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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50화 (50/250)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50)

백주영 회장의 표정을 본 도훈이 말을 이었다.

“그러셨군요. 그런데 간단히 확인만 하자고 저를 늦은 밤에 급히 부르셨을 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할 말이 더 있을 거라고 보는가?”

“회장님께서 신사옥을 아무 곳에나 올릴 분은 아니라고 봅니다. 부동산 쪽으로는 할머니보다 보는 눈이 더 높으시잖아요.”

도훈을 힐끔 장경자를 바라봤다.

장경자는 기분 나쁜 기색 없이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인다.

알아서 하라는 신호였다.

그 신호를 받은 도훈은 말을 이었다.

“제가 산 물건이 청풍의 계획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면 이렇게 저를 불렀을 리가 없잖아요.”

“계속 말해 보게.”

“회장님은 저와 거래를 하고 싶어서 부르신 것 같은데요.”

“거래라…….”

“거래가 맞죠, 일단 이 자리는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가 아닌 협상 테이블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훈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칼자루는 도훈에게 있었다.

과거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도훈이었다.

그런 도훈의 눈을 속이기에는 백주영 회장의 속내는 너무 훤히 들여다보였다.

앞으로 몇 년이 지난 후 그 땅의 상승 가치를 도훈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부동산으로 돈을 벌고 싶지는 않았다.

부동산으로 돈을 번다고 해도 쓸 곳이 있을까?

물론 쓸 곳은 많았다.

자신의 아티스트를 월드 스타로 키우는 비용은 아무리 벌어도 부족했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는 이런 협상 자리에서 넋 놓고 주도권을 빼앗길 수는 없는 일.

도훈은 백주영의 다음 말을 기다리며 조용히 그의 표정을 살폈다.

백주영도 도훈의 눈을 바라보기만 하고 입을 열지는 않았다.

마치 둘이 눈싸움을 하는 듯한 착각이 들 때쯤 드디어 백주영이 입을 열었다.

“잠시만 기다리게.”

말을 마친 백주영은 뒤쪽에 있는 자신의 비서를 불렀다.

“허 비서.”

“네, 회장님.”

“차에 있는 내 손녀 좀 들어오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허 비서라 불린 인물이 조용히 밖으로 나가자 백주영이 희미하게 웃었다.

“내가 자네와 협상을 할 나이는 아닌 것 같아서 대타를 불렀네.”

“대타라고요?”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쓸 수는 없는 법 아닌가? 내 사회적 지휘도 있고 해서 말이야, 하하.”

백주영은 활짝 웃으며 도훈을 바라봤다.

그는 비서실을 통해 도훈을 조사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경자의 눈 밖에 난 손자였다.

장경자의 눈 밖에 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야심도 없고 능력도 없기 때문이었다.

도훈이 미라클에서 한 일을 살펴보면 아무런 능력도 없는 한량이 분명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의 사업에 끼어든다고?

백주영은 이번 일이 장경자의 지시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도훈의 눈을 보고 그에게 거짓이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우연이라는 것도 믿었다.

하지만 도훈이 산 물건은 백주영에게는 집 나간 송아지와도 같았다.

일단 다시 들여놓고 나서 헛간을 고쳐야 했다.

잠시 후.

긴 머리의 여자가 들어와 장경자의 앞에 고개를 숙였다.

“회장님, 잘 지내셨어요?”

“그래, 혜령이구나. 내가 세뱃돈 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많이 컸구나.”

“벌써 십 년도 지났는데요. 그런데 회장님은 그때 그대로세요.”

“빈말이지만, 기분 좋구나. 얘기가 끝나면 이따 내게 오너라.”

“왜요? 회장님.”

“용돈이라도 줘야지.”

피식 웃은 장경자는 백주영을 잡아당겼다.

“언제까지 거기 있으려고.”

“그렇게 재촉 안 해도 나도 일어서려고 했네.”

“말로만 하지 말고 일단 자리를 비켜 주자고.”

“알았다고 해도.”

백주영은 장경자에게 이끌려고 멀찌감치 있는 다른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시선은 도훈과 자신의 손녀 백혜령에게 떼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장경자도 마찬가지였다.

뒤쪽에서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도훈은 테이블 위에 서류 가방을 올려놨다.

그 모습에 백혜령이 고개를 갸웃했다.

통성명도 없이 바로 가방을 올려 두는 도훈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되어서였다.

백혜령은 유리로 된 테이블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확인했다.

과하지 않은 명품 액세서리에 긴 생머리.

하얀 피부에 오뚝 솟은 코는 얼굴의 윤곽을 더 뚜렷하게 만들었다.

이 미모는 백혜령의 자랑이자 그녀의 가장 큰 무기였다.

보통 사내라면 일단 명함부터 건네는 것이 순서였다.

물론 형식적으로 명함을 받는 사내도 없었다.

일주일 안으로 무조건 연락이 오니 말이다.

백혜령은 눈을 가늘게 뜨고 유리 테이블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더욱 자세히 살폈다.

화장이 번진 곳이 있나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봐도 자신의 외모는 완벽했다.

백혜령은 다시 도훈을 바라봤다.

그는 자신의 얼굴은 신경도 안 쓰고 묵묵히 가방에서 서류를 꺼냈다.

그러고는 그 서류를 테이블의 중간에 놓았다.

탁.

서류를 놓은 도훈은 아무렇지 않게 서류를 펼쳤다.

그제야 도훈은 백혜령을 바라봤다.

“확인해 보시죠.”

“서로 인사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혹시 제 이름 모르시나요?”

“알고는 있지만…….”

“저도 백혜령 차장님의 이름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본론부터 들어가죠. 얼마 주실 겁니까?”

“…….”

백혜령의 눈이 커졌다.

그 모습에도 도훈은 무표정하게 서류를 가리켰다.

백혜령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이렇게 예의 없는 분은 처음 보네요.”

그녀의 일침에 도훈이 표정의 변화 없이 말을 이었다.

“저는 백 회장님의 말씀에 철저히 따를 뿐입니다.”

“우리 할아버지의 말이라니요?”

“아까 말씀하시기에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쓸 수는 없다고 하시더군요.”

“그런데요?”

“백 회장님이 저에게 닭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백혜령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고 백혜령 씨를 칼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를 보고 칼이라고요?”

“네, 정확히는 닭 잡는 칼이라고 하시네요. 닭인 제가 어떻게 통성명을 할 수 있겠습니다.”

“헉.”

뼈가 섞인 말에 백혜령이 헛숨을 토했다.

그녀는 재빨리 자신의 할아버지인 백주영을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원망이 서려 있었다.

백혜령은 앞에 있는 도훈이 자신과 비슷한 과라는 느낌을 받았다.

즉, 지고는 못사는 부류의 사람임이 분명했다.

거기에 또 한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오늘의 협상이 상당히 길어지리라는 것이다.

* * *

일주일 뒤 도훈의 집.

도훈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정확히 아홉 시였다.

도훈은 물을 한 잔 들이켜며 지난 일주일간의 일을 돌이켜 봤다.

그의 주변에는 생각보다 많은 일이 있었다.

일주일 전 협상으로 도훈은 투자한 돈의 두 배를 얻었으며, 그 결과 장경자는 도훈에게 회사 중 하나를 맡겼다.

회사는 미라클 인베스트.

각종 투자를 담당하는 투자사였다.

사실 이것은 도훈이 의도했던 결과가 아니었다.

장경자는 곳간 열쇠 중 하나를 준 것이라며 도훈을 칭찬했지만, 도훈의 관심은 자신의 아티스트를 찾아서 그들을 월드 스타로 키우는 것뿐이었다.

일단 그 첫 번째가 이지유이였다.

이지유에 대한 계획은 지금 차곡차곡 진행되는 중이었다.

이제 내일이면 크랭크인에 들어간다.

초원의 집과 관련된 모든 사항은 2팀장인 한유라가 맡은 상태.

모든 촬영 일정이 정여진과 겹치기에 따로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물론 도훈도 흔쾌히 승낙했다.

도훈이 정 감독과 김다솜의 곁에 나타나면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도훈은 갓 내린 커피 향을 음미하며 다음 계획을 떠올리며 수첩을 펼쳤다.

빛을 내지는 않았지만, 왠지 수첩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수첩을 넘기다가 이름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우시원이라는 이름이었다.

“그러고 보니 연락이 없네…….”

도훈은 고개를 갸웃하며 수첩에 적힌 이름을 다시 한 번 바라봤다.

그날 밤. 우시원이 일하는 편의점.

우시원은 전에 도훈이 건넨 명함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우시원은 핸드폰을 들어 번호를 입력한다.

툭툭.

그것도 잠시, 우시원은 핸드폰을 내려놨다.

내려놓은 핸드폰을 한참 동안 보다가 다시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바로 화면을 끄는 우시원.

우시원은 조금 갈등에 빠져 있었다.

우시원은 이도훈의 그날 눈빛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그는 우시원이 데뷔할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자신에게 그런 확신을 보인 사람은 딱 두 명이었다.

하나는 자신의 절친인 서찬휘고 나머지 하나는 이도훈이었다.

계속 이도훈 실장이라는 사람이 눈에 밟히는 것은 왜일까?

우시원은 고개를 흔들었다.

SW에서 방출 통보를 받고 나오기는 했지만, 마법처럼 신생 기획사에 몸을 담게 되었다.

그날이 바로 이 명함을 주고 간 도훈이 다녀간 바로 다음 날이었다.

사실 자신을 불러 주는 곳이 없다면 유레카의 실장이라는 이도훈에게 연락했을 터다.

지금 우시원에게는 같이 팀을 꾸리기로 한 네 명의 친구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절친인 서찬휘이었다.

신생 기획사도 서찬휘의 소개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뭐, 신생 기획사가 문제만 없었다면 우시원은 이런 고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절친인 서찬휘과 함께 그토록 꿈꾸던 데뷔 무대를 향해 나아가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바로 어제 문제가 생겼다.

뭐, 지금은 시작하기도 전에 회사가 무너질 상황이었다.

우시원은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 생각했다.

그는 문득 지난날을 떠올렸다.

예전 일을 돌이켜 보면 우시원이 가는 곳에는 항상 불행이 따라다녔다.

월말 평가를 앞두고 연습실이 홀딱 타 버린 적도 있었다.

물론 이 사건으로 찍힌 우시원과 다른 멤버들은 끝내 밀리고 밀려서 방출을 당하고 말았다.

그뿐이 아니라 중간중간 생긴 이상한 일들이 우시원을 벼랑 끝으로 내밀었다.

그런데 새로운 소속사로 몸을 옮기고 나서도 똑같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

우시원은 이번 불행도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에이, 그냥 공무원 시험이나 하는 건데…….”

혼잣말을 뱉은 우시원은 명함을 바라봤다.

한참을 보던 우시원은 고개를 흔들었다.

욕심이 나긴 하지만, 다른 팀원들을 버리고 혼자 갈 수는 없었다.

거기에 더해 자신이 유레카로 간다면 또 어떤 불행이 닥칠지 몰랐다.

자신을 위해 솔직히 조언해 준 이도훈이라는 사람에게까지 민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왜 세상의 불행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갈까, 휴…….”

우시원이 한숨을 쉴 때였다.

편의점 문이 덜컹 열리고 우시원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들어왔다.

그는 조금 어려 보이는 외모에 야구 모자를 푹 눌러썼는데 그 사이로 보기 좋게 물들인 갈색 머리카락이 삐져 나왔다.

그는 계산대로 가더니 모자를 벗고 활짝 웃었다.

“우리 시원이 잘 있었어?”

“아, 찬휘구나. 그런데 웬일이야.”

“웬일이긴, 너 보고 싶어서 왔지. 오늘은 왜 연습실에 안 나왔어?”

“그러니까…….”

우시원이 우물쭈물하자 서찬휘가 물었다.

“망할 것 같아서 걱정되는 거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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