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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33화 (33/250)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33)

도훈이 씩 웃자 상대는 손뼉을 치며 눈을 크게 떴다.

“그 이도훈 오빠가 진짜 맞아요?”

“그래, 꼬맹이가 많이 컸네.”

“그런데 왜 기획사에 있어요?”

“그런 너는 왜 시나리오 쓰고 있는데?”

“그건…….”

김다솜이 말문이 막히는 듯 물을 들이켰다.

도훈은 재빨리 한민국을 바라봤다.

“한 매니저 미안한데, 잠깐만 자리 좀 비켜 줄래? 전에 알던 친구를 만난 것 같아서.”

김다솜도 힐끔 옆을 보더니 정재웅에게 말했다.

“재웅 오빠도 잠시만요.”

잠시 후.

도훈은 김다솜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을 사이에 두고 어색하게 앉았다.

그 침묵을 깬 것은 도훈이었다.

“너 시나리오 작업 어른들 몰래 하는 거지?”

“……네.”

김다솜은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훈은 잠시 그녀와의 옛 기억을 떠올렸다.

김진표는 초등학교 시절 단짝 친구였다.

집에도 자주 놀러 갔기에 그의 여동생인 김다솜과도 스스럼없던 사이.

하지만 도훈의 부모가 돌아가신 후 상황은 바뀌었다.

도훈이 말도 없이 전학을 가게 된 것.

김진표와 만나게 되는 것은 도훈이 서른 중반이 되어서였다.

기획사를 키우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뛰어다니던 시절이었다.

급하게 응급실에 갔는데 마침 눈앞에 어릴 적 헤어졌던 친구가 있던 것이다.

그때부터 어릴 적 헤어졌던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뭐, 그 동생도 몇 번 같이 보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케이의 정체를 미리 떠올릴 수 없었던 것은 도훈이 기억하고 있는 김다솜의 직업 때문이었다.

당시 김다솜은 변호사였다.

나중에 들었던 이야기에 의하면 집안 어른들의 성화에 고시 공부를 했다고 했다.

고시생이 천재 작가라고?

전생에 알고 있던 김다솜과 케이를 비교해 본다면?

한마디로 재능 낭비였다.

변호사는 발에 치이지만, 작가 케이는 딱 하나밖에 없으니 말이다.

왜 투자가 필요 없는지도 대충 감이 잡혔다.

도훈이 말을 이었다.

“예약이 힘든 여길 한 시간 전에 잡았을 때부터 알아봐야 했는데. 여기 삼촌이 하시는 데 맞지?”

“네.”

“대체 어떻게 잡은 거야?”

“그냥요.”

어색하게 웃는 김다솜.

한참을 웃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빠는 어떻게 된 거예요?”

“나는 아까 명함 준 대로 유레카에서 일하고 있어.”

“미라클 쪽은 어떻게 하고요.”

“그쪽하고는 이제 끝.”

“혹시 유레카가 오빠 회사예요?”

“눈치챘네, 대신 서로 비밀은 지켜 주기로 하는 게 어때?”

“그건 좋아요. 그럼 공동 집필도 오케이요?”

“흠, 그건 좀 생각해 봐야겠는데…….”

“승낙하면 투자도 받아들일게요.”

“그럼, 내가 투자하는 대신…….”

이번에는 도훈이 제법 긴 설명을 이어 나갔다.

* * *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한민국이 물었다.

“얘기는 잘되신 것 같은데 맞죠?”

“잘 안 됐어.”

“네? 아까 보니까 분위기가 화기애애하시던데요?”

“화기애애하기는 무슨!”

“그럼 아니에요?”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도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케이의 정체도 알게 되었고 그게 김다솜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지만, 그녀는 그리 녹록한 상대가 아니었다.

전생에도 도훈이 첫사랑이었다느니 그러면서도 변호사 수임료를 한 푼도 안 깎아 줬으니까.

생각해 보니 전생에 초원의 집을 재상영했을 때 김다솜과 같이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도훈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작가 케이에 대해 칭찬을 했었는데, 그게 본인이었을 줄이야!

* * *

초원의 집 오디션용 대본이 온 것은 그다음 날이었다.

투자까지 하는데, 독립영화에 배역 하나 못 준다니!

김다솜이 찍어 놓은 배우가 있다니 그건 이해해야 했다.

주인공은 엄마와 세 명의 딸.

세 명의 딸은 각자의 개성이 또렷했다.

그중 가장 인기 있었던 것은 바로 둘째 딸.

첫째와 둘째의 중간 고리 역할을 하며 다혈질적인 첫째와 순수하기만 한 막내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라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이지유를 정상으로 가는 초특급 열차에 태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둘째 역할에 픽스시켜야 했다.

대본을 읽어 보는 도중 7팀 사무실의 문이 열렸다.

도훈의 앞에 달려온 이지유가 숨을 몰아쉰다.

“헉헉.”

“왜 이렇게 달려왔어?”

“이거 보고 바로 달려오는 길이에요.”

이지유가 자신의 핸드폰 화면을 가리켰다.

그것은 도훈이 보내 줬던 오디션용 대본이었다.

“이게 뭐예요? 저 이거 못해요.”

“할 수 있어.”

“아니, 준비도 없이 이걸 던져 주시면 어떻게 해요?”

“장 선생님께 레슨받고 있잖아.”

“지금 딱 두 번 받았어요. 기간으로는 이 주일이고요. 그런데 갑자기 오디션에 나가라고 하시면…….”

자세히 보니 눈물까지 글썽인다.

저게 연기라고 한다면 흔치 않은 재능이다.

지금 이지유의 가장 큰 문제는 연기에 대한 두려움.

방법을 묻는다면 정면 승부밖에 없다.

도훈이 말했다.

“내가 도와주지.”

“시, 실장님이 도와주신다고요?”

“그래, 내가 도와줄 테니 한번 해 보자.”

“그러니까, 새로 레슨 선생님을 붙여 주시겠다는 거죠?”

“아니, 내가 도와주겠다고.”

“아니, 실장님이 레, 레슨을 해 주시겠다고요?”

“내가 어떻게 연기를 가르쳐 그냥 상대역을 해 줄 테니 따라와.”

“실장님이 제 상대를요?”

“실장급 정도 되면 대사 몇 마디 정도는 치잖아, 안 그래?”

“얘기 들어 보니 일하신 지 얼마 안 되셨다고 하던데…….”

“뭐, 그럼 이 김에 배우면 되는 거고.”

어색하게 웃는 도훈을 본 이지유가 호기심에 눈을 빛냈다.

* * *

잠시 후.

유레카의 연습실에 마주 앉은 도훈과 이지유.

둘은 방금 프린트한 따끈따끈한 대본을 손에 쥐고 있었다.

오디션의 대본은 엄마와 딸의 대화가 주된 내용이다.

감정의 굴곡이 없는 편안한 대화.

아마 정재웅 감독과 김다솜 작가는 대사의 자연스러움을 중점에 두고 캐스팅을 확정할 것이 분명했다.

초원의 집이 대박 난 후 영화 관련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은 간단했다.

가장 일반인 같은 배우를 뽑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

진짜 일반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움을 연기하는 배우를 원한다는 것이다.

대본을 잡은 도훈이 목청을 가다듬기 위해 헛기침을 했다.

“흠, 아아.”

“그러시니까 너무 진지해 보여요.”

이지유가 도훈을 보며 피식 웃자 도훈이 말했다.

“나 진짜 진지해. 그리고 나뿐 아니라 우리가 진지해야 할 상황이야.”

“그런데 왜 그렇게 이 작품에 집착하시는 거예요? 배우로 방향을 정하라고 하셔서 준비는 하고 있지만, 저 아직 준비도 안 됐고요.”

“나는 내 예감을 믿거든.”

“이 작품이 대박 난다는 예감이요?”

“아니, 네가 이 작품으로 뜬다는 예감.”

“그게 뭐예요?”

“지금 상황에서는 밑져야 본전이잖아. 지금 투자한 시간도 별로 없으니 가능성을 시험해 보기에 딱 좋은 기회지.”

“만약에 떨어지면요.”

“그럼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지, 그럼 시작한다.”

도훈이 대본을 넘겼다.

그러고는 이지유를 바라보며 턱짓했다.

먼저 시작하라는 신호.

이지유의 표정이 서서히 바뀐다.

이제까지 겁먹었던 표정은 어디 가고 당찬 이십 대 후반의 패기가 묻어 나왔다.

표정을 바꾼 이지유가 말했다.

“엄마! 내가 선물 사 왔는데 표정이 왜 그래.”

“뭐, 빼먹은 거 없니? 우리 딸.”

“빼먹은 거 없는데, 엄마 생일 선물 말고 빼먹은 게 어디 있어? 혹시 꽃다발?”

“그거 말고 있잖아, 내가 항상 신신당…… 흠.”

도훈은 헛기침을 뱉었다.

대사가 꼬인 것이다. 그런 도훈을 이지유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본다.

도훈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도훈이 맡은 역은 초원의 집의 주인공 역할인 엄마.

대사를 뱉은 도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맛깔이 안 났기 때문이다.

지금은 전에 느꼈던 이지유의 재능이 실현되고 있지 않았다.

아마도 절체절명의 위기가 와야지 능력이 발현되는 듯싶다.

전생에는 현역 배우만큼 대사를 잘 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오랜만에 해 보려니 묘하게 혀가 꼬인다.

게다가 엄마 역할에 대한 감정이입도 되지 않았다.

뭐, 감정이입까지 해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상대가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은 만들어 줘야 했다.

도훈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 혀가 꼬였네.”

“아니에요, 연기자도 아닌데 당연하죠.”

“그렇게 얘기해 주니 고맙네.”

“원래 시작은 힘든 법이에요.”

이지유는 자신의 상황은 잊은 채 도훈을 안쓰럽게 바라봤다.

도훈은 그녀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처음에 대본을 잡고 무서워하던 표정은 어디에도 없었다.

도훈이 말했다.

“그럼 다시 시작해 볼까?”

“네.”

이지유가 힘차게 답했다.

잠시 후.

위기는 이지유가 아닌 도훈에게 찾아왔다.

여자 역할이라서 그런지 이상하게 혀가 꼬이면서 개그 코너 같은 상황이 만들어졌다.

어찌 보면 위기.

그때 도훈의 머릿속에 지금의 상황이 그려진다.

보육원에서 느꼈던 바로 그 느낌이다.

마치 타인의 눈으로 대본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묘한 감각이었다.

도훈은 힐끔 자신의 가슴을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수첩이 환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그런 도훈을 본 이지유는 아무렇지 않게 대사를 뱉었다.

“엄마! 내가 선물 사 왔는데 표정이 왜 그래.”

“뭐, 빼먹은 거 없니? 우리 딸.”

도훈이 진짜 엄마 같은 표정으로 이지유를 바라본다.

따뜻하면서도 단호할 때는 단호한 역할을 그대로 표정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런 도훈의 표정을 본 이지유가 감정에 몰입한 듯 대사를 토해 냈다.

“빼먹은 거 없는데, 엄마 생일 선물 말고 빼먹은 게 어디 있다고 그래? 혹시 꽃다발?”

“그거 말고 있잖아, 내가 항상 신신당부했잖아.”

도훈이 대본을 쫙 펼쳤다.

대본에는 영수증이라고 나와 있었다.

영수증 소품 대신에 대본을 펼친 것.

이지유가 다시 말을 받았다.

“엄마, 영수증은 왜 보여 주는 거야?”

“여기 봐 봐, 빠진 게 뭔지?”

“아무리 봐도 없는데…….”

“여기 뭔가 허전해 보이지 않니?”

“엄마 혹시 적립금?”

이지유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장면은 알뜰하다 못해 살벌하게 억척스러운 엄마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둘째 딸이 취업 기념으로 생일 선물을 사 오지만, 왜 적립을 안 했냐고 따져 묻는 엄마.

대한민국에서 있을 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글퍼지는 장면.

도훈과 이지유는 계속 주고받았다.

그것도 잠시, 다시 도훈의 혀가 꼬였다.

“아, 그러니…… 흠, 미안하다.”

“괜찮아요, 그런데 갑자기 분위기가 확 변하셨네요. 저보다 더 잘하시는데요. 오디션은 실장님이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하하.”

도훈이 실없이 웃었다.

지금의 능력이 이지유의 재능이라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순간 밝게 빛나던 수첩이 빛을 잃었다.

도훈은 상대의 재능을 끌어다 쓰는 것에 시간제한이 있다고 느꼈다.

내 배우와 가수들을 훌륭하게 케어하기 위해서 준 신의 선물이지만, 아직은 완벽하지 않았다.

도훈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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