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58)
그 모습에 왕건우가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야.”
“입금했습니다.”
그제야 입을 여는 왕건우의 비서.
왕건우가 고개를 돌려 도훈을 바라봤다.
“들으셨습니까? 빨리 확인해 보시죠.”
그 말에 도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민국에게 손을 내밀었다.
신호를 받은 한민국이 다시 태블릿을 건넸다.
도훈은 이전처럼 조용히 태블릿 화면을 터치했다.
화면을 누르자 빠르게 핸드폰에서 은행 입출금 내역이 나타났다.
도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입금 내역이 없는데요.”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분명히 강시혁 대표에게 받은 돈과 제 돈을 합쳐서 입금했는데요.”
“여기 보십시오.”
도훈이 태블릿 화면을 보여 줬다.
태블릿 화면을 본 왕건우의 동공이 흔들렸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왕 대표님이 직접 입금 과정을 확인해 보셨습니까?”
“…….”
“아니면, 대표님의 비서분이 직접 입금을 하신 겁니까?”
“…….”
왕건우는 답할 수 없었다.
자신은 지금 앞에 있는 미라클의 실장과 같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럼 비서가 입금을 했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비서가 중국에 있는 동료들에게 전화를 해서 급하게 자금을 마련한 것이다.
그러니 비서도 입금 과정을 모를 수밖에 없었다.
왕건우는 지금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도훈과 미라클을 못 믿는 것이 아니었다.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자신의 조직이 미덥지 못했다.
왕건우의 이마에 살짝 땀방울이 맺혔다.
마음을 진정시키려 해도 계속 심장이 뛰는 속도가 빨라진다.
또륵.
이마에 맺혔던 땀방울이 왕건우의 턱선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때 도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라클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분과는 거래 안 합니다. 왕 대표님 지분은 빼고 강 대표님의 지분만을 고려해서 투자하겠습니다.”
“자, 잠시만요.”
“아닙니다, 대화는 이걸로 끝났습니다.”
도훈이 손바닥을 보이며 돌아섰다.
그때 왕건우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잠시만…….”
왕건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도훈을 잡으려 했다.
도훈이 뭔가 기억난 듯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 소리에 왕건우의 표정이 바뀌었다.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도훈을 바라봤다.
그것도 잠시, 도훈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회장님이 주신 선물은 놓고 가시죠.”
“선물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지난번에 드린 만년필 말입니다.”
도훈은 왕건우의 재킷에 꽂혀 있는 만년필을 가리켰다.
도훈이 얼마 전 선물로 건넸고 지금은 서류에 서명했던 바로 그 만년필이다.
“이건…….”
“일이 정상적으로 처리된 다음에 다시 돌려드리겠습니다.”
“음.”
그는 침음을 토해 냈다.
그러고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만년필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것은 사장단에게 주는 황금 만년필이라고 했다.
중국 쪽 조직의 배신으로 모든 것이 엉킨 상황이었다.
미라클 측이 자신을 못 믿는 것도 당연했다.
순간 도훈의 한마디가 그의 상념을 깨웠다.
“시간은 이틀 드리겠습니다. 그동안 해결하시죠.”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왕건우가 돌아섰다.
그는 이를 꽉 깨물고 있었다.
도훈이 아닌 자신의 동업자들에게 드러내는 감정이었다.
그가 건물을 빠져나왔을 때였다.
그의 핸드폰이 진동음을 토해 냈다.
지잉, 지징.
왕건우는 재빨리 상대를 확인했다.
상대의 이름을 확인한 왕건우는 재빨리 핸드폰 버튼을 눌렀다.
그가 기다렸던 전화였다.
“장 사장, 왜 일을 그렇게 처리하나?”
―이 더러운 새끼.
“지금 뭐라고 했지?”
―우리를 팔아? 돈은 다 네가 먹고?
상대의 말에 왕건우의 미간에 골이 팼다.
적반하장이란 단어가 딱 어울렸다. 왕건우는 이런 상황에 익숙했다.
상대의 뒤통수를 칠 때는 항상 큰소리를 쳐야 한다고 배웠다.
그래야 상대가 마지막까지 오해라 생각하니 말이다.
왕건우는 지금 상대가 배신했음을 깨달았다.
그때였다.
수화기 너머로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우당탕, 쾅, 왜 그러십…….
그러더니 수화기 너머에서 고성이 오간다.
마치 전쟁이라도 벌어진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만드는 상황이었다.
툭.
신호가 끊겼다.
왕건우는 입맛을 다셨다.
그 모습에 서류 가방을 들고 있던 비서가 다급히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 새끼들이 우릴 배신했어.”
“본토 쪽의 동료분 말입니까?”
“그래, 그 새끼들이 배신했어. 배우까지 불러서 연극을 하고 있더라고.”
왕건우는 똥 씹은 표정으로 비서에게서 서류 가방을 낚아챘다.
“이건 내가 맡지, 이게 있으면 다시 재기할 수 있어. 그 새끼들이 푼돈 긁어모을 때 우리는 여기서 대기업을 털어먹는 거지, 하하.”
그는 서류 가방을 움켜쥐었다.
날이 밝는 대로 그 가방 안에 있는 돈을 입금하면 되었다.
그다음은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그가 입꼬리를 올리고 있을 때였다.
삐용, 삐용!
갑자기 들려오는 경찰차 소리에 왕건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멀리서 경광등을 반짝이며 여러 대의 경찰차가 오고 있었다.
그것을 본 비서가 다급하게 외쳤다.
“대표님 어서 몸을…….”
“지금 무슨 헛소리야. 근처에 뭐 사건이라도 일어났겠지, 우리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죄, 죄송합니다. 제가 괜히 긴장을 했나 봅니다.”
비서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순간 지나가던 경찰차가 멈췄다.
그러고는 경찰과 정장 차림의 사내가 재빨리 다가왔다.
왕건우 앞에 멈춘 정장 차림의 사내가 신분증을 그의 얼굴에 내밀었다.
“동부지검 진정해 검사입니다.”
“…….”
“동행해 주셔겠습니다. 이건 구속영장…….”
그는 서류를 펼쳐 보였다.
그 모습에 왕건우는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리 봐도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때 검사라 밝힌 사내가 옆에 있는 경찰에게 턱짓을 했다.
경찰이 그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며 말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고 당신이 하는 말은 당신에게 불리한 증거가 될 수 있으며…….”
난데없는 상황에 왕건우가 외쳤다.
“지금 왜 이럽니까?”
그의 목소리는 쩌렁쩌렁 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상황은 이해가 안 되었다.
사기죄 가지고 이렇게 검찰까지 올 리는 없었다.
자신이 벌인 일이 사기라고 하더라도 수사를 시작하는 시간만, 한 달은 족히 걸린다.
왕건우는 순간 중국 쪽에 있는 동료들이 떠올랐다.
이제까지 모아 놓은 돈을 차지하기 위해?
딱 그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슨 죄목으로?
그것이 왕건우가 궁금해하는 것이었다.
그때 진정해 검사가 말을 이었다.
“위조지폐 유통 협의입니다.”
말을 마친 진정해 검사는 그가 가지고 있던 서류 가방을 바라봤다.
서류 가방은 이미 경찰의 손에 넘어가 있었다.
진정해 검사가 경찰에게 말했다.
“그 증거물은 잘 보관해 주십시오, 경감님.”
“네, 알겠습니다.”
경찰이 가방을 들고 가자 왕건우가 외쳤다.
“그건 내 돈이라고 이 새끼들아.”
“지금의 발언도 증거로 채택하겠습니다.”
진정해 검사가 녹음기를 들어 보였다.
그 모습에 왕건우는 피식 웃었다.
위조지폐라니, 말도 안 되는 혐의였다.
변호사만 쓰면, 아니 변호사가 없다고 해도 저 돈을 검사해 보면 위조지폐가 아니라는 것은 바로 밝혀질 터였다.
왕건우는 비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진정해를 바라봤다.
“헛발질도 적당히 하셔야죠, 검사 나으리. 일단 들어가서 봅시다.”
왕건우는 뒤쪽에 있는 비서에게 눈짓했다.
안심하라는 신호였다.
그런데 비서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다 죽어 가는 표정이다.
왕건우가 비서에게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 왜 그래?”
“그, 그게…….”
비서가 말끝을 흐렸다.
순간 왕건우의 눈썹이 꿈틀했다.
“너, 이 새끼!”
왕건우가 비서에게 달려들자 진정해 검사가 외쳤다.
“둘을 격리해 데려가 주시죠.”
“네, 검사님.”
경찰은 둘을 떼어 냈다.
왕건우와 점점 멀어지는 비서는 마른침을 삼켰다.
가방에 들어 있는 지폐 중 반 이상은 위조지폐가 맞았다.
진짜 돈은 미리 빼놓았다.
이번 일이 끝나면 그는 왕건우를 떠날 생각이었다.
바로 떠나지 않은 것은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오늘 여기서 일을 마무리 짓고 오늘 밤 인천에서 배를 타기로 했다.
그런데 모든 일이 완전히 틀어졌다.
그 원인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왕건우의 비서였다.
* * *
잠시 후, 현장이 정리되자 건물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던 강시혁은 창문을 닫았다.
탁.
그는 조용히 도훈을 바라봤다.
도저히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일어난 일은 도훈이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그저 강시혁과 주변 사람들이 사기당한 돈을 찾아 주겠다고만 했다.
그런데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쳐 그를 체포해 간 것이었다.
그런데 그 후 도훈의 모습은 정말 이상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템포가 빠른 음악인 것 같았다.
이런 소란에 한가하게 음악을 듣고 있다니!
강시혁은 도훈의 맞은편에 앉았다.
힘이 빠진 듯 소파에 몸을 맡긴 그는 계속 도훈을 바라봤다.
도훈은 그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MP3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고 있었다.
사실 왕건우를 잡아 놓기만 하면 되었다.
그 죄목으로 가장 편한 것이 위조지폐 유통이었을 뿐이었다.
도훈은 가방에 든 것이 위조지폐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도훈은 왕건우에게 돌려받은 황금색 만년필을 만졌다.
그 만년필에는 고성능 송신기가 들어 있었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감시하는 데는 제법 많은 비용이 들었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왕건우가 없는 사무실에서 오간 대화들까지 모두 엿들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자신이 가져온 것이 위조지폐라는 것을 왕건우는 몰랐을 것이었다.
그가 자리에 없을 때 이루어진 대화니 말이다.
그들의 범죄가 정리된 대화를 다 듣고 난 도훈은 그때야 고개를 들었다.
아직도 빤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강시혁과 눈이 마주친 도훈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다 끝났나 봐?”
“휴,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 실장.”
“잠시만 기다려.”
자리에서 일어난 도훈은 장식장에 있는 행운의 부엉이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바닥에 떨어뜨렸다.
쨍그랑.
바닥에는 산산조각 난 인형의 조각이 나뒹굴었다.
도훈은 그 파편을 살피다가 조그마한 송신기를 발견하고는 그대로 밟았다.
콰직.
송신기가 산산이 조각나자 도훈이 자리에 앉았다.
“이제는 편히 얘기해도 돼.”
“진짜 저런 게 있었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 실장.”
“선권징악.”
“그게 무슨 말이야? 권선징악도 아니고 선권징악이라니?”
“원래 선한 주먹은 악을 벌하는 법이지.”
“헉.”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통장에 잔고부터 확인해 봐.”
“잔고? 아까 분명히 안 들어왔다고 했잖아.”
“혹시 강 피디도 속은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강시혁이 고개를 갸웃하자 도훈은 옆에 앉아 있던 한민국에게 손을 내밀었다.
한민국은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태블릿을 내밀었다.
도훈은 태블릿을 강시혁을 향해 펼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