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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52화 (52/250)
  •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52)

    그 표정 속에는 자신감도 섞여 있다.

    도훈은 일단 현실을 인식시켜 주기로 했다.

    “아마 한국사 공부가 안무를 외우는 것만큼 힘들 거야. 반대로 안무를 외우는 건 한국사를 공부하는 것만큼 힘들게 분명하고.”

    도훈의 확언에 우시원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녀석의 눈을 본 도훈은 여기에 말뚝을 박기로 했다.

    “사실 군무라는 것이 너 혼자 추는 춤이면 관계없어. 하지만 타임라인에 맞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여야 하잖아. 바로 옆 멤버 그리고 십 초 뒤, 네 옆으로 올 멤버하고 말이야. 그런데 그걸 기억할 수 있겠어?”

    도훈은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켠 뒤 탁 소리가 나게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순간 캔맥주 입구를 타고 방울이 분수처럼 흩어졌다.

    도훈은 그걸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지금 흩어진 맥주 방울이 아무 규칙도 없는 것처럼 자연스러워 보이지. 하지만 물리학적으로 산출할 수 있는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거야. 그 규칙이 바로 군무고. 군무는 규칙을 지키면서도 자연스러워야 하지. 할 수 있겠어?”

    “할 수…….”

    우시원의 동공이 마구 흔들렸다.

    도훈은 고의로 물리법칙까지 꺼내서 녀석을 흔들어 놨다.

    이 정도의 말에 흔들릴 녀석은 아니었다.

    아이돌이 힘들다면 솔로로라도 언젠가는 데뷔할 녀석이었다.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오듯 언젠가는 제자리를 찾을 게 분명하지만, 조금 더 일찍 자리를 찾아 주고 싶은 것이 도훈의 마음이었다.

    그때 도훈이 말했다.

    “그래도 너는 할 수 있다고 해야 해.”

    “네?”

    “그게 네 꿈이니까, 확인하고 좌절하고 그다음에 다른 방법을 찾는 게 순서잖아.”

    “저보고 대체 어쩌라는 말씀이신지…….”

    우시원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양팔을 내밀었다.

    그 모습에 가볍게 웃은 도훈이 말을 이었다.

    “가능의 한계를 알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불가능한 영역에 살짝 발을 들여놓는 게 가장 좋지.”

    “실장님은 그럴듯한 말도 잘 지어내시네요.”

    “내가 한 얘기가 아니야. 아서 클라크라는 물리학자가 한 얘기지.”

    “아.”

    “서, 클라크.”

    “헉.”

    도훈의 개그에 진지했던 분위기가 허물어졌다.

    잠시 대화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난 서찬휘는 도훈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렇게 대화를 나눠 보니 아주 오래전부터 만난 사이 같은 친근감이 들었다.

    서찬휘의 생각 중 일부는 사실이었다.

    도훈은 서찬휘와도 전부터 아는 사이였다.

    다만, 서찬휘는 도훈과는 관계가 없었다.

    물론 배신자와도 관계가 없었다.

    도훈 앞에 서찬휘는 있으면 안 되는 친구였다.

    앞으로 한류를 이끌어 나갈 그룹의 리더니 말이다.

    그들의 묘한 매력은 국내 그리고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매료시킨다.

    그중 가장 앞에 서서 그룹을 이끄는 것이 서찬휘였다.

    물론 서찬휘가 도훈과 아주 관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서찬휘가 속한 그룹을 키워 낸 이와 도훈은 막역한 사이였다.

    서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받는 사이이자 업계에서도 꽤 끈끈했던 사이.

    그런 이유로 서찬휘에게 바로 운을 띄워 본 것이다.

    물론 도훈이 그들을 키울 생각은 아니었다.

    전생에 친하게 지냈던 친구에게 약간의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서찬휘와 우시원의 사이가 이렇게 돈독했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진다.

    도훈은 서찬휘를 통해 우시원의 잠재력을 끌어낼 수도 있지 않나 하는 희망을 품어 봤다.

    전생의 기억에 의하면 우시원이 아예 춤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우시원의 포텐이 터진 것은 의외로 댄스곡에서였으니 말이다.

    그 당시 어떻게 한계를 넘어섰는지 도훈도 알 수 없었다.

    ‘우시원의 대답은 나이가 드니 저절로 되나 보네요’였다.

    최고의 아이돌이 될 서찬휘가 옆에 있다 보니 우시원을 들었다 놨다 해 봤다.

    아니나 다를까 우시원은 지금 마치 전사가 된 듯 강렬한 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때였다.

    서찬휘의 전화가 울렷다.

    디딩, 디딩.

    머뭇거리는 녀석의 모습에 도훈이 손짓했다.

    “어서 받아.”

    “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뭐 있어, 괜히 일어서지 말고 여기서 편하게 받아.”

    도훈이 손짓하자 서찬휘는 손을 가리고 조심스럽게 통화를 시작했다.

    그 모습에 도훈은 피식 웃었다.

    연습생 아이들은 또래 학생들보다는 조금 사회에 일찍 나왔기 때문에 가끔 어른 같은 모습이 묻어난다.

    서찬휘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도훈이 눈을 가늘게 떴다.

    녀석의 표정이 점점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쪽은 아니었다.

    녀석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전화를 끊은 서찬휘가 뒷머리를 긁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하지만, 일어나야겠습니다.”

    서찬휘가 도훈에게 인사를 건넸다.

    우시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찬휘를 불렀다.

    “잠깐만, 찬휘야. 아무 일도 없지?”

    “괘, 괜찮아, 시원아.”

    서찬휘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표정만 보면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았다.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지만, 눈을 보면 당장이라도 울음이 쏟아질 듯했으니까.

    점이 되어 사라지는 서찬휘의 뒷모습을 우시원은 멍하니 바라봤다.

    도훈이 녀석의 어깨를 툭툭 치며 위로하듯 말했다.

    “걱정되면 가 보든지.”

    “아직 시간이 남아서…….”

    우시원은 편의점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도훈이 사람 좋은 얼굴로 핸드폰을 들었다.

    “여기 봐 줄 사람만 있으면 되는 거지?”

    “네?”

    “편의점을 봐 줄 사람만 있으면 되는 거잖아. 일단 사람부터 구해 놓을 테니 같이 가 보자.”

    “지금 시간에 사람을 구해요?”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는 친구가 하나 있거든.”

    피식 웃은 도훈은 휙휙 스크롤을 내려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한 매니저…….”

    한민국과 통화하는 도훈을 본 우시원은 한계를 넘어선 미안함에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하지만 친구 서찬휘의 마지막 표정을 본 우시원은 그냥 있으면 오늘 밤을 꼴딱 새울 것만 같았다.

    * * *

    30분 후.

    도훈과 우시원은 홍대입구역 근처의 한 빌딩 앞에 섰다.

    유동 인구가 많은 편인 동네인데 유독 도훈이 바라보는 빌딩은 뭔가 허전해 보였다.

    도훈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우시원이 이끄는 대로 빌딩으로 들어갔다.

    쓱 훑어보니 엘리베이터에는 점검 중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었다.

    도훈이 물었다.

    “몇 층이야?”

    “칠 층이에요, 엘리베이터는 몇 달 전부터 고장이었어요.”

    “몇 달 전부터라…….”

    도훈은 숨을 천천히 들이켜며 주변을 둘러봤다.

    저 계단을 올라가면 고구마 몇 자루가 버티고 있을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우시원은 그런 도훈이 이상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실장님, 왜 그러세요?”

    “아니다, 칠 층까지 올라가려니 연골 나갈 것 같아서.”

    “아니, 젊으신 분이 왜 그래요?”

    “그런가?”

    도훈은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지금처럼 전생의 기억 때문에 헛말이 튀어나올 때가 있었다.

    그때였다.

    도훈의 재킷 안쪽에서 빛이 번쩍였다.

    도훈은 그것이 수첩이 내는 빛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 우시원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다.

    “뭐 하세요?”

    “아니다, 올라가자.”

    도훈은 우시원을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드디어 비상구에 칠 층을 나타내는 등이 나타났다.

    비상구 계단을 열자 투명한 유리문이 나타났다.

    유리문은 여기저기 선팅이 뜯겨 있는 것이 갓 폐업한 회사 같은 분위기였다.

    이쯤 되자 도훈은 대충 상황이 파악되었다.

    도훈은 모른 척 우시원의 뒤를 따랐다.

    회사로 들어간 우시원은 그 자리에서 멈췄다.

    뒤따르던 도훈도 걸음을 멈추고 우시원의 표정을 확인했다.

    우시원을 보니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도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그래?”

    “다 없어졌네요.”

    “뭐가?”

    “사무실 집기도 없어지고 남은 게 없네요.”

    “원래 이랬던 게 아니고?”

    그때였다.

    구석에서 서찬휘가 우시원을 향해 달려왔다.

    “우시원 여긴 왜 왔어? 나중에 얘기해 주려고 했더니…….”

    서찬휘는 도훈을 보고는 입을 벌렸다.

    “아, 아저씨. 아니 실장님이 여긴 왜 오셨어요?”

    “시원이가 걱정하는데 안 올 수가 있어야지. 편의점은 믿음직한 직원한테 맡겼으니 안 물어봐도 된다.”

    “아, 이런 꼴을 보여 드려서 죄송해요.”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저희 사기당했어요.”

    “사기?”

    도훈은 황당하다는 듯 서찬휘를 바라봤다.

    그때 뒤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흠.”

    그 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도훈도 익히 아는 사내가 초췌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를 발견한 우시원과 서찬휘는 재빨리 달려가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

    “선생님, 괜찮으세요?”

    그들이 다급하게 인사를 건네자 사내가 손을 흔든다.

    “나는 괜찮다. 그런데 시원이 너는 여기에 어떻게 왔어?”

    사내가 우시원을 바라봤다.

    “찬휘가 사색이 돼서 뛰어갔는데 걱정이 안 될 수가 있어요?”

    “조용히 오라고 했더니…….”

    사내가 슬쩍 말끝을 흐리며 도훈 쪽을 바라봤다.

    도훈은 멋쩍게 웃었다.

    막 험한 일을 당한 데다가 도훈은 초면이었다.

    이렇게 경계하는 것이 당연했다.

    도훈은 슬쩍 그에게 한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유레카의 이도훈이라고 합니다.”

    도훈이 손을 내밀었다.

    지금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고 있지만, 도훈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사내의 이름은 강시혁.

    전생에 도훈에게 많은 도움을 줬던 친구였다.

    앞으로 최고의 보이 그룹을 키울 미다스의 손이 바로 강시혁이다.

    그런데 그가 왜 여기에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 놀라움을 겉으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

    본래 사냥꾼은 소리를 내지도, 냄새를 피워 내지도 않는 법이니까.

    지금은 사냥꾼이 되어야 했다.

    “저는 강시혁이라고 합니다. 유레카라면 알죠, JK가 사명 바뀐 곳 맞죠?”

    강시혁이 도훈의 손을 맞잡았다.

    “네, 맞습니다.”

    “굵직한 계약이 많이 오갔다고 들었습니다. 대표도 바뀌었다고 들었는데 한창 힘들 때네요.”

    자신의 코가 석 자인데 도훈의 걱정을 하는 강시혁.

    도훈은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강시혁은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

    나중에 성과가 쌓이며 조금 욕심이 커지긴 했지만, 항상 다른 사람부터 생각하는 것이 그의 장점이었다.

    도훈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지금은 리모델링한다는 마음으로 기초를 다지는 중입니다.”

    “애사심이 강하시군요. 너무 그렇게 앞만 보고 뛰지 마십시오.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강시혁이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자 도훈이 손을 내저었다.

    자기 회사인데 힘들 리가 있겠는가?

    거기에 지금은 차근차근 꿈을 이루고 있었다.

    도훈은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네, 말씀 감사합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오신 겁니까?”

    “이 친구에게 관심이 있어서 얘기하던 중에 끌려왔습니다.”

    도훈은 우시원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시선을 받은 우시원이 움찔했다.

    자신이 끌고 온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반대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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