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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42화 (42/250)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42)

증시는 강자 지존의 세계.

잃는 놈이 더 나쁜 놈이라는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의 눈물을 쏙 빼놨지만, 모두를 향해서 미소를 날리는 그의 모습은 디지털 사이코패스라는 단어까지 만들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무너지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그는 어찌 보면 진정한 사이코패스일 수도 있었다.

현준만은 차트와 호가 창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는 모니터에 뜬 종목 코드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그 웃음에 누군가 그의 어깨를 살짝 잡았다.

고개를 돌려 보니 그곳에는 이번 일의 의뢰인이자 대학교 때부터 절친인 이도민이 서 있었다.

“여긴 웬일이야?”

“물주가 확인하러 오는 것도 안 되냐? 그나저나 일은 잘돼 가는 거지? 뭐, 네가 웃는 걸 보니 잘돼 가는 것 같다만은…….”

“잘돼서 웃는 게 아니다.”

“그럼, 왜 웃는데?”

“너무 가소로워서 웃는 거지, 그나저나 약속은 꼭 지켜라.”

“무슨 약속? 성공 보수 말하는 거야?”

“아니, 내가 부탁한 거 있잖아, 보너스.”

“흠.”

이도민은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현중만이 말한 보너스는 이번 종목으로 피해를 본 이가 괴로워하는 것을 찍어 달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친구지만, 놈은 사이코가 맞았다.

돈이 아닌 상대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려고 이렇게 작업을 치다니 말이다.

“왜, 마음 바뀌었어?”

“아니, 가장 괴로워할 놈의 얼굴을 찍어 주지.”

“그래, 그래야 친구지. 뭐, 그냥 그놈 신상을 알려 줘도 좋고. 내가 죽는 걸 좀 지켜보게 말이야.”

“이제 헛소리 그만하고 차트나 신경 써.”

“푸웁.”

현중만이 코웃음을 쳤다.

그 웃음에는 현중만의 진심이 묻어났다.

이번 종목도 가볍기 짝이 없었다.

종목은 코스닥의 세이든.

가만히 보면 소규모 자금으로 작업을 해 놓은 표시가 난다.

하지만 합병할 수 있을 지분을 확보하려면 그 돈의 몇 배를 들여야 한다.

현중만은 상대의 심리를 슬슬 긁기로 했다.

팔짱을 끼고 있던 현중만이 헤드셋을 썼다.

“4번은 팔고, 5번이 받아.”

―네, 알겠습니다.

―네, 대표님.

즉각적인 매매가 이루어지자 모니터를 확인한 현중만이 헤드셋을 벗고 비릿한 미소를 피워 올렸다.

어찌 보면 이건 땅 짚고 헤엄치기에 불과했다.

그때였다.

누군가 헤드셋을 벗고 달려왔다.

“대표님, 입질이 옵니다.”

“그럼, 맛만 보여 주고 살살 약 올려.”

“네, 알겠습니다.”

직원은 재빨리 자리로 돌아가 헤드셋으로 나머지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들의 모습은 잘 훈련된 직업군인처럼 일사불란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도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안 물어봐도 되겠네.”

“그래, 주식이라는 게 꼭 연애하는 거랑 똑같거든. 밀당이 포인트란 말이지.”

“음, 꼭 연애 고수처럼 말하네.”

“너, 지금 나 놀리는 거지?”

그때였다.

갑자기 현중만의 직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 대표님.”

“왜 그래?”

“지금 세이든 상한가 갔습니다. 물량 받칠까요?”

“벌써 상한가를 갔다고?”

“네, 갑자기 밀어 올리는데 저희도…….”

“잠깐만, 내가 직접 확인해야겠다.”

현중만은 재빨리 자신의 책상으로 갔다.

그의 책상 위에는 여섯 개의 모니터에서 각종 자료가 쏟아지고 있었다.

차트와 매매 동향을 확인하던 현중만의 눈빛이 깊어졌다.

한참을 보던 현중만이 헤드셋을 썼다.

“이제부터 전쟁이다. 지금부터 내가 직접 지휘한다…….”

현중만은 자리에 앉아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디디딩, 디디딩.

알람이 울렸다.

그 소리에 직원들 모두가 헤드셋을 벗었다.

현중만도 헤드셋을 내려놓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

힘이 쭉 빠진 듯한 표정으로 몸을 맡기자 의자 등받이가 바닥에 닿을 것처럼 기울어졌다.

현중만이 한숨을 쉬며 천장을 바라보고 있을 때 위쪽에서 이도민의 얼굴이 끼어들었다.

“끝났으니까, 무슨 일인지 설명 좀 해 주지.”

“그쪽에도 선수가 붙은 모양이다.”

“선수?”

“그래, 선수. 만만치 않은 상대네. 여우인지 호랑이인지는 좀 확인해 봐야겠는데…….”

“어쨌든 일에 차질은 없는 거 맞지?”

“내가 지고는 못 살잖아. 그쪽 터는 건 나한테 맡겨. 대신에 판돈 좀 올리자.”

“얼마나?”

“큰 거 다섯 장만 더 넣어 줘.”

“큰 거 다섯 장이라면?”

“설마 오억이겠어? 오십억이지.”

돈 이야기가 나오자 이도민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 표정을 본 현중만이 말을 이었다.

“나는 쫀쫀한 물주 밑에서는 일 못 한다.”

“그래, 알았다.”

이도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이번 건은 이도준과 상의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이도민은 사무실에서 나오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도준이 형.”

* * *

장경자의 집.

도훈은 쇼핑백을 들고 초인종을 누르고는 슬쩍 고개를 돌려 한민국에게 물었다.

“오늘도 차에서 기다릴 거야?”

“저는 회장님만 보면 숨이 잘 안 쉬어져서요. 그냥 여기 있을게요.”

“그래, 알았어. 바로 나올 테니 편하게 쉬고 있어.”

“오랫동안 회장님댁에 머무셔도 됩니다.”

“꼭 고사를 지내는 것 같다.”

도훈이 한민국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 모습에 한민국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실장님, 지금이라도 들어가지 마시고 전화부터 하시는 건 어때요?”

“이런 얘기를 어떻게 전화로 해? 마주 보고 설명해 드리는 게 확실하지.”

“음, 저는 모릅니다.”

* * *

잠시 후.

도훈은 장경자의 앞에 앉았다.

장경자는 전과는 다르게 탐탁지 않은 눈빛으로 도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훈은 조용히 쇼핑백을 건넸다.

“이게 뭔고?”

“이번에는 망개떡이에요.”

“이번에는 누가 줄을 섰나?”

“이번에는 제가 줄을 섰어요, 할머니.”

“그래. 그런데 오늘은 뇌물이 통하지 않을 것 같다.”

“그거 뇌물 아닌데요.”

“뇌물이 아니면…….”

“제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뇌물을 드려요. 뇌물은 안 되는 일을 부탁할 때 쓰는 거고요. 그저 할머니가 맛난 거 드시는 게 보고 싶어서 사 온 거죠.”

“그래. 그럼 이건 뇌물이 아닌 선물로 알고 있으마.”

“네, 그리고 내기 결과 가져왔습니다.”

도훈은 통장을 두 손으로 장경자의 앞에 갖다 놓았다.

장경자는 통장은 확인도 안 하고 도훈을 바라봤다.

“통장을 보기 전에 뭐 하나만 묻자. 대체 왜 그 판에는 끼어들었는지 물어보고 싶구나.”

“그게 무슨 말인가요?”

“얘기를 듣자 하니, 네가 그 회사 인수에 뛰어들었다고 하던데…….”

“절대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음, 그럼 이 돈은 어떻게 마련한 것이냐?”

“아는 친구에게 돈을 빌려서 주식을 샀습니다. 운 좋게도 그 주식이 얻어걸렸습니다.”

“주식이 얻어걸렸다라……. 그건 잠시 뒤에 올 도준이의 얘기도 들어 봐야겠구나.”

“저는 상관없습니다.”

도훈은 웃는 표정으로 손을 저었다.

그때 초인종 소리가 들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이도준이 엄지연의 안내를 받아 들어왔다.

장경자의 앞에 온 이도준은 인사를 건넨 뒤 도훈의 옆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이도준은 그제야 도훈을 바라봤다.

“언제 왔냐?”

“지금 방금 왔습니다, 형님.”

“그래도 형님이라고 불러 주는구나.”

“제가 언제 형님이라고 안 부른 적이 있나요? 형님이라고 안 했으면 도준이라고 불렀다는 건데 제 기억으로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듣고 보니 그렇게 말한 적은 없던 것 같네.”

이도준이 피식 웃으며 도훈을 깔아 봤다.

장경자는 둘의 그런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마치 연극의 클라이맥스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잠시 소파의 팔걸이를 두드리던 장경자가 살짝 웃음을 흘렸다.

“재롱은 그만 피우고 본론부터 얘기하자꾸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너나 도훈이나 둘 다 모른 척하기는 마찬가지구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차근차근 정리해 보자꾸나. 먼저 도훈이에게 묻자, 네가 세이든 인수에 뛰어들었다는 게 사실이냐?”

“그런 적 없습니다, 증거를 대라면 댈 수도 있습니다.”

“증거라…….”

장경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훈은 가방에서 서류 봉투를 꺼내 들었다.

“여기 있습니다.”

“그래, 일단 한번 보자꾸나.”

서류를 받은 장경자는 엄지연에게 손을 내밀었다.

엄지연은 미리 준비했다는 듯 그녀에게 안경을 건넸다.

안경을 쓴 장경자는 천천히 서류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서류를 살피던 장경자는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서류를 다 살핀 장경자의 시선은 조용히 이도준에게 꽂혔다.

시선을 받은 이도준은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 마른침을 삼켰다.

그것도 잠시 이도준이 못 참겠다는 듯 물었다.

“할머니, 왜 그렇게 저를 보세요? 제가 심기를 불편하게 해 드린 거라도…….”

“혹시 할미 몰래 딴 주머니 차고 있느냐?”

“제가 딴 주머니가 어디 있다고 그러십니까?”

“그럼, 세이든 인수에 뛰어든 건 누구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냐?”

“그건…….”

이도준은 슬쩍 말꼬리를 흐렸다.

자신의 아버지 이세훈의 돈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여기서 그게 통할 리 없었다.

그룹에서 번 돈은 모두 장경자의 돈이라는 걸 귀에 못이 박이게 듣던 소리니까.

그 모습을 본 장경자는 황당하다는 듯 이도준을 바라봤다.

“네가 세이든을 건든 이유 좀 들어 보자.”

“저는 단지…….”

“나는 도훈이가 눈독 들인 회사에 네가 모래를 끼얹는 줄 알고 오늘 둘을 불렀다. 그런데 둘이 아무 상관도 없더구나.”

“네?”

이도준의 눈이 보름달만큼 커졌다.

그 모습에 장경자가 말을 이었다.

“너는 동생이 뽑아 온 서류가 무엇인지 아느냐?”

“…….”

이도준은 아무 말 없이 도훈을 바라봤다.

장경자가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쯧쯧, 동생은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준비해 왔는데, 너는 밖에서 헛발질하고 있다는 게 좀 황당하구나. 그러니까…….”

장경자는 입에 물레방아를 달아 놓은 듯 쉬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이야기는 간단했다.

이도준이 도훈을 방해하려고 하는 것을 이미 장경자가 알아채고 있었다는 것.

장경자의 이야기 중 핵심은 다음부터였다.

왜 휘발유를 안고 불 속으로 뛰어들었냐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이도준이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왜 거래 정지 될 종목을 골랐냐는 것이야.”

“거래가 정지되다니요?”

“내가 아는 할아범 몇에게 물어보니 발표가 날 것이라고 하더구나.”

“왜 그런 회사를 도훈이가 인수한다는…….”

이도준은 급하게 입을 막았다.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것이었다.

그때 도훈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저는 유레카에서 관심이 있다고만 했을 뿐 공식적으로 그 회사에 대해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소문이 돌기에 회사 직원들에게 쳐다도 보지 말라고 알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살짝 돈 소문을 어떻게 형님이 알고 계신 건가요?”

“…….”

“그리고 알고 계시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그걸 또 건드셨다고요?”

“나는…….”

“가족끼리 돕지 못할망정 저를 방해하기 위해서 그걸 건드셨다고요?”

그때였다.

딩동!

도훈의 핸드폰에 알림음이 들려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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