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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53화 (53/250)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53)

강시혁은 우시원을 보더니 못 말리겠다는 듯 살짝 고개를 흔든다.

우시원은 어깨를 들썩이며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때 도훈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지금 대체 무슨 일인 거죠? 시원이에게 듣기로는 여기가 기획사라고 하던데요. 그런데 지금 보면 뭔가…….”

도훈은 슬쩍 운을 띄우며 시선을 돌렸다.

그 모습에 강시혁이 한숨을 쉬었다.

“휴, 제가 초면인 분에게 속사정까지 털어놓기도 뭐하네요.”

“곤란하게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제가 이런 쪽으로는 전문가라서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여쭤봤습니다.”

“전문가요?”

“예를 들어서 돈 떼먹고 나른 놈들 잡는다든가, 아니면 남의 등치고 달아난 놈 잡는다든가, 아니면…….”

도훈의 입은 마치 선풍기가 돌아가듯 쉴 틈 없이 움직였다.

그 모습에 강시혁이 눈을 크게 떴다.

절박한 것은 자신인데, 지금 대화 내용을 들어 보면 이도훈이라는 친구가 더 절박해 보였다.

도훈의 말이 끝나자 강시혁이 물었다.

“진짜 유레카의 매니저가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제가 좀 수다스럽죠?”

“그런 건 아닌데, 왜인지 친숙한 느낌이 들어서요.”

“제가 그런 얘기를 좀 많이 듣습니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출출한데 속이라도 채우죠.”

“네?”

“일단 에너지부터 보충해야지. 앞일을 토론할 거 아닙니까?”

“…….”

도훈은 조용히 강시혁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 * *

도훈은 홍대입구역에서 벗어나 조용한 골목에 있는 치킨집으로 들어갔다.

도훈과 강시혁은 눈앞에 놓인 생맥주잔을 보고 있었다.

그들이 잠시 말없이 보는 사이에 생맥주잔에서 넘친 거품이 보기 좋게 흘러내렸다.

서찬휘와 우시원은 그들이 앉은 옆자리에 따로 자리를 잡았다.

서찬휘는 슬슬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희도 배고픈데…….”

서찬휘는 자신의 앞을 가리켰다.

그들이 앉은 테이블 위에는 샐러드와 주스만이 외롭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치킨집에는 어울리지 않는 메뉴를 가리킨 서찬휘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강시혁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강시혁이 할 수 없다는 듯 메뉴판을 넘겼다.

순간 도훈이 말했다.

“지금, 관리해야 할 때 아닌가요? 카메라에 예쁘게 잡히려면 지금보다는 살짝 다이어트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그것도 그런데…….”

강시혁이 도훈과 서찬휘를 번갈아 봤다.

서찬휘가 억울하다는 듯 재빨리 입을 열었다.

“데뷔가 문제가 아니라, 완전히 끝났어요. 더는 관리할 필요도 없다고요.”

서찬휘는 억울한 듯 도훈을 바라봤다.

그 시선을 받은 도훈이 강시혁에게 물었다.

“사정은 찬휘 군에게 대충 들은 것 같네요.”

씩 웃은 도훈이 메뉴판을 서찬휘에게 넘겼다.

“알아서 주문해, 돈은 내가 낼 테니.”

“감사합니다.”

서찬휘와 우시원이 메뉴판을 뒤적거리기 시작할 때 도훈은 강시혁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강 대표님.”

“아, 대표는 무슨…….”

“죄송합니다. 제가 사람을 높여 부르는 게 버릇돼서 그만 실수를…… 뭐, 호칭은 어떻게 되었든 지금은 살아남는 게 중요한 거 아닙니까? 대충이라도 얘기를 들었으면 합니다.”

도훈이 씩 웃었다.

전에 강시혁과 서로 대표라 불렀던 기억이 있어 자신도 모르게 호칭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도훈의 너스레에 강시혁의 표정이 다림질한 것처럼 살짝 펴졌다.

“초면에 신세 한탄을 늘어놔도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내일이면 이 바닥에 소문이 쫙 퍼질 테니 말씀드리죠. 그러니까…….”

강시혁은 조용히 자신이 당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이야기에 도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훈이 예상한 이야기가 강시혁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가 넋두리를 늘어놓는 동안 도훈은 힐끔 고개를 돌려 서찬휘를 바라봤다.

서찬휘는 막 나온 치킨을 보고는 눈이 돌아가 있는 상태였다.

최고 보이 그룹의 리더가 될 녀석이 저리 게걸스럽게 치킨을 뜯다니!

아마 몇 년만 지나면 저런 행동은 상상도 할 수 없을 터였다.

사실 녀석들의 전성기는 지금이었다.

도훈은 이번 사건을, 서찬휘를 비롯한 나머지 멤버들의 전성기를 잃어버리게 만든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뭐, 강시혁의 설명은 간단했다.

신생 기획사를 같이 세우자는 제안을 받고 강시혁도 일정 부분 투자를 했다고 했다.

강시혁의 돈까지 몽땅 쓸어 간 후 튄 것이 바로 오늘이었다.

도훈은 여기서 살짝 의문이 들었다.

대충 흐름은 짐작이 되지만, 예전에 강시혁에게 들었던 내용과는 조금 달랐기 때문이었다.

전생에 들었던 것보다 규모가 조금 커진 느낌이었다.

그런데 강시혁의 설명이 계속될수록 예전에 들었던 사건과는 별개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사기를 치고 튄 놈이 아니었다.

지금 강시혁과 서찬휘의 거취였다.

전생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미지를 입었다면 그가 만들어 나갈 보이 그룹이 아예 없어질 수도 있었다.

잘못하면 도훈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수도 있는 변화였다.

강시혁이 설명을 모두 마치자 도훈이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강 대표님.”

“아, 또 그러신다.”

“그럼 뭐라고 불러 드릴까요?”

“그냥…….”

“딱 보니 저와 나이도 비슷하신 것 같은데, 편하게 친구 하죠.”

“나이가 비슷하다니요?”

강시혁이 눈을 가늘게 뜨고 도훈을 아래위로 훑어봤다.

도훈은 그의 의심 가득한 눈초리에 살짝 기분이 좋아졌다.

원래 사회에서의 나이를 고무줄이라고 한다.

뭐, 몇 년 정도는 편의상 늘였다 줄였다, 하니 말이다.

전생에 강시혁과 인연이 있는 도훈은 강시혁이 동갑이라는 것을 아는 상황.

하지만, 강시혁은 도훈이 초면이었다.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도훈이 친구 하자는 이야기를 꺼내자 적잖게 당황한 것이었다.

도훈은 그 표정을 살짝 즐겼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회귀 후에는 살짝 외모가 변한 것도 사실이었다.

전생에 인연이 있었던 아티스트들의 영향을 받아서라 생각하고 있었다.

주민등록증까지 보여 주자 강시혁이 믿는 눈치였다.

“진짜 나랑 동갑이네요.”

“네, 말을 차차 놓기로 하고 일단 강 피디라고 불러도 되죠?”

“네, 편하실 대로요.”

“지금은 사기당한 게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니요?”

“돈이야 만들면 그만이죠. 그런데 강 피디가 앞으로 만들어 나갈 수많은 아이돌 그룹이 문제입니다.”

“어, 대체 저를 어떻게 아신다고…….”

“이래 봬도 제가 이 바닥에서 좀 세게 구른 놈이라서요.”

“세게 굴러요?”

“뭐, 더는 비밀입니다. 딱 잘라 말하겠습니다. 회사를 키우고 싶은 겁니까? 아이돌을 키우고 싶은 겁니까?”

“자, 잠시만요.”

강시혁은 도훈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지금의 대답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것이라는 감이 왔기 때문이다.

마치 대학교에 입시 원서를 쓸 때와 같이 등에 소름이 돋았다.

강시혁은 도훈의 눈치를 보며 지금의 질문을 다시 한 번 곱씹었다.

아이돌을 잘 키우면 회사는 크게 마련이다.

그런데 둘 중 하나를 택하라니 그게 좀 의외였다.

강시혁이 진지한 눈빛으로 물었다.

“아이돌을 키우는 것과 회사를 키우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물어봐도 될까요?”

“회사를 키우고 싶다면 제가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

“제가 회사를 드릴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

“하지만 아이돌을 키우고 싶다고 하시면 제 회사에서 아낌없이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레이블을 하나 더 만들어 드릴 수도 있고요.”

“네?”

“지금 강 피디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한 겁니다.”

“자, 잠시만요.”

강시혁은 도훈에게 받은 명함을 다시 확인했다.

[유레카 엔터테인먼트 매니지먼트 사업부 7팀, 실장 이도훈]

자신이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그런데 도훈이 지금 얘기하는 내용은 일개 매니저가 내뱉을 수 없는 약속이었다.

당황하는 강시혁을 본 도훈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강 피디님, 담배 태우십니까?”

“저는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습니다. 창작의 고통이니 뭐니 그래도 제일 소중한 건 성대니까요. 그리고 아이들한테도 안 좋고요.”

“네, 저도 안 태웁니다. 그럼 담배나 한 대 태우러 가실까요?”

“네?”

다시 놀라는 강시혁의 모습에 도훈이 한쪽 눈을 찡긋했다.

그제야 강시혁도 도훈의 의도를 알아챘다.

담배를 태우러 가자는 것은 긴히 할 말이 있다는 것이었다.

* * *

잠시 후.

도훈은 강시혁과 치킨집 앞에서 마주 보고 있었다.

초조한 듯 눈치를 보는 강시혁과는 달리 도훈은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사실은 제가 돈이 좀 많습니다.”

“돈이 많다니요?”

강시혁의 눈이 커졌다.

그것도 잠시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뒤통수를 치고 간 왕 대표와 너무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사기꾼들의 수법은 항상 이렇게 자랑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오늘 깨달은 그였다.

하지만 이어진 도훈의 이야기는 강시혁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유레카가 제 것입니다. 뭐, 재벌가의 자식놈들이 돈지랄하려고 경영하고 그런 건 아닙니다. 제가 이 바닥 일에 진심이거든요.”

도훈의 말투가 갑자기 바뀌자 강시혁이 입을 벌렸다.

“헉.”

놀란 듯 눈을 크게 뜬 강시혁은 뭔가 생각났는지 고개를 흔들었다.

“제가 그런 농담을 믿을 것 같습니까, 그러지 않아도 조금 전에 사기당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걸 믿으라고요?”

강시혁의 눈빛이 살아났다.

두 번은 안 당한다는 의지가 넘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도훈이 손을 내저었다.

“유레카 대표이사 이름이 뭔지 아십니까?”

“대표이사 이름이라…….”

강시혁은 살짝 말끝을 흐렸다.

대표이사가 최근에 바뀌었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유레카는 기획사 간의 치열한 경쟁 구도에서도 한참 뒤로 빠져 있는 회사였다.

즉, 관심 밖이라는 것이다.

강시혁은 다급하게 핸드폰을 꺼내 유레카의 정보에 대해 찾아봤다.

그동안 도훈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사실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잠시 말을 멈춘 도훈은 가게 안에서 치킨을 뜯고 있는 우시원을 바라봤다.

이지유는 일단 굴러가게 만들어 놨으니, 다음 타자는 우시원이었다.

우시원을 바라보던 도훈이 시선을 옮겨 강시혁을 바라봤다.

때마침 검색을 마친 강시혁이 핸드폰과 도훈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까 하신 말씀이 진짜인가요?”

“저는 거짓말은 안 합니다.”

“대표면 회사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을 텐데, 왜 실장 명함을 가지고 다니죠?”

“그게 편하니까요. 제가 신분을 밝히니 벌써 저를 대하는 것이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아, 제가 뭘 달라졌다고…….”

강시혁이 어색하게 웃다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대표님이 장경자 회장님의 손자라고요?”

“그것도 맞습니다.”

“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됩니다.”

“굳이 이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신분 검증은 아니지 않습니까? 여기가 경찰서도 아니고요.”

말을 마친 도훈이 눈을 찡긋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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