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51)
서찬휘의 질문에 우시원이 정색하며 답했다.
“말이 씨가 된다고 그 말은 하지 말자.”
“에이, 우리끼리는 다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뭐. 그래도 마지막까지는 최선을 다해 봐야지. 그러니까 너도 내일부터는 나와라.”
“솔직히 말해도 돼?”
“응, 우리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
“이번에 닥친 일 말이야.”
“그게 왜?”
“그거 나 때문에 생긴 일 같다.”
“그게 무슨 말이야? 기획사가 잘못된 게 너 때문이라고?”
“그래, 내가 불행을 몰고 다니잖아. SW에 있을 때도 그랬고.”
“하하, 뭔 소리야. 혹시 세상이 너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건 아니지만, 불행은 나를 중심으로 도는 것 같아.”
“푸웁.”
“왜 웃어?”
“아니, 그게 말이 안 되잖아. 잔말 말고 일단 나와.”
“내가 무슨 면목으로 나가? 그냥 학교나 열심히 다니면서 공무원 시험 볼 거야.”
“풉.”
“그 표정은 또 뭐지?”
“아니, 그게 말이 안 되잖아. 안무 기억하는 게 더 힘들겠어? 아니면 영어 단어 외우는 게 더 힘들겠어?”
“그야 당연히 안무…….”
“흠, 우리 우시원이 마음만 약한 줄 알았더니 판단력도 약하네.”
“그러지 않아도 서러운데 놀리지 말아라.”
“내가 왜 놀려, 괜히 놀리다가 너한테 맞으면 어떻게 하려고.”
“와서 사람 염장 지를 거면 오지 마라.”
“물건 사러 온 거야.”
“그럼 빨리 사서 가든지.”
“알았다. 대신에 다음 주부터는 꼭 연습실 나와라. 네가 빠지면 내가 블랙홀 취급받잖아.”
“아, 또 그러네.”
우시원이 주먹을 내밀자 서찬휘가 손을 휘휘 저으며 뒷걸음쳤다.
그러던 서찬휘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했다.
“누가 저기 명함 흘리고 갔는데.”
“무슨 명함.”
“거기 계산대 있잖아.”
“아, 이거. 지난번에 누가 주고 간 거야.”
“너한테?”
“그럼, 나한테 준 거지. 누구한테 줘?”
“음.”
“왜 그래?”
“어딘지 내가 봐도 될까?”
“아니야, 됐어.”
우시원은 재빨리 명함을 숨겼다.
그 모습에 서찬휘가 눈을 가늘게 뜨며 달려든다.
우시원은 재빨리 명함을 조끼의 주머니에 넣고 몸을 돌렸다.
그때 계산대 너머로 손이 휙 오는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우시원은 눈을 크게 떴다.
명함이 어느새 서찬휘의 손에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아, 왜 그건 훔쳐 가고 그래?”
“일단 확인만 한다니까.”
“빨리 안 줘?”
“흠, 유레카라면 어디서 들어 본 것 같기도 하고. 혹시 여기에서 제안받았어?”
“제안은 무슨 제안, 그냥 줘.”
“어딘지 말해 주면 줄게.”
“흠, 할 수 없네, JK엔터가 이름 바꾼 거라고 하더라고.”
“아, 맞다! 오늘 강영웅 선배가 거기로 옮겼잖아.”
서찬휘가 물개처럼 손뼉을 치자 우시원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건 나도 알아.”
“생각해 보니 지유가 누나도 거기로 옮겼다고 하던데?”
“지유 누나가? 아, 그래서 지난번에 여기에 들렀었구나.”
“그게 무슨 말이야?”
“지난번에 지유 누나 봤거든. 그러고 보니 이 명함 주인이랑 같이 온 매니저가 지유 누나랑 같이 왔었어.”
“참, 빨리도 기억한다. 뭐, 이 정도만 해도 크나큰 발전이지.”
“이거 욕인지 칭찬인지 구분이 안 된다.”
“그래, 일단 칭찬이라고 해 둘게. 그런데 우리 선생님이 이 말은 꼭 전해 달래.”
“무슨 말인데?”
“황금 같은 재능을 썩히지 말라 하신다.”
“내가 무슨 재능이 있다고.”
“보컬 그리고 여기.”
서찬휘가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자 원은 어이가 없다는 듯 씩 웃었다.
현재 그들을 이끌고 있는 박기욱은 항상 얼굴로 따지면 우시원이 센터라고 칭찬하곤 했다.
하지만 정작 우시원 본인은 여기에 동의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니 동의할 수 없었다.
그 웃음의 끝에 우시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휴…….”
한숨 속에는 복합적인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잘해 주는 사람이 자신 때문에 불행해진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 서찬휘가 나지막이 불렀다.
“시원아.”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하는데?”
“강영웅 선배하고 지유 누나가 간 곳이라면 꽤 안정적일 텐데…….”
서찬휘는 말끝을 흐리며 우시원을 바라봤다.
“그런데?”
“혹시 제안받았으면 너라도 가라.”
“…….”
“내가 봤을 때는 빨리 옮기는 게 정답 같다. 네가 거기서 자리 잡고 우리를 부르면 되잖아.”
“…….”
우시원은 조용히 고개만 흔들었다.
서찬휘와 대화하다 느낀 거지만, 연예계는 자신이 나갈 길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편의점의 문이 열렸다.
덜컹.
우시원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손님을 바라봤다.
들어온 손님을 본 우시원의 눈이 커졌다.
지금 걸어오고 있는 손님은 다름 아닌 도훈이었다.
우시원은 순간 서찬휘에게 재빨리 눈짓했다.
서찬휘가 들고 있는 명함을 치우라는 신호였다.
우시원의 신호에 고개를 갸웃한 서찬휘가 물었다.
“이게 왜?”
서찬휘는 명함을 들었다.
그때였다.
옆에서 나타난 도훈은 그 명함을 빼앗아 들었다.
휙.
보이지 않을 속도로 낚아챈 도훈이 물었다.
“내 명함이 왜 여기에 있지?”
“네? 그 명함이…….”
서찬휘가 눈을 크게 뜨며 도훈을 바라봤다.
도훈은 고개를 갸웃하며 자신의 명함을 손가락으로 톡톡 튕겼다.
“이건 내가 시원이한테 준 건데, 왜 친구가 들고 있냐는 말이야? 혹시 명함을 양도한 건가? 세상에 다시 없을 기회를 친구에게 양보했다는 건가?”
도훈이 추궁하자 대화를 듣고 있던 우시원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죄송해요, 실장님. 이 친구가 갑자기 제가 가지고 있던 명함을 뺏어 가서…….”
“계산대 위에 두고 머뭇거리니 당연히 궁금하지, 안 궁금하냐?”
서찬휘가 끼어들자 우시원이 화들짝 놀랐다.
“내가 언제 머뭇거렸다고 그래?”
“머뭇거렸잖아, 아까 들어오기 전에 다 봤거든.”
서찬휘는 지지 않겠다는 듯 계속 꼬투리를 잡았다.
그들이 아웅다웅하는 모습에 도훈은 씩 하고 웃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자신의 명함을 보고 우시원이 망설이고 있었다는 얘기를 듣자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도훈이 팔짱을 끼고 그들의 대화를 구경하고 있을 때 우시원이 계산대에서 나와 서찬휘의 귀를 잡고 밖으로 나갔다.
“아아, 귀는 놓고 말해.”
“야, 네가 그냥 해서 들어먹을 놈이냐?”
우시원은 단단히 화가 난 듯 서찬휘를 끌고 나갔다.
밖에 펼쳐 놓은 편의점 의자에 앉아 2차전을 하는 것 같았다.
유리창 너머로 그들의 모습을 본 도훈은 음료수 몇 개를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간 도훈은 손에 든 음료수를 플라스틱 원형 테이블 위에 탁 내려놨다.
“이건 내가 쏘는 거니 먹어.”
“잘 먹겠습니다.”
서찬휘가 꾸벅 고개를 숙이자 우시원은 뭔가 불편한 듯 뒷머리를 긁적인다.
그 모습에 도훈이 말했다.
“그냥 부담 없이 먹어. 참, 내가 돈은 계산대에 올려놨으니까, 나중에 알아서 포스 찍어.”
“혹시 얼마 올려놓으셨는데요?”
“만 원, 이 정도면 넉넉하지 않겠어?”
도훈이 테이블 위를 가리키자 우시원의 눈빛이 살짝 떨렸다.
도훈이 한 아름 들고 온 음료수는 만 원이 훨씬 넘었다.
차액은 다 물어내야 되기에 이걸 사는 것은 도훈이 아닌 우시원이었다.
우시원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자 도훈이 다시 말을 이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생각보다 돈이 많거든.”
“아, 네.”
우시원은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서찬휘가 조심스럽게 도훈을 바라봤다.
“아까 보니까, 실장님이라고 하셨죠? 그런데 우리 시원이한테 정말 관심 있으신 거예요? 제가 알기로는 유레카에는 아이돌 육성 계획이라는 거 자체가 없는 거로 알고 있는데요.”
“꼭 아이돌이어야만 하나?”
“헉.”
“이 얼굴에 이 정도 보이스면 솔로로도 충분히 먹힐 것 같은데…… 안무에 약한 시원이의 약점도 충분히 가릴 수 있고.”
“생각보다 냉철하시네요.”
서찬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도훈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였다.
그때 도훈이 품에서 지갑을 꺼냈다.
도훈은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더니 서찬휘에게 내밀었다.
“친구도 이거 받아.”
서찬휘가 눈을 크게 떴다.
“네?”
“스타가 되고 싶으면 연락해.”
도훈이 광고에서나 나올 법한 멘트를 뱉은 채 명함을 가리켰다.
서찬휘는 눈앞에 있는 명함을 멍하니 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 저는 그러니까…….”
“왜, 싫어?”
“그, 그건 아니에요.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명함을 주시니…….”
서찬휘는 갑작스러운 제안에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우시원과는 반대의 성격을 가진 그였지만, 이런 갑작스러운 대쉬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가 당황할수록 도훈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도훈은 턱을 괴고는 서찬휘를 바라봤다.
마치 경매에 나온 예술품을 감상하듯 서찬휘를 바라봤다.
도훈의 눈빛에 서찬휘는 시선을 어디 둘지 몰랐다.
반대로 우시원은 볼을 살짝 부풀리며 도훈과 친구 서찬휘를 번갈아 봤다.
지금 상황은 모든 것이 엉켜 있는 실타래와도 같았다.
그 상황에 갑자기 도훈이 서찬휘에게 명함을 내밀자 당황한 것이다.
모두가 눈만 끔벅이고 있을 때 도훈이 피식 웃으며 옆에 있는 맥주 캔을 땄다.
탄산이 빠지는 소리가 시원하게 테이블 위를 흐른다.
그 소리를 배경 삼아서 도훈이 말을 이었다.
“서찬휘라고 했지? 친구는 뭐가 되고 싶지?”
갑작스러운 질문에 서찬휘가 다시 당황했다.
그것도 잠시, 정신을 차린 서찬휘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어찌나 세게 흔들었는지 모자가 벗겨질 정도였다.
황급히 모자를 주워 든 서찬휘가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그러니까 제가 되고 싶은 건…… 국내 최고의 인기 그룹이요, 앗!”
서찬휘는 다급하게 입을 막았다.
낯선 사람 앞에서 왜 자신의 꿈을 말했는지가 이해가 안 되었다.
그때 도훈이 씩 웃으며 답했다.
“그래, 충분히 할 수 있어. 한번 해 볼까?”
“…….”
서찬휘는 답할 수 없었다.
새로운 소속사가 휘청이기는 해도 아직은 거취가 정해지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자신을 이끌어 주는 박기욱에게도 허락을 받아야 했다.
그때 다시 도훈이 말을 걸었다.
“예스야? 노야?”
“헉.”
서찬휘는 슬쩍 도훈의 눈을 피했다.
게다가 이렇게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화법은 대체 뭐란 말인가?
자꾸 상대에게 말려드는 것만 같았다.
도훈이란 소용돌이는 주변의 모든 것을 다 빨아들여야만, 만족할 것 같았다.
서찬휘가 머뭇거릴 때 조용히 있던 우시원이 입을 열었다.
“왜 저는 안 돼요?”
“너는 안무가 안 되잖아, 다 기억할 수 있겠어? 시원이 너 공무원 시험공부 한다고 했지?”
“네.”
“너 혹시 모의고사 봤어?”
“모의고사요?”
“표정을 보니 봤구나.”
“…….”
“한국사 몇 점 맞았어?”
“한국사요, 그러니까…….”
“아마, 지금 머릿속에는 공부하면 성적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할 거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우시원은 도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자기 생각을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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