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41)
다음 날 오후.
이도준의 사무실에 이도민이 방문했다.
이도준과 마주 앉은 이도민은 기지개를 켜고 난 후 커피로 입술을 적셨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태블릿 하나를 꺼냈다.
태블릿의 화면을 몇 번 툭툭 터치하자 문서 하나가 나타났다.
이도민은 그 문서가 뜬 태블릿을 쓱 이도준 쪽으로 내밀었다.
이도준은 태블릿을 집어 천천히 문서를 확인했다.
문서를 확인하던 이도준의 눈이 점점 커졌다.
“이게 사실이냐?”
“아직 검증을 해 보지는 않았지만, 정보의 신뢰성은 꽤 높습니다.”
“대체 어디서 난 정보지?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형님은 너무하십니다.”
“너무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제 장사 밑천을 내놓으라고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정보가 제 밑천인데. 그거 까면 제 밥줄이 끊깁니다.”
이도민의 말은 진심이었다.
미라클의 후계 구도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도민의 아버지인 둘째 이세형은 아직 마음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보이지 않게 착실하게 싸움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이도민은 그런 이세형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자신의 사람들을 그룹 전체에 모두 심어 놓았다.
오죽하면 가장 쓸모없다는 엔터 분야에도 씨앗을 뿌렸겠는가.
그런데 그 씨앗을 이렇게 빨리 수확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것도 예상 밖의 적에게 말이다.
물론 이도민이 생각하고 있는 적은 도훈이었다.
정직하게 말하지만, 적은 아니었다.
그에게 도훈의 존재는 얼마 안 되는 미라클의 지분을 갉아먹는 쥐새끼에 불과했다.
이도민의 상념을 이도준의 목소리가 깨웠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유레카가 합병하려는 회사는 제가 맡겠습니다. 형님은 돈만 대주시죠. 이번 일은 저희끼리 해야 하는 거 아시죠?”
“그래, 유레카를 분해하는 것도 우리 일이고 그 몫도 우리 것이니 당연하지. 그런데 이 정보는 확실한 것 맞지?”
“유레카에 떠도는 소문을 부사장 쪽 측근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자금 일부가 유레카가 노리는 세이든 쪽으로 들어왔다는 것도 지인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이쪽은 제가 책임질 테니 형님은 다른 쪽을 신경 써 주시죠.”
이도민이 진득한 웃음을 지었다.
처음에는 술김에 정보를 흘린 직원을 살짝 의심해 봤다.
혹시나 함정이 아닌가 해서였다.
하지만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고 술자리에서 마술까지 보여 줬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바로 의심을 지웠다.
마술까지 보여 주면서 함정을 팔 정도의 열정을 지닌 사람이 사촌 동생인 이도훈의 곁에는 없었다.
자신감이 넘치는 이도민의 표정을 본 이도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않아도 요즘 혈압이 올라서 못 살겠으니, 빨리 말해 봐.”
“형님이 저보다는 영화 쪽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지.”
“보고서 마지막에 있는 걸 처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도민이 태블릿을 가리키자 이도준은 다시 화면을 내려 내용을 확인해 봤다.
마지막에는 유레카에서 투자하는 영화와 섭외할 감독에 대해서 적혀 있었다.
“그건 나한테 맡겨 둬도 좋으니 너는 네가 할 일을 해라. 그런데 할머니가 가만 계시겠냐?”
“할머니는 회사 일이 아닌 개인 싸움은 신경 쓰지 않잖아요. 지금 들어갈 돈은 모두 저희 주머니에서 나오는 거니 신경 안 쓰실 겁니다. 그러니 단번에 끝내죠.”
이도민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피어났다.
* * *
이틀 후.
유레카에서 한 블럭 떨어진 커피숍.
김민석은 여느 때처럼 같은 자리에서 도훈과 마주 앉아 있었다.
커피를 홀짝이는 김민석은 불안한 표정으로 도훈을 바라봤다.
몇 번을 슬쩍 도훈을 보던 김민석이 못 참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대표님, 솔직히 이번 일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지난번에 말씀하신 감독과 작가 섭외는 물 건너갔습니다.”
“괜찮습니다, 부사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정여진 선생님과 이지유 배우가 출연하기로 한 작품의 감독과 작가 아닌가요?”
“뭐, 괜찮습니다. 작품이 그거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요.”
“거기에 지난번에 말씀해 주신 합병 대상에 대한 정보도 새어 나간 것 같습니다.”
“그것도 괜찮습니다, 상장이야 안 하면 그만이죠.”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직원 사기를 위해 살짝 흘리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제가 우회 상장 고려하고 있다고 했지. 꼭 한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도훈의 말은 사실이었다.
직원의 반응을 살피라고 한 것뿐이지 확정적으로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 말이다.
“헉, 대체 그게 무슨…….”
“그날 제가 한 이야기는 그냥 모른 척하시면 됩니다.”
“지금 증권 커뮤니티 게시판이 회사 이야기로 난리가 났던데요.”
“그건 저희하고 상관이 없죠.”
도훈이 손을 내젓자 김민석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
“…….”
“혹시 사신 건 아니죠?”
도훈이 눈을 가늘게 뜨고 김민석을 바라봤다.
도훈의 시선을 받은 김민석이 살짝 고개를 돌린다.
“그게…….”
“그거 잘못하면 내부 거래로 찍힙니다.”
“내부 거래라고요?”
깜짝 놀란 그의 모습에 도훈이 손을 흔들었다.
“그건 농담입니다. 그런데 혹시 사셨다면 다 정리하세요.”
도훈이 단호하게 말하자 김민석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제가 산 건 아니지만…….”
슬쩍 말끝을 흐리는 김민석을 본 도훈은 어느 때보다 짙은 미소를 지었다.
“뭐, 손해 보는 건 제가 책임 안 집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대표님.”
“부사장님과 제가 나눈 이야기 말입니다.”
“네, 말씀하시지요.”
“회의록이 있습니까?”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죠.”
“그럼 공식적인 이야기는 아니라는 말인 건 아시겠네요.”
“그런데 세이든 주식이 장난 아니게 오르던데요. 저는 대표님이 벌써 진행하고 계신 줄 알았습니다.”
“그거 제 작품 아닙니다.”
“그럼 대체…….”
“누군지는 모르죠.”
도훈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사실이 아니었다.
누군지는 대충 감이 잡힌다.
고의로 정보를 흘린 것도 도훈이고 감시를 당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들의 속도였다.
미라클에 붙어서 밥을 축내는 인간들이 이렇게 성질이 급한 줄은 도훈도 처음 알았다.
그래도 계획을 짜고 천천히 덤빌 줄 알았더니.
사실 확인도 안 해 보고 물불을 안 가리고 달려들고 있었다.
사전에 철저히 준비했던 도훈의 수고가 무색해질 정도였다.
도훈의 의미심장한 표정을 본 김민석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왜 오르는 거죠?”
질문을 던진 김민석은 힐끔 핸드폰을 본다.
아마 지인에게 당장 팔라고 메시지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한 비장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에 도훈이 말을 이었다.
“혹시 에스키모들이 늑대를 어떻게 사냥하는지 아십니까?”
“갑자기 왜 늑대 이야기를…….”
“에스키모들은 늑대를 잡기 위해 모험하지 않습니다. 바닥에 창날을 꽂아 놓죠. 그리고 그 위에다가 늑대가 혹할 만한 피를 천천히 부어 놓습니다. 그리고…….”
도훈은 말을 멈추고 아이스커피를 들이켰다.
그 모습에 김민석이 물었다.
“조금 빨리 말씀해 주시면…….”
“네, 말씀해 드리죠. 창날 위에 붙은 피는 바로 얼어붙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다시 핏물을 붓죠. 이 작업을 반복해서 하게 되면 피 기둥이 만들어집니다.”
“…….”
김민석은 아무 말 없이 마른침을 삼켰다.
도훈은 앞에 놓인 조각 케이크를 포크로 찍었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부사장님은 늑대의 후각이 어느 정도 뛰어난지 알고 계시나요?”
“개만큼 뛰어나다고는 알고 있습니다.”
“십 리 밖의 냄새도 맡는 것이 늑대죠. 거기에 피 냄새라면 더욱 예민하고요. 늑대는 피 기둥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고 미친 듯이 달려들겠죠.”
잠시 말을 끊은 도훈은 케이크를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늑대는 미친 듯이 피 기둥을 혀로 핥습니다.”
“…….”
“창날이 드러날 때까지요.”
도훈은 남은 케이크를 입에 넣었다.
그러고는 도훈의 손에 남은 것은 케이크의 크림이 남은 포크뿐.
도훈은 그 포크를 김민석에게 보여 줬다.
“이 포크처럼요. 이 포크가 창날이라고 생각해 보시죠. 늑대는 이것을 죽을 때까지 빨겠죠.”
도훈은 포크에 남은 크림을 입속에 넣었다.
아무것도 아닌 동작이지만, 도훈이 말한 늑대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김민석은 미간을 좁혔다.
“음.”
“창날까지 핥다 보면 그게 자기 입에서 나온 건지 다른 동물의 피인지 구분조차 안 됩니다.”
“자신의 혀가 갈라질 때까지 날카로운 창날을 계속 핥는다고요?”
“얼음을 핥으면서 혀가 마비되었거든요.”
“아.”
김민석은 입을 벌렸다.
그도 바보가 아닌 이상 대충 무슨 이야기인 줄은 알아들었다.
중요한 것은 도훈이 에스키모라는 이야기였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늑대 중 한 마리일지도 모른다는 것이고 말이다.
탄성을 멈춘 김민석이 다급하게 물었다.
“그런데 에스키모가 늑대를 잡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맞춰 보시죠, 부사장님.”
“가죽을 팔려고요? 아니면 늑대 고기가 탐나서요?”
“에이, 부사장님은 농담도 잘하십니다.”
너무 무거워진 분위기를 풀려는 듯 도훈의 말투가 가볍게 바뀌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늑대 가죽으로 만든 명품 보셨나요?”
“하긴 못 봤습니다.”
“그럼 고급 음식점에서 늑대 고기가 나오는 건요?”
“흠, 그것도 못 봤습니다. 대체 무슨 이유로 늑대를 잡으려는 거죠?”
“늑대가 에스키모에게 위협이 되어서겠죠. 자꾸 물려고 호시탐탐 이를 드러내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겠습니까?”
“아, 물려고 그래서 잡으시려는 거군요.”
“오해는 마세요. 제 얘기가 아니라 북극의 에스키모 이야기니까요.”
도훈이 손을 내저었다.
그 모습에 김민석이 말했다.
“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김민석은 재빨리 핸드폰을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그러면서도 핸드폰 화면에서는 눈을 떼지 않았다.
그 모습에 도훈은 어깨를 으쓱하며 창밖을 바라봤다.
“어떤 놈이 섀도복싱을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을까?”
* * *
강남의 한 오피스텔.
열 개의 책상에 모두가 헤드셋을 끼고 있다.
그들 사이에는 작은 목소리로 대화가 오간다.
이어지는 자판 두드리는 소리와 마우스 딸깍대는 소리가 제법 경쾌하게 울린다.
만약 복장까지 맞춰 입었다면 프로게이머들이 합숙 훈련을 할 정도인 줄 알았을 것이다.
그곳의 책임자인 현중만은 기분이 좋은 듯 팔짱을 끼고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번 일의 착수금은 3억.
크다면 크고 어찌 보면 푼돈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판돈을 의뢰인이 깔아 주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차트를 헤집으며 놀이터를 제공해 준 것이었다.
한국대 경제학과 출신의 엘리트인 현준만은 국내 굴지의 증권사인 원진 증권에서 최연소 상무 자리를 꿰찼으나 주가 조작에 연루되어 옷을 벗은 인물이었다.
그가 뉴스에서 한 유명한 말은 아직도 짤로 온라인에 돌아다니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