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54)
그 모습에 강시혁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네, 그건 맞네요.”
“그리고 대표라 하지 마시고, 그냥 실장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저도 그게 편합니다.”
“하하, 그럼 그럴까요? 실장님.”
“네, 그게 편합니다, 강 피디님.”
“일단 이야기를 마저 나누실까요?”
“네, 저도 아까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강시혁의 눈에서 생기가 살아났다.
“그럼, 아까 제 질문에 답해 주시죠. 아까 제가 질문을 드린 의도를 아시겠지요?”
도훈의 말에 강시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돈이 먼저일까?
아니면 최고의 아이돌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 먼저일까?
끄덕이던 강시혁의 고개가 멈췄다.
대신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저는 제 색을 입힌 아이돌을 만들고 싶습니다.”
“네, 그러시군요. 저는 그 아이돌을 어디서 만드느냐가 중요합니다.”
“제가 유레카로 들어가면 제 영역에는 관여 안 하시겠습니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한 절대 관여 안 하겠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 조건이라는 게 뭔가요?”
강시혁이 눈을 가늘게 뜨고 도훈을 바라봤다.
“시원이를 아이돌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건 제가 원하던 바에요.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말을 마친 강시혁이 도훈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조건이었다. 우시원을 팀에 넣고 싶은 것은 강시혁의 바람이었다.
강시혁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도훈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몇 가지만, 물어볼게요.”
“네, 뭐든지요.”
“시원이를 왜 뽑았습니까?”
“그야…….”
“외모와 가창력 때문이죠.”
“잘 아시는군요, 그게 절대적인 기준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자세히 보셨다면, SW에서 방출된 이유도 아시겠군요.”
“네, 안무를 못 따라간다고 들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오디션 때 보니 조금 보충해야 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춘 춤이 혹시 SW의 데뷔 조에서 연습했던 춤이 아니던가요. 잇츠 마이 라이프에 맞춘 군무요.”
“네, 맞아요.”
“거기까지 가는 데 정확히 일 년 걸렸습니다.”
“네?”
강시혁이 눈을 크게 떴다.
잇츠 마이 라이프에 맞춘 동작은 그리 힘들지 않은 동선과 그리 과하지 않은 동작으로 이루어진 안무였다.
그런데 그게 일 년이 걸렸다면?
강시혁은 그 춤을 보고 조금만 더 다듬으면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그의 표정을 본 도훈이 다시 말을 이었다.
“시원이가 제일 잘 추는 게 바로 그 춤입니다. 제 말씀은 그때 보신 그 수준이 시원이의 한계라는 겁니다.”
“음, 시원이를 아이돌로 만들고 싶다고 하면서 왜 이런 얘기를 하는 겁니까?”
“한계를 명확히 알아야 조련할 수 있죠. 테두리 안에 넣었다가, 넌 안 될 것 같다고 하면서 쫓아내는 것보다는 실력이 될 때 거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런 방법이 있을 리가…….”
“이러면 어떨까요?”
“어떻게요?”
“그러니까…….”
도훈은 자신의 계획을 털어놨다.
전생에 우시원에게 썼던 방법인데 그게 댄스의 영역에서까지 통할지 몰랐다.
아이돌에게 필요한 능력은 무엇일까?
어찌 보면 우시원이 항상 언급하는 공무원 시험하고 비슷했다.
어느 정도의 외모.
어느 정도의 댄스 실력.
어느 정도의 보컬이나 랩 등 과락 수준만 아니면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과목을 만점 받아도 하나가 월등히 떨어진다면 불합격을 줄 수밖에는 없었다.
그 월등히 떨어지는 부분이 팀원의 발목을 잡으니, 당연했다.
잠시 후.
이야기를 끝내고 자리에 앉은 강시혁은 닭다리를 쥐고 뜯었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 몰아쳤던 불행 때문에 지금의 행운이 왔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도훈의 제안은 그만큼 매력적이었다.
옆에서 치킨을 뜯고 있던 우시원은 갑자기 달라진 강시혁의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앞쪽에 앉은 서찬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진지하게 닭다리를 뜯고 있는 강시혁의 모습에 물어볼 수도 없었다.
* * *
다음 날 오후, 유레카 엔터테인먼트의 대회의실.
세 명의 팀장과 세 명의 실장이 모여 앞에 떠 있는 프로젝션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화면에는 프레젠테이션 화면이 떠 있었다.
지금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고 있는 것은 2팀장 한유라였다.
화면을 찍어 가며 설명하는 한유라의 목소리는 살짝 떨렸다.
부사장 김민석으로부터 자료를 받은 것이 바로 오늘 오전이었다.
오후에 긴급회의를 하니 나머지 매니지먼트 팀원들에게 브리핑하라는 지시와 함께 말이다.
한유라는 유레카가 키운다는 보이 그룹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유레카의 매니지먼트 팀은 가수와 배우로 크게 나뉘어 있었다.
2팀은 배우를 맡고 있었다고 1팀이 음원 관련 아티스트의 케어를 맡고 있었다.
3팀과 4팀이 있긴 했지만, 행사와 관련해서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지원팀에 가까웠다.
1팀이 맡고 있는 음원 관련 아티스트의 경우 대부분이 솔로 가수였다.
그런데 갑자기 보이 그룹이라니!
같은 기획사라고 해도 유레카는 조금 성격이 달랐다.
마음먹고 보이 그룹을 키워 내려면 지금의 인원 가지고는 턱도 없었다.
보이 그룹에 대한 이야기가 튀어나오자 여기저기서 웅성대기 시작했다.
“한 팀장님, 우리 인원 가지고 보이 그룹이라니요? 보이 그룹을 키운다는 건 돌판에 뛰어든다는 건데…….”
“네,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 그쪽으로 경력자가 있나요? 아니면 외부에서 데려온다는 건가요?”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솔직히 외부에서 데려온다면 저희들 입지도 그렇고…….”
누군가 맞장구치며 슬며시 한유라의 눈치를 본다.
한유라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 나와 있습니다.”
툭!
한유라가 포인터에 달린 버튼을 눌렀다.
도형과 선만으로 된 화면이 나타났다.
“지금부터 조직 개편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한유라가 가리킨 화면에는 아무런 글자도 쓰여 있지 않았다.
그저 사각형과 선만으로 이루어진 조직도.
그 안에 어떤 이름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여기 있는 사람들의 희비가 갈릴 터다.
순간, 여기저기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한 팀장님, 지난번에 대표이사가 바뀌고 나서 개편이 있지 않았습니까?”
“네, 그랬죠.”
“그런데 얼마나 지났다고 개편입니까? 그게 말이 됩니까?”
“그건 저도 모릅니다. 나중에 직접 대표님께 따져야 할 문제지, 제가 답할 문제는 아니라고 보네요.”
한유라가 단번에 질문을 잘랐다.
그렇지 않아도 이렇게 짐을 떠안는 게 기분 나쁜 그녀였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에게 책임을 묻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자 싹부터 잘라 낸 것이다.
한유라는 아무렇지 않게 포인터의 버튼을 눌렀다.
동시에 아무 글자도 없던 사각형에 글자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순간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게 뭡니까? 조직에 아무 변화도 없잖아요.”
“변화도 없는데 왜 조직 개편이란 제목을 달아서…….”
“그러게 말이에요.”
모두가 수군댈 때 한유라가 다시 버튼을 눌렀다.
툭.
화면의 오른쪽 구석 한 공간에 조그만 박스가 나타났다.
박스에 적혀 있는 내용은 간단했다.
[아이돌 프로젝트 그룹 레이블]
모두가 고개를 갸웃할 때 한유라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그녀의 설명에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
* * *
같은 시간 유레카 엔터테인먼트에서 한 블록 떨어진 어느 빌딩의 오 층.
텅 빈 공간을 보고 있는 강시혁은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제 도훈과의 만남 이후 단 하루 만에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이다.
말이 도훈에게 고용된 것이지, 그와 자신의 관계는 동업자에 가까웠다.
사실 투자를 받아서 다시 기획사를 세운다고 해도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될 수 없었다.
자신의 색을 존중해 주겠다고 한 도훈의 말은 사실이었다.
도훈은 자신에게는 둘도 없는 귀인이긴 했다.
하지만 조금 당황스러운 면도 있었다.
도훈은 어제 자금을 모두 빼서 튄 대표가 며칠 내로 연락할 것이라 했다.
만약에 연락이 오면 화는 내되 내치지 말고 조용히 만나라고 했다.
“그 친구도 참,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니까…….”
강시혁은 말을 맺지 못했다.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이 진동음을 토해 냈기 때문이다.
징, 징.
강시혁은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잘 지냈나? 강 대표.
“혹시…….”
―날세, 왕건우.
강시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설마했는데 정말 왕 대표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강시혁은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안 되었다.
강시혁은 도훈이 시킨 대로 욕을 한 사발 뱉었다.
하지만 사기꾼 왕 대표는 아무렇지 않게 통화를 이어 나갔다.
요점은 하나였다.
지금 전화를 건 것은 오해를 풀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자신이 사기꾼이었으면 오늘 왜 전화를 했겠냐고 따지니 강시혁은 말문이 막혔다.
더 황당한 것은 이 모든 것이 도훈이 말해 준 그대로라는 점이었다.
만약에 도훈이 미리 언질을 주지 않았더라면, 왕건우의 말솜씨에 속아 넘어갔을 수도 있었다.
강시혁은 도훈이 미리 언질을 준 대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잠시 대화를 이어 가던 강시혁은 전화를 끊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는 머릿속에 도훈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바닥에서 봤던 얼굴은 아니었다.
거기에 더해 미라클의 장경자의 손자라는 것이 더욱 이해가 안 되었다.
사실 도훈의 재력 때문에 놀란 것은 아니었다.
그가 하는 이야기는 진행되는 일들을 보면 마치 바둑의 고수가 훈수를 두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랬다.
왕건우가 전화한 이유는 간단했다.
미라클에서 투자를 받았다고 하니, 자신의 지분을 들먹이며 다가온 것이다.
사기꾼이 모두 그렇듯 자신에게 잘못이 있더라도 이익이 눈앞에 있다면 물불을 안 가리고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왕건우는 어떻게 알고 이렇게 연락을 한 것일까?
강시혁은 대충 상황을 알고 있긴 했다.
지금 이 바닥에서 묘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몇몇 대기업에서 딴따라라고 무시하던 연예 산업에 투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 중심에는 미라클이 있고 말이다.
미라클의 계열사인 유레카에서 투자하는 첫 번째 과녁이 강시혁이라는 것이 소문이다.
강시혁이라는 인물 하나만 보고 평가한 것이 100억.
조금은 황당한 소문이지만, 유레카에서는 부인을 안 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헛소문이 왜 이렇게 빨리 퍼졌는지는 강시혁도 모르고 있다.
그저 그 뒤에 도훈이라는 사람이 버티고 있다고 추측할 뿐이었다.
강시혁이 헛소문이라고 하는 것은 아이돌을 키울 시드 머니를 아낌없이 지원해 주고 있지만, 가치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다.
본인도 모르는 이야기니 이것이 헛소문일 수밖에 없었다.
* * *
그날 오후 강시혁은 도훈과 마주 앉아서 다음 계획에 대해서 논의했다.
주제는 크게 두 가지였다.
그 주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우시원의 거취에 관한 문제였다.
강시혁이 도훈을 조심스럽게 바라봤다.
“이 대표님, 아니 이 실장님, 아, 이거 입에 호칭이 잘 안 붙네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