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59)
강시혁이 고개를 갸웃하자 도훈이 말했다.
“한번 눌러 봐.”
강시혁은 눈매를 좁혔다.
도훈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은행의 앱 화면이 떠 있었다.
강시혁은 화면의 입출금 확인 버튼을 눌렀다.
바로 화면이 바뀌었다.
강시혁은 화면을 바라봤다.
금액은 변동이 없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뭐가 이상한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도훈이 다시 말을 이었다.
“한 번 더 눌러 봐.”
“더 눌러 보라고? 뭘?”
“아무 곳이나.”
도훈의 말에 강시혁이 화면을 눌렀다.
순간 강시혁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헉.”
“왜 그렇게 놀라?”
“이게 뭐야? 왜 첫 화면으로 돌아온 거지?”
“버튼 말고 아무 곳이나 눌러 봐.”
툭.
화면의 빈 곳을 터치한 강시혁의 눈이 한 단계 더 커졌다.
“이게 뭐야?”
“뭐긴, 그냥 앱을 캡처해서 띄워 놓은 화면이지.”
도훈은 태블릿 화면을 가리켰다.
강시혁은 재빨리 화면을 눌러 봤다.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아무 곳이나 터치하는 것만으로 화면이 바뀐다.
강시혁은 재빨리 자신의 컴퓨터로 가서 은행 계좌를 조회했다.
강시혁이 눈을 크게 뜨고 도훈을 바라봤다.
시선이 마주친 도훈은 어깨를 으쓱했다.
왕건우의 돈은 정상적으로 입금되었다.
하지만 이 태블릿에서는 입금이 안 된 것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한참 동안 넋을 잃고 태블릿 화면을 보던 강시혁이 물었다.
“화면이 조금 이상하긴 했어. 그런데 아깐 왜 못 알아봤지?”
“그거야 돈에 눈이 멀었으니까.”
도훈이 씩 웃자 강시혁이 다시 물었다.
“아까 밖을 보니 위조지폐라는 말이 나오던데, 그건 또 어떻게 된 거고.”
“그건 나도 모르지.”
“하긴…….”
강시혁이 뒷말을 흐리며 도훈을 바라봤다.
도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의문이 모두 풀린 것은 아니었다.
위조지폐라는 말이 나왔으면 도훈이 놀랐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도훈은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다른 의문 한 가지는 왜 이리 왕건우에게 집착하느냐 하는 점이었다.
사기를 당한 사람은 강시혁이지 도훈이 아니었으니까.
* * *
2시간 후.
유레카에서 한 블록 떨어진 커피숍.
도훈은 오늘도 전과 마찬가지로 아이스커피를 시원하게 들이켜고 있었다.
조금 다른 점은 도훈의 앞에 김민석이 아닌 다른 이가 앉아 있었다는 점이었다.
지금 도훈의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동부지검의 진정해 검사였다.
진정해 검사의 눈에 호기심이 일렁였다.
하지만 마치 이 긴 침묵 게임에서 지지 않겠다는 듯 조용히 커피만 홀짝였다.
그렇게 한 오 분 정도가 더 흐르자 그는 못 참겠다는 듯 물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검사님.”
도훈이 기다렸다는 듯 답하자 진정해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왜, 저였습니까?”
“제가 검사님을 고른 게 아니라, 할머니께서 고르신 겁니다.”
“제가 궁금한 건 그게 아닙니다. 처음에는 부탁이라고 해서 양심을 저버려야 하는 청탁이 들어오는 건 아닌가 심란했습니다. 그런데 받고 보니 청탁이 아닌 선물이었습니다. 이 정도로 증거가 확실한 범죄라면 누구한테 줘도 처리되었을 거란 얘깁니다.”
진정해는 도훈을 빤히 바라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건 선물, 즉 자신에게는 실적을 쌓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 선물을 넝쿨째 건네주는 의도가 뭔지 그것이 궁금한 것이다.
그 표정을 본 도훈이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 미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같은 식구잖아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좋은 게 있으면 먼저 가족에게 나눠 줘야 하는 게 맞지 않나요?”
“아.”
진정해는 입을 크게 벌렸다.
재벌 집 아들의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나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얼굴을 마주할 때는 검사님, 검사님, 하면서 존중해 줘도 그들은 상대를 그저 도구로 생각한다.
비록 미라클의 지원을 받아 공부해서 검사가 되었지만,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이도훈이라는 남자는 다른 재벌가의 사람들과는 달랐다.
진정해의 눈에는 아직 호기심이 가시지 않았다.
그의 탄성이 사그라지기 전에 도훈이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검사님께 부탁드릴 건 왕건우를 체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네?”
깜짝 놀란 진정해가 눈을 크게 떴다.
도훈에 대해서 가졌던 좋은 감정이 갑자기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부탁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을 봐서는 자신의 양심을 버려야 하는 상황이 올 것 같았다.
진정해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도훈이 말했다.
“아마 중국에서 범죄자를 인도해 달라는 요청이 올 겁니다.”
“그게 무슨…….”
“반드시 올 겁니다, 그때 빨리 넘겨주십시오.”
“우리 관할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대한민국의 법으로 심판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 사형 집행이 가능합니까?”
“사형 집행이라면…….”
진정해는 눈을 끔뻑거렸다.
도훈의 입에서 나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세상에 죽일 놈들은 차고도 넘쳤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사형 제도는 유명무실한 상태.
사형이 구형되어도 근래 집행된 적은 없었다.
그때 도훈이 입을 열었다.
“아마 주변 상황을 전해 들으면 죽어도 중국 본토로 송환되는 것을 거부할 겁니다. 혹시 윗선에서 압력이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
“그래도 돌려보내십시오.”
“중국으로 돌아가서 처벌받을 죄목이 뭡니까?”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도훈은 MP3 플레이어를 건넸다.
진정해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도훈은 이어폰을 귀에 꽂으라고 손짓했다.
그때야 진정해는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진정해가 이어폰을 귀에 꽂자 도훈이 플레이어 버튼을 조작하더니 재생 버튼을 눌렀다.
―애새끼들 장기는…….
사내들의 거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진정해는 조용히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진정해의 눈이 점점 커졌다.
그들의 대화를 듣던 중 진정해가 못 참겠다는 듯 물었다.
“대체 이건 뭡니까?”
“중국 본토의 조직원들과 나눈 얘기입니다. 다른 트랙을 눌러 보시죠, 그건 마약 관련 이야깁니다. 한국에서 처벌할 수 있을까요?”
“음.”
진정해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토해 냈다.
그러고는 재빨리 다음 트랙을 재생시켰다.
범죄의 증거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진정해는 이제야 도훈이 한 말이 뭔지를 알았다.
왕건우와 그 일당은 중국으로 송환되면 반드시 사형을 당한다.
중국은 다른 건 몰라도 세계 어떤 나라보다 마약을 증오하는 나라니까.
대화를 다 확인하고 난 진정해가 물었다.
“그럼, 그 위조지폐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그건 검사님이 밝히셔야 할 문제죠, 뭐, 중국에서 왔을 가능성이 크죠. 대륙이 못 만드는 물건은 없으니까요. 가짜 만두까지 만드는 친구들이 가짜 돈인들 못 만들겠습니까.”
“네, 그렇겠군요. 그런데 이 사람들에 대해서 집착하는 이유가 뭡니까? 이 정도면 개인적인 원한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 대답을 하기 전에 검사님에게 한 가지만 물어보죠.”
“네, 얼마든지요.”
“방에 널브러져 있는 쓰레기들을 안 치우고 그냥 주무실 수 있습니까? 음식물 쓰레기에서부터 시작해서…….”
도훈은 쓰레기 종류를 끝없이 늘어놓았다.
진정해가 몸서리를 치며 답했다.
“그걸 안 치우고 어떻게 잡니까?”
“제가 그렇습니다, 주변에 쓰레기가 널려 있으면 잠이 안 옵니다.”
“그 말씀은…….”
“왕건우가 쓰레기라는 것이죠.”
“하하, 우문현답이네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말입니다…….”
“네, 말씀하시죠. 검사님.”
“나중에 이런 기회가 또 있으면 제게 주십시오, 회장님 말고 그냥 제게요.”
“…….”
“이도훈 실장님이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실적이 될 만한 게 있으면 드리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도훈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진정해가 물었다.
“시간이 되시면 잠시…….”
“제가 오늘은 좀 바빠서요.”
“일은 다 끝나시지 않았습니까?”
“다른 쓰레기를 치우러 가야 해서요.”
“네?”
“뭐, 그런 게 있습니다.”
도훈이 씩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진정해는 창문 너머로 점이 되어 사라져 가는 도훈의 모습을 보며 웃었다.
진짜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검사나 경찰보다도 범죄를 진심으로 증오하는 친구였다.
그것도 재벌가의 아들이 말이다.
* * *
다음 날 아침, JK유통.
본부장실에서는 이도준이 바쁘게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이도준은 지금 미칠 것만 같았다.
사촌 동생인 도훈을 옭아 넣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지만,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갔다.
그 작전의 중심에는 이도민이 있었고 그의 친구 현준만은 지금 조사를 받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멍청하기만 했던 도훈에게 자신이 당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이도민이다.
이도민은 지난번에 봤을 때와 비교하면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
이도민이나 이도준이나 지금 상황은 똑같았다.
하지만 이도준으로서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이었다.
그를 믿었다가 할머니에게 미움을 받게 되었으니까.
이도준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물었다.
“할머니가 자숙하고 있으라고 했던 거로 기억하는데, 왜 여긴 무슨 일이냐?”
“형, 왜 그렇게 날이 서 있어요?”
“널 믿었다가 지금 이 모양인데, 내가 웃어야 하는 거냐?”
“제 잘못이 아니고 그놈이 속인 게 아닙니까?”
“…….”
이도준은 아무 말 없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모습에 이도민이 말했다.
“제가 여기 온 건 좋은 정보를 알려 드리려고 온 거니 괜히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시죠.”
“좋은 정보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우리가 그놈한테 왜 속았는지 아십니까?”
“…….”
“형님은 그놈이 회사도 안 나가고 빈둥거린다고 생각하시죠?”
“그럼, 그게 아니라고?”
“그놈이 평범한 직원인 척하고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직원?”
“웃기죠, 무슨 깜짝 카메라도 아니고…….”
“그래서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지?”
“형님 라인을 이용해서 그놈이 신분을 속이고 있다는 걸 폭로하십시오. 그럼 그놈도 흔들리겠죠.”
“그걸로 흔들리겠냐?”
“꿍꿍이속이 있으니 속이는 것이고, 그것이 막히게 되면 그놈도 약점을 드러낼 겁니다.”
“그 문제는 조금 더 생각해 보자.”
이도준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 모습에 이도민이 물었다.
“왜 그러세요?”
“그놈만 떠올리면 두통이…… 윽.”
이도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 * *
그날 오후, 유레카.
인사팀 과장 최대한은 어깨를 들썩이며 회사의 정문에 들어섰다.
회사로 들어선 최대한은 뭔가 생각난 듯 손가락을 튕겼다.
오늘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최대한은 가장 먼저 공용 화장실로 들어갔다.
덜컹.
얼마나 박력이 넘치게 문을 열었는지 안에서 볼일을 보던 직원들이 깜짝 놀라며 움찔할 정도다.
최대한은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조용히 화장실 문을 하나하나 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