“보는 사람이 많으니 2팀 사무실에 가서 잠시 얘기 좀 하자고.”
“네, 알았어요.”
* * *
잠시 후.
2팀 사무실에 앉은 한유라는 도훈의 앞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최 과장과의 얘기 다 들었어.”
“아, 벌써 소문이 났군요.”
“그런 일이 있으면 좀 나한테 얘기하지…….”
“괜찮아요, 원래 회사 같은 곳은 규칙이 있잖아요.”
“규칙은 무슨 규칙, 그 인간이 자기 뒷배 믿고 까부는 거지. 내가 도와줄 테니까, 힘들면 언제든지 말해.”
“괜찮아요, 팀장님.”
“에이, 너무 남처럼 그러지 말고. 최 과장이 아무리 뒷배가 좋아도 우리 매니지팀이 다 들고일어나면 꼼짝 못 할 거야. 우리가 최 과장 약점을 꽤 알거든 대표적인 거 딱 하나만 들면…….”
말문을 연 한유라 팀장은 최대한에 대해서 끊임없이 털어놓았다.
하나라고 해 놓고 그의 입은 멈출 줄 몰랐다.
그 모습에 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 알고 있습니다, 그거 말고도 더 많더라고요.”
“다 알고 있다고? 거기에 그것 말고도 더 많다고?”
“네, 제가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도훈이 일어나자 한유라가 다시 한 번 외쳤다.
“힘들면 꼭 말해야 해, 내가 이 실장하고 한배를 탔다는 거 잊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팀장님.”
인사를 건네고 방을 나선 도훈이 씩 웃었다.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도훈이 사정상 7팀만을 맡아서 돌리고 있지만, 회사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었다.
회사가 삐걱거리는 순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수도 있었다.
한 걸음만 나가도 적이 득실거리는데, 회사 내부에서 으르렁거리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도훈이 신경 쓸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일단 내부 청소부터 해야 했다.
* * *
부사장실에 들어간 최대한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부사장 김민석만이 덩그러니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직원 한 명 정도는 미리 와 있을 줄 알았다.
김민석이 본부장이었을 때나 지금이나 상황은 같았다.
그가 부를 때면 항상 직원 한 명 정도는 옆에 앉아 있었다.
최대한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자리에 앉았다.
“부르셨습니까? 부사장님.”
“그래, 잘 왔어, 오늘은 할 얘기가 많거든.”
“네, 말씀하시죠, 참, 커피는 안 타 주셔도 됩니다. 제가 가져왔거든요.”
최대한은 자신이 가져온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 모습에 김민석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자네 언제 정신 차릴 텐가?”
“정신은 부사장님이 차리셔야죠. 언제까지 썩은 줄을 잡고 있으실 겁니까?”
그때였다.
부사장실 문이 다시 열렸다.
덜컹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도훈이었다.
도훈은 천천히 걸어와 최대한과 김민석의 사이에 앉았다.
순간 최대한의 눈썹이 꿈틀했다.
도훈이 앉은 곳이 묘하게 상석이었기 때문이다.
자신과 김민석이 마주 보고 있기에 앉을 자리가 상석밖에 없었겠지만, 아무리 봐도 예의가 아니었다.
그런데 도훈이 앉는 모습이 너무 자연스럽다는 점이었다.
도훈이 왔는데 오히려 먼저 인사를 하는 것은 김민석이였다.
의문도 잠시 최대한은 씩 하고 입꼬리를 올렸다.
그저 도훈이 예의를 모른다고 생각했다.
최대한은 도훈을 쏘아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지 않아도 부르려고 했는데 이렇게 왔네.”
“저도 과장님을 한번 뵈려고 했는데, 기다리고 계셨군요.”
“거참, 입만 살았어.”
최대한은 도훈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 모습에 김민석이 입술을 달싹였다.
최대한을 말리려는 모습에 도훈이 슬쩍 눈치를 줬다.
도훈의 눈빛에 김민석은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이 최대한의 눈에는 방관하겠다는 태도로 보였다.
그 때문에 최대한의 입꼬리가 끝없이 올라갔다.
그때 도훈이 말을 이었다.
“제가 알아보니까, 화장실 청소를 하는 게 이 회사의 전통이 아니더라고요.”
“그거 고자질하려고 부사장님 방에 들른 건가?”
“뭐, 그것 때문은 아니고요.”
“그럼 나도 할 말은 있네.”
“무슨 말입니까?”
“대체 여자 화장실은…….”
최대한은 말을 잇지 못했다.
묘한 순간에 도훈의 핸드폰이 울렸기 때문이다.
띠리잉.
도훈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과장님 구석에 가서 전화 좀 받을게요, 할머니한테 전화가 와서요.”
도훈은 조용히 구석으로 갔다.
그 모습에 최대한의 눈썹이 꿈틀댔다.
“요즘 젊은 놈들은 예의라고는 없어.”
말을 마친 최대한은 김민석을 바라봤다.
김민석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어찌할 줄 모르고 있었다.
어찌할 줄 모르는 김민석의 모습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도훈의 할머니면 장경자였다.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표정에 최대한은 더욱 기고만장해졌다.
김민석도 자신을 두려워한다고 착각한 것이다.
최대한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이 실장인가 뭔가 하는 놈 너무 예의가 없습니다. 제가 시킨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목소리가 너무 크네.”
김민석이 손을 흔들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