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36)
도훈은 그녀가 왜 자신을 불렀는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강영웅이 왜 7팀 소속의 아티스트인지를 궁금해하는 것이 분명했다.
도훈이 말했다.
“그냥 영웅이 형이 그렇게 원해서 소속을 정한 것뿐입니다.”
“아, 벌써 형, 동생 하는 사이면 이 실장 붙임성이 보통이 아닌가 봐요?”
“뭐, 좀 제가 붙임성이 좋은 편이죠.”
“그런데 뭐 좀 물어봐도 돼요?”
“뭐든지 물어보세요, 팀장님.”
“혹시 대표님하고는 어떤 사이예요?”
“대표님하고요?”
“누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라고 하던데, 그게 정말인가요?”
조심스럽게 묻는 한유라.
도훈은 지금 사내 정치의 한복판에 휘말렸음을 직감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라…….
뭐, 맞는 말이긴 했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여기에서 사실이 알려진다면 잘못하면 유레카는 아비규환이 된다.
“그건 반 정도는 맞긴 해요.”
“오, 정말이군요. 이 실장 성격이 시원스럽네요. 대체 어떤 사이길래…….”
“대표님 이름이 뭐죠?”
“이도훈…… 아, 그러고 보니!”
“조금 먼 친척입니다. 재벌과는 거리가 먼 대신에 돌림자는 같이 쓰는 사이죠. 그러니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맞죠. 솔직히 제가 호적을 파서 옮길 이유도 없고 대표님이 그럴 이유도 없으니까요.”
“그런 사정이 있었네요.”
“혹시 궁금하다고 하는 분 계시면 말씀해 주셔도 돼요, 대신에…….”
“대신이라면?”
“공짜로는 말해 주시지 말고 마카롱이라도 가져오라고 한 다음 말씀해 주셔야죠.”
“하하, 이 실장 정말 재미있다.”
의문이 풀렸는지 살짝 말투도 가벼워졌다.
도훈은 재빨리 다음 말을 이었다.
“정여진 선생님 작품 말인데요. 한 팀장님이 좋아하시지 않는 거 눈치챘습니다.”
“음, 눈치는 빠르네.”
“그런데 제가 이거 하나는 장담하거든요.”
“흠, 이 실장 얘기라면 들어 볼 테니 편하게 얘기해요.”
“그 작품 터집니다. 독립영화라서 조금 고개를 갸우뚱하실 수도 있지만, 이 영화 작품성은 제가 장담합니다. 뭐, 저하고 내기를 하셔도 좋습니다.”
“왜 그렇게 장담하는 거죠?”
“아까 본 김 작가 말이죠.”
“김 작가가 왜요?”
“천재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어렸을 적부터 봐 온 친구인데, 유학파에다가 미국에 있었으면 할리우드에서 데뷔하고도 남았을 친구예요.”
“그럼 전공이 혹시 영화 쪽?”
“전공은 법학입니다.”
“헉.”
“뭐, 성공한 사람들 보면 다 비슷하잖아요. 하버드 중퇴에 세계 최고의 IT 기업의 CEO가 되고 의학 박사인데 최고의 소설가가 되고…….”
도훈은 숨도 쉬지 않고 수많은 천재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뭐, 전생을 돌이켜 보면 김다솜은 천재가 맞았다.
다만 이름 없는 천재라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도훈의 말을 듣던 한유라의 눈이 점점 빛났다.
마치 최면술에 걸린 것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그녀의 눈동자를 보자 도훈은 보이지 않게 미소 지었다.
그녀가 봤을 때 도훈은 이 업계의 초짜.
하지만 상황은 반대였다.
이 업계 30년 경력과 그에 따른 성공이 딱지치기로 얻어진 것은 아니니 말이다.
물론 전생의 이야기였다.
한참을 듣던 한유라가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그 모습에 도훈이 물었다.
“왜 그러세요?”
“이 실장 말하는 게 좀 수상해서 그래.”
“제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요?”
“지금 든 생각인데, 이쪽 업계 선배들이랑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좀 기분이 묘하네.”
“하하, 제가 붙임성이 좀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 기분이다.”
“기분이라니요?”
도훈은 뜻하지 않은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이 실장, 내 라인으로 들어와.”
“라인이요?”
“이래 봬도 내 라인이 튼튼하거든. 김민석 부사장님과도 호형호제하는 사이라고.”
한유라가 자랑스럽게 말하자 도훈도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거 호형호제 맞나요?”
“맞아, 술 한잔 들어가면 내가 형이라고 하니까.”
“그럼 좋습니다, 어차피 2팀과 7팀은 한배를 탄 처지 아닙니까? 언제든 뭉치죠.”
“그럼 약속한 거다, 이 실장.”
“네, 약속드리죠.”
“그런 의미에서 오늘 한잔 어때?”
“아, 그럼 안 되죠, 한 팀장님은 이따 정여진 선생님도 모셔다드려야 하잖아요.”
“모셔다드리고 와서 한잔하면 되지.”
“저는 영웅이 형이 늦게라도 오라고 해서…….”
도훈은 살짝 말끝을 흐리며 한유라의 눈치를 봤다.
하지만 한유라는 강영웅의 이야기가 나오자 재빨리 손을 저었다.
“아, 그렇다면 무조건 가 봐야지.”
“나중에 시간 되실 때 한잔하시죠. 일단 제가 팀장님 라인이라는 건 잊어 먹지 않고 있겠습니다.”
도훈이 씩 웃었다.
도훈의 기분 좋은 대답에 한유라가 미소로 답한다.
“알았어, 누가 건드리면 바로 이야기하고.”
한유라가 엄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웃었다.
이후 시답지 않은 이야기가 오갔다.
호기심을 다 푼 한유라는 인심 좋은 누나처럼 연신 도훈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사실 이상한 현상은 아니었다.
도훈이 대표와 먼 친척이라고 했으니.
당연히 자신의 라인에 넣고 싶은 것은 당연했다.
이것으로 여러 곳에서 터질 것 같았던 변수를 모두 막은 느낌이었다.
도훈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유라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만 가 보겠습니다, 팀장님. 커피 잘 마셨습니다.”
“그래, 나도 마카롱 잘 먹었어.”
한유라가 마카롱 상자를 가리켰다.
도훈의 눈이 커졌다.
그곳에 수북했던 마카롱은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순간 도훈은 한유라가 매니지먼트 회사가 아닌 너튜브에서 먹방러로 키울 인재가 아닐지 천천히 고민해 보기로 했다.
도훈은 조용히 복도를 걸었다.
도훈과 마주친 직원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도훈은 마주 인사를 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오늘따라 더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것 같았다.
분명 벌써 소문이 돈 느낌이었다.
도훈은 고개를 돌려 2팀 사무실을 바라봤다.
소문이 거의 5G 수준으로 빠르다.
처음에는 낙하산이라 경계 대상이었는데, 이렇게 반 정도 진실을 털어놓고 나니 태도가 확 바뀐 느낌이었다.
“안녕하세요, 실장님.”
“아, 안녕하세요.”
직원들의 변한 태도에 도훈이 얼떨떨할 정도였다.
대표의 친척이라는 소문과 부사장과 한유라 쪽으로 이어지는 줄을 탔다는 소문도 같이 퍼진 듯싶었다.
지나가는 이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던 도훈은 조용히 비상구 쪽으로 빠져나갔다.
그러고는 조용한 창가 쪽으로 걸어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가기도 전에 상대는 전화를 받았다.
도훈은 씩 웃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부사장님. 우리 거기서 좀 뵙죠.”
* * *
전화를 받은 김민석 부사장은 조용히 천장을 올려다봤다.
이렇게 가끔 호출이 올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도훈과의 통화는 자신이 뭔가 잘못을 한 것은 아닌지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거기에 가끔 다른 생각도 들었다.
도훈이 진실을 밝히고 대표 자리에 복귀하게 되면 자신은 다시 본부장으로 내려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었다.
도훈이 제공한 혜택은 그저 자리뿐이 아니었다.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연봉까지 덤으로 올랐다.
덕분에 김민석은 며칠 전 아이들의 핸드폰까지 바꿔 주는 선심을 쓸 수 있었다.
부사장이라는 자리는 올라와 보니 내려가기 싫은 자리였다.
김민석은 마른침을 삼키며 약속 장소로 걸어갔다.
약속 장소는 이전과 똑같이 유레카에서 한 구역 정도 떨어진 커피숍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지난번과 똑같은 자리에 도훈이 앉아 있었다.
어떻게 한결같이 저 자리에 앉아 있을까?
김민석은 조용히 커피숍을 둘러봤다.
제법 많은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도 항상 같은 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은?
김민석은 처음으로 이곳이 도훈의 소유가 아닌지 고민해 봐야 했다.
한번 의심을 하고 나니 주변에 앉아 있는 손님들까지 이상하게 보였다.
이건 김민석이 재벌 3세에게 가지고 있는 착각이었다.
김민석이 자리에 앉지 않고 두리번거리자 도훈이 웃었다.
“하하, 부사장님 어딜 그렇게 보세요?”
“아, 아닙니다. 그런데 갑자기 저를 왜 부르셨는지…….”
“요즘 바빠서 부사장님과 대화도 못 나눴잖습니까? 그래서 전화했습니다.”
“휴…….”
“왜 한숨을 쉬십니까?”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김민석은 재빨리 손을 휘휘 내저었다.
“이번에 정여진 선생님과 이지유 배우가 독립영화에 함께 출연한다는 건 보고를 받으셨죠?”
“네?”
“아직 못 받으셨군요. 소문보다 보고서가 느리면 그건 좀 그런데…….”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소문보다 보고서가 느리다니요?”
“제가 부사장님 라인 탔다는 소문은 눈 깜짝할 사이에 퍼지더니 정작 중요한 업무 보고는 좀 느린 것 같아서요.”
“대표님이 제 라인이라니요?”
“한유라 팀장이 그러더군요. 자기가 부사장님 라인이니, 저보고 같이하자고.”
“헉, 이런 망할, 한 팀장…….”
“괜찮습니다, 원래 친한 사람끼리 모이는 법이잖아요. 대신에 부탁 좀 드리죠.”
“말씀하십시오.”
“회사 내 라인에 대해서 조사 좀 부탁드립니다.”
“흠, 회사 내에 라인이라는 게 있을 수가…….”
“제가 부사장님하고 한 팀장 라인인데 없다는 건 말이 안 되고요. 그저 업무에 참고하려는 거니 부탁드립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 보내는 친구에 대해서 알아봐 주십시오.”
도훈은 핸드폰 화면을 톡톡 터치했다.
순간 김민석의 핸드폰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디링.
재빨리 메시지를 확인한 김민석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묻는다.
“대표님, SW의 우시원이요?”
“네, 그 친구와 관련된 거 탈탈 털어 주십시오.”
“우시원이라면…….”
김민석의 눈이 커졌다.
지난번에 도훈이 준 서류가 기억난 것이다.
그곳에 우시원이라는 이름이 분명히 있었다.
그때 도훈이 다시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들 모르게 정보를 모아 주십시오.”
“그런데 혹시 그 사람들 영입할 사람들 아니죠?”
김민석은 눈을 가늘게 뜨고 도훈을 바라봤다.
그는 지금 진심으로 묻고 있는 것이었다.
김민석도 이 바닥 경력이 그리 적지는 않았다.
다른 이들보다는 적겠지만, 연예인을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내보내는지 그리고 어떻게 영입하는지 정도는 훤히 알고 있다.
그런데 자신이 영입할 인재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대략적인 인적 사항은 알고 있다는 점이다.
김민석의 심각한 눈빛을 본 도훈이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꼭 빚을 받아 내려는 느낌이라서요.”
“그 반대입니다, 제가 빚을 졌지요.”
“그럼 빚을 갚으시려고…….”
김민석의 눈빛이 살짝 떨렸다.
도훈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빚을 갚아야죠. ……꼭요.”
도훈의 눈빛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이것은 도훈의 진심이었다.
도훈의 눈동자에 전생의 기억들이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간다.
도훈은 그들에게 빚이 있었다.
그들 덕분에 과거로 돌아오고 이렇게 인생 2회차를 즐길 수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