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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47화 (47/250)
  •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47)

    피로해소제를 받은 한민국이 펄쩍 뛰며 좋아한다.

    “이런 성은이 망극할 때가…….”

    그 모습에 이지유가 피식 웃는다.

    “그래도 명색이 한우인데, 제정신에 먹는 게 맞긴 하죠.”

    그렇게 대화가 오가고 있을 때 갑자기 이강민이 입술을 쭉 내밀었다.

    그 모습에 이지유가 물었다.

    “왜 그래? 강민아.”

    “제 거는 왜 없어요? 누나.”

    * * *

    일주일 뒤 화창한 오후.

    이지유는 한 통의 전화를 받은 뒤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막 촬영이 시작되기 일주일 전인데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지유가 방금 받은 전화는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온 것이었다. 자신이 사는 빌라가 누군가에게 넘어갔다고 들었다.

    문제는 이른 시일 안에 방을 빼라는 통보를 받았다는 점이다.

    이지유의 입장에서는 층간 소음보다 더 무서운 일이었다.

    사실 돈 문제는 아니었다.

    이사 비용은 유레카에서 준 계약금이 있기에 편하게 옮기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사에 신경을 쓸 시간이 없었다.

    이지유는 연기에 한창 재미를 붙였고 이번 작품이 기대되어서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

    대본에 집중할 때면 층간 소음은 귀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실장님한테 부탁해야 하나?”

    이지유가 마른세수를 할 때였다.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딩동.

    문을 열고 상대를 확인하니 도훈이 활짝 웃으며 서 있었다.

    “아, 실장님. 들어오세요.”

    “바쁘니까, 그냥 여기서 말할게.”

    “네, 바쁘다니요?”

    “오늘은 내가 좀 바빠서 전달 사항만 간단하게 말하고 가야 할 것 같네.”

    “바쁘면 그냥 전화로 하시지…….”

    “그래도 얼굴 보면서 하는 게 좋지 않겠어?”

    “네, 감사해요.”

    “전달 사항은 간단해, 이사 준비해.”

    “이, 이사라고요?”

    “어차피 방도 빼 줘야 하잖아.”

    “헉, 어떻게 그걸 아세요?”

    “매니저가 모르는 게 어디 있어?”

    “대체…….”

    이지유가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도훈이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지난번에 근처 중개업소 들르면서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연락해 달라고 해 놨거든.”

    “아, 그러셨구나……. 그런데 이사 갈 집이 어디예요?”

    “지난번에 영웅이 형 집들이 갔을 때 거기로 이사 가고 싶다고 했잖아.”

    “그 동네요?”

    “내가 그 동네에 남는 방이 좀 있거든.”

    “아, 원룸이에요? 하긴 그것도 감지덕지죠. 그럼 신세 좀 질게요, 실장님.”

    “그래, 그쪽으로 이사하면 강민이도 좋아할 거야. 거리가 그리 먼 것도 아니고.”

    “강민이는 왜요?”

    “지난번에 보니 다미하고 사이좋게 지내던데…….”

    “헉, 그놈이 여자 보는 눈은 있어서.”

    “꼭 엄마처럼 말하네.”

    “뭐, 엄마죠.”

    “하긴, 다른 친척들이 나 몰라라 할 때 맡아서 지금까지 키웠으니…….”

    “그걸 어떻게 아세요?”

    “매니저가 자기가 관리하는 아티스트에 대해서 모르는 건 직무 유기야.”

    “직무 유기라…… 그런데 저하고 강민이한테 왜 그렇게 잘해 주시는 거예요?”

    “빚이 있다고 할까? 자세한 건 메시지로 남길 테니까 참고해. 이삿짐이나 다른 것도 신경 쓰지 마. 내가 다 예약해 놨으니까.”

    도훈은 씩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진짜 빚이 있는 건 맞았다.

    전생의 빚 말이다.

    아마도 그때 빈소에서 노래를 불러 주던 친구들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기회를 얻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 * *

    이지유가 도훈이 마련한 숙소로 이사한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 뒤였다.

    이지유와 이강민의 짐은 아주 조촐했다.

    2.5t 트럭에 싣고도 남을 정도니 짐이 거의 없다고 봐도 되었다.

    도훈과 같이 이삿짐을 들여놓을 방을 확인하던 이지유는 눈을 크게 떴다.

    “시, 실장님 이게 뭐예요?”

    “뭐긴, 내가 말한 방이지.”

    “그때 방이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방이 아니잖아요.”

    “방이나 집이나?”

    “아니, 방이 왜 네 개나 돼요?”

    “그냥 부담 갖지 말고 집 구할 때까지 써.”

    “집 구하는 대신 여기 얻어도 될 것 같은데…….”

    “그래도 상관없어. 원래 용도가 유레카 소속 아티스트 용도로 매입한 거니까, 걱정 푹 놓고 써.”

    도훈은 아무렇지 않게 집을 가리켰다.

    물론 반은 거짓말이었다.

    저 집은 이도준에게 내기로 받은 거니까.

    “저는 몰라도 강민이는…….”

    이지유는 슬쩍 말끝을 흐렸다.

    자신은 유레카의 소속 아티스트이니 이런 혜택을 받아도 되지만 강민이는 아니었다.

    가족까지 숙소에 들이는 회사는 어디에도 없었다.

    물론 탑티어일 경우는 아예 집을 얻어 줄 수도 있지만, 현재 자신의 상태가 그 레벨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지유였다.

    “이참에 강민이도 계약하면 되지, 안 그래?”

    도훈은 씩 웃으며 이강민이를 바라봤다.

    이강민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제가 계약을 해요?”

    “언젠가는 나와 계약해야지.”

    “제가 연예인도 아닌데 왜 계약해요?”

    “앞으로 데뷔하면 되지, 뭐.”

    “헉, 삼촌, 너무 근거 없어요.”

    “그런가? 일단 이삿짐 들어오면 짐부터 풀어, 나는 다른 입주민 맞으러 가 볼 테니.”

    도훈의 말에 이지유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입주민이라니요? 혹시 다른 분이 오시는 거예요?”

    “그건 나중에 직접 확인해.”

    “선배인지 후배인지만 가르쳐 주세요.”

    “둘 다 아닌데.”

    그때였다.

    밖에서 빵빵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도훈은 재빨리 계단을 내려갔다.

    이지유도 도훈의 뒤를 따랐다.

    누군지 궁금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제발 선배만은 아니기를 빌었다.

    유레카에서 딱 떠오르는 선배라고 해 봤자 강영웅과 정여진인데, 둘은 이곳에 올 리가 없었다.

    대체 누굴까?

    도훈을 따라간 이지유는 눈을 크게 떴다.

    차에서 내린 이들은 전에 살던 집의 위층 식구들이었다.

    차에서 내린 장현이 엄마가 도훈에게 걸어와서 고개를 숙인다.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요.”

    “뭐, 며칠 집을 비워 놓는다고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결심 잘하셨습니다.”

    “제 말은 이렇게 폐를 끼쳐도 되는지…….”

    “신세라니요? 우리는 전우 아닌가요?”

    “전우요?”

    “층간 소음에 맞서 싸우는 동지잖아요.”

    “아, 그렇게 말씀하시니, 동지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장현이 엄마는 그저 웃기만 했다.

    도훈은 급한 일이 있다며 숙소를 떠났다.

    이지유는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도훈이 도와주겠다고 했을 때 이렇게 좋은 집을 예상한 것은 아니었다.

    집을 구할 때까지 잠시 머물 원룸을 예상했었다.

    그런데 방이 네 개나 딸린 숙소를 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위층에 살던 장현이네까지 여기에 잠시 머물기로 했다는 건 왜일까?

    이지유는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그때 장현이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이지유에게 다가왔다.

    “또 뵙네요.”

    “아주머니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이지유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장현이 엄마는 도훈이 사라진 방향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 총각이 아이들 데리고 딱 일주일만 피해 있으라고 해서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지유가 눈을 크게 뜨자 장현이 엄마가 손가락 하나를 펴며 말했다.

    “일주일 안에 해결하겠대요.”

    “일주일 안에 해결해요?”

    이지유가 눈을 크게 뜨자 장현이 엄마도 고개를 흔들었다.

    “솔직히 어떻게 해결해요? 그 현준수인가 하는 이 층 사는 인간이 말을 들어먹겠어요?”

    “그렇죠, 우리 실장님이 그걸 어떻게 해결해요.”

    “그건 나도 모르겠어요. 도훈 씨가 자기를 한번 믿어 보래요. 저도 기대는 안 했어요. 요즘 들어서 더 심해지는 것 같아서 일단 몸 좀 추스르려 여기로 피신 한 거예요. 그런데 우리 집보다 좋네요.”

    “좋긴 좋죠, 헤헤.”

    이지유는 실없이 웃으며 도훈이 사라진 방향을 멍하니 바라봤다.

    * * *

    이지유가 머물던 주택의 이 층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공사 현장을 생각나게 하는 소음을 일으키고 있었다.

    사내는 농구공을 탕탕 튕기며 진득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이름은 현준수.

    이제까지 누군가의 눈치를 본 적이 없다는 것이 자랑인 사내였다.

    이것은 반쯤은 사실이었다.

    부모도 내놨으니 말이다.

    뭐, 눈치를 보는 건 자신의 형인 현준만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형이 돈줄이니 절대 밉보여서는 안 될 대상이었다.

    그 외에는 그저 옷깃을 스치는 먼지에 불과했다.

    그는 오늘따라 기분이 좋았다.

    그때 현관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현준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이 일으킨 소음 때문에 두 집이나 방을 비웠다.

    이깟 농구공 좀 튕겼다고 뭐라 할 사람이 없어진 것이었다.

    현준수는 앓던 이가 빠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던 차에 갑자기 벨이 울리자 이해가 안 되었다.

    현관으로 다가가 인터폰 영상을 확인했다.

    영상을 확인한 현준수는 눈을 크게 떴다.

    화면에 떠 있는 건 요즘 통 연락이 안 되던 자신의 형 현준만의 얼굴이었다.

    현준수는 재빨리 문을 열었다.

    “형.”

    “잘 지냈냐?”

    “형 덕분에 잘 지냈지, 여긴 무슨 일이야?”

    “며칠 좀 신세 좀 지자.”

    “어차피 여기도 형 집이잖아, 신세는 무슨 신세야. 얼른 들어와, 형.”

    “그래, 고맙다.”

    현준만은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신발을 현관 앞에 아무렇게 벗어 던진 현준만은 지친 듯 소파에 널브러졌다.

    그 모습에 동생 현준수는 눈을 가늘게 떴다.

    형의 저런 모습은 몇 년 사이에 처음 봤다.

    저런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형은 실력이나 인맥 둘 중 어떤 것도 빠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거기에 자신감 빼면 시체인 인간인데, 왜 저런 꼴을 하고 나타났단 말인가?

    그때 현준만의 핸드폰이 울린다.

    지잉, 지징.

    진동음을 토해 내는 핸드폰을 확인한 현준만은 재빨리 전원을 끄고 소파에 아무렇게나 던졌다.

    순간 동생 현준수의 머릿속에는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현준수는 재빨리 형에게 맥주를 따서 주고는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취미이자 작업인 스트리밍을 시작했다.

    “여러분 오늘도 미션 빡세게 받아 볼랑게, 후원 좀 넉넉하게 넣어 주쇼.”

    순간 모니터 화면에 알림음이 떴다.

    ―띠용, 후원금 2만 원이 도착했습니다.

    현준수의 눈이 빛났다.

    현준수는 재빨리 미션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아따, 미션 내용이 허벌나게 쉽네요, 이웃집에서 찾아오게 하라는 거죠? 헉, 미션 완료하면 추가로 오십만 원을 후원하신다고 하셨는가?”

    현준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어떻게 하면 최소의 효율로 최대의 효과를 거둘까를 생각하고 있다.

    그가 방송하고 있는 콘텐츠의 주제는 소음이었다.

    그중에서도 층간 소음.

    아이러니하게도 채널의 이름은 숙면을 위한 교향곡이었다.

    이 채널의 고정 독자는 꽤 많았다.

    자신이 당했다면 가만히 있지 않았겠지만, 현준수의 행동을 킥킥대며 즐기는 사람은 이 채널의 구독 버튼을 누르고 올라오는 영상과 실시간 스트리밍을 즐기며 연신 ‘좋아요’를 찍어 대고 있던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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